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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30화 (231/232)
  • 230화

    전용기를 타고 지구 반대편의 신성로마제국까지 단숨에 날아갔다. 그런데 여긴 공항부터 축제 분위기.

    무슨 일이지?

    길거리에서 P의 찬송가를 부르는 합창대에 어울려서 함께 부르는 시민A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실례합니다.”

    “찬양하세~♪ 찬양하세~♬ 다 함께 P를 찬양하세~♪”

    “......”

    “방황하는 인류를 구원한 P를 찬양하세~♬ 적성검사는 P의 은혜~♪ 적성검사는 P의 선물~♪”

    “실례합니다!”

    “위대한 P를 찬양하- 음?”

    “말씀 좀 묻겠습니다.”

    “아, 네.”

    방해받는 시민A가 매우 불편하다는 얼굴을 나를 돌아봤다.

    이때는 나도 ‘아차!’ 싶었다. 합창대 주위에는 찬송가를 듣기만 하는 여유로운 사람도 많았으니까.

    흥겹게 따라 부르는 시민A의 즐거움을 방해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바보 같은...’

    꿈의 세계에선 최면술로 남의 눈치 안 보고 마음껏 활보했다. 내가 말을 걸면 성실하게 답변하는 게 당연...

    하지만 여긴 같은 조건이라도 100배 어려운 현실! 그 탓에 나는 최면술을 쓸 수 없다.

    “어서 질문하세요.”

    “아! 죄송합니다. 무슨 축제입니까?”

    “축제요? 축제는 진즉 끝났고, 이건 뒤풀이입니다.”

    “어...”

    이게 뒤풀이라고? 그러면 축제 당일에는 얼마나 요란했다는 거야?

    “신성한 분을 건강하게 낳은 황녀님께 감사하는 축제입니다. 이날을 기념일로 정해서 매년 열릴 예정입니다.”

    “신성한 분...?”

    “늘 화합이 맞지 않던 황제 폐하와 교황 성하(聖下)가 처음으로 입을 모아 찬양했습니다. 그야말로 기적이죠!”

    “그렇군요.”

    하지만 황녀의 아이가 어째서 신성한지는 모르는 것 같았다.

    “혹시...”

    “네.”

    “올림픽 피메달의 그...?”

    “맞습니다.”

    “헉! 이런 영광이...! 죄송합니다! 제가 아무 생각 없이 막말을...!”

    “괜찮습니다.”

    나머지는 공항으로 마중 나온 사람들에게 물어보기로 했다.

    * * *

    “라누벨크 드 프로메시아 아몰랑 콘스탄틴 세인트 로마니스트.”

    “예?”

    “신성한 분의 함자입니다. 황실에서는 줄여서 세인트 로마, 저희는 라누벨 2세라고 부릅니다.”

    “아...”

    라누벨.

    라누벨라.

    둘은 엄연히 다르다.

    여신으로 추앙받은 최초의 마녀 ‘라누벨’의 딸 이름이 ‘라누벨라’니까. 한 단계 아래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라누벨 2세’라고?

    여신 라누벨의 정통후계자로 인정한다는 의미였다.

    “늦어서 죄송합니다. 먼저 공항에 도착해서 대기했어야 하는데...”

    “괜찮습니다.”

    지금 간다는 말도 안 하고 전용기를 이용했다. 전용기를 탄 시점에 자연스럽게 알려졌지만, 그래도 너무 서두른 감이 있었다.

    “축제의 여운으로 도로가 아직도 꽉 막혔습니다.”

    “그 정도입니까?”

    “신의 은혜가 중단되면서 모두가 불안에 떨었으니까요. 타국에서 느끼는 상실감이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아...”

    신성로마제국에서 P는 모태신앙이다.

    구시대의 여러 신들과 다르게 P는 교리 한 구절조차 없지만,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적성검사기의 존재 자체가 신앙심의 근간!

    적성검사기를 이용해서 가장 효율적인 인생을 설계한 시점에 ‘신의 기적’을 몸소 체험했다는 개념이다.

    “하지만 모두가 걱정했던 적성검사기가 다시 작동하고, P의 선택을 받은 황녀님이 신성한 분을 무사히 출산하시면서 모두가 기뻐했습니다. 신께서 우리를 버리지 않았음을 알고.”

    “그랬군요.”

    나는 종교인이 아니라서 완전히 공감할 수 없지만, 제국민들이 어떤 기분이었는 대충 이해했다.

    P의 적성검사기가 사라진 삶.

    환자들의 꿈을 통해서 구시대를 여러 번 다녀왔던 나는 그 불편함과 부조리를 누구보다 잘 아니까. 지옥이란 표현이 절대 과하지 않다.

    슈우웅-

    “제 역할은 여기까지입니다.”

    꽉 막힌 도로를 포기하고 공항의 헬리콥터를 빌려서 황궁까지 이동했다.

    “수고하셨습니다.”

