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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31화 (완결) (232/232)
  • 231화

    [종장] 현실이란 뭘까?

    (으아악!)

    (막아- 컥?!)

    “애들이 보기에는 너무 폭력적인 것 같은데.”

    무협의 세계에서 오랫동안 구른 마오짜이의 회심작 <이 천마 실화냐?>의 3부를 함께 시청하던 아내 송선영이 이마를 찡그리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어... 이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거지들의 단체 ‘개방’의 텃세로 고생한 마오짜이의 경험담이 담긴 1부의 성공에 힘입은 2부도 대성공! 너무 짠해서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었던 1부의 흑막 ‘개방 방주’를 마침내 혼내주는 2부는 감동의 도가니였다.

    (누구- 으악?!)

    (큭! 너무 강하다!)

    (정체가 뭐냐...!)

    마침내 개방(거지)을 졸업하고 사람답게 살기 시작한 주인공의 성장을 다룬 3부도 나쁘지 않았다.

    ‘소름...’

    내가 구한 라누벨 환자 중에서 꿈의 초창기에 이토록 고생한 사람은 마오짜이가 유일하지 않을까?

    보는 내내 그의 한 맺힌 대사가 내 심금을 자극했다.

    아무튼,

    “괜찮다고? 칼에 사람의 팔다리가 잘리는 광경이 괜찮다고?”

    내 아내는 감독 마오짜이의 고뇌와 철학에는 일절 관심 없는 듯했다.

    “그래도 나름 전체연령가인데...”

    “돈을 썼겠지.”

    아들의 눈을 가린 송선영이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나도 어떻게 이 연속극이 ‘전체연령’으로 분류될 수 있었는지 의문이긴 했다.

    그때, 잘 보고 있던 아들이 항의했다.

    “엄마아아~!”

    “안 돼.”

    “우우... 아빠...”

    집안의 서열 1위 ‘엄마’ 송선영의 단호한 어조에 아들이 만만한 ‘아빠’인 내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서열 4위가 뭘 할 수 있겠는가?

    “조금만 기다려. 잔인한 장면이 곧 끝나니까.”

    “그게 재미있는 건데...!”

    하소연하는 아들에게서 시선을 떼고 옆을 돌아봤다.

    “새근새근...”

    이불 덮고 곤히 잠든 딸.

    사람이 픽픽 죽어 나가는 전개가 따분하다면서 진짜로 눈 감고 잠든 딸을 보며, 대견하다는 생각 대신 찜찜한 기분이 드는 건 어째서일까?

    연속극 <이 천마 실화냐?>도 슬슬 끝나가고 있었다.

    (여자냐?)

    (남자인데요.)

    (남자면 웃통 벗어봐.)

    (...참견이 심하네요.)

    3부의 결말은 주인공이 남장(男裝) 중인 천하제일미를 만나는 장면에서 종료. 4부는 로맨스가 되려나?

    원래는 천하제일미가 좀 더 일찍 등장할 예정이었는데, 마음에 드는 배우가 없어서 여태 미뤘다고...

    감독 마오짜이에게 직접 들은 푸념이니 틀림없을 것이다.

    “다녀올게.”

    “너무 늦지 마. 밖에서 사 먹지 말고.”

    “네네.”

    잔인한 장면을 못 봐서 단단히 삐진 아들의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아빠. 엄마는 과보호야.”

    “나중에는 질리도록 볼 거야. 아무런 느낌도 못 받을 만큼.”

    “언제?”

    “네가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쯤.”

    “미성년자 딱지 뗀 후에 19금 영화를 말하는 거야?”

    “글쎄...”

    아들은 그럴 수도 있다. 적성이 의외로 평범하다면.

    하지만...

    “새근새근.”

    “쪽.”

    나의 어머니, 라누벨라 10세가 다음 세대의 마녀, ‘라누벨라 14세’라고 보장한 딸의 볼에 뽀뽀했다.

    나의 올림픽 신화의 은퇴를 확정 지어준 딸이 평범한 숙녀로 자라길 개인적으로 바랐는데...

