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전생에서 배운 기술이지만 머리에 익힌 지식과 손에 익은 기술은 절대 나를 배신하지 않는다. 나는 곧 능숙하게 삽지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아니 손이 안 보일 정도로 빠르게 끼워 넣으니, 모두 내 손동작을 쳐다보느라고 곁으로 모여들었다.
금방 남은 물량 500장을 끼워 넣으니, 모두 입맛 쩍 벌리고 서서 아무 말도 못하는 놈들이었다.
"내가 맡은 일은 모두 프로가 되어야 해. 그것이 비록 하찮은 일지라도 그 직업에 종사하는 한 프로가 되겠다는 각오로 그 직업에 임하면, 성공 못할 직업이 없는 거야. 이것은 영원한 내 직업이 될 수 없어.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평생 불만족 속에, 자신이 택한 직업 모두가 잠깐 스쳐가는 직업으로 생각하고, 매일 바닥만 기다 말겠지. 무슨 말인지 알아들어?"
"네!"
여섯 명의 합창에 나는 미소를 띠고 작업대를 물러나 말했다.
"내일 새벽에는 드디어 남부 지국을 접수할 테니, 각오 단단히 하고 있도록."
"네!"
"배달 나가자. 하나 명심할 것은 신입의 뒤만 쫓되, 절대 먼저 나서서 가르쳐주지 말 것. 혼자 찾되, 정 못 찾는 것만 알려줄 것. 실시!"
"실시!"
우리는 추가 구매한 각자의 자전거에 올라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신입 세 명중 한 명은 내 구역을 인수인계 받았다. 안배성이 자신의 구역을 인계하지 않고 내 구역을 인계 했던 것이다. 안배성은 서부에 남겨 이쪽을 총 책임지게 할 예정이었다. 당연한 결과로 나는 남부로 넘어가 이곳이 서부와 같이 안정 될 때까지는 그곳에 주력하기로 했다. 물론 신입 세 명은 서부를 맡게 되는 것이다. 기존 총무 둘을 내가 데리고 가는 것이고. 윤정환과 조호철이 그들이었다. 나는 네 시간 동안 꾹 참고 신입의 뒤를 쫓아다녀야 했다. 내가 돌리는 부수가 200부인데 나는 2시간이면 이를 다 돌렸다. 그런데 신입은 명단을 보고 하나 하나 찾아가며 돌리니, 그 배가 걸린 것이다. 그래도 한 군데 잊지 않고 다 돌린 것이 신통했다.
이만하면 처음 치고는 잘 하는 것이므로 나는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에 양선기를 크게 칭찬해주었다. 그나마 아직 두 팀은 돌아오지도 않았다. 나는 먼저 퇴근을 한다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에 도착하니 곧 7시가 되었다. 요즈음은 이렇게 늦는 날은 도장에 갈 수 없었다. 그럴 때는 윤 경장이 할 수 없이 아이들을 지도해야 했다. 이제 돈이 쏠쏠하게 들어오므로 나는 빌린 20만 원을 전액 변제했다. 이자 대신 나는 튀김 닭 5다섯 마리를 사서 윤 경장에게 주는 것으로 보답을 했다. 집에 돌아오니 어머니는 아침밥을 다 지어놓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이제오니?"
"네!"
"수고 했다. 밥 먹자."
나는 말없이 어머니가 차려온 상 앞에 앉았다. 콩나물국에 밑반찬 몇 개 전부인 식단이었다. 나는 국에 말아 한 그릇을 가볍게 비웠다. 이에 반해 명희는 아직 절반도 못 먹고 깨지락거리고 있었다. 나는 밥을 다 먹자마자 책가방을 들고 바로 일어섰다. 더 이상 말 썩기가 싫었기 때문이었다.
"잠깐 얘기나 나누자!"
"늦었어요."
나는 거짓말을 하고 부엌 앞까지 나온 어머니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전거에 올라탔다. 여름 방학도 이제는 보름 밖에 남지 않았다. 나는 오늘도 학교 수업을 마치자마자 지국에 들렸다. 경리에게 통상의 업무를 보고받고 별 이상이 없자 지국을 나서려는데 경리가 방금 전에 온 전화를 나에게 들려주었다.
"강 대정입니다."
"나다!"
"나가 누군데?"
"조희찬이다."
"네가 웬일이냐?"
"잠깐 만나자."
"네가 우리 지국으로 와라."
"갈 처지가 못 된다. 이리로 와라."
"어딘데?"
"남문로에 있는 퍼모스트 집."
요새 유행하는 아이스크림을 파는 가게인 모양이었다.
"너 거기 취직했냐?"
"아냐. 아는 형들 집인데, 잠깐 가게 봐주고 있다."
"알았다."
