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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14화 (215/232)
  • 214화

    ‘골라도 하필이면 공상과학이냐...’

    어떤 멍청한 악마가 약속 장소를 골랐는지 모르지만, 여긴 나에게만 성가신 게 아니다.

    공상과학이라고 해서 ‘공상’만 있을까?

    절대 그렇지 않다. 실현이 가능한 과학적인 요소도 많다.

    예를 들어,

    “강문수 씨. 제법 넓죠? 행성의 절반이 동물원이에요. 공중도시와 해저도시도 포함하면 그 이상이고요.”

    “...넓네요, 제법.”

    공상과학은 확실히 달랐다. 지구랑 비슷한 크기의 행성을 동물원으로 쓸 생각을 해내다니?

    하지만 행성 절반을 동물원으로 만드는 게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하지 않다. 충분한 이용객, 수익, 자원, 교통편, 동물만 확보된다면 말이다.

    어렵긴 해도 ‘공상’으로 치부할 만큼 현실성 없진 않다는 의미!

    놈들이 간과한 부분이다.

    위이잉~

    두 발로 걸어서 구경했다가는 평생 걸릴 관광 코스. 하지만 동물원이라고 해서 모든 동물이 완벽하게 관리되고 있는 건 아니었다.

    자유로운 탐방이 70% 정도.

    우리는 외부에선 투명하게 보이는 반중력 비행선을 타고 유람하듯 이리저리 돌아다니고 있었다.

    ‘과연...’

    동물원에는 ‘사람’을 제외한 모든 동물이 있었다.

    현실에서 원숭이나 고릴라 같은 유인원을 동물원에 가둬두듯, 이곳의 관계자들은 ‘제국의 시민’을 제외한 모든 유사 인종도 동물로 취급했다.

    “강문수 씨는 제국에 대해 아는 게 정말 없으시네요.”

    인공지능이 관광명소만 콕콕 찍어서 운전해주는 2인승 투명 비행기.

    내 옆에 엉덩이와 가슴을 바짝 붙이고 앉은 나르시아가 살짝 어이없다는 시선을 보냈다.

    “몰라도 사는 데 지장 없으니까요.”

    나는 모형 정원에서 원시인처럼 사는 요정, 난쟁이, 거인, 천사, 외계인을 구경하며 대답했다.

    제국의 식민지 행성은 88개.

    그중에는 귀가 뾰족한 인간이 사는 행성, 등에 날개가 돋아난 인간이 사는 행성, 고양이처럼 생긴 인간이 사는 행성 등도 있을 수 있지!

    함선과 전쟁터에서는 순수한 인간과 안드로이드만 있어서 몰랐는데, 내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종족이 존재했다.

    “우주에서 1초 뒤에 폭격으로 행성이 불바다로 변한다는 사실을 모르는 편이 행복한 순 있죠.”

    “흠.”

    현실에서 외계인이 지구를 침공한다면 그녀의 말처럼 될 것 같다.

    “아무나 붙잡아서 동물원에 넣은 건 아니에요. 식민지 범죄자 중에 무기징역과 사형 선고 같은 중징계를 받은 자만 이곳으로 보내져요.”

    “그렇군요.”

    이들이랑 비교하면 총살형 예정인 라누벨 환자는 행복한 편에 속했다.

    평범한 감옥 안에서는 강간, 폭행을 안 당하고,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목숨 걸고 탐험하지도 않으며, 머리나 몸이 아프면 약도 주니까!

    여기는 생지옥이었다.

    “오랜만에 왔더니, 이것저것 많이 바뀌었네요.”

    “예전에 같이 안 왔습니까?”

    “지미 로리쿤이요?”

    “네.”

    “강문수 씨. 숙녀의 과거를 캐묻는 건 좋지 않아요.”

    “......”

    “하지만 당신이 저와 그의 관계를 신경 쓰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네요. 질투하시는 건가요?”

    “곧 아빠가 되는 유부남입니다.”

    질투? 착각이 심하네!

    모두로부터 사랑과 관심만 받으며 살았던 탓에 ‘무관심’이란 상황을 전혀 모르는 것 같다.

    “어머! 저기 좀 봐요! 수풀에서 짝짓기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원시인으로 강등당한 알몸의 남녀가 수풀에서 사랑을 나누고 있었다.

    저러다가 2세라도 생기면 어쩌려고 저러는 걸까?

    이미 아는 게 없는 인간으로 낙점됐기에 거침없이 질문했다.

    “임신하면 어떡합니까?”

    “운이 좋으면 안 죽고 낳겠죠.”

    “아, 네.”

    지구의 동물원처럼 임신한 동물을 특별히 보살피거나 태어난 새끼를 따로 관리하는 건 아닌 듯했다.

    야생에 완전히 방치랄까?

