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12화 (12/322)

< --고삐리 아빠-- >

"아, 덥다!"

주재후 기자가 누가 기자 아니랄까봐 뒷봉창에서 평소 꾸겨 넣고 다니던 신문 뭉치를 꺼내어 스스로 부치며 하는 말이었다. 훌쩍한 키에 제법 외모가 번듯한 사십대 중반의 사내였다.

"다른 곳으로 모실 것을 그랬소. 아무래도 여름에는 더워서 삽겹살이........."

"정말. 좀 시원한 곳을 잡을 걸, 나도 미처 생각을 못했네요."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맞장구를 치는데 내가 소주병을 들고 일어나 한마디 했다.

"제잔 한 잔 받으시죠. 기자님!"

"어, 그래. 학생이라면서 술 마셔도 되는 거야?"

"학생이기 전에, 엄연한 사업가입니다. 사업가!"

"하하하.........! 그렇게 되나?"

그동안 나는 그가 내민 술잔에 한 잔을 가득 따랐다.

"고맙소. 술 마시기 전에 내게 용건이 있는 듯 한데........"

박 부장에게 시선을 맞추고 묻는 주재후 기자였다.

"서청주 지국장이 청이 있다하오. 직접 들어보시죠."

박 부장의 말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내게 옮겨지며 주 기자가 물었다.

"무슨 일인가?"

"요새 새로 많이 입주하는 청주공단 내 회사의 판촉을 부탁하고 싶어서 외람되게 모셔 달라 했습니다."

"아, 기자가 판촉이 무슨 판촉이야!"

더 들을 것도 없다는 바로 손을 내저으며 부정하는 주 기자였다. 한마디로 쪽팔리다는 표정이었다.

"사례금은 넉넉히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주 기자님!"

"그래........?"

생각이 달라지는지 입맛을 쩍쩍 다시며 생각에 잠기는 주 기자였다.

"자네도 알다시피 어디가나 판촉은 쉬운 것이 아니라서 말이야. 그렇지만 내가 럭키금성사 임원들을 만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하네만........."

"바로 그겁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글쎄 그것이.........."

"교제비는 두둑이 드리겠습니다."

"이 사람 답답한 사람일세. 도대체 그것이 얼마야?"

옆에서 지켜보던 박 부장이 안 되겠던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

"한 이십만 원이면 안 되겠습니까?"

"쩝쩝.........! 별로 내키지 않는지 입맛만 다시고 있는 주 기자였다.

'앞으로 부탁 일도 많을 텐데, 통 크게 쏘자!'

결심한 내가 말했다.

"아, 제가 잠시 실수 했습니다. 50만 원 드리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주 기자님!"

"하하하.........! 그래? 하하하........! 부수를 많이 키웠다더니 지국을 잘 경영하는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

비로소 호탕하게 웃으며 나를 칭찬까지 하며, 만면에 웃음을 짓는 주 기자였다. 그리고는 너무 노골적이었다고 생각했는지 그간 좀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말했다.

"아는지 모르지만 기자들에게는 거의 월급이 없다시피 하네. 한마디로 뜯어먹고 살란 말이지. 내 그냥 도와줘도 되나, 형편이 이러니 양해하시게."

"아닙니다. 제 입장에서는 부수만 늘어나면 아무래도 상관없습니다."

"하하하..........! 좋아! 단 이번 건만이 아닐세. 내 힘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연락하시게."

비로소 명함 한 장을 내게 건네는 주재후 기자였다.

"저는 신분이 그렇다보니 특별히

명함이 없습니다. 강 대정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반가우이. 우리 모두 한 식구이니 서로 돕고 사세."

"감사합니다."

이때 박 부장이 밖에다 대고 소리를 질렀다.

"고기 안 들어와?"

"네, 곧 들어가요."

아주머니의 말소리가 바로 들려왔다.

"이거라도 우선 굽죠."

나는 미리 나와 있던 고기를 불판에 올려놓았다.

이후 우리는 주로 신문사 얘기에 이어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로 잡담을 나누며 다섯 병의 술을 더 비웠다. 그리고 자리를 파했다.

고기 값을 내가 내고나니, 둘은 이차로 방석집 즉 요정집을 가기로 의기투합했다. 나는 신분이 신분이니 만큼 두 분이 잘 노시라고 하면서, 박 부장에게 거금 이십만 원을 뒷주머니에 찔러 넣어주었다. 나의 이 짓에 처음에는 거절하는 척 했지만 결국 박 부장도 마지못한 듯 받아 넣었다. 애초부터 거절할 의사가 없었지만 그냥 생색을 내 본 것이다. 이 짓을 하고 나니 내심

씁쓰레 했다. 하지만 쏠 때는 통 크게 쏘랬다고, 다 반대급부로 돌아올 것이니 큰 후회는 없었다.

다음날.

