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쌀 세말을 새끼줄 멜빵을 해가지고 집에 돌아오니, 빈집에 미정이 부엌에서 덜거덕거리고 있었다. 벌써 해가 뉘엿뉘엿 했는데 미정은 일찍 집을 다녀온 모양이었다.
"뭐 하냐?"
"아이고, 깜짝 아!"
"기척이나 내고 들어오던지 하지."
나는 우선 등에 짊어진 쌀자루를 방안에 놓고 나오려는데, 그 새를 못 참아 미정이 달려와 내게 말한다.
"연탄불이 꺼져있길래 내가 살려놨어. 잘했지?"
이런 녀석을 황수정 때문에 이제 헤어지자고 말해야 된다고 생각하니 가슴 한편이 아릿해졌다. 매번 그녀를 만날 때마다 퉁퉁거려도 어느새 정이 많이 든 모양이었다.
"응, 잘했어!"
"표정이 왜 그래?"
무표정을 가장한 내 표정을 놓치지 않고 미정이 물어왔다.
"너랑 헤어져야겠다."
순간 멍한 표정의 미정이었다. 이어 상심으로 울듯한 표정이 갑자기 분노로 바뀌어 내게 쏟아냈다.
"왜? 내가 뭘 잘못했어? 안돼! 헤어질 수 없어!"
나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네가 뭘 잘못했다는 게 아니야. 네가 싫은 것도 아니야. 서울 명문대에 진학을 해야겠는데, 솔직히 너 때문에 방해가 된다. 성적이 자꾸 떨어지고 있어. 내가 대학을 들어가고 난 후에 보자."
사실이 그랬다. 중간고사의 성적을 보니 전교에서 5등이었다. 아무리 내가 추락을 해도 전교에서 3등 이상으로 추락해본 적이 없는 나였다. 그러던 것이 신문이다 뭐다 해서 좀 등한히 했더니 바로 표시가 났다. 이 모든 것이 그녀의 잘못이 아닐 진데 나는 엉뚱한 곳에 헤어질 구실을 마련하고 있었던 것이다. 내 감정에 비해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내가 들어도 놀라우리 만큼 차분했다. 내게도 명배우가 될 소지가 다분히 있는 모양이었다. 나의 이성적인 말에 미정의 표정이 진정되긴 했으나, 일그러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아니 울듯한 표정이었다.
"나 이제 집에 찾아오지도 않을게. 그러니 2주일에 한 번, 아니 한 달에 한 번만이라
도 만나줘. 나 이제 대정 씨 없는 인생이란 생각할 수도 없어. 정말 나 대정 씨를 못 만났다면 미쳐버리고 말거야."
다시 몸을 떨며 쏟아내는 미정의 말에 나 역시 마음이 크게 흔들리며, 당장이라도 꼭 보듬어 안고 싶었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조금이라도 빈틈을 주면 미정이 아니라, 나 또한 2주일이 아니라, 내가 더 자주 만나자고 요구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느새 두 여인을 동시에 사랑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는 나 자신을 나 스스로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비중이 황수정에게 쏠려있는 것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평온을 가정해 말했다.
"내가 영원히 헤어지자는 말이 아니잖아. 내가 대학교 들어갈 동안만이라도 참자는 말이야."
이 또한 나 스스로를 기만하고 나에게 최면을 걸기 위한 말인지도 몰랐다.
"그럼, 두 달에 한 번만 이라도 만나줘."
"안돼!"
즉각적이면서도 단호한 나의 말에 다시 한 번 멍한 표정을 짓던 미정이 갑자기 울며 뛰쳐나갔다. 잠시 멍하니 서있던 나는 발작적으로 부엌을 뛰쳐나가 그녀가 달려간 밖을 내다보았다.
