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일요일 아침 9시.
우리는 지국에서 만났다. 정 소장을 비롯해 세 명의 동네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리를 함께한 것이다.
"이 얘들인가?"
"네!"
"너무 어리잖아."
"신문하는데도 나이가 있어요?"
"아니지만 남들이 무시할까봐."
"그렇지는 않을 걸요. 유리한 점도 많아요."
"됐고. 가야지?"
"네!"
나는 명단을 긁으려 일어서려다가 서로 소개를 안 한 것을 깨닫고 자리에 앉았다.
"너희들! 함께 일할 소장님이시다. 인사 드려라!"
"네, 안배성입니다."
"조호철입니다."
"윤정환입니다."
셋이 공손히 고개를 조아리자 정 국장이 말했다. 아니 오늘부터는 내 밑에서 일하니 정 소장이다.
"명단은 어떻게 긁는지 알지?"
"오늘 처음인데요."
"참, 내..........!"
애먹겠다는 생각에서인지, 어이없어 하는 정 소장이었다. 잠시 셋을 일일이 바라보던 정 소장이 안 되겠는지, 아무 소리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한 옆의 광고지를 한 움큼 집어 들었다. 광고지를 반으로 접는 정 소장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여러 장 겹치더니 호치케스로 찍었다. 물론 광고지의 이면을 활용하기 위함이었다. 이면지 치고는 질이 좋아 금방 찢어지지는 않을 성 싶다.
"명단 긁는 요령은 알아?"
접은 이면지를 하나씩 건네주며 정 소장이 셋에게 물었다. 여기서 명단을 긁는다는 말은, 독자들 집을 찾기 위해 일일이 이면지에, 그 방향과 위치 등을 차례로 표시해나가는 과정을 말한다.
"몰라요."
"전혀요."
셋의 부인에 정 소장이 엄숙한 어투로 말했다.
"자랑이 아니다. 한 번만 딱 가르쳐줄 테니, 바로 바로 소화하도록!"
"네, 소장님!"
"그 전에 한 가지 묻자? 우측이 어디냐?"
"그야 오른쪽이죠."
안배성의 말에 정소장이 씨익 웃으며 말했다.
"그래. 밥 먹는 손이다."
"저는 왼손으로 밥 먹는 데요."
"잘났다. 정말!"
조호철의 말에 그것도 말이라고 하느냐는 표정으로, 책하는 정 소장이었다.
"가자! 실제로 명단을 긁으며 자세히 설명해주마!"
앞장을 선 정 소장이 돌연 머리를 긁적이더니 돌아섰다. 책상 서랍을 뒤졌다. 그리고 세 개의 자전거 열쇠를 꺼내 하나씩 주었다. 내 것은 주머니에 있으니 상관이 없었다.
지국에는 내가 타는 것까지 총 다섯 대의 자전거가 있었다. 이제 이들 총무들이 한 대씩 타면 기존 자전거 타고 배달하던 학생들이 문제가 된다. 지금까지는 정국장하고 배달 학생 넷이 있어 오히려 하나를 스페어로 남겨 둘 수 있었다. 계산상으로는 배달학생 하나에 자전거 한 대씩 주면 맞았지만, 한 놈은 자전거를 못 받고 도보로 배달을 하고 있었다. 녀석이 지국장에게 찍힌 탓이었다. 툭하면 멀쩡한 자전거를 전봇대에 들이받고 훅이 부러져 배달을 못했다고 핑계대거나, 고의로 펑크를 내서 배달사고를 내는 요주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앞으로 확장을 하게 되면 앞으로 자전거가 부족할 것 같아서 내가 정 소장에게 물었다.
"자전거 한 대에 얼마죠?"
"3천 원. 왜 사게?"
"앞으로 그래야만 할 것 같아서요."
"말만 해. 내가 자전거 대리점에 잘 소개해 줄게."
"미리 한 대 주문 좀 해주세요."
