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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08화 (209/232)
  • 208화

    나라마다 문화와 가치관이 다르듯, 결혼식도 제각각이다.

    동네 사람들을 불러서 결혼을 알리는 파티를 열거나, 가문의 어른들끼리 악수하고 혼수를 나누기만 하기도...

    신성로마제국은 P의 업적을 기록한 기념비 앞에서 부부가 됐음을 선언하고, 불륜을 저지르면 엄중한 법의 심판을 받겠다는 맹세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는?

    ‘우와아아!’

    누가 더 결혼식을 성대하게 하는지 대결하는 것 같았다. 먼 옛날부터 이어온 전통적인 예습과 외국의 그럴싸한 부분이 뒤섞인 혼돈의 결혼식!

    그중에서도 양가의 어른들을 챙기는 유교적인 방식이 최고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없으니까.

    부모 입장, 부모 소개, 부모에게 큰절, 부모랑 포옹, 부모와 함께 하객들에게 인사, 부모의 덕담, 부모...

    적당히 좀 해라!

    예식 순서만 보면 누구의 결혼식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

    “형. 좋은 날이잖아요. 표정 푸세요.”

    뭘 입어도 잘생긴 후배인데, 오늘은 옷마저 잘 입어서 영화배우 주인공보다 잘생긴 최강훈이 웃었다.

    “오늘만큼 아버지가 싫었던 날은 없었던 것 같아.”

    아버지의 장례식장에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을 때도 이렇진 않았다.

    돈을 벌면 뭐 하는가? 부모는 돈 주고 살 수가 없는데.

    “그만큼 아주머니가 힘쓰신 것 같아요. 예식장에 신성로마제국의 인사들이 바글바글하잖아요? 빈자리가 없어요.”

    “뭐...”

    내가 예전에 잠깐 결혼식 하객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어서 안다. 사람이 없으면 사진이 안 예쁘다.

    그런 면에서 보자면 나쁘진 않은데, 사진에 찍히는 엑스트라들이 전부 유명인들이란 게 문제다.

    대통령, 장관, 국왕, 가주, 총리, 교황...

    이 사람들은 남의 결혼식장에서 정상회담이라도 할 생각인가?

    곧 있으면 남편, 아빠가 될 나에게 자기 딸을 소개해주는 사람도 있었다!

    덤으로...

    “왜요?”

    “너는 언제 결혼하냐?”

    세계적인 재벌의 둘째 아들인 이 녀석은 상대적으로 평범해 보였다.

    “저요? 저는 형처럼 멋진 남자가 되면 할 거예요!”

    선배가 들으면 배꼽 잡고 웃으시겠군.

    “내가 멋진가?”

    “당연하죠!”

    “흠.”

    진심이 틀림없는데, 진심처럼 들리지 않는 건 내가 삐뚤어진 탓일까.

    힐끔.

    송선영의 친인척과 부모의 지인들이 모여 있는 곳을 살펴보았다.

    “......”

    “......”

    예식 1시간 전부터 자리에 앉아서 기다리는 외가의 하객들은 숨조차 편하게 못 쉬고 있었다.

    여러분, 긴장하지 마세요. 똑같은 사람입니다.

    내가 두 대륙을 통일한 황제랑 친구처럼 어깨동무도 해봐서 잘 안다.

    “형.”

    “말해.”

    “드디어 잡았어요.”

    “뭘?”

    “형과 형수님을 노린 인간이요.”

    최강훈이 말하는 ‘형수님’이 누구인지 3초쯤 생각한 뒤에 이해했다.

    그렇군. 형수인가.

    송선영이 내 아내가 된다는 형수가 맞을 것이다.

    “찾았어?”

    “네!”

    “처리를...”

    “자연스럽게 됐어요. 도박에 실패해서 쫄딱 망했거든요. 조직원들에게 붙잡혀서 벌써 시체가 됐어요.”

    “조직원?”

    “재벌 중에는 어두운 골목이랑 연결된 사람이 많으니까요. 마오짜이 씨의 가문도 그쪽에 깊게 발을 담그고 있어요.”

    “아아.”

    내 손으로 직접 복수하고 싶었는데, 이미 죽었다면 어쩔 도리가 없군.

    “배구가 워낙 커서 묻히고 말았지만, 기사도에서도 승부 조작의 낌새가 있었어요. 성공하진 못했지만.”

    “나 때문에?”

    “사설 도박장은 꼴찌도 활용해요. 형이 올림픽 기사도에서 사망한다는 쪽에 돈을 걸었어요.”

    “......”

