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오늘은 지용준이 안 오나?"
"네? 저, 저.........!"
내 말에 맹금자가 당황해서 버버거렸다.
"매일 찾아오다시피 하면 미정이 갈 곳이 없잖아? 여관엘 가던지, 능력이 안 되면 풀섶에 뒹굴던지 해. 애매한 사람 이리저리 피난 다니게 하지 말고."
"그, 그게........."
"더 더군다나, 미정을 더듬기까지 했다며?"
"절대, 절대 그런 일 없어요."
"손가락 잘라버린다고 해."
"절대 그런 일 없다니까요."
맹금자의 강력한 항의에 옆에 걷던 미정이 미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게........ 사실은 그런 일이 없었어요. 내가 대정 씨 옆에 가고자 댄 핑계예요. 미안해요. 그렇지 않으면......... 흑흑.........."
"됐어. 울기는 왜 울어?"
나는 짜증스럽게 외치고 맹금자를 노려보며 말했다.
"내 말 명심해. 절대 미정이 있는 데서는 둘이 떡 치지마. 한 번 더 그런 소리가 들리면 절대 둘 가만히 안 놔둬. 이 말은 지용준이란 놈에게 먼저 하고 싶은 말이었는데, 없으니까 경고삼아 먼저 하는 거야."
"네, 네!"
나의 과격한 발언에 붉어진 얼굴로 고개는 땅으로 처박고 연신 '네, 네'만 연발하는 맹금자였다.
"그리고 미정이 너!"
"네!"
"앞으로 오려면 그냥 와. 핑계대지 말고."
"네, 고마워요."
"됐어."
나는 돌아서서 표정을 풀며 맹금자에게 말했다.
"그만 가봐! 그 새끼 앞으로는 얼씬도 않을 테니까."
"네!"
"내 말 명심하고."
"네!"
맹금자가 고개를 푹 숙이고 집으로 향하자, 미정도 내 눈치를 보더니 주춤주춤 맹금자를 따라갔다.
"넌, 어디 가?"
"네.........?"
"이리 안 와!"
"네. 헤헤헤..........!"
"팔짱 껴!"
"괜찮겠어요?"
"어차피 소문날 건데, 뭐."
"헤헤헤........! 그래도 나는 좋아요."
"엄청 좋겠다. 처녀가 혼사 길 막히는데."
"이미 결심했어요. 대정 씨 아니면 평생 혼자 살기로."
"잘 생각했다."
"그렇지요? 헤헤헤........!"
"그러나 저러나 오늘은 한 번 줘라?"
"뭐예요?"
척 옆구리에 손을 붙이고 나를 노려보는 귀여운 미정이었다.
"우선 밥이나 좀 해. 나 배고프다."
"술 마신 것 같은데, 거기서 뭐 안 먹었어요?"
"안주만 먹었지."
순순히 대답하던 내가 돌연 화를 내며 말했다.
"서방이 배고프다는데, 뭔 말이 그렇게 많아!"
"헤헤헤........! 그렇지요?"
"그렇긴 뭐가 그래?"
"아유~! 우리 신랑 귀여워라."
"뭐?"
"그렇다고요."
그러다보니 우리는 어느새 집이 코앞이다.
"반찬은 뭐로 하지요?"
"음........ 뭐가 좋을까?"
변화무쌍한 나의 표정과 행동에 오늘은 정신을 못 차리는 미정이었다. 그런 내가 신기하다는 듯 다시 한 번 나를 세세히 뜯어보던 미정이, 내가 다시 눈을 부릅뜨자 얼른 대답한다.
"술 드셨으니, 얼큰한 김치찌개?"
"그래, 그게 좋겠다. 내 얼른 가서 고기 사올 테니, 너는 우선 밥부터 짓고 있어."
"네, 오라버니~! 메롱~!"
"하하하.........!"
나는 그길로 모처럼 정육점을 찾아가 돼지고기 반근을 샀다. 그리고 집에 돌아와 김치찌개를 끓이려니 막상 김치가 없었다. 주인집 아주머니가 준 열무김치는 있는데 배추김치가 없었던 것이다. 김치찌개는 자고로 묵은지나 최소한 배추김치로 끓여야지, 열무김치로 김치찌개 해먹는 사람은 못 봤다. 나는 할 수 없이 주인집을 기웃거릴 수밖에 없었다.
"아주머니, 계세요?"
"누구야, 대정이 학생?"