"오케이."
"명단 긁으러 가죠."
"오케이!"
앞장을 서는 정 소장이었다.
비록 이면 도로지만 지국 부근은 상가라 명단 긁기가 쉬웠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주택가로 접어들자 상호가 있는 것이 아닌데다, 집들도 대개 비슷비슷하게 지어놔서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다음은 좌꺽, 우삼"
즉 좌측 방향으로 꺾어, 우측에서 세 번째 집이 독자라는 소리였다. 셋은 정 소장의 말대로 이면지에 기록하고 부지런히 뒤를 쫓는다. 나는 눈으로 이를 기억하고 있었다. 물론 눈으로 기억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내가 이 동네 지리를 잘 알고 기억력이 좋아도 다 기억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도 별 문제는 없었다. 세 명이나 동시에 긁고 있으니, 나중에 그 중 하나를 취해 혼자 돌아볼 생각이었다. 아무튼 이렇게 시작된 명단 긁기가 이날 종일 걸려, 거의 저녁때나 되어서야 끝났다.
원래 시간이 많이 걸리는 작업이기도 하지만 프로는 이들보다는 최소한 1/3 정도의 시간은 단축했을 것이다. 아무래도 초보라 시간이 더 많이 걸린 탓이었다.
"소장님은 이들에게 우선 100부씩 배달 구역을 정해주시고, 너희들은 구역을 맡는 대로 자기 구역을 어두워지기 전에 한 바퀴 더 돌아봐."
"알았어!"
하기 싫어 마지못해 대답하는 셋이었다. 중간에 짜장면 한 그릇씩을 점심으로 먹었지만, 배도 고프고 다리도 아프니 하기 싫기는 싫을 것이다. 하지만 내일 정확하게 배달하려면 미리 한 번 더 익혀두는 게 좋았다. 그래도 어느 집은 찾지 못하고 헤매는 수가 있으니까. 그런 집은 대부분이 오히려 너무 기억하기 쉬워, 안이하게 명단을 긁거나 또렷한 기억이 없는 집이었다. 세 총무들에게 구역을 지정해주기 위해 다시 나가는 정 소장에게 물었다.
"고 민호 전화번호 몇 번이죠?"
"거기 있는 전화번호기록부에 있으니까, 찾아보도록 해."
"알겠습니다."
나는 정 소장이 가리킨 책상위에서 전화기록부를 뒤져 고민호(高敏鎬)의 이름을 찾아냈다. 그리고 복싱 체육관에 전화를 걸었다. 내가 한 때 다니기도 했던 곳이지만 전화번호가 기억나지 않아 물은 것이다. 나는 다이얼을 돌렸다.
"챔피언 도장입니다."
"민호냐?"
"누구?"
"나 강 대정이다."
"아........! 웬일이야?"
"내가 지국 인수한 것은 알지?"
"소식 들었어."
"지금 한가하지?"
"응."
"할 이야기도 있고, 짜장면이라도 한 그릇 같이 하자."
"어디서?"
"지국 옆 취춘원."
"알았다. 지금 바로 출발할게."
"먼저 가서 기다릴게."
"알았어."
나는 수화기를 내려놓고 녀석에 대해 생각했다. 고아 출신으로 지금 청주상고 2학년에 재학 중이었다. 은행원이 되기보다는 복싱 세계챔피언을 꿈꾸는 놈으로, 체육관에서 먹고 자고 했다. 관장 대신 아이들을 지도하기도 하면서 꾸준히 자신의 실력을 갈고 닦는 놈이었다.
지국에서는 어렸을 때부터의 인연으로 신문 100부를 배달하고 있었다. 착실하지만 근성이 있고 한 번 화가 나면 물불 안 가리고 저돌적으로 덤비는 일면도 있는 아이였다. 겪고 보니 의리도 있고 과묵한 친구였다. 그래서 내가 계속해서 데리고 쓰려고 부르는 것이다. 나머지 녀석들은 일단 쉬게 했다가, 나중에 신문이 더 많이 확장되면 부를 예정이었
다. 나는 잠시 그에 대해 생각을 하다가 천천히 취춘원으로 향했다. 15분 정도 지나자 그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여기!"