    사람의 목숨으로 내기를? 나도 꿈속에선 미치긴 했지만, 사설 도박장과 뒷골목 새끼들은 더 심한 것 같다.

    (결혼식이 곧 시작됩니다. 하객 여러분은 지정석에 착석해주십시오.)

    (The wedding is about to begin. ladies and gentlemen, please take a seat in the examination table.)

    (婚礼即将开始。所有来宾,请就座)

    (Свадьба вот-вот начнется. Все гости, пожалуйста, садитесь на зарезервированные места.)

    ......

    이 결혼식은 도대체 몇 개의 언어로 통역하는 거야?

    예식 중에는 모국어로만 진행되지만, 외국인들을 배려해서 동시통역용 이어폰이 지급된다고 한다.

    그야말로 돈! 돈! 돈! 그리고 외교 한 숟가락.

    남의 시선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송선영답지 않은 배려다. 아니면 결혼식 준비를 도와준 수행원들의 판단이던가.

    뭐가 됐든 지나치게 거창했다.

    “아무튼, 형. 다시 한번 결혼을 축하드려요.”

    “고맙다.”

    세계적인 유명인들만 ‘나의 지인’으로 참석한 게 아니다.

    최강훈처럼 옛날부터 알고 지낸 사람들도 은근히 왔는데...

    “하하! 문수야! 축하한다!”

    “사장님.”

    나는 다양한 아르바이트를 했지만, 편의점에서 가장 오래 있었다.

    그리고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살다시피 했던 편의점 사장님은 나의 생계를 책임져준 은인!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이 배불뚝이 아저씨가 화산파 장문인이랑 맞먹는 검객이라니...’

    외모와 재능은 비례하지 않지만, 그 괴리감이 심각한 수준이었다.

    “결혼, 축하한다.”

    “감사합니다! 사장님도 어서 결혼하세요.”

    “이미 했어. 내 마누라가 얼마나 예쁜데. 기회가 되면 소개해주마.”

    “게임 속에서요?”

    “그래.”

    “흠.”

    게임을 좋아하시는 건 알지만, 현실에도 좀 더 신경을 써야 할 텐데.

    “사람의 기준이 뭐냐? 육체는 영혼을 가둔 껍데기에 지나지 않아.”

    “뭐...”

    꿈속의 세계에 사는 주민을 ‘생명’으로 보느냐는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가상현실도 같은 선상으로 본다면, 편의점 사장님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신랑님~!”

    “네. 갑니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신부지만, 신랑이 없으면 진행이 안 된다.

    얼른 가보자!

    * * *

    ‘나도 이젠 유부남인가...?’

    지루할 틈이 없는 6시간짜리 결혼식이 순식간에 끝났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자의 손을 잡고 걸어간 순간밖에 기억나지... 아!

    화려한 축가가 있었다.

    나의 지인으로 제국의 성가대가 P의 찬양가를 불렀고, 신부의 지인으로는 놀랍게도 라누벨 환자가 나왔다.

    이나연.

    적성은 가수.

    나의 11번째 환자.

    올림픽 연습이란 내 사적인 욕망을 위해 치료하러 갔었다.

    그 때문일까? 꿈속의 라누벨라 7세에게 걸려서 추방당하는 바람에 내가 치료하지 못했다.

    ‘엄마가 정말로 했네.’

    마녀들이 환자들의 ‘꿈속 복지’만 신경 써서 그렇지, 깨우고자 한다면 나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해내는 것 같다.

    현실의 그녀들은 황족!

    현실에 적응하지 못해서 꿈속에 틀어박힌 사람의 인생을 구제해주고 바꾸는 건 일도 아니다.

    “코오...”

    정부에서 배려해주고, 돈이 통장에 넘쳐난 덕분에 결혼식을 하고 싶은 대로 전부 했던 송선영.

    적성이 선수인 만큼 일반인보다는 체력이 좋은 편이지만, 기나긴 일정을 소화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신혼 첫날밤?

    아직 젊어서 그럴 가능성은 적지만, 임신 초기에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

    ‘그녀가 내 아내라니...’

    기분이 묘했다.

    물론, 다른 신혼부부만큼 걱정이 많은 건 아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돈은 많으니까. 내가 아닌 아내가!

    내가 앞으로 평생 벌어도 송선영의 재산을 이길 순 없을 것 같다.

    「부재중 통화: 14건」

    “......”

    내가 어제 결혼했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도 있을 수 있지만, 내 연락처를 알면서 결혼을 모른다는 건 이상했다.

    아니면 눈치가 없던가.

    ‘누가 연락했는지 한 번 볼까?’