    원숭이 짝짓기 취급하는 그녀에게 전혀 공감할 수 없었던 나는 본론으로 슬쩍 넘어갔다.

    “팔다리가 칼처럼 생겼다는 외계인은 안 보이는군요.”

    “그러게요. 인조전사를 파괴할 만큼 강한 생물은 흔치 않은데... 어디에 있는지 물어볼까요?”

    내가 운을 띄우자 나르시아도 짙은 호기심을 드러냈다.

    “안내원. 팔다리가 칼처럼 생긴 녀석을 보고 싶은데.”

    (검귀는 사고가 발생해서 관광이 중지됐습니다.)

    “흠.”

    꿈의 세계답게 여기서도 놈들을 ‘검귀’라고 부르는군?

    하지만 다른 외계인들처럼 원숭이로 만드는 건 실패한 모양이다.

    “강문수 씨. 꼭 보고 싶으세요?”

    “꼭 봐야 하는 건 아닙니다.”

    “표정은 다르신데요?”

    “......”

    만나는 여자마다 내 표정이 알기 쉽다고 하는 것 같다.

    “나르시아 엘레베스트의 이름으로 정보 열람을 요청합니다.”

    (...요청이 허가되었습니다. 무엇이든 말씀하십시오.)

    사근사근한 말투였던 안내원이 사무적으로 변했다.

    “직접 보고 싶어요.”

    (지금부터 검귀가 보관된 제5 연구소로 이동하겠습니다.)

    우우웅~

    수풀에서 짝짓기하는 남녀를 발견할 만큼 천천히 날던 비행기가 속도를 올리기 시작했다.

    “강문수 씨. 어때요?”

    “멋졌습니다.”

    가문의 후광이라고 비꼬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밑바닥부터 성공한 인간은 부모에게 천부적인 재능을 물려받은 셈이니까. 신분 상승이 노력만으로 될 리 없다. 노력은 누구나 다 하기에...

    ‘주어진 것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중요하지.’

    나는 그것을 ‘어린 강문수’를 보고 절절히 느꼈다.

    적성 ‘무당’을 전혀 활용하지 못한 그는 가짜 무당의 제자로 얼굴을 팔다가 수많은 여성을 상대하는 ‘종마’로 끝.

    똑같은 강문수인데도 전혀 다른 인생이 돼버렸다.

    “후후! 제 남편이 되시면 이보다 더한 것도 혼자서 가능해요.”

    “된다면 참고하겠습니다.”

    “이 힘든 시기에 모선을 탈취하신 것만으로도 자격은 충분해요. 또 탈취하기 위해 공개하지 않고 있을 뿐이죠.”

    “거기까지 생각해뒀군요.”

    “당신의 정보가 풀리면 애니족이 대책을 마련할 테니까요.”

    “일 이야기는 나중에 하죠.”

    내 인생에 아무런 영향도 못 주는 우주전쟁에 전혀 관심 없다.

    “어머! 미안해요. 신나서 말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일 이야기로 빠져버렸네요.”

    “괜찮습니다.”

    나는 처음부터 업무 중이었으니까. 그녀를 욕할 처지가 못 된다.

    * * *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전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짝꿍이 인체실험과 고문이다.

    현실보다 상대적으로 지성인이 많은 공상과학의 세계는 다를까?

    결론부터 말하면, 인간은 시대와 문명을 막론하고 항상 똑같다.

    “이 누추한 연구소를 방문해주셔서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영광입니다!”

    연구소 소장과 연구원들이 착륙장에 대기하고 있다가 나르시아를 보자마자 넙죽 인사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여러분. 안내해주실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호위는...”

    “옆에 있잖아요?”

    “흠. 검귀가 또 탈출하는 일은 절대 없겠지만, 정말로 괜찮으시겠습니까?”

    소장이 살짝 불안해했다.

    그건 자신들의 연구소 보안을 못 믿어서가 아니라, ‘총리의 딸’이란 거물이 주는 부담감.

    그녀의 몸에 생채기라도 생긴다면?

    이 연구소랑 관련된 사람은 예외 없이 전부 죽으리라.

    “네.”

    “흐음... 알겠습니다.”

    그녀에게 호위를 더 늘리라는 말은 차마 못 한 연구소 소장이 진지한 얼굴로 안내를 시작했다.

    드르륵-

    두꺼운 철문이 열리고, 엽기적인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뭐냐, 여긴...?’

    수많은 침대와 알몸의 남녀. 그리고 자유를 빼앗는 족쇄와 쇠창살...

    취미가 독특한 변태들을 위한 퇴폐업소 같았다.

    “저희는 멸종위기종의 복원사업을 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멸종위기종?

    소장이 뭔 헛소리를 하나 싶었는데, 침대의 남녀를 자세히 살펴보니 ‘평범한 인간’은 없었다.

    귀, 날개, 꼬리, 눈, 피부, 지느러미...

