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일요일 저녁.
내가 부엌에서 연탄불을 갈고 있는데 부엌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열려 있습니다."
문이 살며시 열리는가 싶더니 이내 활짝 열렸다.
"뭐해?"
폴짝 뛰어 들어오며 묻는 사람이 있었다. 휴일을 맞아 집에 다니러갔던 정미정이었다. 손은 무슨 일 때문인지 등 뒤로 감춘 채였다.
"보면 몰라. 연탄불 갈지."
"저녁은 먹었어."
"아니. 나도 지국에서 금방 돌아왔어."
"지국?"
"내가 신문 배달한다는 소리 안 했나?"
"전혀. 오늘 처음 듣는데.
"그래? 나는 얘기한 줄 알았네. 그렇다고."
"뭐 가져왔게?"
"밑반찬 아니야?"
"에이, 단번에 맞추면 재미없잖아. 무슨 반찬?"
"장아찌 종류겠지 뭐."
"귀신이네."
말을 하며 등 뒤에서 반찬통을 꺼내는데 세 개였다.
"이건 장아찌, 이건 두부조림, 이건 콩 조림이야."
"내가 두부조림 좋아하는 것은 어떻게 알았어?"
내가 반찬통을 받으며 물었다.
"나도 좋아하는데, 같이 좋아할 것 같아서."
"아무튼 고맙다. 잘 먹을게."
"김치는 있어?"
"주인집 아주머니가 지난번에 주신 것 좀 남았어."
"다행이네. 다음에는 내 묵은 김치 가져올게."
"그러다 집에서 쫓겨나는 것 아니야?"
"어차피 나도 먹어야 되잖아. 양을 조금 많이 담는 것뿐이니 괜찮아."
"그러면 몰라도. 너도 저녁 안 먹었지?"
"음, 전이야. 보고 싶어서 한걸음에 달려왔거든."
"쓸데없는 소리 말고 내 금방 밥할게 들어가 있어."
"고마워. 그런데 오늘은 방 좀 치워놨어?"
"아, 방..........!"
머리를 긁적이던 내가 말했다.
"미안하지만 그동안 방 정리 좀 해줘라."
"어쩐지. 오늘은 온전히 남정네 손에 밥 한 끼 얻어먹는 가 했더니........."
채 말을 마치지도 않고 단칸방으로 들어가는 정미정이었다.
"아이고, 뭐가 이렇게 지저분해. 아이고, 이 냄새는 또 뭐고?"
"사내 혼자 있는 게 그렇지 뭐. 이해해 줘라."
"알았다. 알았어. 빗자루와 방 걸레는 어디 있지?"
"여기. 부엌에."
나는 대야에 물을 부어 대충 걸레를 빤 다음 그녀에게 넘겨주었다. 그다음부터 미정의 청소하는 소리가 온 방안을 뒤집어 놓았다. 먼지 총채로 방을 터는 소리, 쓰는 소리가 나는가 싶더니 이제 조용하다. 아마 걸레질을 하는 모양이었다. 이날 우리는 마치 신혼부부처럼 겸상을 해서 밥을 맛있게 먹었다. 장난질로 시시닥거리며.
화요일.
나는 체육관에 가서 운동을 끝내고 지국 사무실로 전화를 걸었다. 확인할 게 있어서였다. 신호는 계속 가나 아무도 전화를 받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이상해서 나는 자전거를 타고 지국으로 달려갔다.
나는 전화기를 들어봤다. 발신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접속단자로 가보았다. 전화가 코드를 뽑아놓은 상태였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코드를 뽑아놓아도 신호는 간다. 그러나 코드를 뽑아 놓았으니 전화기의 벨이 울릴 리는 없다. 나는 자전거를 타고 구역을 한 바퀴 돌았다. 날이 훤하게 샜는데 이제 신문 배달하는 놈이 있었다. 안배성이었다.
"너 어제 술 처먹었지?"
"미안, 조금만 먹는다는 게."
"수화기는 왜 뽑아 놨어?"
"내가 안 그랬는데?"
"오늘 당직 누구지? 불배 배달할 놈 말이야?"
"조호철."
"그놈 짓이군. 이제야 신문을 돌리니 신문 안 들어왔다고 전화벨은 계속 울리지, 어디로 도망간 모양이군."
"해장국 먹으러 갔을 걸."
"같이 먹었어."
"그 전에는 내가 더 셌는데, 맛이 갔나봐!"
"자슥아,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아직 쇠똥도 벗어지지 않은 놈이........"
"늦겠다. 비켜봐."
"이미 늦었어. 반 나누자.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있으면 무조건 해고야. 내 성질 더러운 것 알지?"
"명심하겠습니다. 국장님!"
반은 장난기가 서려있었지만 진지하기도 한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이미 전 구역의 독자를 다 파악하고 있었으므로 같이 돌리는데 하등 하자가 없었다.
그날 오후 5시.
나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지사장을 만나러 갔다. 마침 자리에 있었다. 아니 막 퇴근을 하려는지 쫄다구 3인방과 사무실을 나서는 중이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긴 얘기 아니지?"