나는 전화를 끊고 바로 자리에서 일어섰다. 나는 경리에게 수고하라는 말을 남기고 그곳으로 향했다. 가는 내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신경 쓸 일이 많은데 내게 깨진 놈까지 전화를 걸어 심기를 불편하게 하니 짜증 밖에 나지 않았다. 나는 곧 가게에 도착해 들어가려는데, 요즘 유행하는 곡이 길거리까지 흘러넘쳤다. 무슨 곡인지 모르겠다. 노래에는 관심이 없으니까. 아는 곡이라도 지금 상태로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문을 들고 들어서니 조희찬이 카운터에 앉아 있다가 벌떡 일어나 나를 맞았다. 인물은 제법 준수한 편이라 카운터에 앉아 있으니 제법 어울렸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별로 크지 않은 매장을 둘러보니, 두 테이블에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이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떠들고 있었다.
조희찬은 나를 가장 안쪽의 구석진 자리에 앉혔다. 앉자마자 내가 대뜸 물었다.
"용건이 뭐냐?"
"내가 아니다. 금방 나오실 게다."
그의 말이 끝나고 얼마 안 있어 20대 중반의 제법 깔끔하게 차려입은 깍두기 머리 하나가 들어왔다. 목에는 다섯 돈은 될 듯한 굵은 쇠줄의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팔도 마찬가지였다. 전생에 금목걸이와 금팔찌를 차지 못해 죽은 조상을 모신 놈 같았다.
"네가 강 대정이냐?"
"그렇습니다."
"싸움은 물론 공부도 잘한다고 들었다. 여러 소리 할 것 없이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다. 우리 조은파에 들어와라."
나도 들은 바가 있다. 청주에서는 조은파와 동방파가 서울의 세를 대리하여 세력을 양분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고개를 젓고 단호하게 말했다.
"관심 없습니다. 더 더군다나 저는 학생이고요."
"알았다. 후회하지 마라!"
"후회할일 없을 것입니다."
"좋다, 가봐라!"
결국 조희찬이라는 놈은 조은파에 들어간 모양이었다. 이래저래 짜증만 더해지고 혼란스러웠다. 별 거지 같은 것들까지 이제는 다 건딘다는 생각에, 나는 무작정 빠르게 폐달을 밟았다. 명희와 부모님들이 계셔서 또 약혼 문제를 거론하겠지만, 할아버지가 누워 계신 병원에 안 가 볼 수도 없었다. 역시 예상한 대로 할아버지는 병상에 누워 계시고, 어머니 대신 아버지와 명희가 있었다.
"좀 어떠세요? 할아버지!"
"그만하다."
"빨리 건강을 회복하셔야지요."
"네놈이 내 말대로 따르는 게 내 건강을 돕는 첩경이다."
할아버지의 말씀에 나는 묵묵부답 답이 없다. 그런 나를 보고 아버지가 나를 불러 잠시 병원 복도로 나가자 하신다.
"네 어미 얘기로는 네가 명희를 죽기보다 싫어한다는데 정말이냐?"
"네!"
단호한 나의 대답에 어이가 없는지 한동안 나만 물끄러미 바라보는 아버지셨다.
"지금 와서 두 집안의 약속을 어찌 파기하겠노? 저 녀석을 청주로 데리고 나올 때, 쟤네 부모는 곧 살림이라도 차리는 줄 알고 있을 텐데."
갈수록 가관이었다.
"어찌 됐든 제 결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간섭하지 마세요!"
"이런 싸가지 없는 놈이........."
금방 한 대 팰 듯이 주먹을 치켜 올리시기에, 나는 여기 더 있다가는 좋은 꼴 못 볼 것 같아 후다닥 계단을 달려 내려갔다.
"저, 저런 불효막심한 놈을..........."
아버지의 말을 귓등으로 들으며 나는 우울한 마음으로 병원 문을 나섰다. 그날 저녁도 나는 술이 잔뜩 취해 잠이 들었다. 다행히 명희나 아버지 모두 병원에서 밤을 새시는지 내 집으로는 오지 않았다.
나는 새벽 3시에 일어나 아이들을 데리고 남주동 지국으로 향했다. 지국에는 아무도 나와 있지 않았다. 신문만 밖에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우리는 어이가 없어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고 웃었다.
'이러니 신문이 망하지.'
말은 안 해도 내심의 공통된 생각이었다. 한참을 기다려 4시가 되자 스물다섯 가량 된 청년 하나가 나타났다. 직감적으로 나는 그 자가 소장이란 걸 알았다.
"무슨 일이오?"
어둠 속이라 우리 얼굴을 제대로 못 보아서인지, 아니면 초면이라 그런지 그는 우리에게 존댓말을 썼다.
"지국 접수하러 왔습니다."
"뭐? 그런 말 못 들었는데?"
"지국장에게 확인해보려면 해보세요."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침착하게 대응한 그가 지국의 자물쇠를 따고 안으로 들어갔다. 곧 지국장에게 전화를 거는 그였다. 통화는 금방 끝이 났다.
