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25화 (226/232)

225화

‘진짜 제멋대로네!’

공상과학의 세계에서 내가 마지막에 처리한 악마의 말대로였다.

무분별한 학살.

그건 모든 악마의 공통점이었기에 ‘아싸’만 유별나다고 생각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생각이 단 며칠 만에 깨져버릴 줄이야!

잡을 준비를 서둘렀다.

“귀신이요...?”

“네.”

나를 올림픽 국가대표로 착각하는 형사를 보면서 반성했다. 피메달 시상식에서 광고까지 하면서 제법 신경 썼다고 생각했었는데, 나만의 착각이었던 걸까?

본업에 소홀했던 모양이다.

“상황이 최악으로 치달으면 귀신에 씌면서 쓰러질 겁니다.”

“흠...”

내 인지도가 있어서 차마 대놓고 무시하진 못하지만, 전혀 신뢰하지 않는 시큰둥한 표정의 형사.

이해한다. 내가 같은 입장이었다면 똑같은 생각을 했을 테니까. 세상에 귀신이 어디 있냐고 말이다.

“사건은 얼마나 진행됐습니까?”

최악의 상황.

현실을 탈출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당첨될 테니까. 사람이 계속 죽어나는 긴급사태이기에 머뭇거릴 틈이 없다.

“청장님이 최우선으로 처리하라는 엄명을 내리셔서 속도를 내고 있습니다. 심증은 끝났고, 물증만 찾으면 되는데, 용의자의 전직 비서가 안전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실토하고 있습니다.”

“호오~”

“아직 확인된 건 아니지만,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을 사고나 자살로 위장해서 여럿 죽인 것 같습니다.”

“.......”

진짜 최악인데?

“변명처럼 들리시겠지만, 저희가 이전 수사에서 엉뚱한 인간을 범인으로 지목했던 이유입니다. 핵심 정보를 쥔 관계자가 등산 중에 발을 헛디뎌서 추락사했습니다.”

“우연히요?”

“네. 수색영장이 나오기 하루 전에 벌어진 일입니다.”

“......”

내가 이 이야기를 신경 써서 듣는 이유는 순전히 ‘일’ 때문이다. 환자가 어떤 인간인지 알아야 수월하니까.

“도마뱀이 꼬리 자르듯 수사가 끊기면서 그때까지 수집한 자료를 토대로 용의자를 좁혔습니다.”

“그게 엉뚱한 인간이었군요.”

“아! 연관이 아예 없던 건 아닙니다. 그는 실행범이 맞습니다. 붙잡혀서 실토하기 전에 깡패 용역을 써서 입막음 당했을 뿐.”

“...놀랍네요.”

나만큼이나 사람을 죽이는 것에 거부감이 없는 인간이었다.

“하여간 강문수 씨의 말씀을 충분히 알아들었습니다. 면회는 어렵지만, 용의자가 귀신에 씌어 쓰러지면 바로 알려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믿지 않는 형사를 상대로 이 이상 요구하는 건 무리일 것 같다.

탕!

“용의자가 쓰러졌습니다!”

그때, 사무실 문을 부수다시피 밀치며 들어온 경관이 외쳤다.

“그게 무슨 소리야?”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쓰러졌어요!”

“갑자기? 그게 말이 돼?!”

“진짜입니다!”

경관이 답답한 표정을 지었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제 차례가 예상보다 훨씬 빨리 온 것 같네요.”

“강문수 씨. 아직 확실한 건...”

“시간이 없습니다. 귀신을 놓치면 용의자가 죽습니다. 죽으면 책임지실 수 있으십니까?”

“...가시죠.”

여기서부터는 내 담당이다.

* * *

강제로 생성된 마지막 세계.

P의 적성검사기 서비스가 중단되면서 연료도 더는 필요 없게 됐지만, 연료의 찌꺼기나 다름없는 ‘검귀’가 사라지기 전까지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

노골적으로 말하면, 찌꺼기를 묻을 장소가 필요하다고 할까!

그것이 이 세계다.

“여긴...?”

사람들의 복장은 낭만의 시대였던 중세보다 훨씬 이전 같았다.

그건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탁.

한 걸음 내디딘 발의 진동이 꿈의 세계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산 위에 저건... 신전(神殿)인가?’

환자의 위치를 확인한 나는 고민 없이 일직선으로 달렸다.

팟!

악마처럼 한 번에 갈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이동 거리에 한계가 있다. 그래서 신전 주변의 풍경을 자연스럽게 보게 됐는데...

보석으로 치장한 아리따운 소녀들이 줄지어 산을 오르고 있었다.

‘뭐지?’

급하긴 하지만, 너무 궁금했기에 물어보기로 했다.

스윽-

현지민 복장을 빠르게 재현한 후, 산을 오르는 사내 앞에 멈췄다.

