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17화 (218/232)

217화

“강문수 씨가 주문한 전용기가 완성됐어요. 바로 이거죠.”

“오...”

유부남의 약혼녀 자리를 노리는 부잣집 아가씨가 비행선을 선보였는데, 생김새가 햄스터를 닮았다.

전투가 아닌 단순한 이동용.

내 영역에 완전히 포함될 수 있는 소형을 주문했으며, 순수한 과학이 아닌 요소는 전부 배제했다. 나의 영역 안에서는 작동하지 않으니까.

핵심은,

“지미 로리쿤이 탈출 장치를 누르면 무조건 이 위로 이동해요.”

“멋지네요. 시험해볼 수 있습니까?”

“네. 하지만 그건 조금 나중으로 미뤄도 될까요? 저는 그 인간의 얼굴을 또 보고 싶지 않거든요.”

“아아, 미안합니다. 제가 배려를 전혀 못 했네요. 알겠습니다.”

“이어서 설명하자면...”

제국의 높으신 분들이 애용하는 고급 편의시설은 기본. 조종을 전혀 못 하는 나를 위해 하녀를 겸한 인조전사 둘이 항상 대기하고 있다.

덤으로, 혹시 모를 비상사태에 대비한 호위함이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항상 따라온다고...

내가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부분까지 보완해서 세심하게 챙겨줬다.

‘모선이 크긴 큰 모양이네.’

제국에서 나에게 이토록 신경 써줘도 훨씬 남는 장사라는 얘기 아닌가? 모선이 단순히 덩치만 큰 고철 덩어리가 아닌 건 확실했다.

“8광년 떨어진 바닷가에 경치 좋은 식당을 예약해뒀어요. 어서 가요~”

“아, 네.”

나는 공상과학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간도약 기술을 사용할 수 없다. 판타지의 혜택을 누리려면 ‘나의 세계’부터 포기해야 하니까.

하지만 함선 같은 밀폐된 ‘물체’ 안에 있으면 가능하다. 함께 공간도약을 하는 게 아니라, 공간도약하는 물체에 딸려 가는 느낌.

그래서 부작용이 장난 없다.

“지금부터 공간도약을 시작합니다. 셋, 둘, 하나-”

“크윽?!”

온몸을 짓누르는 물리적인 압력이 순식간에 왔다가 지나갔다.

“강문수 씨?”

“......”

“강문수 씨. 괜찮으세요?”

“...제가 이번에는 얼마나 기절했습니까?”

“10초 정도요.”

“흠.”

길었다. 10초면 악마가 나를 100번도 더 죽일 시간이었으니까.

일반적인 사람이면 온몸이 찌부러져서 죽었을 압력을 버틴 건 좋지만, 뇌진탕까지 막을 순 없었다.

건물 2층에서 떨어트린 두부처럼 변한 뇌가 원상태로 회복되기까지 10초나 걸렸다는 소리!

공간도약의 거리가 멀수록 기절하는 시간도 비례해서 길어졌다.

‘너무 위험해.’

목적지에 내 목숨을 노리는 누군가가 있다면 저항도 못하고 죽는다는 소리였으니까.

제국 최고의 기술을 집대성한 최신식 전용기였기에 나르시아도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이상하네요. 제조사에서는 공간도약 후유증이 없을 거라고 했는데... 당장 따져야겠어요!”

“제조사의 기술이 잘못된 건 아닙니다. 이건 제 직업의 문제니까요.”

“직업이요?”

“네. 공간도약은 영혼을 다루는 무당에게 부담을 주거든요.”

“아아...”

“제가 오랫동안 행성에 갇혀 지냈던 이유입니다. 공간도약을 하면 죽고 싶을 만큼 속이 매우 안 좋습니다.”

“그, 그렇게까지나...”

죽고 싶은 게 아니라, 일반인이었으면 진짜로 죽었을 만큼 해롭다.

“그런 이유로, 공간도약은 악마를 잡기 전까지 최대한 안 하는 방향으로 갈 생각입니다. 기절한 사이에 악마가 오면 너무 위험하니까요.”

“이해했어요. 다음부터는 저희가 식당을 찾아가는 게 아니라, 그 식당의 요리사를 부르도록 할게요.”

“감사합니다.”

그 요리사의 요리를 먹으러 식당을 찾아온 손님들에게 너무 민폐 같지만, 내가 내 목숨 걸고 양보할 순 없었다.

깜빡?

아예 안 먹는 건 어떠냐고?

