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대정그룹-8화 (8/322)

< --고삐리 아빠-- >

잠시 후 김명자가 커피 두 잔을 들고 나타났다.

"드세요. 국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배시시 웃는 것으로 답을 하는 김명자였다. 뜨거운 커피를 후후 불어 한 잔을 마신 내가 말했다.

"사무실 경비가 부족한 것은 아닌가요?"

"아직은 괜찮습니다."

"앞으로 3개월이 고비입니다. 기존 수금되던 것은 자꾸 끊기는 데 반해, 신규 판촉한 것은 무료기간이 있으니, 수금을 할 수 없어 힘들 겁니다. 그동안만 버티면 탄탄대로죠."

"독자대장을 작성하며 첫 수금 일을 기록하다보니 명확히 나타나더라고요. 그동안이 걱정이네요."

"그 문제는 내가 걱정할 테니, 명자 씨는 제반 사무실 업무만 잘 꾸려 가면 됩니다."

자신 있게 말했지만 나 또한 걱정이 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날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 둘 점심 식사를 하러 사무실로 들어왔다. 이 당시는 사무실에서 대부분이 점심을 제공하지 않았다. 물론 좋은 직장은 점심을 제공하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알아서 해결해야 했다. 그래서 대부분이 도시락을 싸들고 다녔다. 우리 지국도 마찬가지라서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먹으러 들어온 것이다. 나 또한 도시락을 싸왔다. 아무튼 모두 다 들어왔는데 유독 정 소장만이 눈에 안보였다.

"정 소장은?"

"집에서 먹고 온다고 집으로 갔어."

조호철의 말에 정 소장은 집이 지국 근처에 있어서 그런가보다 했다. 그런데 조호철이 무슨 할 말이 있는듯하나 주저주저 말을 못했다. 그러더니 종당에는 안배성에게 떠넘겼다.

"네가 말해."

"알았다."

굳어진 표정으로 대답한 안배성이 나를 새삼스럽게 불렀다.

"국장님!"

"왜?"

"정 소장한테 문제가 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슴없이 말해 봐요."

새삼스럽게 안배성이 존댓말을 쓰자 나도 존댓말을 썼다.

"수금을 삥 치고 있었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처음 인수인계 과정에서 기존 우리 독자의 집 몇 곳을 아예 알려주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우리가독자인 줄도 모르고 판촉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우리 독자이지 뭐겠습니까. 그러니 우리가 얼마나 황당했겠어요. 그런 곳이 열 곳이 넘습니다."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군. 나는 그래도 최고의 대우를 해주는데 그런 비양심적인 일을 저지르다니. 모두 잘 들어요. 본인은 가볍게 넘길지 몰라도 이는 엄연히 공금횡령입니다. 절대로 묵과할 수 없어요. 누가 가서 정 소장 좀 오라고 해요."

내 엄숙한 표정에 윤정환이 쪼르르 달려 나갔다.

"그곳이 어디 어디 인가 구체적으로 다 기록해줘요."

내 말에 어쩔 수 없이 그 집 주소 또는 상호와 독자 명을 기록하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내가 그것을 읽어보고 있는데 정 소장이 확연히 굳은 얼굴로 들어왔다. 윤정환으로부터 대충 이야기를 들은 모양이었다.

"너도 네가 알고 있는 것을 기록해!"

"네!"

미안한 얼굴로 정 소장의 표정을 흘깃 살핀 윤정환도 곧 백지에 그 명단을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윤정환의 모습을 잠시 보다가 정 소장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물었다.

"내게 서운한 점이 있습니까?"

"그런 것은........."

벌써부터 우물쭈물 제대로 답변을 못 하는 정 소장이었다.

"왜 인수인계를 제대로 다 하지 않고 사적으로 수금을 해먹었습니까? 공금횡령이라는 것을 모르세요? 다 알만한 분이지 않습니까? 한 번 보세요. 그동안 나타난 집들입니다. 그 외에도 있으면 모두 이실직고 하세요."