    마녀는 어릴 적부터 선대의 꿈을 자연스럽게 꾼다. 그래서 조숙해지고, 웬만한 상황에선 어린애 같은 반응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2살 많은 자기 오빠보다 의젓하면 어쩌자는 거람?

    덕분에 키우긴 편했다. 애교가 너무 없어서 종종 아쉽지만!

    “여보! 뭐해? 늦겠어!”

    “...이제 나가.”

    다음 생(生)에는 ‘오빠’ 소리를 듣는 남편이 되고 싶다.

    * * *

    P의 적성검사기는 방황하는 인류에 뚜렷한 길을 제시함으로써, 효율적인 사회를 만들었다.

    그리고 현재.

    유한(有限)했던 인류의 수명은 서혜주 박사가 개발한 신약으로 다시 한번 혁신과 진통을 동시에 앓고 있었다.

    “또 늦었네.”

    “늘 그렇죠.”

    처음 만났을 때보다 젊어진 서혜주 박사에게 능청스럽게 인사했다.

    사람이 나이가 들면 뼈가 시리고, 건망증이 심해지고, 체력도 떨어지는 등의 이유로 은퇴하기 마련.

    하지만 늙지 않는다면?

    뛰어난 사람이 현역으로 계속 남으면서 사회가 고착화, 일의 능률이 높아져야 정상인데 안 높아지고 부작용만 쏙쏙 튀어나왔다.

    실업, 도태, 개인주의, 빈부격차...

    이 혼란이 언제, 어떤 식으로 끝날지는 신(神)만이 알 것이다.

    “환자는 저쪽에.”

    “네.”

    금방 끝날 것이다. 그 금방이 누군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지만.

    “많이 컸다. 옛날에는 너도 환자랑 몇 개월씩 함께 누웠었는데.”

    “하, 하하... 10년도 더 된 얘기를 하시면 어떡합니까.”

    “그게 왜? 부끄러워?”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선배가 나만 보면 답답하다고 말한 이유가 이해됩니다.”

    “컸네.”

    “박사님은 전혀 안 크셨고요.”

    “원장이라고 해줘. 나는 엘몰랑스 병원장 자리가 좋으니까. 그리고 사람의 머리는 10대가 제일 좋아.”

    “저는 더 공부하고 싶지 않네요. 지금도 유행 따라가기 벅찹니다.”

    모방은 창작의 어머니라는 말이 그냥 나왔겠는가?

    환자들의 꿈도 유행을 탄다. 실패하고 후회하기 전의 과거로 돌아가는 꿈은 늘 인기지만, 잠든 시기에 인기 많은 문학 작품을 배경으로 하는 경우가 절반 가까이 된다.

    예를 들어, 무협 영화 <이 천마 실화냐?>가 반영된 뒤부터 무협의 비중이 매우 높아졌으며, 한 달에 두세 번은 주인공이나 천마, 환자가 여성일 경우에 ‘미봉’이나 ‘검봉’에게 빙의한다!

    ‘앞으로는 천하제일미도 추가되겠군.’

    남장이나 남성스러운 여자를 좋아하는 여성 환자들은 이쪽으로 몰리리라!

    “일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즐겨.”

    “즐기는 중입니다. 돈 벌려고 하는 일이 아니니까요.”

    돈은 많다. 월드컵 금메달을 싹쓸이하면서 누적된 연금은 웬만한 대기업 회장님 월급보다 높고, 스포츠토토로 대박이 난 아내는 세계적인 부자다...

    “오랜만에 말이 길어졌네.”

    “그러게요.”

    “이런 날도 있어야지. 옛날 생각 나서 좋잖아?”

    “환자에게 가볼게요.”

    “살살 해. 발작하는 환자를 달래는 의사와 간호사들이 불쌍하다면.”

    “이젠 안 그럽니다. 그때는 아들이랑 놀아주기로 약속해서 어쩔 수 없이...”

    “이젠 믿어도 돼?”

    “킁.”

    나는 백기를 흔들며 환자에게 향했다.

    * * *

    옛날에는 환자랑 술래잡기를 자주 했지만, 지금은 순식간에 찾을 수 있다.

