소설리스트

대정그룹-23화 (23/322)

< --오직 그대만을 위하여-- >

내가 멋쩍은 미소를 짓고 있는데, 미정은 나를 바라보며 기분 좋은 미소를 띠고 있다. 그러자 어머니의 핀잔이 미정을 강타했다.

"웃기는 왜 웃어, 이년아! 그러고도 웃음이 나와!"

모친의 말에 웃음이 쏙 들어가는 미정이었다.

"그러나 저러나 네 애비가 알면 또 난리를 칠 텐데. 일단 이 일은 비밀로 하자. 그리고 너 미정이! 몸 풀기 전에는 절대 집안에 발들이지 마. 그리고 세월이 흘러 네가 고등 가 마칠 때 되면, 서둘러 시집보내는 것으로 하자."

"알겠어요. 엄마! 고마워요. 엄마!"

"이것아, 아무리 그래도 자식 잡아먹는 부모는 없는 법이야. 다 느덜 잘 되라고 잔소리도 하고 그러는 것이지. 여하튼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당장 집구하러 가지. 돈 모질라면 살림살이 대신, 내 조금은 보태 줄 모양이니까."

"안 그러셔도 됩니다. 비록 사지는 못하지만 좋은 사글세 방 구할 돈은 있습니다."

"아이고, 우리 미정이 언제 돈 벌어 또 사글세 방 면하나?"

"금방일 겁니다. 어머니. 제가 대학교 들어갈 때쯤이면 집 한 칸 마련할 돈은 충분히

벌 수 있을 겁니다. 지금 당장이라도 집을 사려면 사겠지만, 사업에도 밑천이 있어야 돼서."

"그렇다면 다행이고. 그러나 저러나 얼른 일어나자고."

"엄마! 너무 서둘지 말아요. 저이 아직 점심도 못 먹을 것 같은데........."

"하긴, 우린 먹었냐?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나? 네년이 나가서 국수 나부랭이라도 삶아 와."

"네, 엄마!"

미정이 대답하고 곧 바로 방을 나가자 미정이 모친이 한결 친근해진 모습으로 물었다.

"그래, 양친은 다 살아 계시고?"

"네!"

"뭐, 하시는데?"

"촌에서 농사짓고 있습니다. 어머니!"

"우리랑 형편이 비슷하고 만. 우리 집 이야기는 저 아이로부터 들었지?"

"네, 어머니!"

"학생이 객지에 나와 고생하는 것을 보면, 잘 사는 집안은 아닐 테고, 몇 남매인가?"

"제가 장남이자 삼대독자입니다. 밑으로 여동생이 셋 있고요."

"저런, 저런. 부모님 슬하에 들어가면 미정이가 시집살이 엄청 하겠는데?"

"부모님이랑 같이 살 일은 아마 거의 없을 것입니다. 제가 나중에 잘 살아도 촌이 좋다고 나올 분들도 아니고. 단지 늘그막에는 모셔야겠지요."

"그렇다면 몰라도."

"공부는 잘 하나?"

"지금까지는 청고에서 전교 석차가, 5등 이내를 벗어난 적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어머니!"

"그래? 공부까지 잘 한다니 금상첨화군. 저 년이 저래도 정말 서방 복 하나는 타고난 모양이야. 아주 잘 물었어."

"네?"

"아니야, 아닐세."

무심코 뱉어놓으시고는 손을 흔들어 수습하는 미정이 모친이었다.

"이만 하면 사위 하나는 잘 본 것 같은데, 제 애비에게 숨길 일이 걱정이군."

혼자 중얼거리시던 모친의 중얼거림이 이어졌다.

"걸려도 이만한 사위라면, 그 양반도 이해하실 거야."

여기서 모친이 나를 똑바로 바라보며 말씀 하셨다.

"자네 부모님도 이 사실을 아셔야 할 것 아닌가?"

"종당에는 아시겠지만 저도 가능한 고등학교를 졸업 할 때까지는 숨기고 싶습니다. 좋은 일도 아닌데, 괜한 일로 걱정 끼쳐드리고 싶지는 않습니다."

"그래, 그래. 그 문제는 사위가 알아서 하고. 미정이 저 것 아무 것도 모르니, 사위가 잘 가르쳐서, 인간 만들어 데리고 살어."

비로소 사위라 말씀하시며 걱정이 가득하신 미정의 모친이었다.

"알겠습니다. 어머니! 앞으로 걱정 끼쳐드리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어머니!"

"그래, 그래. 그런데 이제 나를 장모라고 불러야 하지 않나? 나도 사위로 인정한 마당에."