    딸각-

    헬리콥터의 문을 열자마자 검은색 정장의 남성과 흰색 수녀복의 여성이 나를 환대해줬다.

    “어서 오십시오!”

    “환영합니다!”

    먼 길을 날아와서 내 결혼식을 빛내주셨던 분들이었기에 거짓 없는 미소로 회답했다.

    “감사합니다.”

    “세인트 로마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라누벨 2세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찌릿-

    황권과 종교.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상반된 이름을 부른 두 사람이 서로를 힐끔 노려보았다.

    ‘아아, 딱 봐도 피곤하겠네.’

    아래 사람들이!

    일찍 옷을 벗지 않으려면, 신성한 분의 이름을 부를 때마다 양쪽의 눈치를 봐야 할 테니까.

    “어흠! 이쪽입니다.”

    “모시겠습니다.”

    나를 헬기장 한복판에 계속 세워둘 수 없었던 둘은 일시적으로 휴전. 나를 황궁 안쪽으로 안내했다.

    똑똑.

    그리고 그들도 화려한 문 앞에 멈춰서 노크 후, 조용히 물러났다.

    끼이익-

    “들어오세요.”

    시녀가 문을 살짝 열면서 말했다.

    “흠.”

    방 안에 누가 있는지 모르기에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점검했다. 그리고 한걸음에 안으로-

    “빨리 왔네요.”

    고급스러운 천으로 감싼 아기를 품에 안은 라누벨라 13세가 있었다.

    “어... 축하합니다. 조금 늦은 감이 있지만, 아이의 아빠는...?”

    “비밀입니다.”

    “아, 네.”

    이 도도한 마녀를 침대 위에 넘어트린 남자가 대체 누굴까?

    솔직히 조금- 아니, 아주 많이 궁금했지만, 본인이 말하기 싫다고 하니 당장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수고했어요. 잠시 후에 뵙게 되겠지만, 혼자서 걸으실 수 있을 만큼 건강이 호전되셨어요.”

    “진짜 다행이네요!”

    이건 진심이다. 침대에 누워서 말도 제대로 못 하던 P의 모습이 얼마나 안타까웠던가?

    그런데 홀로 걸을 수 있다는 말에 안도감이 들었다. P의 적성검사기가 재가동했을 때의 마음이랑 비슷하지 않을까!

    “한번 보실래요?”

    “네.”

    “조심해주세요. 이 지구에서 가장 신성한 분입니다. 귀엽다고 볼을 찌르면 안 됩니다.”

    “네네.”

    자기 아기가 우주 최고라고 말하는 건 모든 엄마의 공통점인 것 같다. 송선영도 어찌나 극성이던지...

    나의 한심한 부분을 보완한 최고의 남자로 키우겠단다.

    ...너무한 거 아니야?

    얼른 ‘둘째’도 만들어서 최고의 여자로 키우고 싶다.

    깜빡깜빡.

    아기의 커다란 두 눈이 내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아빠가 황인일지도?’

    검은색 머리카락과 에메랄드 눈동자는 황녀의 영향이 확실했지만, 피부는 순수한 백인처럼 새하얗진 않았다.

    스윽-

    황녀의 말이 이해됐다. 볼을 찌르고 싶을 만큼 귀여운 외모!

    여기서 볼을 찌르면 또 나를 한심하게 쳐다볼 터. 나도 이젠 한 아이의 아빠로서 그런 추태를 보일 순 없다.

    그래서 가까이서 보기만 하는 걸로...

    “귀엽죠? 점잖고.”

    “네. 아기가 참 귀엽고 점잖-”

    “어흥!”

    “으아아아?!”

    울지 않고 점잖았던 아기가 갑자기 호랑이 흉내를 내서 화들짝 놀랐다.

    그래서 얼마나 놀랐느냐?

    철퍼덕!

    총알이 뺨을 스쳐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던 내가 뒤로 나자빠지며 엉덩방아를 찧었을 만큼!

    “방심했구나.”

    “아기가 말을 한다?!”

    “왜? 말하는 아기, 처음 보냐?”

    “당연히 처음 보지...!”

    나는 귀신에 홀린 기분으로 아기와 황녀를 번갈아보았다.

    * * *

    내 아들보다 일찍 태어나긴 했어도 큰 차이는 없다. 그런데 황녀의 설명은 기가 막혔다.

    “기저귀는 이틀 만에 졸업했어요.”

    “허허!”

    “혀가 너무 짧아서 말 대신 눈빛과 표정으로 생리현상을 표현하셨는데, 제 불찰로 그걸 눈치채기까지 이틀이 걸린 탓입니다.”

    “미친...”

    이건 사기잖아?

    “선배에게 미쳤다니? 네가 잠깐 안 본 사이에 미쳤구나, 후배야.”

    “끙...”

    선배. 그리고 후배!

    대화에서도 알 수 있지만, 황녀가 낳은 아이는 나랑 갑작스럽게 작별했던 ‘혈신 소운현’이었다!