    그리고 현실로 추방!

    ...이러면 치료에 1분도 안 걸리지만, 서혜주 박사의 핀잔처럼 환자가 발작하는 부작용이 있다.

    꿈속의 가족, 친구들이랑 작별할 마음의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갑자기 생이별했으니까. 그 충격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려는 환자마저 나온 뒤부터는 천천히 진행하는 중이다.

    “아... 또냐.”

    아니길 바랐는데, 무협 영화 <이 천마 실화냐?> 3부가 최근에 반영되면서 한창 인기몰이 중이다.

    통계학적으로 필연적이랄까?

    내가 연속극에서 보았던 장소에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하늘에서 선녀님이 왔어요!”

    “아미선녀?”

    “아니요! 진짜 선녀님이요! 이 자리의 모두가 봤어요! 담장을 넘어서 저 집으로 들어가는 순백의 미녀를!”

    “아, 네.”

    무협 <이 천마 실화냐?>에는 선녀가 존재하지 않는다. 2차 창작물인 마오짜이의 영화에도 등장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착각?

    그건 아니다.

    ‘과연...’

    사람들의 말처럼 내 레이더망(영역)에 두 존재가 걸렸다.

    휙~

    지체했다가는 못 만날 수 있으므로 한걸음에 달려갔다.

    “소저. 식사라도...”

    “됐습니다. 저는 당신이 수집하는 여자가 될 마음이 없어요.”

    “수집이라뇨! 사랑입니다.”

    이번 꿈의 <이 천마 실화냐?> 주인공은 중원 무림의 평화보다 미녀에게 관심이 훨씬 많았다.

    그리고 내가 아는 미녀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었는데, 불쾌하기보다는 뿌듯함과 반가움이 앞섰다.

    “여어~”

    “아! 아저씨!”

    그녀는 나를 아저씨라고 불렀다.

    “천사 아가씨도 오랜만이야.”

    꿈을 마약에 비유했던 악마 ‘아싸’의 여동생.

    마지막 악마.

    그리고 그녀는 내 손으로 빚어낸 ‘최초의 천사’이기도 했다!

    P가 칭찬한 초창기에는 머리카락을 붙여서 얼굴을 여성스럽게 바꾸고, 긴 소매와 치마로 흉흉한 손발을 가리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현재는 누가 보더라도 어엿한 미녀!

    악마 아싸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는 여동생’이란 표현이 허풍이 아니었던 덕분이다.

    “뭐야? 아는 사이야?”

    환자가 매우 불편한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녀의 아빠 같은 사람입니다.”

    “저에게 오빠 같은 아저씨입니다.”

    말이 엇갈리긴 했지만, 우리의 소개로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다.

    “내 집에서 나가.”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입니다. 집에 가야 할 사람은 당신입니다.”

    “무슨 헛소리야? 여긴 내 집이야. 가긴 어딜 가?”

    “당신이 다시 테니스 라켓을 들길 바라는 아버지가-”

    “누구야...!”

    현실의 개인정보를 들은 환자들의 반응은 10년이 지나도 비슷비슷하다.

    여기서 갈림길.

    억지로 깨우면 현실에서 의사와 간호사가 고생하고, 꿈이라고 차근차근 설명하면 내가 피곤해진다.

    “제가 해도 됐는데...”

    “환자를 힘으로 제압하고 협박하는 방식은 좀...”

    “아저씨. 저는 무당이 아니에요. 환자를 설득할 정보도 없어요.”

    “어... 그건 그렇네.”

    “월급도 안 받고요!”

    “내가 잘못했네!”

    예전에는 월급 대신 성형을 해줬다. 이젠 완벽한 인간의 형태라서 성형할 필요가 사라졌지만.

    이건 문제네. 내 일거리를 대폭 줄여준 그녀를 공짜로 부려 먹고 있으니...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이봐! 둘이서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건지 모르겠지만, 할 거면 밖에서 해!”

    “아... 마음 같아서는 확 밀어버리고 싶은데.”

    그러면 꿈이 끝난다. 어디든지 단숨에 날아가는 ‘딸 같은 천사’를 만날 기회는 흔치 않고.