지사장이 시계를 보며 물었다.
"네!"
"일단 자리에 앉게."
"네!"
자리에 앉은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판촉비 좀 지원해주십시오."
"뭐? 판촉비? 그런 말 처음 들어보는데?"
"없으면 본사 규정을 만들어야지요. 맨땅에 헤딩해봐야 부수 안 나옵니다. 신규에 한 해서 3개월 동안 무료로 제공하려 합니다. 그럼 나는, 그간어떻게 버팁니까? 부당 200원씩만 본사에서 지원해 주십시오."
"바쁜 사람 붙들고 쓸데없는 소리 말아. 아직 그런 예는 없었어."
"그럼, 저 요원들이라도 시원해 주십시오. 그냥은 아닙니다. 부당 100원씩 드리겠습니다. 돈이 들어오는 4개월 후에."
"내 일은 누가 거들어주고."
"계속 하남 요. 구역 한 바퀴 돌 정도의 시간이면 되니까. 일주일만 봐주십시오. 우리가 3개월 무가지를 주고 판촉한 것을 알면, 다른 신문도 따라하지 않겠습니까? 그 안에 얼른 쇼브 봐야지요."
"흐흠........! 일리가 있네만.........."
잠시 생각에 잠겼던 박 부장이 되물었다.
"정말 부당 100원은 주는 거지?"
"남아일언 중천금이라 하지 않았습니까?"
"하하하..........! 제법 문자도 쓰네."
웃음을 뚝 그친 박 부장이 물었다.
"언제부터?"
"당장 내일부터 시작하렵니다. 배달도 안정됐고요."
"좋아! 딱 1주일만 내 지원해주겠네."
"고맙습니다. 지사장님!"
"자네가 잘 돼야. 나도 덕분에 승진 좀 하지."
"머지않아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제발 그렇게 되길 바라네. 자네도 같이 가려나? 우리 마침 회식하러 가는데."
"어디로요."
"삼겹살 집."
"고맙습니다."
나는 이날 박 부장은 물론 세 명의 본사 사원들과 함께 고기를 포식했다. 지금 현재 지사는 본사 직영체제다. 원래는 이곳도 지국마냥 주인이 있어야 하나, 범위가 너무 크고 적자가 심해 아무도 들어오지를 않아, 본사 직영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세 명의 사원도 당연히 본사 소속이었다. 다음날 오후.
나는 학교가 파하자마자 판촉 현장을 찾았다.2인 1조 우리 독자가 아닌 곳은 모두 찾아들어가 신문을 보라고 권유하는 중이었다. 내가 찾아간 곳은 안배성의 배달구역으로, 서봉석이라는 본사 요원 중에서도 덩치가 제일 좋은 자와 한 조를 이룬 곳이었다.
"많이 했습니까?"
"나는 22부."
서봉석의 말에 내가 배호성에게 눈짓으로 물었다.
"16부."
"쏟아지네, 쏟아져! 하하하..........! 정말 초자들 치고는 많이 했는데."
나의 칭찬에 안배성이 빙긋이 웃으며 별 것 아니라는 듯 말을 했다.
"아무 기술이 없어도, 무료기간을 3개월 준다니까. 바꿔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지금까지 이런 전례가 없었거든. 바로 신문 본 다음 달부터 수금하던 것을 3개월간 공짜로 신문을 넣어준다고 하니 이게 웬 떡이냐 한 것이지. 새롭게 보겠다는 집도 좀 있고."
서봉석의 말에 내가 웃으며 말했다.
"내 노림수가 이거였습니다."
"타 신문도 따라할 텐데, 앞으로 더 경쟁이 치열해지겠어."
"내일부터는 저들 지국에 신문 끊으라는 전화로 불이 날겁니다."
"저들이 본격적으로 대응에 나서기 전에, 가능한 많이 판촉 해놓고, 저들이 3개월을 따라하면 우리는 4개월, 4개월이면 5개월 이런 식으로 앞서나가는 것입니다. 그 대신 1년은 꼭 구독해야 된다고 확실하게 사인은 받는 것이죠?"
"아무렴, 도장 없으면 지장, 사인, 다 조목조목 설명해주고 받아놓지."
"잘 하셨습니다. 좀 힘들더라도 좀 더 기운을 내서 둘이 합해 50부는 채워야죠."
"많이 나오니까. 힘든 줄도 모르겠어."
"해가 질 때까지라도 합시다. 내 다른 구역에 가볼 테니까요."
"알겠네."
나는 그들을 남겨두고 다른 현장을 찾아갔다. 그들 역시 비슷한 부수의 판촉을 했다. 아무튼 당시의 신문은 지면에 한자가 많이 섞여있었다. 그래서 배움이 짧은 사람은 읽을래야 읽을 수도 없었다. 그러니 신문 한 부만 주머니에 꽂고 있으면 유식한 사람이라는 인상을 주던 시절이었다. 그런 일로 기차간이나 버스 내에서 신문을 거꾸로 들고 있는 사람도 있는 판이었다. 그날 저녁.
정 소장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신규 구독자를 집계해보니 181부였다. 이를 보고 정 소장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했다.
