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삐리 아빠-- >
"지금 현재 살고 있는 집이 어디야?"
"쌍 샘 위에요."
"그 동네도 드신 덴데.........?"
고개를 흔들며 그녀의 표정을 살피니, 그녀가 조신하게 웃으며 대답했다.
"집이 가난해서 어쩔 수 없었어요. 그래도 겪어보니 그렇게 위험한 동네는 아니에요."
"항상 밤길 조심해."
"밤에는 가급적 집에서 나오지 않는 주의예요."
"잘 생각했어. 이제 슬슬 집 방향으로 가볼까?"
"네!"
그런데 대답이 영 신통치 않다. 내키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내심 실소하다가, 그녀의 반응을 떠보기 위해 은근히 물었다.
"밤새 걸을까?"
"아, 아니 예요. 공부해야 해요."
"잘 생각했어.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지."
"집안 형편상 대학 진학은 어려울 거예요. 졸업하면 일찍 공무원 시험이라도 볼 라고요."
"그래?"
나는 그녀의 말에 놀라워하며 말했다.
"다니려는 의지만 있으면 얼마든지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서는 다닐 수가 있어. 대학교 내 장학금도 있고, 또 과외라도 하면 되지."
"글쎄요. 남동생들 둘이 치고 올라와서요."
"몇 남매인데?"
"남녀 각각 두 명씩. 바로 위가 언니고요.........."
"그럼 시간 여유가 좀 있는 것 아니야?"
"그래도 금방일거예요. 제가 벌어서 두 남동생 대학까지 가르쳐 야지요."
"언니는 뭐 하고?"
"벌써 시집갔어요."
"뭐?"
깜짝 놀란 내가 어이없다는 듯한 말투로 추가 질문을 했다.
"몇 살인데 벌써 시집을 가?"
"나 보다 세 살 위인데, 우체국에 다니다가 좋은 사람 만나 바로 시집갔어요. 평소 어머니의 주장도 여자는 자고로 일찍 치워야 사달이 나니 않는다고........."
"그래도 그렇지........."
나는 더 이상 말을 못하고 입맛만 쩍쩍 다셨다.
".........."
나의 반응에도 아무런 말없이 빙긋이 웃기만 하는 그녀였다.
어느새 둘은 방향을 바꾸어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로 우리는 향하고 있었다. 아직 무심천 변의 벚꽃은 채 망울도 맺지 않은 시점이었다. 집에 돌아오니 채 8시가 되지 않았다. 나는 간단하게 양치와 세면을 하고 연탄불을 보았다. 꼭 막아 놓은 연탄불이 그냥 저냥 잘 피고 있었다. 이대로 두면 내일 아침까지는 갈 것 같았다. 나는 다시 방으로 돌아와 책상 앞에 앉았다. 그리고 자정까지 내내 공부를 하였다. 이내 자정이 되자 나는 불을 끄고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얼마를 잤을까, 나는 오줌이 마려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새벽 4시.
정확했다. 변함없는 일과에 이 시간이 되면 정확이 눈이 떠지는 나였다. 더 정확히 말하면 요의를 느껴 일어난다는 말이 맞았다. 이제 철저하게 습관이 된 것이다. 나는 대
충 옷을 주워 입고 밖으로 나왔다.
새벽 하현달이 희미하게 빛나고 있었다. 나는 간단하게 맨손 체조를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 물지게를 지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돌아보니 다닥다닥 붙은 집들이 모두 잠결에 취해 있었다. 나는 한동안 비탈길을 걸어 내려갔다. 그러자 평탄한 길이 나왔다. 그 길을 3분 정도 더 걷자 우물물이 나왔다. 나는 곧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두 개의 통 중 하나에 부었다. 이윽고 두 개의 물통에 물이 가득차자 나는 물지게를 지고 다시 비탈길을 오르기 시작했다. 부엌으로 들어와 빈 항아리에 물을 가득 채운 나는 물지게를 구석에 처박고 중얼거렸다.