이 눈깔 촉수가 연애를 안 해봐서 잘 모르는 모양인데, 데이트에서 식사가 빠지면 즐거움이 반감된다.

“그래도 일단은 여기까지 왔으니 얼른 가봐요.”

“좋습니다.”

“만약에 기대에 못 미치면 허위광고로 신고에서 벌금을 강하게 먹일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네.”

식당 주인과 요리사는 예쁜 저승사자를 영접하는 기분이 아닐까?

훌륭한 요리를 만들길 기도해주자!

* * *

악마가 오길 기다리며 내가 4번째 모선을 탈취했을 때였다.

펑! 퍼엉! 펑~!

광활한 우주 한복판에서 아름다운 폭죽이 24시간 동안 쉴 새 없이 터졌다.

“강문수 씨! 축하해요!”

“아... 네. 아직도 얼떨떨하네요.”

“제국의 96번째 식민지 행성의 지분 51%가 강문수 씨의 소유에요. 그간의 공적을 고려하면 너무 작은 보답이지만, 진짜 보상은 저랑 결혼 후에 한꺼번에 드릴게요.”

“괜찮습니다.”

현실의 지구랑 비슷한 경제활동 중인 행성이 내 소유가 됐다고?

정부에서 지정한 육군사령부 관사에 얹혀사는 나로선 기가 막혔다.

‘잘 싸웠다는 이유로 100억 인구의 행성을 준다고?’

이 세계가 주는 보상은 내가 상상할 수 있는 범주를 한참 넘어섰다.

“강문수 씨. 고작 행성 하나로 만족하지 마세요.”

만족하는 내 태도가 마음에 안 들었던 나르시아가 또 툴툴댔다.

“이 행성의 이름이 뭡니까?”

“강문수메다.”

“...네?”

“강문수메다요. 행성 확보에 가장 큰 공적을 세운 탐험가, 함장, 과학자 등의 이름을 붙이는 게 전통이에요.”

“신대륙... 신행성이 아닌데도요?”

“저희가 애니족이 붙인 이름을 따를 리 없잖아요?”

“아하!”

일리 있네!

강문수메다는 애니족이 지배했던 식민지 행성으로서, 행성의 원주민들이 대주주인 애니족 밑에서 소작농처럼 일하는 농업 행성이었다.

농업 행성....

그래서 과학과 기술의 발전 수준은 현실의 지구랑 매우 흡사했다.

“제 소유의 행성도 있어요.”

“아가씨는 무슨 공적을 세우셨습니까?”

“성인식 기념선물로 받았어요.”

“아하!”

멀쩡한 행성이 18살 생일 선물? 기가 막히네!

“전설의 요정처럼 귀가 뾰족한 미모의 종목이 있어요. 그래서 종족 명칭도 요정족인데, 제 행성에서는 요정족을 방목하면서 자연스러운 번식을 유도, 괜찮은 종자는 씨를 뿌리거나 받도록 놔두고 좀 덜떨어진 요정족은 사창가나 시장에 노예로 팔아요.”

“...그렇군요.”

외계인에게 인권이 없더라도 동물 학대로 신고받을 만한 이야기였다.

“강문수 씨가 공간도약을 싫어하셔서 당장은 어렵지만, 나중에 제 행성을 구경시켜드릴게요. 제 행성이 당신의 행성이기도 하니까요.”

“네.”

그녀의 설명처럼 얼마나 충격적인 행성인지 궁금하긴 했다.

“강문수메다를 어떻게 하고 싶으세요?”

“음?”

“강문수메다는 강문수 씨의 소유라고 말씀드렸잖아요. 애니족이 했던 것처럼 식량 생산에 집중해도 되지만, 추천하진 않아요.”

“어째서입니까?”

내가 전부 파악한 건 아니지만, 이 행성은 동식물이 잘 성장할 조건을 전부 갖추고 있었다.

이런 곳에 공장을 짓는다면?

지구의 환경을 파괴한 구시대의 인류랑 다를 게 없다.

“애니족의 정책을 답습하면, 애니족의 식민지 치세가 훌륭했다고 인정한 꼴이 되버리니까요.”

“그게 맞더라도요?”

“맞더라도요.”

“흠.”

자존심 강한 부잣집 소녀 같으면서도 이런 부분은 나보다 어른이었다. 안 좋은 의미로.

“깊게 고민하지 마세요. 행성의 모든 생명체가 죽고 황폐해져도 강문수 씨를 비난할 사람은 없어요.”