“실례합니다. 말씀 좀 묻겠습니다.”

“헉! 깜짝 놀랐네! 어디서 갑자기 튀어나온 거야.”

“죄송합니다. 저 위에서 무슨 행사라도 합니까?”

“거참! 아직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줄 몰랐군. 신께서 축제에서 일할 처녀들이 필요하다고 하셨네. 거절한 나라는 홍수로 물에 잠기게 한다고...”

“신이 미쳤네요.”

“쉿! 이 사람이 미쳤나! 신께서 들으면 어쩌려고 그러나!”

“......”

미친놈에게 미쳤다고 했다가 미쳤냐는 소리를 듣고 말았다.

“말조심하게.”

“...무슨 축제입니까?”

“신을 위한 축제. 신의 탄생을 축하하는 자리지.”

“새로운 신인 모양이죠?”

“단 하루 만에 혼자서 기존의 신들을 밀어내고 성좌(聖座)를 차지할 만큼 강한 신이지.”

“굉장하네요.”

그런 설정인 모양이군?

마법소년 최강민 때처럼 주인공에게 편향적인 세계였다.

“이해했으면 말조심하게.”

“감사합니다.”

팟.

짧은 대화를 마치고 다시 산을 올랐다.

‘신(神)이라...’

현실에서 그가 어떤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해쳤는지 알 것 같았다.

“최고신 제우스마저...”

“내가 예전에 아폴로 님을...”

“아테네 여신님이...”

산을 오르는 원주민들의 대화에서 익숙한 신들의 이름이 들려왔다.

그리스 로마 신화(神話)!

이번 라누벨 환자의 취향은 철기시대에 만들어진 고전 판타지 작품이었다.

“멋지군.”

나도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왕 꿈속에서 살 거, 귀족의 딸이나 재벌 2세 말고 ‘신’이 되는 편이 훨씬 좋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리고 그걸 실행에 옮긴 인간을 12번째 만에 만나게 될 줄이야!

오래 걸렸다.

“......”

“......”

신전의 기둥에 벌거벗은 사내들이 묶여 있었다.

‘신인가?’

일반인에게는 없는 후광이 보였다. 매우 희미하긴 했지만.

“멈춰라! 여기는 허락받은 자만이...”

“들어갈게요.”

“...들어가십시오.”

최면술로 문지기들을 가볍게 지나쳐서 신전 안쪽으로 들어갔다.

신이 매우 많은 <그리스 로마 신화>답다고 할까? 문지기부터 청소부까지 신이 아닌 인간이 없었다.

모두가 ‘새로운 신’에게 굴복한 자들.

끝까지 불복한 자들이 신전 기둥에 매달려 있는 것 같다.

‘어디 보자...’

내 지식이 틀렸을 수도 있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신들은 기본적으로 불사(不死) 속성이 있다.

절름발이, 거세, 시력장애...

몸에 후천적인 장애가 생길 순 있어도 죽진 않는다. 그래서 전쟁에서 패배한 신은 봉인되는 게 일반적.

“놔라! 놔-”

댕강!

새로운 시대를 받아들이지 않는 자들의 처형식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오우야!’

머리를 잃은 몸통이 팔다리를 움직이고 허리를 비틀면서 포박을 풀려고 안간힘을 썼다.

“다음!”

그런 몸통은 바둥거리면서 배신자들에게 끌려 나갔다. 그리고 머리는 신전 내부에 벽걸이 장식으로...

그 아래에는 친절하게 이름이 적힌 팻말이 걸렸다.

[아테네]

그런 동지들이 벽에 일렬로 장식되어 있었다.

[하데스]

[헤라]

[포세이돈]

......

죽지 않는다는 속성 덕분에 살아는 있지만, 머리만 남은 그들은 누군가의 승리를 축하하는 기념품으로 전락했다.

죽는 것만도 못한 치욕적인 신세!

후환이 될 수 있는 정적들을 제거하는 건 이해할 수 있는데...

그 방식이, 취향이 참 독특했다.

‘그나저나...’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법 여유를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아싸는 아직 안 온 듯했다.

예쁘거나 잘생긴 신들의 머리 장식품들을 구경하며 더욱 안쪽으로...

“저기 있군.”

내 앞에 무릎 꿇었을 때보다 40년은 젊어진 남자가 옥을 깎아서 만든 권좌에 권태롭게 앉아 있었다.

그리고 그의 좌우에는 긴 천으로 치부만 간신히 가린 여신들이 어깨를 주무르며 안마 중.

나는 좀 더 어른스러운 광경을 예상했었는데, 축제 준비로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곳에서 하진 않는 듯했다.

댕강! 쿵쾅쿵쾅!

구석에서는 신의 머리를 자르고, 중앙에서는 긴 식탁에 음식을 나르고...