"알겠습니다. 장모님! 앞으로는 쭉 그렇게 부르도록 하겠습니다. 장모님!"

"그래, 그래! 어디 우리 잘 난 사위, 어디 한 번 안아보자."

그리고 엉거주춤 나를 끌어안으시는 장모님이셨다. 이후 우리는 국수를 먹고 셋이서 집을 보러 다녔다. 그래서 반나절 동안 다리품을 판결과, 우리는 사직동의 새로 지은 양옥집에, 넓고 큼직한 방 한 칸을 얻을 수 있었다. 물론 수도도 나오고 전기도 들어온다. 단 한 가지 흠은 화장실이 바깥에 있다는 것이다.

그래도 보증금 만원에 월 3,000원짜리 사글세방은 쉽게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서, 우리는 만족했다. 이후 나는 집주인 아저씨께 이사를 가게 되었다고 대충 둘러대고, 리어카 하나를 빌려 바로 이사를 했다. 살림살이가 얼마 되지 않았으므로 이삿짐은 리어카 한 대 분량이면 충분했다. 여기에 미정이 살림살이는 더욱 간단했다. 부엌 및 대부분의 살림을 맹금자에게 주었으므로, 그녀는 자신의 밥공기와 여타 꼭 필요한 생필품 외에 책과 옷가지가 전부인 이삿짐이었다. 그날 초저녁. 나는 모녀가 저녁을 준비하는 것을 보고, 지사 사무실로 와 주재후 기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나의 제의를 흔쾌히 수락해 지사장실에서 만남을 가졌다. 2층을 본사 박 부장과 우리는 반씩 나누어 사무실을 쓰고 있었다.

즉 공간의 반은 충북 담당 박 부장의 사무실이고, 나머지 반은 청주지사 사무실인 것이다. 우리의 사무실 내에는 지사장실이 별도의 공간으로 꾸며져 있었다. 우리가 자리를 잡자 김명자가 알아서 커피 두 잔을 내왔다. 경리들도 이제는 이 곳 한 곳으로 몰았다. 그래서 이 명희도 이곳에서 사무를 보고 있었다. 이명희가 서부와 남부를 맞고 김명자는 지사를 맡아 업무를 보고 있었다. 아무튼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마시면서도, 주 기자의 시선은 내게로 향해 있었다. 막상 주 기자를 불러놓긴 했지만 좀 창피한 일이라 입이 떨어지지 않아, 내가 잠시 망설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제가 청고에서 퇴학을 맞게 되었습니다. 그 원인은......."

이렇게 운을 뗀 내가 자초지종을 소상히 설명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그러니 주 기자님께서 교장과 저희 담임선생님을 찾아가, 다른 학교로라도 전학이라도 할 수 있도록, 선처를 부탁드리려고요."

"하하하........! 일만 잘 하는 줄 알았더니 연예질도 선수인 모양이네. 남의 안 된 일에 웃어서 미안하지만, 사실 느낌이 그러니 어쩌겠나. 아무튼 이야기는 내 잘 들었고, 내 알아서 다 처리할 테니, 누구에게도 쩐질할 생각은 말게."

여기서 잠시 쉬면서 커피를 한 모금 마신 주 기자의 말이 이어졌다.

"더한 교육감이라도 나라면 벌벌 떠니까, 교장이나 담임선생 정도야 내 이빨로 충분히 녹일 수 있네. 하고 내게도 전질할 생각은 말게. 지난번 남부 지사에서 받은 돈도 있고, 이곳 지사도 내 많은 부수를 판촉해 줄 테니, 그 때 섭섭지 않게 술값이라도 좀 주시게."

"고맙습니다. 주 기자님! 그래도 식사비 정도는 드려야 안 되겠습니까?"

"어허! 방금 내 말을 콧등으로 들었나? 내가 필요 없다면 필요 없는 것이야. 나 이만 가보겠네. 그 사람들 퇴근하기 전에 당장이라도 만나야 되니까."

바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주 기자를 따라, 엉거주춤 일어선 내가 말했다.

"그럼, 저 2학년1반입니다."

"그 정도야, 학교 가서 물어보면 대번에 알 수 있지. 요번에 연애질해서 짤리게 된 놈이 몇 학년 몇 반이냐고 물으면, 당장 답이 나오지 않겠나? 하하하........!"

그의 말에 뻘쯤해서 나는 제대로 배웅도 못 했다.

그를 보내고 나도 곧 바로 사무실을 나와 새로 얻은 사직동 집을 찾아갔다. 내가 집에 도착하니, 벌써 저녁은 다 지어 놨으면서도, 두 모녀는 저녁도 안 먹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왜 저녁을 안 드시고.........?"

