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월 10만5천 원으로 하자!"
"에이, 말도 안 돼요. 신문 겨우 500부 나가는데, 지대로 다 주고 나면 처음부터 적자보고 들어가란 말이 예요?"
"무슨? 신문이 2,000부나 발송되는데 500부야? 정 국장 어떻게 된 일이야? 내게 보고하기로는, 700부는 나간다고 하지 않았어?"
"그것은 사실 매일 판촉 하라니, 가라 부수고요. 실은 월 550부 정도 나갑니다. 그나마도 악성이 50부 정도 있으니, 실제로는 500부 나가는 게 맞습니다."
"허허........ 이런 변이 있나? 그 정도로 신문이 망가지도록 정 국장은 뭐했어?"
"그러니까. 지금 손들고 나가는 것 아닙니까?"
"지금, 누구냐, 거........."
"강 대정입니다."
"그래, 강 대장이 밑에서 월급쟁이 하기로 했다고, 이 아이 편들어 주는 것 아니지? 막말로 조사하려면 금방이야. 내 뒤에 있는 아이들이 폼으로 그냥 본사에서 월급 타먹고 있는 게 아니야."
박 부장의 말에 비로소 새삼 눈을 들어 그의 뒤를 보니, 떡대 하나와 제법 똘똘하게 생긴 청 년 둘이, 박 부장을 호위하듯 뒤에 떡 버티고 서 있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얼마든지 조사해 보려면 해보세요."
"좋아! 이왕 인심 쓰는 것, 대정이 말대로 500부 값으로 계약해주지. 이의 없지?"
"네!"
"계약서 작성하자고."
이렇게 해서 나는 월 7만5천 원의 지대를 매달 본사에 내기로 약정을 체결했다. 여기서 500부 값을 책정한다고 해서 한 달 구독료인 450 곱하기 500부가 아니다. 신문 값의 1/3인 150원 곱하기 500부 하면 대체적인 지대가 된다. 이는 각 신문사마다 틀리고, 각 지국마다 지대가 틀리니, 일정한 공식이 없었다. 그렇지만 대체적으로 그렇다는 말이었다. 아무튼 지대는 그런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책정이 되어 일단은 기분이 좋았다.
"언제부터 인수 받는 것이지?"
"일요일 날 인수인계하는 것으로 하죠."
"그래, 그런 문제는 둘이서 알아서 잘 하고. 내 지켜 볼 테니, 잘 해. 빈 말이 아니야. 시원찮으면 3개월 후에 바로 접수 들어간다."
"알겠습니다. 부장님! 중간에 지대나 먹이지 마세요."
"강용이 한태 코치를 얼마나 잘 받았는지, 별 걸 다 아네."
"저 그런 것, 알려준 적 없습니다."
"그러면 쟤가 그런 걸 어떻게 알아? 계약도 다 끝났고 하니 쓸데없는 소리 말고, 경영 잘해서 좀 크게 키워 봐."
"알겠습니다. 쩝쩝........!"
입맛을 다시는 정국장의 머리에는 내가 신기하게 생각되어 지나보다.
'이 녀석이 도대체 그런 걸, 어디서 알았지?'
하는 표정이 역력했기 때문이었다. 그날 저녁.
아저씨를 집에 바라다 준 나는 곧 동네를 돌며 세 명의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모두 내 또래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 중학교만 마치고 빈둥거리는 두 아이와, 고등학교는 들어갔으나 퇴학을 맞고 집에서 놀고 있는 아이였다.
그렇지만 이들이 전적으로 집에서 놀고 있는 것은 아니고, 이일 저 일로 간혹 몇 푼씩 만지고 있는 아이들이었다. 나는 이들을 끌고 중국집으로 들어가 짜장면 곱빼기를 한 그릇씩 시켜주고 입을 떼었다.
"너희들 내 말 잘 들어. 당장 월 1만원의 보수가 생기는 일이 있는데, 할래 말래?"
"무슨 그런 일이 있어? 우리 나이에?"