저녁나절이라 그런지 테이블에 손님이 좀 있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는 녀석에게 말과 함께 손을 번쩍 들어 내 위치를 알렸다.
"시켰냐?"
"아니. 오면 같이 시키려고."
"나는 짜장면이 좋더라."
"나는 점심에도 먹었더니 질린다. 볶음밥으로 먹어야겠다. 너도 볶음밥으로 하던지?"
"아니야. 나는 정말 짜장면이 좋아."
"알았다. 그 대신 곱빼기다."
"좋아!"
"여기 볶음밥 하나 하고요, 짜장면 곱빼기 하나요."
"네, 학생!"
홀 너머에서 들려오는 주인아주머니의 음성을 들으며 나는 시선을 고 민호에게 옮겼다.
"총무 셋을 한꺼번에 두었더니 자전거가 당장 한 대 모자란다."
"그래도 되겠어? 지국이 어렵다던데."
"지대도 좀 깎았고, 확장을 많이 할 거니까 곧 괜찮아질 거야."
"확장도 장난이 아니라던데, 워낙 경쟁이 치열해서."
"대책을 세워놨으니 잘 될 거야. 그러나저러나 내가 도보로 배달할 테니, 너는 타던 자전거 계속 타라."
"아니! 내가 도보로 배달할게. 이제 명색이 지국장인데 지국장 체면이 있지, 네가 어떻게 걸어서 배달을 하냐?"
"아니야. 운동 삼아 내가 할게."
"진짜 운동할 사람은 나니까. 걱정 마."
"그럼, 늦어도 이번 주만 참아라. 내 대리점에 신청해놨으니까."
"알았어. 시간이 좀 걸려도 괜찮으니, 너무 무리는 하지 마."
"그 정도 여유는 있으니 걱정 마."
"알았어."
"운동을 잘 되냐?"
"촌구석이라 그런지 마땅한 스파링 파트너가 없어서 애를 먹는다. 네가 있을 때는 많은 도움이 되었는데."
"하하하.........! 솔직히 나한테 두드려 맞고 뻗는 게 일이었는데, 도움은 무슨 도움이냐?"
"그러니 실력이 늘지. 하지만 이젠 네가 나한테 안 될 거다."
"격장지계 쓰지마. 나 바쁘거든."
"쳇, 넘어가주면 어디가 덧나냐?"
"하하하..........!"
웃고 있는데 금방 음식이 나왔다. 음식을 가져온 주인아주머니에게 내가 물었다.
"이 집은 신문을 뭘 보시죠?"
"조선일보 본지 오래 됐어."
"아니! 이웃에 한국일보를 놔두고 그러면 되나요. 제가 오늘부터 인수했으니 한 부 봐주시죠. 우리 아이들 회식하면 여기서 하기도 할 테니까."
"정 국장이 먼 곳에 시켜먹으니 얄미워서..........."
"알았습니다. 저는 꼭 여기다 시키죠. 그런데 솔직히 열 번 중에 두 세 번은 다른 곳도 팔아줘야 해요. 우리도 장사의 일종 아니겠습니까? 그 정도는 양해하실 거죠?"
"거, 학생. 솔직해서 좋네. 그 정도야 서로 양보를 해야지. 장사 속에서 장사해 먹는 건데. 내일부터 한 부 넣어줘요."
"고맙습니다. 아주머니!"
나는 얼른 꾸벅 사례를 하고 품에서 볼펜과 종이를 꺼내 몇 자 적고는 아주머니의 사인을 받았다. 비록 사인을 처음해보는 것이라고, 자신의 이름 석 자에 동그라미 하나만 그려줬지만.