"잘 해보시오. 나는 돌아가겠소."
"인수인계는 해주고 가셔야지요."
"너 같으면 인수인계 해주겠냐? 기분 더러운데 자꾸 사람 염장 지르지 마라!"
나가려던 소장이 눈까지 부라리며 말했다. 어느새 조호철이 문 앞을 가로막고 서있다.
"좋은 말로 할 때 해주시오. 지금까지 지국장의 등을 처먹었으면 그게 의리 아니오?"
나의 말에 힐긋 나를 돌아보던 그가 말했다.
"이제 이것들이 아예 작당을 하고 떼로 덤빌 모양이네."
"당신 같은 사람 하나 정도는 나 하나로도 족해. 시험해 보고 싶소?"
"하........!"
가잖다는 표정을 지으며 어이없다는 웃음을 흘리는 그였다. 나야말로 그가 가소롭기 짝이 없었다. 그렇지만 폭력은 최후에나 행사하는 것. 아무 때나 휘두르다가는 잘못하면 신세조지기 딱 맞다. 그 대신 나는 말로 얼러대었다.
"지국장에게 못 들었소. 순순히 협조하면 그간 고생한 정을 생각해서 내버려두지만, 아니면 장부고, 해먹은 돈이고 전부 까발려 경찰서에 고발한다는 말."
나의 말에 흠칫하는 그였다.
"가고 싶으면 가도 좋소. 얼마든지 우린 찾아낼 자신이 있으니까. 우리가 나이가 어리다고 깔보다가는 큰 코 닥칠 것이오. 소문은 들었을 것이오. 내가 서부 지국장이오. 옛날 정국장도 내게 다 토해냈소. 그리고 500부를 2천부로 키울 때는 얼마나 고생이 많은지 아오. 때로 중간에 협박하는 놈은 왜 없겠소? 흐흐흐........! 그런 놈들은 물론 좇나게 두들겨 패서 보냈지. 어찌 하겠소? 콩밥 좀 먹고 싶소?"
"인수인계만 제대로 해주면 모두 용서가 되는 거요?"
"그렇소."
"좋소. 따라오시오."
말투부터 한결 공손해진 그였다.
"오늘은 밤이고 배달을 해야 되니 눈으로만 쫓고, 오후 1시에 다시 나와 주시오. 그때 정식으로 인수인계 합시다."
"좋소. 누가 나를 따라 올 것이오."
"호철아 네가 따라가라!"
"네!"
동갑이지만 분위기 때문인지 존댓말을 쓰는 조호철이었다. 그렇게 해서 둘이 나가고, 4시 반이 되어서야 배달 학생들이 하나 둘 꾸역꾸역 기어 나오기 시작했다. 나는 그들 모두가 모일 때까지 어느 누구도 배달을 보내지 않았다. 다 모이니 경리의 말과는 달리 배달학생이 네 명이었다. 한 명이 는 것이다. 나는 그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했다.
"오늘부터 내가 지국을 접수했다. 그렇지만 너희들에게는 하등 영향이 없을 것이다. 아니 부당 10원씩 배달료를 더 올려주겠다. 단 이런 정신 자세로는 안 된다. 최소한 4시까지는 나와 늦어도 6시 30분까지는 배달을 마쳐야 된다. 여기에 이의 있는 사람은 말해."
아무도 나서는 학생이 없었다. 그러던 중 나이가 우리 또래는 되어 보이는 학생이 나서서 대표로 물었다.
"확실하게 접수한 게 맞아요?"
"왜? 우리 나이가 생각보다 어려 보여서? 내가 서부 지국장이다. 소문은 들었겠지?"
말 대신 모두 고개를 끄덕이는 학생들이었다. 하긴 요즈음 청주의 신문 계통에서 나를 모르면 간첩일 정도로, 나는 아주 유명한 인물이 되어 있었다.
"정말 10원씩 더 쳐주는 건가요?"
가장 어려보이는 중2 정도의 학생이 나에게 물었다.
"그럼, 내가 왜 쓸데없는 말을 해. 그것에 대해서는 걱정 말고, 오늘은 여기 있는 사람이 한 사람씩 따라 붙어 대충 주변 풍경이나 눈으로 익힐 거야. 하지만 수금을 하려해도 구역은 알아야 하니 모두 오후 학교 끝나는 대로 나와서, 여기 있는 총무들과 같이 한 바퀴 돌도록 해. 무슨 말이 알아들었지?"
"네!"
"오늘 낮에는 인수인계 끝나고 특별히 짜장면을 곱빼기로 사주겠다."
와아...........!
단순한 아이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보고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턱짓으로 함께 나가보도록 했다.
============================ 작품 후기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세요!
^^감사합니다!
^^4종 셋?
^^감사합니다!
^^4종 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