혼잡했다.

‘내가 너무 서둘렀나?’

이 세상 어딘가에 아싸와 ‘정의로운 다섯 악마’가 있다.

지구의 모든 신화가 발생지 근처를 못 벗어났다. 설정상으로는 세계를 창조했다고 하지만, 그리스 로마 신화에 아메리카 대륙이 등장하진 않잖은가?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조차 몰랐던 시기이기에 세계관 자체는 로맨스 장르 다음으로 작은 편에 속한다.

“죽고 싶지 않으면 서둘러라!”

“헉! 네!”

최면술로 모습을 감춘 나의 접근을 전혀 눈치채지 못한 라누벨 환자.

모든 신을 제압할 만큼 강해도 결국은 이 세계에 한정된 힘이니까. 독자적으로 하나의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나를 어쩌진 못한다.

쪼르륵~

식탁에 차려진 고급 포도주를 따라서 한 잔 마시며,

‘느긋하게 기다리자.’

악마 아싸가 찾아올 때까지 여기서 잠복하기로 했다.

* * *

악마 아싸는 환자가 최고로 행복한 순간에 찬물을 끼얹듯 난입했다.

서걱-

“히이익?!”

“허억?!”

날갯짓 한 번에 축제 한복판에 모습을 드러낸 녀석은 근처에 있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절단하고-

싹뚝!

축제의 한복판에서, 머리만 남은 장식품이 되지 않기 위해 엉덩이를 열심히 흔들며 춤추는 미(美)의 여신 ‘아프로디테’의 두 다리를 절단했다.

“꺅?!”

여신의 다리가 길고 예뻐서 그동안 내 눈이 즐거웠었는데, 하필이면 다리를 노릴 줄이야!

악마는 악마였다.

“감히...!”

축제를 즐기던 환자가 격분하며 권좌에서 일어섰다.

그러나,

싹뚝!

무언가를 해볼 틈도 없이 두 발목이 절단된 그는 새하얀 대리석이 깔린 바닥에 머리부터 처박혔다.

“커흑?!”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모든 신을 혼자서 제압할 만큼 강대한 힘. 하지만 그 근원은 판타지다.

무엇이든 절단하는 팔.

어디로든 이동하는 날개.

판타지에 면역인 몸.

모든 무력이 ‘신의 기적’에 집중된 세계관에서 이 악마를 이길 방법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훌륭해. 기다린 보람이 있어.”

“크아아악?!”

“요즘 녀석들은 세계에 적응하기 바빠서 놀 줄 모르니까. 너 같은 녀석은 정말 귀해.”

“가, 감히...!”

자기가 하루살이랑 동급이란 사실을 아직 눈치채지 못한 환자가 ‘신(神)’처럼 분노했다.

“하핫! 멋진 자세야.”

“꺅?!”

환자에게 아양 떨던 여신이 순식간에 절단된 오른손에 비명을 질렀다.

“이놈- 커윽?!”

이 악마는 확실히 달랐다.

기존의 악마들은 칼날처럼 변한 손발로 상대를 썰어버릴 생각만 했었는데, 아싸는 격투선수처럼 무릎 같은 관절도 활용할 줄 알았다.

타고난 싸움꾼!

아싸가 13대1로 이겼다는 말이 거짓이나 과장이 아니었다.

‘천천히...’

놈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조금씩, 영역을 확장해서 이 신전을 감쌌다.

날개를 봉인해도 환자가 죽어서 세계 자체가 사라지면 실패!

눈치채고 놈이 도망쳐도 실패!

이래저래 쉬운 일은 아니었다.

펄럭~

“아싸! 그만해!”

캉!

허공에서 기습적으로 튀어나온 다른 악마가 아싸를 공격했다.

“지긋지긋한 녀석!”

“너야말로 무의미한 살육을 그만둬!”

“내 일에 참견하지 마라.”

“해야겠다!”

캉! 캉! 끼긱- 캉!

두 악마가 어디로든 이동할 수 있는 날개로 장소를 바꿔가면서,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팔로 서로의 급소를 노렸다.

“와...”

무술을 잘 모르는 내가 봐도 감탄이 절로 나오는 전문적인 움직임.

정신없이 장소를 옮기며 싸우던 둘은 급기야 신전을 무너트리고 어디론가 사라졌다.

“으아아아?!”

“무, 무너진다?!”

“살려줘~!”

쾅 쿠궁! 쿵쾅!

신전이 폐허로 변하면서 축제는 흐지부지 끝났고,

“내 다리! 내 발...!”

악마에게 잘린 발목은 판타지로 붙일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는 라누벨 환자는 공황에 빠졌다.

결론은?

“야근해야겠네.”

누군가의 오지랖으로 금방 끝날 줄 알았던 계획이 일그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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