“행성 지분의 49%를 가진 사람이 비난할 것 같은데요.”

“그 49%의 소유자가 엘베레스트 가문이에요. 설명하자면 복잡한데, 국가에서 저희 가문에 진 빚을 행성 지분으로 받은 거예요.”

“아하!”

그녀가 속한 ‘엘베레스트’는 애니족보다 위험한 적폐 가문이 확실했다.

“강문수 씨는 결정만 하시면 돼요. 행성의 모든 행정은 실무자가 대신 처리할 거예요. 강문수 씨는 월말에 간략한 보고서를 받고, 그것을 보았다는 확인 서명만 하시면 돼요.”

“저는 실무자를 뽑은 기억이 없습니다만...”

“강문수메다는 강문수 씨가 모선을 탈취한 덕분에 빼앗을 수 있었지만, 그동안 이 전장에서 목숨을 잃거나 공적을 세운 장병들이 있어요.”

“혹시, 그들이 실무자입니까?”

“네. 당사자가 죽었다면 가족이 대신 요직을 맡아요.”

단번에 이해됐다.

“경영해본 경험이 없는 사람을 실무자로 앉힐 줄은 몰랐습니다.”

“그 정도의 보상을 약속하지 않으면 누가 목숨 걸고 싸우겠어요? 애국심만으로 싸우던 시대는 끝났어요”

“확실히...”

현실 지구에서는 P의 적성검사 결과로 인생이 결정된다. 하지만 올림픽 피메달에 출전해서 살아남기만 해도 적성을 무시하고 큰돈은 만질 수 있으니...

전문성(적성)은 중요하지 않다는 그녀의 설명도 자연스럽게 수긍됐다.

“어떻게 하시겠어요?”

“이건 실무자가 아닌 제가 꼭 결정해야 합니까?”

“공적이 가장 큰 사람이 가장 큰 보상을 약속받는 건 당연하잖아요?”

“흐음...”

“뭐든 좋아요.”

“그렇다면 저는 해산물이 풍부한 행성을 만들고 싶습니다.”

“해산물... 그것도 식량이긴 하지만, 애니족이랑 방향성은 달라서 괜찮을 것 같네요.”

“가능합니까?”

“동성애자의 성별도 바꾸는 시대인데, 행성은 아무것도 아니죠.”

“......”

정말 무서운 시대로군.

“저는 솔직히 살짝 기대했어요.”

“뭘요?”

“이 행성이 무당의 성지가 됐으면 했거든요.”

“그건 무리입니다. 무당은 혈통으로 결정되니까요.”

“교육이 아닌 유전적인 적합성의 문제란 거군요?”

“네.”

유전적인 적합성? 처음 듣는 단어였지만, 그러려니 넘어갔다.

“해양도시를 만들려면 앞으로 바빠지겠네요.”

“얼마나 걸릴까요?”

“그건 이쪽이 잘 알 것 같네요.”

나르시아가 흑백 기조의 하녀 복장을 한 인조전사를 돌아봤다.

(...행성 규모로 보아선 보름 정도를 예상합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효율적인 공사 기간이고, 건설사의 입찰 경쟁 없이 협업으로 진행한다면 닷새 안에 끝납니다.)

“닷새... 제법 기네요.”

(양식장의 해산물들이 새로운 생태계에 적응하는 시간이 있어서 이 이상은 단축이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강문수 씨도 들으셨죠?”

“네.”

해양도시와 양식장이 닷새 만에 뚝딱 완성된다고?

인공지능의 설명이 지나치게 비현실적이라서 허세로도 들리지 않았다.

“강문수 씨. 그래도 여기까지 오셨으니 행성을 한 번 둘러보는 게 어때요?”

“좋습니다.”

“저녁에는 행성을 관리했던 애니족들의 처형 행사도 있어요.”

“그건 안 봐도 됩니다.”

“네~”

우리는 해산물 특구가 될 예정인 강문수메다 행성에서 이틀을 보냈는데...

그 사이에 행성의 모든 육지가 물에 잠기고, 원주민들은 신축된 해양도시로 강제 이주됐다.

‘...실화냐?’

정말로 닷새 만에 행성을 통째로 리모델링 하려는 모양이다.

그리고 셋째 날.

악마들이 순도 100% ‘푸른 별’이 된 강문수메다에 출현했다.

“어서 와!”

총리의 딸이 간절히 원하는 약혼식 전에 찾아와서 정말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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