    세상에 이런 일이?

    너무 판타지 같아서 말도 안 나왔다.

    “다시 만나 소감이 어떠냐?”

    “어... 기쁘네요. 너무 의외의 모습이라서 놀라긴 했지만.”

    “이 정도도 예상 못 하다니. 아직 멀었구나, 후배야. 나는 선신(善神)이라서 약속을 꼭 지킨다.”

    “믿었죠.”

    금방 돌아온다는 약속. 하지만 이런 식으로 지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쯧쯧. 너는 좀 더 아부하는 법을 배워라. 네 어미를 살려준 은인이랑 재회한 태도가 그게 뭐냐?”

    아기에게 훈계를 듣다니...

    기가 막힌 건? 정론이라서 반박할 수가 없었다.

    털썩!

    “아아! 위대한 선배님! 다시 뵙게 되어 이 후배는 정말 기쁩니다!”

    무릎 꿇고 안 나오는 눈물을 쥐어짜며 감격하는 시늉을 했다.

    “됐다. 눈치 없는 녀석.”

    “아, 네. 하하...”

    아기가 됐어도 독설은 여전하시네!

    이전 환자 ‘우라노스’는 꿈속에서 아기로 변하면서 현실의 정신도 아기가 됐는데, 이쪽은 완전히 정반대였다.

    “후배야.”

    “네.”

    “이게 뭔 줄 아냐?”

    선배의 젖살 가득한 손목에 팔찌가 채워져 있었다.

    “전혀 모르겠는데요.”

    “신의 힘이다.”

    “예?”

    내 지능을 한참 벗어난 요약 설명이라서 이해하지 못했다.

    “P가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거추장스러운 기계의 개량판이지.”

    “...어? 어어?!”

    뭔가 엄청난 비밀을 들은 기분인데?!

    “지금보다 적성검사기의 사용량이 늘어나지 않는다면, 라누벨 환자가 기존의 절반 이하로 줄어들 거다. 이번에 개량하면서 연료의 효율이 좋아진 셈이지.”

    개량?

    어질어질하다.

    “존경하는 선배님. 이 후배가 우매하여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정말로 못 했냐?”

    “...진짜입니까?”

    “내가 너에게 거짓말한 적이 있냐?”

    “없죠.”

    후배가 괴로워하는 모습이 보고 싶어서 고의로 침묵한 적은 많지만!

    “그러면 믿어라.”

    “......”

    “내가 새로운 P다.”

    “아...”

    혈신은 1년 정도 안 본 사이에 ‘지구의 신’이 되어 있었다!

    * * *

    선배랑 충격적인 재회 후, 황궁의 지하 깊숙한 곳에 있었던 P를 정원에서 만날 수 있었다.

    “안녕하세요.”

    “......”

    그녀는 넘어지지 않도록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재활을 겸한 산책 중이었다.

    “괜찮으세요?”

    “...아! 미안. 아직 말하는 게 서툴러.”

    “이해합니다.”

    제국에 발을 내디딘 뒤부터 이해해야 할 상황이 매우 많은 기분이 들었다.

    “고마워.”

    “아닙니다. 몸은 좀 어떠세요?”

    “좋아.”

    라누벨라의 공통점인 젊음과 요염한 미색은 아직 보이지 않았지만, 전에 만났을 때보다는 확실히 보기 좋아졌다.

    “그런데...”

    “정말이야.”

    “정말이었군요.”

    P의 입에서 P가 바뀌었다는 말이 나왔다. 이젠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애초에...

    적성검사기를 유지하기 위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장소에 머물던 P가 위험한 밖으로 나왔다. 그것만으로도 이미 답은 나온 셈.

    “편하게 말해. 이들은 아무것도 듣지 못해.”

    “저희는 아무것도 듣지 못합니다.”

    “네. 아무것도 듣지 못해요.”

    P의 최면술에 걸린 시녀들이 싱긋 웃으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언제 바꾸셨어요?”

    “아싸가 동생에게 살해된 직후.”

    “어?”

    “전부 봤어. 머리 없는 여신의 다리를 보고 군침 흘리는 모습까지.”

    “헉!”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나만의 비밀스러운 행동까지?!

    소름이 돋았다.

    “질문.”

    “네.”

    “왜 그랬어?”

    “......”

    P의 천진난만한 눈동자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며 질문했다.

    어째서 그랬냐고.

    “왜 바꿨어?”

    아싸의 여동생을 말하는 것이리라.

    “다시 시작하는 김에 첫 단추를 잘 끼우고 싶었습니다.”

    “그래.”

    “안 혼내시나요?”

    “왜?”

    “그야...”

    스윽-

    그런 내 어깨에 P가 가녀린 손을 올리며 말했다.

    “잘했어.”

    “아...”

    “멋진 천사였어.”

    “감사합니다...”

    선배를 다시 만났을 때도 느끼지 못했던 감동의 기쁨을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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