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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27화 (228/232)
  • 227화

    나의 음란마귀는 여성의 길고 늘씬한 다리를 좋아한다.

    특히, 남성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발꿈치부터 복숭아 같은 엉덩이의 넓은 골반까지 이어지는 아름다운 곡선을 매우 좋아하는데...

    그렇다고 내가 여성의 다리만 보는 건 아니지만, 새로운 여성을 만나면 얼굴보다 다리부터 확인하게 된다.

    무슨 얘기를 하고 싶으냐?

    ‘아... 진짜 별로네.’

    신전 지하에 감금된 대지의 여신 ‘가이아’는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내 기준이긴 하지만!

    “가이아입니다.”

    “딱 봐도 그런 것 같네.”

    여성의 가슴 크기는 모유(母乳)의 양이랑 연관이 없지만, 이 여신은 다를 거란 생각이 절로 들었다.

    “우라노스. 밖에서 소란이 들리던데...”

    어디까지나 신화이긴 하지만, 우라노스는 아내가 낳은 아이들을 다시 자궁에 넣는 엽기적인 만행을 저질렀다.

    그런 남편이자 아들을 거세형으로 봐준 걸 보면, 가이아는 가족을 무조건 사랑하는 존재가 아닐까?

    지금도, 남편이자 아들인 우라노스가 자신을 누추한 지하의 새장 같은 곳에 가뒀음에도 평온하기만 했다.

    “카오스에서 태어난 새로운 마신의 습격이 있었다.”

    귀신에게 당했다고 말하기가 부끄러웠던 라누벨 환자는 ‘아싸’를 ‘마신’으로 승격했다.

    신화가 어떤 식으로 만들어지는지 본 기분이랄까?

    내가 신(神)이니, 나를 이긴 놈도 무조건 신(神)!

    거짓말이 거짓말을 낳고 있었다.

    “마신?! 세상에 그런 일이...”

    “내 힘만으로는 벅차서 도움을 받기로 했다. 이쪽은...”

    그가 나를 돌아보며 말끝을 흐렸다. 고민하는 눈치. 신(神)을 돕는 내가 평범하면 이상하니까!

    내 아내를 공격한 쓰레기를 돕는 건 마음에 안 들지만, 빠른 퇴근을 위해 호응해주기로 했다.

    “혈신의 제자 아몰랑.”

    “...혈신의 제자 아몰랑이다.”

    거짓말 범벅인 무가치한 자기소개는 여기까지. 본격적인 사냥 이야기를 해보기로 했다.

    “날갯짓 한 번이면 어디든지 순식간에 이동할 수 있는 마신을 잡기 위해선 세계가 좁아져야 합니다.”

    “어디든지?”

    새장에서 나온 가이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어디를 가더라도 우라노스(하늘)와 내(땅)가 있습니다. 어디로 달아나든 우리를 벗어날 수 없어요.”

    “아아.”

    일반적인 해석이었다.

    “그 마신이 땅에 있다면 하데스(죽음)가 있는 저승으로 보내겠습니다.”

    가족에게만 관대한 여신이 곧바로 사형 선고를 내렸다.

    그러나,

    “...땅에 없는 것 같네요. 우라노스?”

    “하늘에도 없다.”

    라누벨 환자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그렇다면 바다에 있겠네요. 포세이돈에게 도움을 청하면...”

    “나를 도와줄 것 같지 않군.”

    증손자의 머리를 벽걸이 장식으로 쓴 쓰레기를 도울 리 없다.

    일단, 그들의 착각을 정정해줘야 회의의 진도가 나갈 것 같았다.

    “이 마신에게는 어떤 신의 권능도 통하지 않습니다. 반면에 놈의 팔은 어떤 권능이든 잘라낼 수 있습니다.”

    “......”

    “......”

    인간만도 못한 유치함과 치졸함으로 무장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이 신으로 존재할 수 있는 근본이 되는 힘.

    권능(權能)!

    아무리 용맹한 남자도, 아무리 아름다운 여자도, 신에게 도전해서 이길 수 없는 결정적인 이유다.

    예로, 아테네 여신은 포세이돈에게 사랑받는 메두사의 아름다움을 질투해서 추악한 괴물로 바뀌는 저주를...

    이 세계의 인간들은 신의 변덕으로 운명이 결정되는 장난감이다.

    그런데!

    “권능이 안 통한다고요...?”

    “그 무슨 터무니없는...!”

    그 잘난 권능이 안 통하는 존재가 있다는 말에 두 신은 경악했다.

    놀라는 것도 당연하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신의 권능은 절대적인 것.

    모든 신의 왕이었던 제우스도 이 규칙을 깰 수 없었다.

    그러나,

    “일절 안 통합니다.”

    상대가 <그리스 로마 신화>에 포함되어 있지 않은 존재라면? 강대한 권능도 통하지 않는다.

