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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28화 (229/232)

228화

[13장-3절] 누구나 명분은 있다

끼기긱-!

끼긱-!

꿈의 세계가 좁아져도 악마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지만, 날개가 없는 검귀들은 아니었다.

“안녕!”

깜빡!

우락부락한 근육으로 싸우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전투 방식은 검귀에게 일절 통하지 않았다.

칼, 창, 화살...

이런 것들로는 무엇이든 자르는 팔과 강철판처럼 단단한 피부를 이길 수 없었으니까. 재능 이전에 태생의 차이!

그러니 얼마나 신났겠는가?

검귀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니면서 인간이 보이는 족족 죽였고, 필연적으로 내 앞에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댕강! 푹!

그리고 죽었다.

‘선배님! 보고 계십니까?’

한 마리에도 쩔쩔매서 도망 다니던 강문수가 이젠 사냥꾼이 되어 일방적으로 도륙하고 있었다!

“흠. 세계를 더 줄여야겠네.”

“세상을 멸망시킬 셈인가요?”

갓난아기로 변하기 싫었던 가이아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말했잖아. 마신만 처리하면 원상 복구해도 된다고.”

“...여기서 더 줄이면 타르타로스에 가둬둔 아이들이 나올 거예요.”

“좋아. 이 기회에 싹 정리하자고.”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겁니다. 제 아이들은 정말 강해요.”

부모는 부모였다.

내 아이가 최고라는 가이아!

아무리 그래도 자기가 낳은 아들이랑 짝짓기하는 건 아니라고 보지만, 그녀의 자존심을 자극하기로 했다.

“오! 한번 보고 싶은걸.”

“후회한다니까요?”

말로는 후회한다고 하지만, 그녀는 내가 손자 아틀라스를 일격에 양단해서 영원한 죽음을 선사해주는 걸 보았다.

아틀라스보다 약한 자식, 손자들의 운명은 보나마나 아닐까?

“보여줘.”

“...네.”

하지만 최면술은 위대했다. 그녀가 원하든 아니든 신들의 전쟁에서 패배하여 유배된 거인들이 다시 세상 밖으로 튀어나왔다.

쿠구구구-

멀리 마중 갈 필요도 없었다. 거인은 산처럼 매우 컸으니까.

그런 것들이 죽순처럼 땅속에서 솟구쳤다.

“우와아아!”

“드디어 해방이다!”

“우라노스~!”

“제우스~!”

“크로노스~!”

자신들을 가둔 형제, 삼촌, 조카의 이름을 힘껏 부르짖으며 분노를 표출하는 거인들.

그들은 머릿속에 내비게이션이라도 달린 것처럼 우리가 있는 곳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격해왔다.

“우아아앗?!”

“히이익?!”

쿵! 콰직! 뿌직...!

놈들은 가는 길에 걸리적거리는 인간, 마을, 도시 등을 사정없이 파괴했다.

마을이 축구공처럼 걷어차면 사라지는 수준!

그만큼 덩치가 컸다.

“제 아이들이에요!”

2차 성장이 시작되지도 않은 여자애(가이아)가 자식 자랑하는 모습이 굉장히 이질적이었다.

“저게 키클롭스로군?”

외눈 거인, 키클롭스(Cyclops).

눈깔이 정말로 하나였다. 나의 눈깔 촉수랑 좋은 친구가 되지 않을까!

좋은 곳으로 보내주자.

“혈신 만세도 좋지만...”

저렇게 덩치가 크면 직접 나서고 싶은 게 남자의 본능이다.

우우웅-

용으로 변한 어머니를 죽이는 패륜을 저지를 뻔한 최강의 기술.

만화와 애니메이션 등에선 이런 것도 ‘검술’로 정의하지만, 실제로 써보면 포문(砲門) 없는 레일건이다.

칼만 휘두르면 검술인가?

횡으로 긋는 행동은 나 같은 검술의 초짜도 할 수 있다.

“잘 가라.”

부웅~!

발렌타인의 칼날에 밀집된 힘이 3차원 공간을 치즈 단면처럼 잘랐다.

“아...?”

“어어...?”

거인들이 크긴 했지만,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의 최강자로 군림했던 어머니보다 크진 않았다.

그러니 상대가 되겠는가?

놈들은 주먹 한 번 휘둘러보지 못하고 거대한 살덩이로 변했다.

쿵, 쿠궁-

세상 밖으로 나오자마자 이런 일을 겪게 해서 미안하지만, 얼른 집에 가서 아들을 돌봐야 하는 아빠, 유부남이라서 어쩔 수 없다.

“아앗...”

“유감입니다.”

나도 부모이기에 자식 잃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한다.

깜빡?

...그래. 그 마음을 이해했다면 죽이지도 않았겠지.

이 눈깔 촉수가 나 대역으로 인간 사회를 구경하더니 더욱 날카로워졌다.

“이렇게 편할 수가! 너무 좋네요.”

“음?”

“아이들이 난동 부릴 때마다 자궁이 아파서 혼났어요. 우라노스는 이런 제 고충도 몰라주고 자꾸 넣으라고만 하고...”