나의 말에 입술을 깨물고 내가 집어던지다시피 한 기록물을 읽어보는 정 소장이었다. 거기에 나는 윤정환이 작성한 명단까지 들이밀었다. 모든 것을 읽자 내가 백지를 들이밀며 말했다.

"그 외에 남은 곳이 있으면 모두 여기에 기록해주세요."

미안한 표정으로 백지 위에 몇 집을 더 적어 넣는 정 소장이었다. 그것을 받아 읽어본 내가 말했다.

"총 열다섯 집이군요. 이것은 정말 고의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일이죠. 내가 나이가 어리다고 깔본 겁니까, 뭡니까?"

"그런 것은 절대 아니고........."

"내가 초자라 모를 줄 알았던 모양이죠? 게다가 나랑 계약서상에는 독자가 700부라 작성되어 있었습니다. 헌데 최종 파악된 독자는 지금 발견된 15부를 더 넣어도 500부가 조금 넘더군요. 물론 이 부분은 그동안 본다고 하지 않은 집에 강제로 넣은 깡투는 제외한 것입니다. 이 부분은 또 어떻게 해결할 것입니까?"

"그 부분은 지사장과 지대 문제를 논의할 때, 내가 사실대로 지사장에게 말해 지대를 감면해 준 것으로 아는데.........."

"물론 그랬지요. 하지만 분명 계약서상에는 700부를 인계하기로 했습니다. 내가 어리다고 너무 안이하게 본 것 같은데, 이 부분도 변상하세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저랑 다툴 일이 아닙니다. 공금횡령 부분과 함께 곧 고발장을 경찰서에 접수할 테니, 경찰관서에 가서 변명하세요."

"너, 인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그만한 일로 무슨 경찰서를 들먹이고 그래."

"흥분하지 말고 자리에 앉으세요."

벌떡 일어나 고함치듯 말하는 정 소장에게 나는 평소의 표정 그대로 이야기를 했다.

"오늘부터 지국 일에 손 떼세요."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그만한 일로, 사람을 뭘로 보고........."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지르자, 나는 조용히 앉아 있는데 세 놈들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얼굴에 힘을 주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들을 제지하고 평소와 다름없는 어조로 조용, 조용히 말했다.

"제 말은 빈말이 아닙니다. 경찰서에서 뵙시다."

"하..........!"

어이가 없는지 헛바람 빠지는 소리를 하던 정 소장이 소리를 지르며 문을 박차고 나갔다.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 자식아!"

나는 쓰게 웃으며 다시 자리에 앉았다. 쫓아가 한 대 패주려다 참은 것이다.

"잡아 올까?"

안배성의 말에 내가 쓰게 웃으며 말했다.

"내 버려둬. 내 빈말이 아니라 경찰서에 고발장 접수시킬 테니까."

분위기가 분위기이니 만큼 싸했다.

"밥 먹자!"

경리까지 각자 자신이 싸온 도시락을 먹지만 삭막한 분위기인지라 모두 대충 먹고는 사무실을 삐져나가려는 것을 내가 제지했다.

"야! 어디들 갈라고? 나랑 같이 오후에 판촉하자!"

내 말을 어길 수는 없고 내 말에 뚱한 표정의 세 사람이었다. 이제는 친구가 아니라 상화관계가 되니 모두 내가 어려워 저런 표정인 모양이었다. 나는 이를 무시하고 마침 밥을 다 먹고 일어서 경리에게 말했다.

"약국에 가서 붕대 좀 사와요."

"누가 다쳤어요?"

"아니요. 쓸데가 있어서요."

"네!"

경리가 지갑을 챙겨나갔다.

"내 잠시 후에 제대로 된 판촉이 뭔지 보여주지."