내가 학교를 파하고 지국에 들려보니 경리 아가씨가 아주 좋아했다. 어떤 사람이 자그마치 신문 300부를 판촉해 왔다는 것이다. 누구인지 안 봐도 알 조였다. 명단을 대충 훑어보니 금성사 100부, 럭키 100부, 여타 공단 내 크고 작은 기업 일곱 곳에서 10부, 20부 등해서 100부를 더 판촉해 왔다. 더군다나 무료기간도 없이 바로 다음 달부터 수금이었다. 정말 이런 것이 돈이 된다. 배달도 무더기로 하니 쉽고, 또 건실한 회사들뿐이니 돈 떼일 염려도 없었다. 나는 이에 흐뭇한 미소를 짓고 쩐질한 보람을 느꼈다.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발생했다. 신문은 본사에서 2천부가 내려오는데, 우리 지국에서 나가는 신문은 약 2천300부 가량이 되니, 300부 가량이 부족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까 생각해보니 금방 답이 나왔다. 나는 시계를 바라보니 5시 40분이었다. 오늘 지사에서 남청주 지국장과의 약속을 상기하고 나는 바로 자전거에 올라탔다. 지사장실에 도착하니 10분 전 6시였다. 나는 노크를 하고 지사장실로 들어갔다.

"왔나?"

"네, 부장님!"

지사장이 무슨 서류를 보고 있다가 돋보기 너머로 나를 힐긋 바라보며 물었다. 이 사람 역시 사십대 중반인데 벌써 노안이 왔는지, 글을 볼 때는 돋보기를 신세를 지고 있었다.

"어제는 덕분에 즐거웠네."

"약소했습니다."

"아니야, 아니야! 충분했어. 그런데 이 사람은 왜 아직도 안 오나?"

시계를 들여다보며 하는 박 부장의 말에 나도 시계를 바라보며 대답했다.

"아직 시간이 안 되었는데요."

"법원의 일이 바쁜가?"

혼자 중얼거리듯 하는 말에 내가 되물었다.

"법원의 일이라니요. 무슨 건이라도 걸렸습니까?"

"아니, 몰랐나? 이 사람은 한 마디로 브로커야. 신문 일은 뒷전이고, 그 간판 걸고, 경매에 참여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 뒤를 봐주고, 구전을 먹는 것이지."

"변호사가 있지 않습니까?"

"흥! 변호사! 그 전에 이 사람들은 구속부터 풀어줄 수 있는 사람들이야. 다 뒷거래로 하는 것이지."

"그렇군요."

나는 세상이 참으로 무섭고도 더럽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우쳤다.

"이 사람이 자넬 만나자는 것도 나는 다 짐작이 가네."

"뭔 일로?"

"내 알기로 남부지국은 소장 한 사람이 전부 관리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어. 이 사람은 밤에 나와 보지도 않는 것은 물론, 평소에도 전혀 신문 일에 관여를 하지 않아. 단지 한국일보 깃발이나 승용차 앞에 달고, 신문사의 위력이나 이용하자는 것이지."

"그러면 지국이 엉망으로 돌아갈 텐데요."

"당연하지. 그래서 이 사람은 죽이 되거나 밥이 되거나 지대만 소장보고 납부하라 하고, 나머지는 얼마를 벌어가든 관여를 않아. 한데 요즈음 남부 지국장의 말을 들어보며, 처음에는 착실하던 소장이 이제는 매달 지대낼 돈도 부족하다고 손을 내민다는 거야.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나?"

"혹시 저보고 그 지국을 맡아서 경영하라고.........?"

"아마 모르긴 몰라도 100이면 99는 그 소리가 아닐까 싶네."

이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으므로 박 부장이 얼른 입을 다물었다.

"들어와요."

박 부장의 말에 따라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삼십대 후반의 준수하게 생긴 사람이었다. 양복을 쫙 빼입고, 누가 봐도 귀티가 나게 생겼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그의 반질반질하게 잘 닦여진 갈색구두였다.

"어서 와요. 두 사람이 처음이지."

"아, 네!"

남부지국장이 얼른 말을 받더니 내게 손을 내밀며 말한다.

"우리 인사나 합시다. 나 남청주 지국장 홍 창희(洪 昌熙)요."

"강 대정입니다."

"하하하.........! 아주 잘 생겼는데........."

"별 말씀을 요."

"두 분 다 자리에 앉아요. 미스 김, 여기 커피 세 잔 부탁해요."

"네, 부장님!"

박 부장의 주문에 밖에서 경리 아가씨의 대답이 들려왔다. 이후 우리는 경리 아가씨가 타준 차를 마시며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가 밖으로 나왔다. 안에서는 이야기하기가 거북한지 남부 지국장이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온 것이다. 그는 나를 이끌고 바로 지사 옆 다방으로 자리를 옮겼다.

"여기 쌍화차 두 잔 부탁해!"

"네!"