“아아.”

“고마워요! 당신 덕분에 다시 태어난 기분이에요!”

다시 태어난 기분? 나는 미성년자의 불치병을 치료해준 산부인과 의사 선생님이 된 기분이다!

“잘됐네.”

자식을 보는 모든 부모의 마음이 같진 않은 것 같다.

...아닌가?

기나긴 세월 동안 자궁경부암처럼 자식들이 고통을 안겨준다면 마음이 변하는 게 당연할지도.

여신의 자궁을 감옥으로 묘사한 신화가 잘못됐다.

“문제가 있어요.”

“뭡니까?”

“여기서 더 어려지면 스스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져요.”

“아...”

엉망이 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에서 갓난아기로 변한 가이아와 우라노스를 돌봐줄 인간과 신이 있을까?

목을 조르고 칼로 눈알을 파내지나 않으면 다행이다.

“그거라면 걱정하지 마.”

최면술로 분노를 억제하면 된다.

문제는?

“......”

“......”

이 일대는 내가 만든 사늘한 시체만 즐비했다.

이때,

“가슴이 큰 미녀가 아니면 절대 내 몸을 맡기지 않을 거다.”

잠자코 있던 라누벨 환자가 자신의 취향을 노골적으로 어필하며 반항했다.

이 새끼가 덜 맞았나?

하지만 현실로 돌아가면 곧바로 재판장에 들어선 인간이다. 최후의 만찬을 즐기게 해줘도 좋지 않을까, 라는 생각이 살포시 들었다. 이런 시답잖은 문제로 시간을 낭비하기도 싫고.

“흠...”

가슴이 큰 미녀? 굳이 찾으러 멀리까지 갈 필요 없다. 무너진 신전 아래에 깔려 있으니까.

지금도 우리가 이곳을 떠나길 숨죽이고 기다리는 중이다.

‘하지만 죗값은 치러야지.’

호의적이지 않은 사람에게 요구할 때는 정확히 말해야 한다.

* * *

“응애응애!”

갓난아기로 변한 라누벨 환자가 불만을 호소하듯 쉴 새 없이 울었다.

왜?

“......”

머리가 없는 가슴 큰 미녀의 품에 안겨 있었기 때문이다.

“닥쳐. 네가 여신의 머리를 잘라서 없는 거잖아.”

“응애~!”

이 새끼는 신들이 절대 복수할 수 없도록 몸을 토막 내서 들짐승의 먹이로 던져줬다.

하지만 악마의 난입으로 그런 끔찍한 짓을 당하지 않은 여신이 있었으니!

나중에 신전에 파묻힌 머리를 찾아준다는 조건으로 가이아와 우라노스, 두 갓난아기를 맡겼다.

“새근새근.”

가이아 아기는 남편이 울어도 전혀 신경 안 쓰고 꿀잠 자는 중!

자식들이 몰살당해도 눈 하나 깜짝 안 했던 여신다운 무신경함이었다.

“아아, 드디어 보이는군.”

이 세계는 더 줄이기 힘들 만큼 줄어들어서 우리가 있는 신전의 폐허만 덩그러니 남았다.

“무슨 짓을...”

“어떻게...”

이리저리 날아다니던 악마들도 내 시야에 닿을 수밖에 없었다.

인기 없는 고전 판타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지식을 아는 사람은 현대에 거의 없다. 제우스, 포세이돈, 비너스 같은 유명한 신의 이름만 가뭄의 단비처럼 듣는 수준?

카오스가 등장하는 창세기로 넘어가면 백지나 다름없다.

“안녕하십니까? 저는 P의 세계를 어지럽히는 해충들을 처리하는 무당 강문수입니다.”

여기서부터는 관계자 외에는 청취 불가입니다.

“해충? 그래, 해충이지. 하지만 우리를 해충으로 만든 건 너희다.”

영역 밖의 안전한 거리에 모습을 드러낸 아싸가 말했다.

“지옥 같은 현실에서 벗어나 행복한 죽음을 맞이하게 해줬는데?”

내가 라누벨라 13세랑 똑같은 말을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그녀가 말할 때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는데, 막상 내가 비난을 들으니 똑같은 말을 하고 있네?

대치하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이불 속에 숨어서 이 부끄러움이 사라질 때까지 기다렸을 것이다.

“행복한 죽음? 웃기지 마라.”

“죽이기 전에 물어보자. 너는 무슨 꿈이었냐?”

“과거로 돌아갔다.”

“흔한 꿈이군.”

판타지의 비중이 높을 것 같지만, 대부분은 마법이나 초능력보다 좀 더 현실성 있는 전개를 원한다.

과거로 돌아가는 꿈.

이게 말장난처럼 들릴 수 있지만, 과거로 돌아간다는 말을 바꾸면 ‘나만 미래를 보았다.’가 된다.

현실이 예지몽으로 탈바꿈하고, 과거의 꿈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이 일에 오랫동안 종사했던 어머니가 알려준 정보다.