"이 생각을 나는 진즉 왜 못했을까?"
"콜롬부스의 달걀의 이치와 같죠. 계란을 깨서 세우든 세우는 놈이 장땡인거죠."
"아무튼 대단하네, 대단해."
이렇게 우리는 일요일도 없이 풀로 꼬박 일주일을 했다. 결국 무료 기간이 최대 6개월까지 늘어나며 치고 박고를 했다. 그 결과 우리는 1, 100부를 판촉 했고, 타 신문의 판촉에 의해 200부 가량이 끊겼다. 결국 지국에서 나가는 부수가 1,400여 부로 대폭 증가되었다.
아무래도 타 신문들이 나가는 부수가 많았으니, 우리가 끊어먹을게 더 많았고, 선구자 입장이니 새롭게 신문을 보겠다는 사람도 우리가 더 많이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지사장도 기분이 좋아 연일 싱글거리며 우리 지국을 자주 방문했고, 우리 지국의 전 식구들에게 회식을 시켜주기도 했다. 그런데 문제는 신문이 많이 나가니 안에서도 이를 관리할 사람이 필요했다. 나는 학교에 가야하니 안되고, 소장을 비롯한 세 사람도 수금이다, 판촉이다, 광고지를 가지러 가는 등 해서 사무실에 붙어있을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아직도 판촉은 계속되고 있었다. 꾸준히 돈 지역도 계속 돌다보면 신규독자가 생기는 법이다.
아무튼 정 소장에게 물어보니 부수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전에도 정 소장 부인이 낮에는 경리 업무를 보았다 했다. 그렇다고 정 소장 부인에게 다시 경리 일을 맡길 수는 없었다. 만일 정 소장을 해고할 일이 있으면 부인만 두기도 곤란한 사태가 발생하기 때문에 나는 신규로 경리를 뽑기로 했다. 그래서 나는 정 소장에게 말해 지역신문인 충청일보에 구인광고를 내도록 했다. 그렇게 해서 3일 만에 뽑은 사람이 김 명자(金 明子)라는 아가씨였다. 올해 갓 여상을 졸업한 아가씨로 단아한 키에 복스러운 인상의 귀여운 아가씨였다. 일요일 오전 9시.
나는 이 시간에 맞추어 지국으로 나갔다. 당연히 오늘은 학교 수업이 없기 때문에 시간이 많아서 지국의 업무를 보러 나가는 것이었다. 오늘이 일요일이지만 경리 아가씨도 출근을 한다. 이 당시 서울과 지방은 신문 나오는 날이 틀렸다. 서울은 일요일 날이 휴간이지만 지방은 월요일이 휴간 일이었다. 그 이유는 인쇄공장에 서울에만 있었기 때문이었다. 모든 신문을 서울에서 찍어 지방에 내려가면 다음 날 날짜로 인쇄되어 내려가는 바람에 그런 기현상이 벌어지는 것이었다. 지금이야 지방 곳곳에 인쇄소가 있어 그 주변일대를 커버하지만 당시는 그런 여건이 못 되어 생기는 현상이었다. 내가 시간에 맞추어 5분 전 9시에 지국 사무실에 도착하니, 사무실 문이 열려있었고 경리 아가씨는 이미 출근해 있었다.
"안녕하세요? 국장님!"
내가 문을 열고 들어서자 김 명자가 웃음 띤 얼굴로 인사를 해왔다. 내 나이가 비록 2살이 어리지만, 명색이 내가 지국장이다 보니 나를 대우하는 게 깍듯했다.
"좋은 아침입니다."
"네!"
"커피 한 잔 주실래요."
"네!"
해맑은 웃음과 함께 답을 한 김명자는, 내가 마시는 커피 취향을 알기 때문에, 군말 없이 사무실 뒤편에 딸린 부엌으로 향했다. 우리 사무실은 중간에 부엌을 두고, 도로변에 접한 전면은 사무실이고, 뒤로 방 한 칸이 덧 붙어있었다. 곤로에 불을 붙여 냄비를 올려놓은 김명자가 돌아왔다. 그리고 커피를 타기 시작했다. 뒤태를 보이고 있는 김명자에게 내가 물었다.
"독자대장은 다 만들었나요?"
"아직 다 만들지 못했습니다. 워낙 많아 놓으니까 시간이 제법 걸리네요."
"그럴 겁니다."
"오늘 불배 온 것은 없었습니까?"
신문이 안 들어왔다고 기록을 해놓는 불배대장을 봐도 되지만 나는 귀찮아서 말로 물었다.
"한 건 있어서 윤정환이 갖다 주러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요?"
"모두 판촉 한다고 나갔습니다."
"수금은 다 했다나요?"
"이제 잘 주지 않는 집만 남았다고 판촉하러 나간다하던 데요."
오늘은 내가 사무실로 출근하는 것을 아니, 날 보기가 껄끄러워 모두 일찍 자리를 비운 모양이었다.
"사무실 경비는 있으세요?"
"있기는 하지만 달랑달랑 하네요. 잠시 만요."
커피 잔을 들고 급히 부엌으로 향하는 김명자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