네, 아주머니!
"아주머니가 잠옷 바람으로 문을 열고나오며 물었다.
"무슨 일로?"
"배추김치 있으면, 좀 주십사 하고요."
"잠시 기다려봐. 있긴 있을 건데, 아저씨가 요새는 열무김치만 먹어서, 좀 시었을 건데?"
"쉬면 쉴수록 좋지요. 김치찌개 좀 끓여먹으려고 하거든요."
"그래, 잘 됐네. 내 한 포기 꺼내줄 테니, 잠시 기다려."
"네!"
"아저씨는 주무시나요?"
"종일 술타령하더니, 벌써 꿈나라야. 속상해 죽겠어. 매일 일도 안 나가고 저러니."
"일도 있어야 하죠."
"하긴, 에효........!"
나지막이 한숨을 쉬신 아주머니가 부엌으로 향했다. 김치를 구해주고 나니 이제 술 생각이 났다. 얼큰한 김치찌개에 한 잔 더 하고 싶은 욕구가 일어난 것이다. 술도 마침 깨는 판이라 더 땡겼다. 나는 생각이 일자말자 말없이 부엌을 나왔다.
"어디 가시게요?"
"응, 그냥........"
그렇게만 말하고 나는 동네 전방으로 향했다. 나는 그곳에서 소주 두 병을 사들고 집으로 왔다.
"내 그럴 줄 알았어."
"뭘?"
소주를 본 미정의 반응이었다.
"갈 때부터 알아봤다고요."
"됐고. 아직 멀었어?"
"다 돼가요. 들어가 계세요."
"맛있게 끓여."
"네!"
내가 방으로 들어와 잠시 있으니 저녁밥상이 들어왔다. 그런데 소주 잔 대용의 국 대접이 하나뿐이었다. 하긴 어머니가 오시거나 가족이 올 때를 대비한 국 대접이 전체 세 개뿐이었다. 그러니 미경과 내 것으로 하나씩 제외하고 나면 하나 밖에 남을 것이 없긴 했다. 나는 말없이 부엌으로 가 남은 밥사발 하나를 들고 들어왔다.
"뭐 하는 거예요?"
"같이 한 잔 해야지."
"무식하게 소주에 밥사발이 뭐예요, 밥사발이........."
"없는 걸 어떻게 하니?"
"하긴........."
"한 잔 할래?"
"한 잔 줘보세요. 난생 처음 한 잔하고 취해서 주정 좀 해보게."
"뭐?"
"헤헤헤.........! 말이 그렇단 말이죠."
"알았다. 내 앞에서 주정하면 그 날로 그냥 가는 줄 알아."
"농담도 못해요?"
"나도 그렇다는 말이다. 자, 한 잔 따라봐."
"네, 서방님! 받으세요, 받으세요. 이 잔은 서방님 건강 축수하는 잔이옵고........"
"일절만 하고 얼른 따라라."
"헤헤헤........! 듣기 거북했나요?"
"그래."
"남들은 나, 노래 잘 한다고 하던데.........?"
"전부 귀가 뼜는 모양이지."
"그런 말도 있어요?"
"됐고. 빨리 따르기나 해."
"네, 헤헤헤.........!"
병아리 오줌만큼 아주 조금만 따르는 미정이었다.
"조금 더 따라!"
"네!"
"너도 한 잔 받고. 술은 어른한테 배워야 나중에 실수가 없는 법이야."
"엄청 어른이다."
"뭐?"
내가 또 눈을 부릅뜨자 미정은 얼른 눈을 내리감고 말했다.
"아니 예요. 어서 드시기나 하세요."
"너 먼저 한 잔 받고."
"네!"
나는 그녀가 내민 국 대접에 반을 따랐다. 내 잔은 밥사발이었다.
"그, 그만........ 요."
"하하하........! 한 번에 다 마셔라."
"누구 애 잡을 일 있어요?"
"하하하........! 그럼, 조금씩만 마셔라."
"네!"
"건배 한 번 해야지?"
"네!"
"네, 네만 할 거야?"
"그럼, 뭐라고 해요? 별 걸 다 트집이네."
"하하하........! 하긴 네 말이 맞다. 자, 건배!"
"네!"
"미정과 나의 뜨거운 밤을 위하여!"
"네?"
황당한 모양이었다.
"뭐해. 얼른 마시지 않고."
"네!"