그렇게 말하고 나는 사무실을 나서서 집안의 모퉁이를 돌아나갔다. 파지가 잔뜩 쌓인 옆에 얇은 송판 조각 몇 개가 보였다. 즉 어물상자로 쓰던 것을 주인집 할머니가 주워다 놓은 것이었다. 나는 그놈을 적당한 크기로 발로 차서 부러뜨렸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사무실로 들어왔다. 잠시 후 경리가 붕대를 사들고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풀어내 왼팔에 부목이 되게끔 송판과 함께 감도록 했다.

"이거 완전히 팔 부러진 놈 아니야!"

분위기에 안배성이 농담을 했다.

"가자!"

나는 안배성의 자전거 뒤에 올라타고 나머지는 각자의 자전거를 타고 우리의 집을 뒤쫓았다. 우리가 향하는 곳은 봉명동이라는 곳으로 새롭게 부촌이 형성되는 곳이었다. 기존 논밭이었던 곳에 신 주택이 차례로 들어서고 있는 곳으로 나는 아이들을 데리고 갔다. 이상하게 이 동네만 유독 한국일보의 구독률이 낮았다. 대개 제법 사는 집은 보수적이라 타 신문을 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동네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첫 집의 초인종을 눌렀다. 이 집은 독자가 아니었다. 나 또한 독자 대부분을 파악하고 있었다. 오늘 판촉한 집이 아니면. 내가 방과 후에 전날 판촉한 집을 확실하게 알아두고 있는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내가 전 독자들의 집을 모르고 있으면 게중에 심성 나쁜 놈들은 엿 먹으라는 듯이 고의로 아니면 술을 먹고 정말 몸이 괴로우면 펑크를 낸다. 즉 신문 배달을 안 한다는 말이다. 이는 직원뿐만 아니라 배달 학생도 그런 경우가 상당수 있었다.

내가 안 돌리면 어떻게 할 것인데? 막말로 네가 돌릴 거야? 이런 심리가 작용하는 것이다. 너도 못 돌리니 내가 이렇게 해도, 너는 내게 와서 사정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이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잘못을 해도 용서가 되고, 이런 악순환 구조가 계속되면 신문업은 알게 모르게 벌써 내부에서부터 골병이 드는 것이다.

신문이 어쩌다가 일 년에 한두 번 빠지는 것은 독자들도 용서가 되나, 이런 일이 수시로 일어나면 그 신문은 불신을 받게 된다. 당연한 귀결로 신문이 끊어지게 되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지국장이 안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래서 나는 철두철미하게 독자를 파악해 오고 있다. 같은 연장선상에서 만약 어느 누구 하나가 배달을 펑크 내면, 내가 설령 학교에 지각을 하는 한이 있더라도, 다 돌리고 학교를 가겠다고 천명을 해 놨다. 이러니 이들이 내게 더욱 꼼짝 못하는 안 이유요, 내 말을 더욱 철저히 따르는 한 요인이 되었다.

"누구세요?"

벨소리에 좀 귀티가 나는 아주머니가 물 묻은 손을 앞치마에 닦으며 대문가로 나왔다. 마침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옆집 학생인데요,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무슨 옆집 학생?"

내가 거짓말을 한다고 내 옆구리를 꼬집는 안배성이었다.

"무슨 일로?"

쪽문을 열고 문을 열어보니 전혀 모르는 학생이라 아주머니의 눈이 커진다.

"실은 이 동네에 배달하는 학생인데요. 보시다시피 팔이 부러져서 배달도 못하고, 배달료로 근근이 수업료내서 학교에 다녔는데........."

말을 다 마치지 못하고 울상을 짓는 나였다. 이때 안 배성을 제외한 다른 아이들은 저만치 떨어져서 우리의 대화를 엿듣고만 있었다.

"저런, 안 됐어라. 쯧쯧.........! 내가 신문을 한 부 봐주면 뭔 도움이 되는가?"

"한 부 판촉해가면 200원씩 준다고 해서........"

"학생에게는 제법 큰돈이네. 그런데 이를 어쩌지 신문을 바꾸려면 아저씨와 상의를 해야 되는데........"

"그냥 봐달라는 게 아니고요. 무료로 3개월 간 넣어드리고 그 다음 달부터 수금하라고 할게요. 그러면 아저씨에게도 변명거리가 되잖아요?"