윤정환이라는 아이였다. 중학교 졸업하고 목공일을 배운답시고 목공소에 몇 달 어리댔으나, 한 달이 지나도 돈 한 푼 안주고, 점심이나 겨우 챙겨줄 정도였단다. 게다가 일은 얼마나고된지, 때로는 야간작업까지 시켰다. 그래서 요즈음은 그곳 때려치우고,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아이였다. 다른 아이들을 통해 얼핏 들은 이야기였다.
"정말로 그런 일이 있어?"
방석을 당겨 앉으며 묻는 아이는 구둣방을 전전하다가 요즈음은 놀고 있는 안배성이라는 아이였다.
한 놈만 유독 말없이 우리의 대화를 지켜보고 있었는데, 고등학교 들어가서 패싸움을 하다가 잘린 조호철라는 놈이었다.
"신문 배달하는 일이야."
"에이, 그 정도가지고 만원씩이나 줘?"
"배달 뿐이지 아니지. 수금, 판촉 등 신문사의 온갖 궂은일은 다해야지."
"그러면 그렇지. 그런데 정말로 만원은 주는 거야?"
윤정환이 눈을 빛내며 물었다.
"내가 지금 너희들 데리고 장난칠 있냐?"
"알았어, 알았어."
금방 꼬리를 내리는 윤정환이었다. 내 주먹을 알고 있으니, 내가 화난 척을 하자 얼른 수긍하고 나선 것이었다.
"언제부터 근무하면 되는데?"
"이번 일요일부터."
지금까지 말이 없던 조호철의 말에 내가 가볍게 대답했다.
"단, 술 처먹고 신문 빵구 내거나 하면, 내 손에 죽는다!"
나는 주먹까지 들어 보이며 세 놈을 단단히 얼러댔다.
"알았다. 알았어. 대신 월급이나 제 날짜에 꼬박꼬박 줘라."
"그것만은 내 단단히 약속하지. 그리고 나와 한 번 인연을 맺은 사람은, 너희들이 잘 하는 한 끝까지 안 버린다. 그런 줄 알고 열심히 한 번 해봐!"
"네가 의리 있는 건, 온 동네가 다 안다. 그렇지만 네 말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
새삼 다짐을 요구하는 안배성을 보고 내가 싱긋 웃으며 말했다.
"너희들이나 잘 해 인마! 나는 절대 실수할 사람이 아니니까."
"알았어, 고맙다!"
"기념으로 배갈 한 독구리 하면 안 될까?"
"술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단 신문이 없는 일요일 저녁에는 마셔도 좋다."
"OK!"
이렇게 해서 정식으로 내 부하 세 명이 생겼다. 아니 직원이라고 해야 하나?
다음 날 저녁.
오늘은 금요일이다. 정미정과 분식집에서 만나기로 한 날이었다. 나는 약속시간 10분 전에 약속 장소로 나갔다. 아니나 다를까, 죽돌이들이 오늘도 변함없이 죽치고 앉아 있었다. 그 중에는 지용준과 남희태라는 놈들도 있었다.
"야, 어떻게 됐어?"
지용준이 나를 맞아 반갑게 물었다.
"오늘 여기서 만나기로 해 나온 거다."
"에이, 잘 못되길 빌었더니 꿩새 울었네."
지용준의 말에 내가 웃으며 물었다.
"너희들은?"
"우리가 누구냐? 다 잘 되고 있다."
"그런데, 왜?"
"우리도 여기서 만나기로 했다. 7시에?"
"참 말이냐?"
평소에도 뻥이 좀 있는 지용준이기에 나는 남희태에게 물었다.
"정말이야."
"잘 됐군."
내가 중얼거리듯 말하는데 지용준이 갑자기 사방을 둘러보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우리 내기 한 번 할까?"
"무슨 내길?"
"먼저 먹는 놈이 형님 되기로."
"이 자식이 미쳤나!"
"좋다, 좋아!"
내가 소리를 지르는데 반해 적극적으로 달려드는 또 하나의 꼴통 남희태였다.
"너 인마! 자신 없으니까, 빼는 거지?"
"알았다, 알았어. 너희들 멋대로 해라!"
"약속?"