    약속 시간과 장소를 정할 수 있으면 좋겠는데, 꿈의 세계는 고정되지 않고 늘 바뀌는 탓에 그럴 수도 없다.

    “당신은 이럴 시간이 없어요. 떠나기 전에 작별 인사를 하세요.”

    “내가 어딜 떠나?”

    “현실로. 여긴 꿈입니다. 당신이 좋아하는 연속극 <이 천마 실화냐?>의 꿈.”

    “헛소리.”

    “제 얼굴을 봐도 모르겠습니까? 예전에는 먹혔는데, 요즘은 올림픽에 안 나가서 모르는 사람이 종종...”

    “올림픽...? 헉! 기억 났다! 올림픽 파괴자 강문수...!”

    파괴자라니!

    내가 출전하면 모든 나라의 국가대표가 금메달과 피메달을 포기하고, 스포츠토토 주가가 폭락하는 사태가 벌어진 적도 있지만, 예쁜 딸이 태어난 뒤에 공식적으로 은퇴했다.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젠 이해하셨죠? 꿈이랑 작별할 준비를-”

    “네가 꿈이 아니란 증거는?”

    “......”

    피곤한 유형을 만났네.

    “아까부터 이런 식이에요. 제 말을 믿지 않아요.”

    아가씨가 거들었다.

    “그러면 힘으로 해야지. 엄마에게 혼나고 우울해하는 아들을 달래주려면 얼른 퇴근해야 해.”

    “오랜만에 만난 저는요?”

    “그것도 포함해서. 월급 대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라도 해줄게.”

    이 세상에는 검귀가 없다. 그녀가 24시간, 365일 내내 꿈들을 돌아다니면서 환자들을 보살핀 덕분!

    물론, 갑작스러운 사고로 환자가 죽어서 검귀가 되기도 하지만, 악마로 진화하기 전에 그녀가 처리한다.

    나는 가끔 들어와서 거들뿐!

    순진한 아가씨를 조금씩 성형해주면서 부려 먹은 나쁜 인간이다.

    ...말하고 보니 진짜 쓰레기네.

    “강문수! 네가 뭔지는 모르지만, 나의 세계에서 당장 사라- 꾸엑?!”

    털썩!

    역발상 하는 환자는 평범한 설득이 안 통한다는 사실을 마오짜이에게 배웠다.

    유일한 치료법은 물리적인 대화!

    꿈을 인정할 때까지 대화하면 언젠가는 현실로 돌아가게 되어 있다.

    “제 방식은 아저씨에게 배운 거예요.”

    “크흠.”

    “오랜만이에요.”

    “나도.”

    환자에게는 꿈이라고 설명했지만, 나는 꿈속을 여행하는 소녀랑 진지하게 대화 중이다.

    꿈의 기준은 뭘까?

    이 일을 10년 넘게 하면서도 정확한 답을 못 찾고 있다.

    “아저씨.”

    “왜?”

    “저도 현실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가고 싶어?”

    “음... 아주 가끔? 마음에 들었던 세계가 사라지는 광경을 멍하니 보고 있으면 허무하다는 생각이 가끔 들어요.”

    그 기분을 나도 안다.

    나도 꿈속에서 친해진 사람을, 사랑했던 사람을 많이 떠나보냈으니까. 그건 매우 슬픈 일이다.

    “현실도 똑같아.”

    “절대로 안 사라지잖아요?”

    “가상현실 세계가 전원을 내리면 사라지는 것처럼, 내가 사는 현실도 지구에 소행성 충돌하면 사라져.”

    “충돌할 예정인가요?”

    “그건 모르지. 이 세계의 사람들도 모르잖아? 이 남자가 눈을 뜨면 자신들의 세계가 끝난다는 사실을. 지금도 모른 채 열심히 살고 있잖아.”

    “그렇죠.”

    “현재에 충실하면 돼.”

    “그게 아저씨의 결론이에요?”

    “그래.”

    다른 사람의 꿈을 파괴해온 남자가 내린 결론이다.

    <완결>

    ^공^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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