    뚜렷한 특징이 없다면 비현실적인 아름다움이라도 가졌다.

    “제국의 위대한 발자취에 쓰러진 외계인 중에는 태어날 때부터 특별한 힘을 가진 순종이 있습니다. 저희는 그 시체에서 정자와 난자를 채취해서...”

    이 연구소의 최종목적은 인류의 품종개량이라는 것 같았다. 멸종위기종의 복원사업은 그 연구의 부산물이고.

    죽이고 죽이는 단순한 전쟁놀이인 줄 알았는데, 드디어 조금은 어두운 공상과학의 향기가 났다.

    “성과가 있었나요?”

    “물론입니다!”

    총리의 딸에게 잘 보이면 연구비가 추가로 지원될 수 있음을 잘 아는 소장은 열성적으로 설명했다.

    사람의 마음을 읽는 소녀, 가까운 미래를 볼 수 있는 천사, 컴퓨터처럼 전부 기억하는 소년, 괴력을 가진...

    공상과학의 세계에 초능력이 자연스럽게 등장했다!

    ‘거참! 세계관이 넓으면 이런 일도 생기는군.’

    순수하게 흥미로웠다. 이 연구소의 비윤리적인 실험만 접어두고 본다면!

    “쓸만한 성과가 없네요.”

    하지만 나랑 다른 감성을 지닌 이 아가씨는 시큰둥했다.

    “좋은 표본은 복원이 힘들어서...”

    연구소 소장은 성과를 부정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변명하기 바빴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볼게요. 이 연구소에 인조전사를 대처할 수 있는 성과물이 있나요?”

    전쟁의 승패는 모선으로 결정된다. 하지만 모선끼리 충돌하면 양측 다 무사하지 못하기에 ‘침투’하는 방법을 쓰는데, 여기서 활약하는 것이 홀로 사단급 전력을 발휘하는 인조전사다.

    지금은 제국과 인류의 존속이 걸린 전쟁의 시기.

    일상생활에 유용한 초능력은 대량생산이 가능한 기계로 대체할 수 있어서 주목받지 못하는 듯했다.

    “아직은 성과가 없지만, 미래에는 다를 겁니다. 아가씨께서 요청하신 것을 보여드리겠습니다.”

    “드디어 보게 되는군요. 인조전사를 쓰러트린 외계인을.”

    드르르륵-

    위이잉-

    지금까지보다 훨씬 엄중한 2중, 3중으로 된 보안을 지나서 연구소 깊숙이, 안쪽으로 들어갔다.

    “......”

    그곳에는 불가사리처럼 팔다리를 쭉 뻗은 채 포박된 악마가 있었다.

    ‘허! 검귀가 아닌 익귀였어?’

    나는 멍청한 검귀가 과학에 까불다가 붙잡힌 줄 알았는데, 저 날개처럼 생긴 칼날의 팔은 익귀의 특징이었다.

    “보여드리겠습니다.”

    소장의 턱짓을 받은 연구원이 기계 팔을 조작했다.

    위이이잉-

    철봉을 움켜쥔 기계가 악마의 팔에 가까이 갔다.

    “이 철봉은 인류가 개발한 가장 단단한 합금 중 하나입니다. 하지만 검귀는 이것을 이렇게.”

    댕강!

    무엇이든 벨 수 있는 칼날에 닿은 철봉이 수수깡처럼 절단됐다.

    “어머!”

    지식이 풍부한 나르시아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놀라워했다.

    “저 팔에 그 단단한 인조전사도 맥없이 절단됐습니다.”

    “정말 놀랍네요...”

    “저희는 생식기가 안 보이는 검귀가 번식할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없다고요?”

    “네. 현대의 지식으로는 검귀의 생식기를 찾을 수 없었습니다.”

    “못 찾아도 상관없어요. 번식에 성공할 수만 있다면.”

    “하지만 저희도 이런 사례는 처음이라 쉽지 않은 도전...”

    “오늘 일을 잘 말씀드릴게요.”

    “가, 감사합니다! 아가씨의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습니다!”

    “기대할게요.”

    나르시아가 소장이랑 대화하는 동안, 나는 악마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안녕?”

    “......”

    우리 사이는 특수한 유리막으로 막혀 있어서 보통은 볼 수 없지만, 놈은 나를 확실히 인지하고 있었다.

    날갯짓 한 번이면 어디로든...

    하지만 공상과학은 그 ‘한 번’을 허용하지 않았다.

    “어떻게 잡았습니까?”

    “그때의 영상자료가 있습니다. 원하시면 당장이라도 볼 수 있습니다.”

    기분이 좋아진 소장이 훈훈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부탁드립니다.”

    “이쪽으로.”

    “네!”

    우주 끝까지도 도망칠 수 있는 악마를 붙잡은 방법을 한번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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