    단!

    “그렇기에 놈이 도망칠 수 있는 공간 자체를 축소해야 합니다. 세계가 줄어들면 그만큼 숨을 곳도 줄어들기에.”

    물리적인 힘은 예외다.

    의 세계에서 S급 초능력 ‘가속’과 육중한 체급을 자랑한 S급 괴물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가 나에게 위협적이었던 것도 그 때문.

    여기에 더해, 세계를 줄인다는... 신화라서 가능한 힘도 우리에게 통한다. 세계의 규칙과 설정을 무시해도, 그 세계에 머문다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니까.

    즉, 이것도 물리력이다.

    “땅이 줄어들면 수많은 생명이 살 곳을 잃는 대재앙이 펼쳐질 텐데요...”

    “가이아! 상대는 마신이다! 가만히 놔두면 어차피 수많은 생명이 죽어!”

    자기 목적을 위해서라면 동료도 자살로 위장해서 처리하는 인간이 생명 운운하는 게 우스웠다.

    자기 목숨이 걸렸기 때문이겠지.

    이해한다. 나도 가족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철저하게 파헤칠 거니까.

    “우라노스. 진정해요. 분명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예요.”

    “무슨 방법?! 권능이 안 통하는데...!”

    “한걸음에 세상 끝까지 갈 수 있는 전령과 여행자의 신, 헤르메스에게 조언을 구해봐요.”

    “나에게 대적하기 위해 신들을 모은 그 새끼가 좋은 말을 해줄 리 없잖아!”

    “잘 타이르면...”

    가이아는 땅을 축소하고 싶지 않은 눈치였다. 아들이자 남편인 우라노스가 발악해도 꿈쩍하지 않는 걸 보면.

    어쩔 수 없지.

    공상과학의 세계에서 ‘총리의 딸’ 나르시아 엘베레스트에게 남용했다가 큰 낭패를 본 뒤부터 신중하게 쓰기로 다짐한 최면술을 꺼냈다.

    부작용이 없도록 3번 생각한 후에...

    “가이아, 마신 아싸를 쓰러트릴 때까지만 세계를 축소하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신을 쓰러트릴 때까지만이라면 좋습니다.”

    곧바로 승낙했다.

    “어...?”

    완고했던 아내 가이아가 내 한마디에 고분고분해진 태도가 이상했던 걸까? 라누벨 환자가 입을 쫙 벌렸다.

    “뭘 봐?”

    “어, 어떻게...?”

    “영업 비밀. 잡생각은 접어두고 빨리 하늘이나 축소해.”

    “...알겠다.”

    쿠구구구-

    혼돈에서 시작된 <그리스 로마 신화>의 세계가 뒤흔들렸다.

    이것이 신의 권능.

    다수결이 아닌 두 신의 의지에 세계의 운명이 바뀌는 부조리가 권능이란 이름으로 행해졌다.

    “호오~”

    그 과정에서 흥미로운 현상이 발생했다.

    “이제 됐나요?”

    땅이 줄어든 만큼 가이아의 외모도 어려졌다. 좋게 말하면 젊어진 건데, 육감적인 몸매가 밋밋한 어린애로 바뀐 걸 좋다고 할 수 있을까?

    하늘을 관장하는 우라노스도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러면 밤에 아무것도 못 하는데...”

    <그리스 로마 신화>의 남신들을 묘사한 벽화와 조각 등에서 빠지지 않고 표현되는 우락부락한 근육 하나 없는 밋밋한 어린애로 변했다.

    “수많은 생명이 내디딜 땅을 잃고 떨어졌습니다.”

    땅을 관장하는 가이아가 약간 유감이란 어조로 말했다.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존재 자체가 땅이기에 안 봐도 알 수 있으리라.

    “제 몸도 줄어들고.”

    그녀는 쪼그라든 가슴을 내려다보면서 매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수많은 생명 운운한 건 변명이고, 이쪽에 본심이 있었다.

    ‘나이와 면적이 비례하는군?’

    이래도 아싸를 잡을 수 없다면 세계를 갓난아기(?) 수준까지 축소하리라!

    환자의 인지 범위를 줄이기 위해 아르바이트와 로맨스를 활용한 것보다 훨씬 간편했다.

    물론,

    “밖으로 나가보자고.”

    쉽고 간편한 만큼 부작용도 감수해야 한다.

    * * *

    “신들을 몰아내자!”

    “원수를 갚자!”

    “이 세상은 인간의 것이다!”

    “와아아아!”

    <그리스 로마 신화>는 크게 두 시대로 나뉜다.

    신들의 시대, 인간의 시대.

    나날이 심해지는 신들의 횡포를 참지 못한 인간들의 반란. 신의 아들 헤라클레스와 페르세우스 같은 영웅들의 등장은 그 위기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많이도 몰려왔네.”