내 의사도 묻지 않고 대뜸 자리에 앉기도 전에 쌍화차 두 잔을 시키는 그였다. 우리는 서로 마주보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지사사무실에 도착하니 박 부장이 내 얘기를 하는 것 같던데, 내 얘기 들었지?"

"대충요."

"그렇다면 이야기하기가 편하겠군."

"자네가 내 지국을 맡아서 관리 좀 해주게.

조건은 동일해. 나한테 손만 안 벌리면 돼! 지대 막고 남는 것은 다 자네 몫이란 말이지."

"그래도 상관없는 일인가요?"

"다른 지국장 같았으면 몇 번을 잘렸어도 잘렸지. 안 잘린 이유가 뭔지 아나?"

대충 감이 왔지만 나는 모른다고 고개를 내저었다.

"다 뒤로 쩐질을 열심히 한 덕분이지. 그 정도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내 해줄 테니, 내 지국 좀 맡아서 관리 좀 해주게. 아는 놈이라고 데려다 썼더니, 그 놈이 그 놈이야. 이놈도 처음에는 제법 착실히 해서 벌어가는 것 같더니, 이제 매 달 지대 모자란다고 손

을 벌리니....... 열불이 나서"

정말 화가 나는지 엽차를 벌컥 벌컥 마시는 남부 지국장 홍창희였다.

"어떤가? 해 볼 텐가?"

"좋습니다. 편제를 짜고 인원도 구성해야 되니, 일주일 말미만 주십시오. 그 안이라도 준비가 되면 들어갈 것이고요. 그 대신 남는 신문 300부만 빌려주세요."

"뭐? 신문 2,000부가 모자라는 거야?"

"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내가 엷은 미소를 짓고 머리를 긁적이자, 정말 놀랐다는 눈으로 새삼스럽게 나를 다시 바라보는 남부 지국장이었다.

"정말, 묵기가 따로 없군. 그야 뭐 어렵겠나. 어차피 많이 남는 신문인데. 그렇지만 신문은 자네가 와서 가져가야하네. 그마저 배달해 줄 수는 없는 일 아닌가?"

"당연합니다."

"내가 알기로 서청주 지국을 들려 신문차가 오는 것으로 아네. 기사 양반 잘 꼬셔서, 미리 서청주 지국에서 떼는 방향으로 해봐."

"고맙습니다.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내가 볼 때는 별로 어려운 일도 아닐 거야. 기사 아저씨에게 답배 값 정도만 집어주면 가능할 거야. 그 사람이야 거기서 떼나, 우리에게서 떼나 어차피 부리고 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니까 말이야."

"알겠습니다."

"이것, 내 명함인데, 연락 할 일 있으면 연락하고, 아니더라도 안부 인사 겸해서 종종 연락이나 하고 지내자고."

"감사합니다. 국장님!"

"하하하..........! 자네 술 한 잔 할 줄 알면. 아직 이르지만 가볍게 한 잔 하러가세."

"어제도 한 잔.........."

"이 사람 왜 이러나? 누군 사람이고, 누군 사람 아닌가! 같이 가세!"

머리를 긁적이고 있는 내 손을 잡아 이끄는 남부 지국장이었다.

"저, 시킨 차나 마시고 가야지요."

"그랬나?"

나의 지적에 겸연쩍은 미소를 지으며 다시 자리에 주저앉는 남부 지국장이었다.

바로 쌍화차가 나왔다.

새까만 액체에 계란 노른자 반 개 정도가 둥둥 떠 있었다. 잣도 덤으로 몇 개 보였다. 입에 한 모금을 넣으니, 한약 냄새와 함께 쌈싸롬한 맛이 났다. 내가 천천히 차 한 잔을 비우는데, 그는 벌써 다 마시고 카운터로가 계산을 하고 있었다. 보기보다 성격이 급한 모양이었다. 우리는 그의 제의에 의해 맥주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그리고 우리는 시원한 맥주 열 병을 마시고 그 자리를 떠났다. 당연히 계산은 그가 했다. 그날 밤.

나는 평소보다 일찍 나갔다. 새벽 1시였다. 삼륜차가 신문을 싣고 왔다. 나는 안 된다는 것을 정말 담배 값 정도를 집어주고, 남부 지국용 신문 300부를 더 내렸다. 물론 이 과정에서 남부 지국장에게 전화를 걸어 확인시키는 과정도 거쳤다. 지사에 300부를 추가 신청하면 본사에서도 알게 되는 일이므로, 당연하게 지대를 더 먹어야 했다. 이 뿐만 아니라 그만큼 신문이 많이 나가고 있다는 것을 본사 차원까지 광고를 하는 일이므로, 지사장에게 나머지 신문에 대해서도 지대를 더 먹이라는 압박이, 당연히 들어 올 것이다. 나는 이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편법을 쓰고 있는 것이다.

다.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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