흐느끼며 달려가는 미정의 작은 어깨가 그렇게 애처로울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불러 매일 만나자고 하고 싶었지만, 나는 강력하게 이를 억제하고 얼른 집안으로 들어왔다. 더 있다가는 정말 불러 세울 것만 같아서였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어느덧 칠월도 하순이 되었다. 이제 신문을 대대적으로 판촉한지도 어언 사 개월이 흘러 사무실도 큰 흑자가 나고 안정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그런데 요는 2천부를 정말 채우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2천부 가까이 되면 끊어지고, 끊어지고 마의 고비인 모양이었다. 그래서 현재는 1,975부가 판매되고 있었다. 나는 반드시 2천부를 달성하고 싶어 그 방법을 강구하던 중 묘안을 하나 발견했다. 아니 그동안 우리의 취약점이라고도 할 수 있는 곳을 한 번 집중공략하기로 하고, 지사장에게 만남을 청했다. 그가 승낙해 우리는 지사장실에서 마주보고 앉았다.
"무슨 일로? 더 이상 잘 할 수가 없는데 말이야?"
"주재기자를 한 번 뵙고 싶습니다."
"왜? 무슨 부탁할 말이라도 있나?"
"네!"
"무슨 일인데, 내가 할 수는 없는 일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구체적 언급을 피하고 그의 표정만 바라보았다.
"흐흠.........!"
팔짱을 끼고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박 지사장이 말했다.
"꼭 만나야 된다면 내, 자리 한 번 마련해주지."
"빠르면 빠를수록 좋습니다."
"좋아! 당장 연락 한 번 해보자고. 지금 이 시간이면........."
현재시간 오후 6시였다. 그렇지만 여름 해가 한참은 남아있는 시각이기도 했다. 잠시 생각하던 지사장이 모처로 다이얼을 돌렸다. 잠시 신호음이 이어지고 상대편이 받는지 박 지사장이 말했다.
"나 한국일보 지사장인데, 우리 기자 아직 거기 있으면 좀 바꿔주시오."
"잠시 만요."
수화기 너머 남자의 말소리가 들려오고 잠시 후 또 그쪽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잠시만 더 기다리세요. 연락해놨습니다."
"그러지요."
잠시 후, 저 쪽에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굵은 중저음의 목소리였다.
"나, 박 부장이오. 오늘 시간 좀 내주시오."
"아이고, 박 부장님! 오래간만입니다. 무슨 소스라도 있습니까? 아니면 한 잔 하시자고요."
"한 잔 합시다."
"오늘은 특종을 잡아야 되는데, 내 박 부장의 청이라 수락하리다."
"고맙소. 그럼, 1차로 우리 사무실 앞 삼겹살집에서 만납시다."
"몇 시에요?"
"지금 바로."
"아따, 시방 해가 한 발이나 남았는데, 너무 이른 것 아니오?"
"함께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그래요?"
시계를 보는지 잠시 말이 없던 그쪽에서 다시 말이 튀어나왔다.
"30분 후에 도착하는 것으로 합시다."
"고맙소."
전화를 조용히 내려놓은 박 부장이 푸념 비슷하게 중얼거렸다.
"나도 기자나 할 걸."
그의 말에서 평소 기자에게 맺힌 것이 많음을 유추할 수 있었다. 표정을 수습한 박 부장이 나를 보고 물었다.
"들었지?"
"네!"
"이제 용건을 내게 먼저 말해줘도 되지 않을까?"
"사실은 신문 부수를 좀 올려달라고 청하려고요."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박 부장의 언성이 높아졌다.
"무슨 말이야? 괜히 나 망신 주는 것, 아니지?"
"공단만 전혀 판촉이 되질 않아요. 높은 사람을 좀 만나야 판촉이 좀 되겠는데, 만나기가 쉽지 않고.........."
"그 사람, 그 딴 건으로 움직일 사람이 아니야. 가자라는 놈들이 어떤 족속인데, 험, 험........"
내가 빤히 바라보고 있자 헛기침으로 마무리를 하는 박 부장이었다.
"돈을 좀 집어주면 되지 않겠습니까?"
"돈이라면 환장을 하니, 가능하겠네. 일어나지."
"너무 일찍 나가는 것이........."
"우리끼리 먼저 한 잔 하고 있자고. 당연히 주대는 강 국장이 내는 것이지?"
"암, 내야지요."