    산 밑에 다양한 깃발을 내건 군대가 바글바글했다.

    “건방진 인간들! 감히 반란을!”

    본인도 알맹이는 건방진 인간인 주제에 신 행세를 하는 라누벨 환자.

    어이가 없긴 했지만, 예정된 부작용을 정리할 필요가 있었기에 하는 꼴을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두둥실~

    몸을 하늘로 띄운 그가 외쳤다.

    “하늘에 짓눌리며 신의 위대함을 다시 느껴봐라!”

    쿠구구구-

    나는 독립된 세계이기에 느낄 수 없었지만, 수직으로 꼿꼿이 선 잡초들이 일제히 허리를 숙였다.

    말 그대로 하늘로 짓누르는...

    그러나 <그리스 로마 신화>에도 엄연한 규칙이 있다.

    “하하! 그렇게는 안 되지...!”

    하늘이 쩌렁쩌렁 울릴 만큼 거대한 목소리가 멀리서 들려왔다.

    티탄.

    가이아와 우라노스 사이에서 태어난 강대한 종족. 제우스를 주축으로 한 올림포스 신들이 승리하기 전까지 세상을 지배했던 거인(巨人).

    인간의 군대 뒤에 놈이 있었다.

    “누구...?”

    “우라노스. 손자의 얼굴을 어떻게 까먹을 수 있죠? 이아페토스의 아들 아틀라스잖아요!”

    “아틀라스...?!”

    아내 가이아가 비난해도 모르는 게 당연하다. 라누벨 환자는 설정으로 ‘우라노스’가 됐을 뿐이니까.

    우라노스의 권세에만 관심 있을 뿐, 그의 콩가루 족보는 모른다.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아틀라스(Atlas).

    제우스에게 패배한 후, 하늘을 짊어지는 형벌을 받은 거인.

    애초에 하늘을 떠받칠 만큼 힘이 좋은 거인이었기에, 작아진 하늘은 상대적으로 가벼웠으리라.

    “천적이 하나 더 있었네.”

    “젠장...!”

    관장하는 하늘로 상대를 짓누르지 못하면 우라노스는 아무것도 아니다.

    가위바위보, 먹이사슬처럼 물고 물리는 관계랄까!

    여신다운 육감미가 사라진 밋밋한 소녀로 변한 가이아가 한숨을 내쉬었다.

    “항복해야겠네요.”

    “어떻게든 해봐!”

    “땅이 좁아지면서 타르타로스도 좁아졌어요. 이미 포화 상태에요. 더 줄이고 싶어도 줄일 공간이 없어요.”

    자궁 면적이 줄어들어서 우량아들을 더 넣을 수 없다는 의미!

    신화에서만 가능한 이야기였다.

    “와아아아!”

    “아틀라스 만세!”

    “오만한 신들을 몰아내자!”

    “진격! 진격하라~!”

    하늘이 아틀라스에 의해 무력화됐음을 눈치챈 인간들이 기세등등해졌다.

    쿵! 쿵! 쿵! 쿵!

    북을 치며 진격해오는 군대. 그리고 이런 인간들의 뒤편에서 지원하는 거인 아틀라스.

    “이런 날이 올 줄 알았지...”

    “우라노스 때문에...”

    “이젠 우리가 티탄 대신 타르타로스로 유폐되겠군.”

    신전 기둥에 묶여 있던 덕분에 상대적으로 무사할 수 있었던 하급 신들이 라누벨 환자를 비난했다.

    “닥쳐!”

    이 상황이 매우 못마땅했던 환자가 윽박질렀지만, 외모마저 꼬마가 된 그를 무서워하는 신은 없었다.

    아틀라스.

    제우스에게 하늘을 떠받드는 형벌을 받은 거인.

    하지만 그 제우스는 우라노스가 처리했다. 그 사실을 아틀라스가 눈치챈 시점에 반란은 예정된 게 아니었을까? 내가 하늘을 축소하라고 주문하면서 그 시기를 앞당겼을 뿐.

    즉, 내 잘못은 아니다.

    “내 잘못은 아니지만, 원활한 업무를 위해 도와줄게.”

    “허! 이게 올림픽인 줄 아냐?”

    “또 말이 짧아졌네.”

    “...이게 올림픽인 줄 아십니까?”

    “잘 보고 있어.”

    깜빡~

    내 소매에 숨어있던 눈깔 촉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드디어 자신의 차례가 왔음을 눈치챈 것이리라.

    “대체 뭘...”

    “신이라면 이 정도는 해야지.”

    스르릉-

    발렌타인이 칼로 변했다.

    “해결책이 늘 똑같은 것 같아서 찜찜하긴 하지만.”

    위대한 선배님의 후광을 마음껏 이용해주리라.

    “혈신 만세~!”

    죽음의 신, 하데스가 과로로 쓰러지질 않길 빌어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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