'이 정도면 일주일은 또 견디겠지.'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간 나는 더욱 편안한 옷으로 갈아입고 자전거가 세워진 곳으로 향했다. 그리고 나는 열심히 페달을 밟아 사직동 공설운동장 서쪽 편을 향해 달렸다. 지금 타는 자전거도 내 자전거는 아니었다. 신문사 지국용이었다. 그렇다고 자전거를 아무나 내주는 것도 아니었다. 나와 같이 중학교 1학년 때부터 눈이오나 비가 오나 하루도 빠지지 않고 열심히 하는 놈들에게는 자전거가 지급이 되고, 그렇지 않은 학생은 배달도 걸어서 도보로 해야 했다. 지국에서 자전거를 집에까지 끌고 가게 하는 대신 펑크가 나거나 하면 수리비는 전적으로 내 책임이었다. 이마저도 지국 전체가 시행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내가 다니는 지국만 지국장이 나를 신임해서 내 준 자전거였다. 나는 모두가 잠든 거리를 열심히 달렸다. 유독 불빛이 새어나오는 곳에 도착하니, 신문사 지국이었다. 더 정확히는 한국일보 지사였다.
"어서 오너라! 오늘은 좀 늦었군."
"네, 국장님! 월급날이 지났는데 이번 달 배달료 안 주세요?"
30대 중반의 지국장 정강용이 답했다.
"조금만 참아라. 지난달부터 지대도 못 막고 있다. 그래도 지난달 배달료는 줬잖아?"
여기서 지대는 신문사 본사에서 지국에 공급해주는 신문 값으로, 일정액을 본사에 납부하는 금액을 말한다.
"그렇게 어려워요?"
"말도마라. 곧 지사에 접수 당하게 생겼다. 지대는 계속해서 오르는데 신문을 자꾸 끊어지고, 판촉은 되지도 않는다."
"그러면 얼마 못 가잖아요?"
"아니래도 충청일보에 광고 내놨다. 후임자 물색하려고."
"얼마에 내놓으셨는데요?"
"네가 거기까지 알아선 뭐하게? 너는 누구 밑에서든 배달만 열심히 하면 되지."
"혹시 누가 알아요. 제가 맡아서 하게 될지도?"
"하하하.........! 되는 소리를 해라. 학생이 잇 마! 공부나 열심히 하면 되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그래도 나는 굴하지 않고 물었다.
"권리금 10만 원."
"네에?"
"왜 많으냐? 내가 생각하기에는 굉장히 적다만은?"
나는 정국장의 말에는 대답도 않고 머리로 열심히 주판알을 튕겨보았다.74년 이 당시 신문 한 달 구독료가 450원이었다. 이것을 기준으로 10만 원을 계산하면 222부 값으로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었다.
"마, 그건 너희들이 타는 자전거, 전화기, 책상 등 비품 값이야. 권리금이라고 할 수도 없어."
"신문은 총 몇 부가 나가는 데요?"
"너 배달 안 나가고, 자꾸 쓸데없는 소리 할래!"
버럭 역정을 내는 정강용이었다.
"대충 500부?"
"뭐, 이 새끼가! 못 나가도 마! 700부는 나간다."
"지대가 얼만데요?"
"이 새끼가 정말!"
주먹까지 드는 국장 정강용을 피해 신문을 챙기며 내가 말했다.
"공짜로 주면 내가 한 번 경영해 볼 텐데."
"하하하.........! 지나가는 개가 웃을 소리. 신문은 마, 아무나 하는 줄 알아. 다 경험이 있어야 되는 거야. 나 같은 베테랑도 판판히 나가떨어지는 판인데, 너 같은 초짜는 마. 한 달도 못가."
"경영 나름이겠죠."
"이 새끼가 정말 보자보자 하니........."
달려드는 주먹을 피하며 나는 꿋꿋하게 밀고나갔다.
"국장님이 내 밑에서 소장 하실래요?"
"아이고, 내가 미치겠네. 너 오늘 내 염장지르기로 작정했냐?"
"월급 얼마 드리면 돼요? 3만원?"
"이 새끼가 날 뭐로 보고. 5만원을 줘도 할까 말까다."
"좋아요. 5만원 드리죠."
"하.........!"
헛바람을 내뿜더니 너무 기가 막힌 지, 자신의 책상 앞에가 앉는 정 국장이었다. 그리고는 멍하니 잠시 천정에 눈길을 고정하는 그였다.
"너, 모든 사업이 그렇듯이 신문도 밑천이 있어야 한다. 밑천은 있냐?"