"괜한 소리가 아니라, 신문사 월급이 보통 사람이 예상하는 것보다는 많이 짜. 그러니 떼돈 벌고 있는 강 국장이 쏴야지."
"떼돈은, 무슨........?"
"아니 그만치 벌면 됐지, 얼마나 더 벌게. 내 아직 약속대로 지대 한 푼도 안 올렸잖아."
"그 건은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참, 이참에 이 지사도 맡아서 한 번 운영해보지 않겠나? 강 국장의 솜씨라면 이 지사도 크게 일으켜 세울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이야. 본사 판매부장이라는 사람이 말이야. 남들이 운영할 지국이나 운영하고 있으니, 면도 안서고 힘들어서 말이야."
"시간을 좀 주십시오. 생각을 좀 해봐야겠습니다."
"생각은 무슨 생각. 지금 2천부 거의 다 나가잖아?"
"아직은 좀 부족합니다. 해서 기자분께 청을 넣으려는 것이기도 하고요."
"허허, 욕심은........?"
"욕심이 없는 사람은 발전할 수도 없습니다."
"하긴 맞는 말이긴 하지."
고개를 주억거리며 앞장을 서는 박 부장의 얼굴은 피곤에 절어 있었다.
"참, 깜박했는데 남부 지국장 아나?"
"아니요. 전혀 모릅니다."
"한 번 만나고 싶다고 하더군. 언제 그 사람에게 시간 좀 내주게."
"그러지요."
"아니 이참에 확실히 날짜 잡지?"
"뭔 일인지 혹시 모르세요?"
"몰라. 내일 저녁 6시에 어떤가?"
"특별한 일은 없습니다만."
"그럼, 그렇게 하기로 하고. 내가 남부 지국장에게 통보해 놓음세."
"알겠습니다. 부장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삼겹살집에 다 왔다. 박 부장이 먼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어서 오세요. 부장님!"
40대의 예쁘장하게 생긴 주인 여자가 죽었던 제 서방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 양 반
갑게 맞았다. 발그스레한 얼굴로 맞는데 애교가 철철 넘침은 물론 눈가의 웃음까지, 둘이 썸씽이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였다.
"험, 험! 방 있지?"
"네, 어서 안으로 들어오세요."
앞장서서 안내하며, 홀이 아닌 장지문을 열어 밀실로 우리를 안내하는 주인여자였다. 그리고 우리가 앉기 전에 센스 있게 먼저 방석부터 대령하는 주인 아낙이었다.
"오늘은 두 분만 이신가요?"
"아니요. 한 사람이 더 올거요."
"네, 네! 오늘도 생삼겹으로........?"
"우선 둘이 먼저 먹을 수 있도록 간단한 안주와 함께 소주도 한 병 주시오."
"네, 네!"
나가려는 주인아줌마를 제지한 박 부장이 말했다.
"잠시 후에 기자양반도 올 것이니, 천엽이나 생간이 있으면 서비스로 좀 주고."
"한 잔 잡숫게 미리 올릴게요. 오늘이 소를 잡은 날이라서 싱싱하고 양도 많거든요."
"고맙소."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가자 우리는 방석을 깔고 마주보고 앉았다. 잠시 후.
급히 마련했는지 아주머니가 간과 천엽을 썬 것 한 접시와 소주 한 병 그리고 서너 개의 밑반찬을 쟁반에 받쳐 들고 들어왔다. 이를 탁자에 진열한 아주머니가 소주병을 들고 말했다.
"술은 할머니가 됐더라도 계집이 따라야 맛이 난다고, 제가 먼저 부장님께 한 잔 올리도록 할게요."
"고맙소!"
내가 있어서인지 점잖게 응수하며 잔을 내미는 박 부장이었다. 이내 조신하게 술을 따른 아주머니가 나를 흘깃 보더니 물었다.
"아직 학생인 것 같은데 마셔도 되는 거예요?"
처음에는 나를 보고 묻더니 이내 박 부장에게 시선이 가서 멎었다.
"내 앞이니 괜찮소."