조신하게 대답하고 고개를 돌려 마시나, 그의 얼굴은 벌써 화사한 복사꽃이 되어있었다. 술이 취해서가 아니었다. 종전의 내말에 무엇을 연상했는지 부끄러움으로 빨갛게 달아오른 것이다. 아무튼 술김이라 그런지, 그런 그녀가 오늘따라 나는 유독 더 예뻐 보였다. 그래서 나는 참지를 못하고 벌떡 일어나, 그녀 옆으로 갔다. 그리고 가볍게 그녀의 입술을 훔쳤다.
쪽!
"뭐, 뭐 예요. 더럽게!"
그녀가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뭐? 더러워?"
"헤헤........! 그게 아니고요. 너무 갑작스럽게 그러니 제가 당황했잖아요."
"알았다. 알았어. 그런데 마시긴 마신거야?"
"요만큼........!"
손톱 끝을 가르키며 하는 말이 내게는 너무 너무 귀엽게 느껴졌다.
"하하하........!"
나는 그것을 웃음으로 표현하고 말았다.
"조금만 더 마셔라!"
내가 웃음 끝에 말했다.
"네!"
이번에도 입만 갖다 대었다 떼는 미정이었다.
"그게 마시는 거냐? 입만 대는 것이지?"
"그러다 나, 취하면 요?"
"내가 책임지지."
"어떻게 요?"
"끌어안고 자면 되지."
"에이, 말도 안 돼요. 그럼 더 더욱 마실 수 없어요."
"그냥 안고만 잘게."
"알았어요. 약속하는 거예요."
"그럼, 그럼.........!"
내 말에 안심을 했는지 비로소 몇 모금을 더 마시는 미정이었다. 그래봐야 소주잔 한 잔 분량 밖에 안 되었다.
"아, 써! 이런 걸 남자들은 뭐가 좋다고 마시는지.........."
"너도 한 번 취해봐라. 그 말이 쏙 들어갈 것이다."
"그렇게 좋아요?"
"그럼, 기분이 천상을 거니는 듯하지."
"설마요?"
"얘가 남의 말을 못 믿네. 정말이라니까. 정 못 믿겠거든, 오늘 한 번 취해보던지?"
"아니 예요. 다음에."
"알았다. 나는 빈 잔에 소주병을 들어 남은 양을 다 쏟아 부었다. 반 사발이 되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지금!"
"얼른 마시고 치우자."
"그래도 그렇지......."
나는 그렇게 그녀의 귀여운(?) 잔소리를 들으며 소주 두 병을 다 비웠다. 물론 이 과정에서 미정도 세 잔 정도를 마셨다. 그녀의 얼굴이 복사꽃 같이 발그래 해졌다. 보기가 더 좋았다. 나는 공연히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그리고 말했다.
"이만, 자자!"
"상은 치워야죠."
"내일 치워."
"그래도........."
"말 안 들을래?"
"네!"
얼른 대답하고 상을 들고 일어서는 미정이었다.
"윗목에 둬."
"네!"
"이리 와!"
"양치나 좀 하고요."
"그래, 얼른 하고 와."
"나 오빠 것, 쓴다."
우리 집에는 칫솔이 하나뿐이었다. 그것을 사용하겠다는 말이다.
"물어나 보자. 생일이 언제야?"
"음력으로 오월오일 단오날 이예요. 기억하기 좋지요?"
"그래. 한 번 들으면 안 잊어버리겠다."
"그렇죠? 오빠는?"
"나는 삼월 초하루."
"정말 오빠는 오빠네."
"암, 오빠는 오빠지."
"헤헤헤.........!"
이렇게 말을 하고 있지만 나는 양심에 찔렸다. 실제 내 생일은 음력으로 시월 열이틀이었다. 그러니 엄격히 말하면 미정이 누나였다. 그렇지만 이제 와서 미정이보다 생일이 늦다고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닌가. 나중에 깨질 때 깨지더라도, 갈 때까지 가고 봐야겠다.
미정이 헤프게 웃으며 상을 윗목에 놓고 바로 부엌으로 향하는 미정이었다. 곧 양치질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잠시 후 들어 온 그녀의 손에는 한 바가지의 물과 치약이 묻은 칫솔이 들려있었다.
"오빠도 양치하세요."
"알았다."
나는 벌떡 일어나 한동안 양치질을 하고, 바가지의 물로 입을 헹구었다. 그 물은 우리가 먹던 사발과 국대접에 뱉어졌다. 내가 양치를 끝내고 좌정해도 미정은 한동안 우두커니 서 있었다.