내가 계속해서 진지하게 나가자 방향을 바꾼 듯, 정 국장 또한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내 최대 약점을 물고 들어오는 것이었다.
"몸으로 때우면 되죠."
"너, 이 새끼!"
정말 한 대 때릴 기세다. 나는 씨익 웃으며 신문 뭉치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100부라 봐야 지금과 달리 신문이 얇아 부피가 얼마 되지 않았다. 자전거로 날듯이 금방 배달을 마친 나는 곧장 체육관으로 향했다. 신문 100부면 배달을 마치는데 보통 1시간 30분 쯤 걸린다. 그런 것을 나는 1시간 여정도면 충분히 마친다. 달리면서 신문을 휙휙 뿌리고 다니는데다가, 계단도 달려 오르고 내리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나는 신문을 돌리면서도, 체육관으로 향하면서도, 내내 어떻게 하든 신문지국을 하고 싶은 열망에 들떴다. IMF때 사업이 망하고 십여 년 이상을 종사한 일이 신문업이었기 때문에, 신문업에는 자신이 있었다.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얼핏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궁 즉 통(窮 卽 通)이라. 나는 희심의 미소를 지으며 눈앞에 닥친 건물로 자전거 열쇠를 채워놓고 들어갔다. 본정에서 조금 비껴난 이면 도로에 위치한 청도관(淸道館) 이라는 곳으로 태권도장이었다. 겉 간판은 상무관(尙武館)으로 되어 있는 곳이었다. 아무튼 이 당시 청주에는 태권도장으로 두 곳이 있었다. 경찰서 내에 세 들어 살고 있는 이곳 청도관과, 석교동에 위치한 무덕관(武德館)이 그곳이었다.
문을 열고 들어가 벽에 걸린 시계를 흘깃 보니 5시 50분이었다. 평소보다 20분이 늦었다. 일요일 날 긷던 물을 긷고, 정국장과 잡담을 나누느라 그렇게 된 모양이었다.
"어서 오너라. 강 사범!"
"일찍 나오셨네요."
"나야 장 그 시간인데 자네가 오늘은 조금 늦은 것이지."
윤 경장의 말에 나는 빙그레 웃으며 사방을 둘러보니, 십여 명이 벌써 도착해 운동할 준비를 마치고 있었다. 윤 경장이 나를 사범으로 부르는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한 이래 나는 매년 1단씩 승단을 했다. 아니 그보다도 더 빠르게 승단을 해서, 현재 공인5단의 실력자가 된 나였기 때문에 이런 대우를 받는 것이다. 아무튼 나는 곧 내 개인 사물함으로 가 도복으로 갈아입었다. 그리고 간단히 몸을 푼 후 6시부터 정식으로 중고등부를 지도하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나는 20여 명 되는 관원들을 데리고 태권도를 가르쳤다. 주로 기본형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30분 남짓 가르치고 나면 이어 윤 경장이 이어받아, 아이들을 주로 자유대련위주로 가르쳤다. 아무튼 내가 이들을 가르치는데 장애는 없었다. 거의가 고2 이하인데다가, 하나 있는 고3 역시 나의 권위에 눌려 찍 소리 못하고 배우기 때문이었다. 오늘 따라 나는 자유대련 시간 포함하여 1시간을 족히 가르쳤다. 평소 같았으면 30분 동안 기본형을 가르치고 나면 나는 곧 검도복으로 갈아입고, 혼자 검도를 수련했다. 때로 경찰관이 있으면 그들과 대련을 하기도 했다.
당시 검도를 배우는 학생은 거의 없었다. 주로 경찰들이 호신용으로 배웠다. 나는 30분 동안 검도 수련을 마치고, 한 옆에 있는 샌드백을 두들기고 줄넘기로 마무리를 했다.
그리고 샤워실로 들어가 찬물로 샤워를 했다. 이것이 평소 내 습관이었다. 그런데 오늘은 좀 유별나게 군것이다. 평소보다 아이들을 30분 간 더 지도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한 옆에서 이를 지켜보던 윤 경장이 내가 지도를 끝내고 나자, 웃음 띤 얼굴로 말을 걸어왔다.
"여어, 강 사범! 오늘은 웬 일이냐? 해가 서쪽에서 뜨겠다."