금요일 오후 5시, 만고당.
오늘은 웬일인지 그녀가 먼저 나와 있었다.
"해가 서쪽에서 뜨겠네."
"너, 불량학생인 줄 금방 알아보겠다."
만나자마자 황수정은 대뜸 핀잔이었다.
"정말?"
"그래!"
눈을 째리기까지 하는 그녀였다. 그녀의 모습에 내 차림을 내려다보았다. 쫄쫄이 바지에 껄렁한 남방차림.
"교복 입고 나올까?"
"오버 하지 마."
"그럼?"
"단정한 옷차림!"
"알아 모시겠습니다. 공주님!"
나는 모자를 벗어 정중히 고개를 숙이는 장면을 연출했다. 마치 서양의 신사처럼.
"호호호..........! 자리에 앉아."
내 액션에 기분 좋은 웃음을 지으며 자리를 권하는 그녀였다. 그 모습이 너무 예뻤다. 청초한 난처럼. 그렇지만 나는 내색하지 않았다.
"자리에 앉아도 되겠습니까? 공주님!"
"네, 앉으세요. 왕자님!"
"이제 내가 왕자로 보이기 시작하는 거야?"
"천만에! 나와 만나는 사람은 당연히 왕자여야 하니까. 아직은 자격 미달이지만 오늘만 대우해 주는 거야."
"어떻게 하면 내가 왕자의 조건을 갖추는 것인데?"
"음........! 우선 서울의 명문대학에 진학할 것."
"그 다음은?"
"사회에서도 알아주는 유망한 직업일 것."
"그 다음은?"
"나를 평생 공주처럼 떠받들 것."
"와.........! 정말 까다롭네."
"아니야. 쉬워. 아주 쉬운 일이지. 그 정도도 안 되면 앞으로 내 앞에서 얼씬거리지도 마."
"흐흠.........! 이거 장난이 아닌데!"
나는 손으로 턱을 만지며 짐짓 진지한 자세가 되었다.
"그 정도는 될 거지?"
"아무렴, 내가 누군데? 한국의 첫째가는 미인 황수정의 애인인데."
"착각하지는 말고."
새초롬한 표정의 황수정이었다.
"꼭 그렇게 될 테니까. 두고 보라고."
"알았어, 알았으니까. 너무 폼 잡지 말고, 뭐든 시켜."
"나, 이런데 처음이라서 말이야."
"팥빙수 먹을래?"
"여름도 아닌데 돼?"
"너 겨울에만 아이스크림 먹니?"
"아이스케키는 여름에만 있던 데?"
"촌 놈!"
"뭐라고?"
내가 쌍심지를 돋우어도 그녀의 반응은 여일했다.
"촌놈을 촌놈이라고 하는데, 뭐가 잘못 됐어?"
"내가 촌놈이라는 걸 어떻게 알아?"
"청주도 촌인데 볼 게 뭐 있어."
"하긴 너는 서울에도 자주 가니.........."
"뭐? 너?"
"아니, 실수! 애인!"
"이게 정말!"
"너무 노여워하지 말라고. 사람들이 우리만 쳐다보잖아."
비로소 주변을 한 바퀴 돌아본 그녀가 말했다.
"눈들은 있어가지고. 하긴 전국구니 이미지 관리해야지."
그 다음부터는 행동이 아주 조신해지는 황수정이었다. 어디 가나 시선을 모으는 그녀였기 때문에 진즉부터 제과점의 시선이 우리에게 쏠려있었다. 그녀가 설령 광고모델이 아니더라도, 그녀의 눈부신 미모는 항상 사람의 시선을 끌어 모으는 바가 있었다. ============================ 작품 후기 ============================4종 셋트는 작가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입니다!
^^고맙습니다!
^^늘 행복하시고, 건강하세요!
^^
^^고맙습니다!
^^============================ 작품 후기 ============================4종 셋트는 작가가 글을 쓰게 하는 동력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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