"뭐 하고 있어? 이리 오지."
"네! 그런데 정말 오늘도 안고만 자는 거예요."
"그럼, 그럼."
그녀를 안심시킨 나는 그녀를 곁에 앉혀놓고는 말했다.
"더운데 윗옷은 벗지 그래?"
아닌게 아니라 칠월이라 무더웠다. 장마가 시작할 듯하더니 올해는 마른장마만 계속되었다. 올해 이러다가는 가뭄으로 흉년이 들것이다. 농부가 아닌 나는 오히려 비 안 오는 것이 더 좋았다. 촌에서 농사를 짓는 부모를 생각하면 좋아할 바가 못 되었지만, 비오는 날 신문 배달하는 것은 여간 고역이 아니었다. 비록 지금은 내가 배달을 안 할지라도 아이들도 그렇고, 판촉에도 영향이 있으니 나는 비가 안 오는 게 훨씬 나았다. 아무튼 나의 말에 미정이 잠시 망설이더니 말했다.
"정말 오늘도 안고만 자는 거예요?"
"그렇다니까. 몇 번을 말해야........"
"아, 알았어요."
내가 화를 내는 척하자 얼른 위의 반소매 블라우스를 벗어젖히는 미정이었다. 얇은 내의만 남았다. 벗겨놓고 보니 볼륨감이 있었다. 겉보기보다는 글래머였다. 내 짐작으로 C컵 정도는 되어보였다. 물론 브래지어는 했지만 가슴골이 보일락 말락 한 게, 술 취한 사람의 음심을 더욱 자극하고 있었다.
내가 실실 웃으며 말했다.
"치마도 벗지?"
"네? 절대로 안 돼요. 이것만은."
강하게 반발하는 미정을 나는 달래기로 했다. 그래서 내가 온화한 웃음을 머금고 미정을 불렀다.
"미정아!"
"네?"
"너 오빠 좋아하지?"
"그걸 말이라고 해요!"
새초롬한 표정으로 돌연 화를 내는 미정이었다.
"오빠가 결혼하자고 하면 할거지?"
"당연하죠. 헙........!"
"쑥스러워 할 것 없다. 나도 오늘 결심을 굳혔다. 너와 장차 결혼하기로. 그런데......."
"하면 하는 거지, 또 뭐예요?"
미정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난번 내 얘기 기억하고 있지?"
"또 하나의 여자가 있다는 거요?"
"그래."
"진짜로 그런 여자라면 불쌍해서라도 같이 살 자신 있어요. 나!"
"그럼, 됐다. 치마도 벗어라!"
"아, 안돼요!"
갑자기 겁먹은 얼굴로 울상이 되는 미정이었다.
"오늘 우리, 몸으로 약혼식을 하는 거다."
"그, 그래도.........! 솔직히 오빠가 무서워요."
"괜찮다. 다 그렇게 해서 아기 낳고 사는 거다."
"호 혹시 임신이라도 되면.........?"
"내 밖에다 사정할 게."
"밖에다 하는 게, 뭐예요?"
보기보다는 성에 대해서 무지한 녀석인가 보다.
"아무튼 내 임신 안 하게 한단 말이다."
"그래도.........."
"오빠가 강제로 벗기리?"
"아, 아니에요. 제가 벗을 게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한동안 주춤거리는 미정이었다.
"자꾸 그럴래?"
나의 짜증에 얼굴을 붉히며 마지못해 치마를 벗는 미정이었다. 발목까지 치렁치렁 내려오는 나일론 계통의 치마를 벗어버리자 미정이 입은 팬티가 드러났다. 그런데
민망하게도 요사이 남자들이 입는 사각팬티였다. 나는 말없이 얼굴을 붉힌 체 고개만 숙이고 있는 미정에게 접근했다. 그리고 살며시 끌어안았다.
"오빠, 나 버리면 안 돼요!"
울먹이는 음성으로 묻는 그녀의 말에 가슴이 짠해왔다.
"절대, 절대로, 하늘이 두 쪽 나도 너만은 안 버린다. 내 맹세까지 할까?"
"아니 됐어요. 나 오빠 믿어요. 헤헤헤........!"
쪽!
내 얼굴에 먼저 입을 맞추는 그녀였다. 내 얼굴에 먼저 입을 맞추는 그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