"그럴까?"

고개를 갸우뚱 꺄우뚱하던 아주머니가 90%는 넘어왔다.

"그 대신 돈 내시는 것으로 최소한 일 년 이상은 봐주셔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제가 지국장한테 혼나요."

"그래, 그 정도야 뭐가 어렵겠니. 우리 아저씨는 한 번 봤다하면 오래 보는 성품이야."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이렇게 말하고 내가 눈짓을 하니 안 배성이 구독 카드를 아주머니에게 내밀었다.

"그곳에 집주소와 아저씨 성명을 써주시고 사인이라도 한 자 해주세요."

"그런데 이 사람은 누구지?"

"저와 같이 배달하는 학생인데 제가 팔이 불편하니 같이 도와준다고........."

"그랬어? 착하기도 하네. 의리도 있고. 그런데 나는 아직 사인이 없는데, 도장이라도 갔다 찍을까?"

"번거롭게 그러지 마시고 아저씨 성함만이라도 적어주시면 그게 곧 사인이니 별거겠어요?"

"그래, 그럼 그렇게 하자고."

아주머니는 그렇게 말하고 주소와 이름을 적어나가기 시작했다.

"옛다!"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좋은 일 하셨으니, 복 많이 받으실 거예요."

"호호호.......! 학생말대로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다."

꾸벅 내가 다시 아주머니에게 인사를 해 고마움을 표시한 내가 배성이에게 말했다.

"아주머니가 보는 앞에서 구독 날짜하고 무료 기간을 적어 보여드려. 수금 달도 안 잊어버리시게 적어 보여드리고."

"알았어!"

"정확하기도 하네. 학생!"

"이게 그대로 독자명부에 올라가는 것이니, 정확을 기할 필요성이 있거든요."

"호호호.........! 확실해서 좋네!"

다 적은 카드를 읽어 본 아주머니가 다시 한 번 칭찬을 하고 문을 닫으시려 한다.

"어여, 다른 집에 가봐!"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다시 한 번 감사를 드린 내가 눈을 찡긋하고 그 집을 벗어나 아이들이 있는 곳으로 가며 말했다.

"봤지?"

"그런데 왜 거짓말은 해?"

"판촉은 문 따는 것이 가장 중요해. 아니면 신문 한 부 봐달라고 왔다고, 문 열어 달라면 열어주겠어. 귀찮아서라도 안 열어준다. 이웃집 학생이라고 하니까, 뭔 일인가 궁금해서라도 열어준 것 아니야?"

"한 수 배웠다."

"세 놈들이 이구동성으로 말 하는 것을 들으며, 나는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게 말하여 첫째 문을 따고, 둘째는 내 사정보다는 저들에게 무슨 이익이 있는지를 설명하는 게 가장 중요해. 알았지?"

"응!"

"지금까지는 우리가 선수를 치는 바람에 수월하게 판촉을 했지만 앞으로는 점점 빡빡해질 거야. 그러니까 거절을 많이 당하더라도 실망 말고 열심히 판촉 해. 어떻게 하던 2천부 채워야지? 내 약속하건데 4개월째는 급료도 1만원씩 더 올려주고, 총무라는 직책도 정식으로 줄 테니까 더 열심히 해줘."

"고맙습니다. 국장님!"

공사를 구분할 줄 아는 이들이 깍듯이 나를 대접했다. 반가운 일이기에 망설임이 더 적었는지도 몰랐다. 이렇게 몇 집을 더 판촉해 보인 내가 이들을 사무실로 데리고 가며 말했다.

"정 소장은 오늘부로 해고야. 누가 가서 자전거 찾아오고, 그 사람이 돌리던 곳은 며칠만 세 사람이 나눠서 돌려줘. 내 그 안에 배달 학생 채워 넣을 테니까."

"알았습니다. 국장님!"

나는 그들의 대답을 들으며 배달할 학생을 한 사람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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