손가락을 내밀어 손도장까지 찍자고 달려드는 지용준이었다.
"이것 참........."
내가 어이없어 하는데 지용준이 옆에서 슬슬 나의 염장을 질렀다.
"자신 없으면 너는 빠지고......... 우리 둘이 할런다."
"좋다!"
격장지계인지는 알지만 불이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 나는 손가락을 들이대고 그들과 약속을 했다. 때마침 세 여학생이 단체로 들어왔기 때문에 우리는 딴청을 하며 그들을 맞았다.
"너희들 역적모의 했지?"
지용준 파트너의 말에 지용준이 얼른 해명을 했다.
"그럴 리가. 서로 자신의 파트너가 제일 예쁘다고 우기다가 좀 간극이 생겼지."
"정말이야? 너는 누가 제일 예쁘다고 했는데?"
"당연히 우리 맹 여사지."
"뭐야? 내가 왜 맹 여사야?"
그 학생의 성 씨가 맹 씨는 맞았지만, 여사라는데 격분하는 맹 금자였다. 둘이 싸우거나 말거나 나는 미정이에게 물었다.
"튀김 먹을래?"
"아니, 방금 저녁 먹고 나왔어."
"벌써?"
그때였다. 맹금자가 돌연 우리의 대화에 끼어들어왔다.
"거짓말 하지마라. 계집애야! 안 먹었으면 안 먹었다고 이실직고 하고, 좀 얻어먹으면 되지. 벌써부터 신랑 챙기냐?"
신랑이라는 소리에 얼굴이 새빨개져 고개를 푹 숙이는 정미정이었다.
"얘 좀 봐라. 애 좀 봐! 벌써 정든 거야 뭐야? 벌써 좋아하는 거 맞지? 너!"
아무 말도 못하고 공연히 금자의 옆구리를 쥐어뜯는 정미정이었다.
"미정이 그만 놀려라!"
"너는 지금 누구 편드는 거야?"
남희태의 파트너 곽성희가 나섰다. 이에 벌컥 화를 내는 맹금자였다. 물론 장난삼아 그런 것이다.
"나가지."
나는 공연히 이 자리에 더 있기 싫어 미정이에게 말했다.
"네!"
조신하게 대답하고 내 뒤를 따라 나오는 미정이었다.
"면 좋아해?"
"솥으로 둘러낸 건 아무거나 다 잘 먹어요."
"다행이군."
나는 더 이상 그녀에게는 묻지도 않고 방앗간 옆 예의 그 짜장면 집으로 들어갔다. 어제 내가 신문사 총무 섭외로 동네 아이들을 만난 그 장소였다. 훗날 업무가 좀 익숙해지면 그네들에게 총무 직책을 줄 예정이기 때문에 이런 표현을 쓴 것이다. 우리가 문을 열고 들어가니 홀에는 각각 한 명씩 두 테이블의 손님이 있었다. 마침 저녁때라 그럭저럭 손님이 있는 모양새였다. 벌써부터 심상치 않은 어른들의 눈을 피해 나는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마침 방은 비어 있었다.
"뭘로 시킬까? 난 짜장면."
"나는 먹는데 보기 흉하니, 짬뽕으로 할래요."
"그럼, 통일하자. 나도 짬뽕으로 시키고, 배갈 한 독구리 마시련다."
"술을 너무 자주 마시는 것 아니 예요?"
"아니, 평상에는 거의 안 마셔."
이렇게 말하고 나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요즈음은 신문사의 일로 제법 마신 날이 며칠 되었다. 그렇다고 정정해서 말을 고치기는 싫었다.
"학생, 뭐 먹을래?"
마침 주인아주머니가 문을 열고 주문을 요구했다.
"짬뽕 둘, 배갈 한 독구리 주세요."
"그래, 맛있게 해다 줄게."
"네!"
아주머니가 문을 닫자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마침 철제 재떨이가 눈에 띄었다. 주머니를 뒤적거려보니 담배 반 갑이 있었다. 명승이라고 한 곽에 10개비가 들어 있고, 담배 길이도 짧은 담배였다.