“그래. 꿈이지. 하지만 나는 꿈인 줄도 모르고 열심히 살았다.”

“아아, 꿈속에서 너무 열심히 살아서 불만이란 거냐? 사람도 죽이면서 제멋대로 살았어야 했다는?”

“내가 정신병자인 줄 아냐?”

“너는 정신병자가 맞아. 정신이 멀쩡한 사람은 사람을 고문하지 않아.”

“어차피 꿈이다. 너는 가상현실게임에서 인권투쟁을 하냐?”

“정신병자 주제에 논리적이네.”

칼질만 잘하는 인간 백정은 아니었다.

“돌아가신 부모님이 남겨주신 마지막 가족, 하나뿐인 내 여동생은 누구나 사랑할 수밖에 없을 만큼 예뻤다.”

“......”

가족이 이유인가?

내가 가장 꺼리는 부류였다.

“호기심에 친구들을 따라서 클럽에 간 동생은 술에 마약이 들어간 줄 모르고 마셨다. 그때부터 모든 게 엉망이 됐지. 동생도, 나도...”

“그 과거를 바꾸는 꿈이었군?”

“그랬다. 나는 기뻐하면서 정말 열심히 살았다.”

미래의 지식을 활용해서 가난한 집안을 일으키고, 여동생이 괜찮은 남자랑 결혼할 수 있도록 지원했다.

과거로 가는 소설, 드라마, 영화, 애니메이션의 흔한 전개.

하지만 비슷한 내용을 이름만 바꿔도 잘 팔리는 로맨스처럼 열광하는 전개이기도 했다. 그만큼 모두가 공감하는 내용이기에...

“행복하게 살다가 죽었네. 그런데 뭐가 불만이야?”

“행복?! 진짜 내 여동생은 여전히 마약에 찌들어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도 행복할 것 같냐...!”

아싸가 격분했다.

“어린애처럼 투덜대지 마. 이 세상에 후회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어.”

“네놈들이 잘못된 거다. 나에게 행복한 꿈을 보여주지 않았다면 이토록 괴롭지 않았을 텐데!”

“분노의 방향이 잘못됐어. 동생을 지켜주지 못한 자신을 탓해야지.”

아싸가 얼굴을 일그러트리면서 내 논리에 반박했다.

“마약은 사람을 행복하게 해준다. 하지만 약효가 떨어지면 사람을 더욱 불행하게 만들지.”

“그래서?”

“너희는 마약이다.”

“......”

“내가 해충이면 너희는 해충을 만드는 마약이다!”

팟-

신념으로 똘똘 뭉친 아싸가 겁도 없이 내 영역으로 돌진했다.

“시원시원하네!”

어차피 이 좁은 공간에선 오래 도망 다니기 힘들다.

그래도 번거로운 술래잡기로 시간을 허비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대화를 나눈 의미가 있었다.

여동생의 일은...

매우 유감스럽지만, 그게 마약이랑 관련도 없는 사람의 행복과 목숨을 빼앗을 명분이 될 순 없다.

“마약은 세상에서 사라져-”

댕강!

호기롭게 돌진해오던 아싸의 머리와 목이 분리되어 떨어졌다.

“죄송합니다.”

등 뒤에서 기습적으로 그의 목을 친 자가 고개를 숙였다.

“너는...?”

신전에 난입해서 내 계획을 일그러트렸던 악마였다.

“아싸의 여동생입니다.”

여자로 보이진 않았지만, 자기소개를 듣고 다시 보니 갸름한 턱선이 여성스럽긴 했다.

그나저나...

“여동생?”

“네. 진짜 여동생입니다.”

“......”

세상에 이런 일이?

하지만 이해는 됐다. 마약 중독으로 괴로운 건 보호자보다 당사자가 훨씬 클 테니까.

꿈의 세계에 사로잡혀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아무리 설명해도 믿질 않았어요. 아예 대화조차 하려고 하질 않았죠. 이런 추악한 외모의 존재가 내 여동생일 리 없다면서... 그는 여전히 꿈속의 다른 저에게 사로잡혀 있었어요.”

“앞으로 어떻게 하고 싶어?”

“선택권이 있는 건가요? 저도 죽이는 것 아닌가요?”

“아니. 약속했거든. 내 손에 몰살당한 녀석들이 다섯은 살려달라고.”

“다섯... 이젠 혼자입니다. 오빠가 제 친구들을 다 죽였어요.”

“나쁜 오빠네.”

여동생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면서 하는 짓은 정반대였다.

“저는 앞으로 어쩌면 좋을까요?”

“그건...”

나는 마지막 악마를 향해 천천히 걸어갔다.

질끈.

악마가 눈을 감는다.

“너는 무슨 꿈을 꾸었어?”

“...판타지 세계에서 용사 대신 성검을 쥐고 마왕을 쓰러트리는 평범한 성녀였어요.”

“그, 그렇구나!”

어디가 평범하다는 건지 모르겠다!

톡.

친오빠마저 외면한 악마의 얼굴을 손끝으로 부드럽게 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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