"밥 좀 사 주십사하고요."
"하하하........! 내 그까짓 밥 한 끼 못 사줄까? 가자."
"샤워는 하고 가셔야지요."
"그럴까?"
나의 샤워 소리에 이상하게 주눅 들어 하는 윤 경장이었다. 나를 따라 샤워장으로 들어선 그는 나를 피해 저 끝으로 가 찬물이 쏟아지는 수도를 틀었다. 샤워기는 없고 대야나 바가지에 물을 받아 몸에 쏟아 붓는 것이 샤워다. 이런 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내 것이 보통 성인보다는 조금 더 우람하고 큰데 비해, 윤 경장은 산만한 덩치에 비해 턱없이 작았기 때문이었다. 아니 자라였다. 아무튼 샤워를 끝낸 둘은 옷을 갈아입고 상무관 맞은편 한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뭐, 먹을래?"
"김치찌개 어때요?"
평소 고기를 못 먹어보는 나로서는 그나마 돼지고기라도 몇 점 든 김치찌개를 선호했다.
"자주 먹으니 질린다. 오늘은 순두부로 하자. 아줌마 되지요?"
"네, 네! 윤 경장님!"
아줌마보다는 할머니에 가까운 오십대 후반의 곰보자국이 뚜렷한 여인이 급하게 대답을 했다. 엽차를 따라 윤 경장에도 건네고, 내 잔에도 한 잔 따른 내가 심각한 안색으로 말했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뭔데?"
여전히 입 꼬리가 올라간 표정으로 묻는 윤 경장이었다. 내가 다짜고짜 말했다.
"10만 원만 빌려주세요."
"뭐?"
눈을 치뜨며 호흡을 삼키는 윤 경장이었다. 10만원이 뉘 집 강아지 이름인가? 당시 개봉관 입장료가 300원에서 최고 670원 하는 시대이고, 대졸 초임 월급이 4~5만원 하던 시절에 1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라고 할 수 없었다.
더 더군다나 학생 신분인 내 신분으로서는 거금 중의 거금이었다. 그것을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요청하니 윤 경장이 오히려 기가 질린 표정이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서울 소재 병원에 입원해 있으세요."
"이곳도 아니고 서울에?"
"네."
"중병인가 보지?"
"중병이라기보다는 난치병에 가깝죠. 척추협착증이라고 수술을 해야 된다 네요. 더 놔두면 아예 걸을 수도 없게 된다고 해서............."
"거 참, 큰일이네."
"어떻게 안 되겠습니까?"
내가 애처로운 표정을 지으며 매달리니 윤 경장은 잠시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말했다.
"내 부하들이나 동료들에게 십시일반으로 부탁을 해보도록 할게."
"감사합니다! 사부님!"
"녀석이.........! 이때만 사부님이냐?"
"언제는 제가 아니라고 했습니까?"
"대가리가 굵어지고 나더니 그런 소리가 쏙 들어간 듯해서 말이야. 하하하.........!"
사실이 그랬지만 이 사람을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될 사람이었다. 나를 지도할 중학교 시절에 5단이었고, 지금은 공인7단으로 청도관 내에서도 몇 안 되는 고수에 속하는 사람이, 이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즐거워하는 윤 경장의 입을 막으려함인지 이때 순두부가 나왔다. 그로부터 삼일 후.
운동이 끝나고 거금 일십만 원을 윤 경장으로부터 받아든 내가 말했다.
"감사합니다. 일주일 동안은 아침운동 못 나올 것 같습니다."
"걱정 말고, 잘 다녀오너라."
"네, 싸부님!"
장난스럽게 말하고 등을 돌린 나는 비집고 나오는 웃음을 금할 수 없었다. 거짓말로 얻어내니 왠지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웃을 일은 아니었다. 그간 성실하게 살아온 나에 대한 보답이었으니 말이다. 내가 운동이나 한다고 껄렁껄렁 개차반 같이 굴었으면 언감생심 어림도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한 가지를 해결하고 나니 갑자기 바람맞은 생각이 고개를 쳐들었다. 나는 그녀의 등교 시간에 맞추어 자전거를 끌고 그녀가 꼭 지나야 하는 골목길 어귀에 버티고 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