"호호호..........! 하긴 술은 어른 앞에서 배워야 된다고........."
말을 하며 내 잔을 술을 따르는 아주머니였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제가 얼른 삼겹살도 준비해서 올릴게요."
"그러오."
아주머니가 나가자 박 부장이 잔을 치켜들고 말했다.
"건배 한 번 하지."
"네!"
"한국일보를 위하여!"
"위하여!"
상투어로 건배를 한 우리는 누가 빼앗아 먹을까 겁이라도 나는 양 빠르게 한 잔씩을 비웠다.
"아, 이거 초장부터 강 국장과 보조를 맞추었다가는 내가 먼저 떨어지는데........."
"부장님도 보통 술이 아니시던데요? 너무 엄살 부리지 마시고 제잔 한 잔 받으세요."
"하하하........! 그런가?"
웃으며 잔을 내미는 박 부장에게 내가 한 잔을 따라주자 그도 내 잔에 한 잔을 따라주었다.
"천천히 마시자고. 주 기자 오기 전에 우리가 먼저 취하면 안 되잖아."
"네!"
"정말 지사 운영 한 번 해볼 생각 없어?"
"일단 범위가 너무 크고요. 또 제 신분이 학생이니 만큼 그마저 맡으면 공부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서요."
"이해는 가는데, 내 지대를 대폭 낮추어 줄 테니까, 한 번 천천히 생각해 보도록 해."
"네, 부장님!"
"한 잔 들자고."
"천천히 마시자면서요?"
"하하하.........! 그랬나? 어차피 늦게 취하나 지금 취하나 마찬가지인데, 오늘 한 번 죽어보자고."
"하하하..........! 그러지요."
우리는 다시 한 번 잔을 부딪치고 급하게 술을 입에 들어부었다. 그렇게 몇 순배가 돌아 삼겹살이 나오고, 둘이 벌써 빈속인지라 짜르르 오르는 판에, 주 가자라는 양반이 빼곰히 문을 열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어서 오시오."
"허허.........! 벌써 달아오르셨소이다."
"이제 막 시작한 사람이오. 참 두 사람이 초면이지. 인사드리게. 자네가 부탁한 주 재후(朱 載厚) 기자님일세. 이쪽은 서청주 지국장이고."
덩달아 일어나 서 있는 나를 보고 하는 박 부장의 말에 나는 급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했다.
"아, 말만 듣던......... 지국을 잘 경영하다는 사람이 이 사람이군. 생각보다 더 어린데?"
"아직 고등학생입니다."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하던 그가 손을 내밀며 말했다.
"그래요? 나 주재후요."
"반갑습니다. 기자님!"
"하하하.........! 내가 할 소릴. 나도 만나서 반갑소."
"그러지 말고 어서 자리에 앉으시죠."
"그러지요, 부장님!"
그러더니 그는 스스로 상석에 가서 앉았다.
장방형의 테이블에서 작은 쪽을 차지하니 자연스럽게 그렇게 된 것이다. 나 또한 자리에 앉았다.
"아, 여기 고기와 술 좀 더 들여와요."
"네, 부장님!"
박 부장의 고함에 주방에서 들려오는 아주머니의 대답소리였다.
"이제 시작이오."
고기가 들어왔으나 아직 우리는 이를 불판에 올리지도 않았다. 천엽과 간만으로 소주 두 병을 비운 것이다.
박 부장의 주문이 있고 나서 잠시 실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이에 따라 선풍기 돌아가는 소음만이 방안에 요란했다. 언제적 선풍기인지 고개가 꺾인 선풍기만이, 저 혼자 덜덜 소음을 내며 잘도 돌아가고 있었다. ============================ 작품 후기 ============================미정에 대해서는 너무 일희일비 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선작, 추천, 쿠폰, 추천이 많으면 많을 수록 작가는 여기서 자양분을 얻고, 더 많은 노력을 하게 됩니다!
^^ 너무 진지했나? 아무튼 잊지 않고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고맙고요!
^^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작품 후기 ============================미정에 대해서는 너무 일희일비 하지 않길 바랍니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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