"갔던 일은 잘 처리 됐고?"

"네. 이곳 주재 한국일보 기자인데, 교장선생님과 담임선생님을 제 부모님 대신 찾아뵙고, 전학이라도 할 수 있게끔 손을 써주신다 했습니다."

"그럼, 잘 된 일 아닌가?"

"네, 잘 처리 될 것 같습니다. 자신의 말로는 충북 교육감도 자신에게는 꼼짝을 못한다고 하니 믿어 봐야지요."

"오빠, 잘 됐다. 그치?"

"네 입에서 그 말이 나오냐?"

"지금 오빠가 뭐시기여, 오빠가! 하늘같은 서방님을 그렇게 불러서야 되겠냐? 서방님 소리는 못 할망정."

미정은 한 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 찾았다. 나에게 통박을 당한 것은 물론, 장모님께도 '오빠'라고 호칭했다고 되게 혼이 났다.

"장모님! 저녁이나 들지요?"

"자네도, 그래! 앞으로 또 오빠라고 부르거든, 되게 야단을 쳐서, 그렇게 못 부르도록 해."

"그럼, 뭐라고 불러요?"

미정의 반격이었다.

"서방님이라고 불러. 그 소리가 안 나오거든, '여보'라고 부르던가. 정 이 소리 저 소리도 안 나오면 '자기'라고 불러. 알겠니?"

"네, 엄마!"

수긍을 한 미정이 발딱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모친을 놀리는지 바로 그 자리에서 써먹었다.

"자기야! 배고프지? 내 바로 밥상 차려올게."

"아이고, 쯧쯧........!"

"왜, 엄마는! 금방 그렇게 부르라 매?"

"새파랗게 젊은 년이, 학교도 못 다니게 된 주제에 그렇게 부르니, 이 어미 복장이 터져서 그런다."

모친의 말에 입을 삐죽 빼죽이며 부엌으로 향하는 미정이었다. 잠시 후.

저녁상이 들어왔다. 내가 좋아하는 김치찌개에 꽁치조림, 계란 후라이가 세 개까지 있는 밥상이었다. 내가 얼른 일어나 그녀가 들고 들어온 밥상을 받았다. 그리고 미정을 향해 꾸짖었다.

"홀몸도 아니면서, 나를 부를 것이지. 이 무거운 것을 들고 와."

"별로 안 무겁던 데. (메롱~!)"

어머니 안 보이게 얼른 혀를 쏙 내밀었다 들이미는 미정이었다. 장모님은 미정의 표정을 보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다툼을 아주 흐뭇한 시선으로 바로보고 계셨다. 내가 미정에게 받은 상을 내려놓자 미정은 말없이 또 부엌으로 향했다.

"왜 또 들고 올 것 있어?"

"밥!"

"자기는 가만히 있어. 뜨거우니 내 얼른 들고 들어올게."

우리의 대화를 듣는 장모님의 표정이 한마디로 가관이었다. 어이없다는 표정이었다가,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기어코 속내를 털어놓고 마시는 장모님이었다.

"아이고, 너희들 하는 짓을 보니, 어린애들이 소꿉장난 하는 것 같아, 귀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어이가 없기도 하다. 한창 공부할 나이에, 이게 뭔 짓들 하는 것인지, 원........"

끝내는 끌탕까지 하시는 장모님이셨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부엌으로 나가 밥이 든 냄비를 들고 들어왔다. 방에는 벌써 바닥에 걸레가 깔려 있어, 나는 그 위에 냄비를 내려놓았다. 미정이 주걱을 들고 밥을 펐다.

"엄마, 이리 오세요. 식사하셔야지요."

"식사가 뭐냐? 진지 잡수시라고 해야지."

"오늘 따라 잔소리 되게 많네."

"저년이 지금........."

"그래봐야 이제 엄마 하나도 안 무섭다."

"이제 이년이 기가 살았어, 정말 기가 살았어!"

미정의 곁에까지 가서 주먹을 을러메었지만, 차마 때리지는 못하시는 장모님이셨다.

이렇게 두 모녀가 투닥거리는 것을 지켜보면서 우리는 저녁을 맛있게 먹었다. 이 과정에서 내가 미정에게 수시로 반찬을 챙겨주는 것을 보고, 장모님은 한편으로는 흐뭇해 하시면서도, 한편으로는 눈꼴이 희어 못 보겠다는 듯, 때로는 고개를 돌려 외면하시기도 했다.

그 날 저녁 미정을 한가운데 두고 우리는 한 방에서 잠을 잤다. 그래서 나는 미정의 손만 잡고 잘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추천은 저를 행복하게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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