나는 아무 말 없이 담배 하나를 꺼내 물고 주머니에서 작은 성냥을 꺼내 불을 붙였다. 그러고 나서 손가락을 돌리자 불이 순식간에 꺼졌다. 이 모양을 신기하게 바라보던 미정이가 물었다.
"담배 많이 피워요?"
"아니. 있으면 피고, 없으면 안 피워. 오늘은 마침 주머니에 들어 있기에 피우는 거야."
"많이 피우지 말아요. 건강에 안 좋대요."
"알았다. 알았어."
벌써부터 잔소리 하나 싶어 나는 귀찮다는 표정으로 담배를 뻑뻑 빨았다.
"원 집이 어디 예요?"
"괴산, 도안."
"도안 전체가 집은 아니잖아요?"
'요것 봐라' 하는 눈으로 응시하던 내가 순순히 대답해 주었다.
"사리와의 접경인데 동네에 수백 년 묵은 은행나무가 있어서, 은행정이라고 부르는 데야."
"네에."
알겠다고 고개를 주억거리는 미정이었다.
"그 동네 잘 알아?"
"그런 건 아니고요. 그 정도만 해도 충분히 찾아갈 수 있겠네요."
"뭐?"
요상한 말만 하는 그녀였다.
"그렇다는 말인데 왜 이렇게 정색을 해요."
그녀의 말도 일리가 있었으므로 나는 더 이상 대꾸를 않고 또 담배에 담배를 물었다. 그런 나를 주시하던 그녀가 또 물었다.
"몇 남매인데요?"
"삼대독자야. 밑으로 여동생이 셋 있지만 말이야."
"네?"
"왜 이렇게 놀래?"
"집에서 귀여움 많이 받겠네요."
"귀여움이 뭐야. 할아버지가 옛날 훈장 출신이라 보통 엄하신 게 아니야."
"호호호........! 삼대독자면 집에서 일찍 장가들이려고 하겠는 데요?"
"아니래도 당신 돌아가시기 전에 증손 보아야 된다고 고등학교 졸업하자마자 결혼부터 하라고 평소부터 단단히 어르고 계시지."
"호호호.......! 얼른 마땅한 색시 감 골라야겠네요?"
"아니래도 부지런히 쫓아다니고 있잖아."
나의 말을 어떻게 해석 했는지 그녀의 눈은 빛나고 입에는 요염한 미소가 빛나고 있었다.
이후에도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데, 짬뽕과 배갈이 들어왔다. 나는 아무 말 없이 짬뽕과 배갈을 순식간에 해치웠다. 그러나 그녀는 아직도 반이나 남아 있었다. 집에서는 어떻게 먹는지 몰라도, 이가 안보일 정도로 음식을 씹고, 국물도 숟가락으로 떠먹고 있으니 늦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남은 술잔을 갑가지 상 위에 부었다. 먹다말고 멍하니 이를 지켜보는 미정이었다. 나는 성냥불을 당겨 거기에 불을 붙였다. 상 위에서 배갈이 파란 불길을 내뿜으며 잘 도 탔다.
"어머.........!"
이 모양이 신기한지 불이 꺼질 때까지 바라보는 미정이었다.
"다음, 다음 주 일요일 날 만나자."
대답이 없는 미정이었다.
"왜, 싫어?"
"아니, 너무 멀어요."
"뭐?"
나의 반문에 볼을 발갛게 붉힌 미정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그동안 보고 싶을 것 같아요."
'이런, 젠장.........! 나에게는 전생에도 이루지 못한 첫사랑, 황수정이 있단 말이다!'
내색 할 수는 없고, 내가 말했다.
"내 말대로 해. 알았지?"
"그럼, 금요일 날로 안 될까요?"
"내 말대로 해. 알았어?"
"네!"
대답은 하나 불만이 많은 표정이었다. 나는 무시하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나간다! 계산은 내가 하고 갈게."
"저도 그만 먹을래요."
따라서 일어나는 미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먼저 신발을 신고 계산대로 향했다. 토요일 5시.
오늘은 내가 그렇게 고대하던 황수정을 만나는 날이었다. 나는 들뜬 기분에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