    당분간은 ‘내 아내’에게만 집중하고 싶지만, 중요한 문제일 수도 있기에 확인만 하기로 했다.

    「황녀님」

    「황녀님」

    「황녀님」

    ......

    앞으로 2년 동안 쉰다고 했었던 라누벨라 11세였다.

    ‘결혼 축하 인사인가?’

    하지만 그렇다고 보기에는 전화한 횟수가 비정상적으로 많았다. 그리고 단순한 축하였다면 문자만 남겨도 되잖아?

    알아볼 수밖에 없다.

    살금살금.

    아내가 곤히 잠든 침실을 조용히 나와서 스마트폰의 ‘통화’를 눌렀다.

    전화를 받을까?

    1초, 2초, 3초, 4초...

    지구 반대편은 밤이기 때문에 자고 있을 시간이긴-

    (통화하기 참 힘들군요.)

    “안녕하세요. 안 주무시고 계셨군요.”

    매우 유감이다. 어머니를 포함한 다른 라누벨라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이라서 그러려니 하지만, 11세는 나이가 비슷한 또래이기에 대화할 때마다 내가 소인배 같아서 싫다.

    (일단, 결혼 축하드려요.)

    “감사합니다.”

    일단은?

    의미심장한 단어였다.

    (올림픽도 막 끝났고 신혼이란 건 알지만, 당신에게 급히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요.)

    “...거부권이 있습니까?”

    상대는 황녀다. 나도 이젠 올림픽 스타로서 거물이 됐지만, 웬만하면 좋은 관계를 쭉 유지하고 싶다. 조상을 거슬러 올라가면 같은 뿌리니까.

    무슨 일이지?

    (거부해도 되지만, 제 이야기를 들으면 거부하기 힘들 겁니다.)

    “그건 모르죠.”

    나는 거절할 준비가 됐다.

    (8세가 위중하세요.)

    “......”

    방금 한 말은 취소다.

    (검귀들은 8세의 영혼에 붙은 기생충 같은 존재였어요. 공생을 추구해왔죠. 하지만 놈들이 선을 넘겼어요.)

    “원인이 뭡니까?”

    (당신이요.)

    “......”

    원인이 나에게 있다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박혔다.

    (당신이 이성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검귀 지도층을 자극했어요.)

    “그건...”

    사실이다.

    검귀의 지도층.

    내가 ‘익귀’라는 이름을 붙인 놈들은 이성적인 판단을, 협상을 할 수 있는 지혜를 갖고 있었다.

    (놈들은 강력하게 원하고 있어요. 8세를 살리고 싶으면 모든 위협 행동을 중지하라고.)

    “그 위협이 저라는 거군요?”

    (네.)

    “...제가 뭘 어떻게 하면 됩니까?”

    마녀들은 늙지 않기에 사고만 당하지 않으면 영원히 살 수 있다.

    사고만 아니면.

    핵폭탄이 떨어져도 안전한 장소에서 지내고 있는 조상님이지만, 영혼을 통한 직접적인 타격은 막을 방도가 없었다.

    (방법은 2가지에요.)

    “저에게 아직도 선택권이 있습니까?”

    (네. 그것이 당신을 사랑하는 8세의 의지입니다.)

    “......”

    사랑이란 말에 가슴이 아려왔다.

    (놈들이 제안했으니 저희의 선택지는 2가지에요. 놈들의 요구대로 당신이 앞으로 꿈속에 들어가지 않거나, 놈들이 8세의 목숨을 빼앗기 전에 박멸 혹은 굴복을 받아내는 거예요.)

    “항복 혹은 전쟁이란 소리군요.”

    (네.)

    라누벨라 11세가 급히 통화한 이유가 이해됐다. 기록이 남는 문자를 사용하지 않은 이유도.

    라누벨라의 모든 정보는 극비에 해당하니까. 그 무엇하고도 바꿀 수 없는 아내 송선영조차 황족으로만 알고 있다.

    “여기서 처리하겠습니다.”

    (어떻게 할 거죠?)

    “악당의 협박에 굴복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 결정으로 인류가 P의 적성검사기를 잃게 되더라도요?)

    “...네.”

    한순간 멈칫했던 나는 힘주어 대답했다.

    (알겠습니다. 준비하고 계세요. 3시간 안에 환자를 그쪽으로 보낼게요.)

    “환자는 왜...”

    (놈들이 제안한 협상 장소가 있어요. 함정일 게 뻔하지만, 우리는 검귀를 불러내는 능력이 없어요.)

    “놈들을 잡으려면 쥐구멍에서 나오도록 해야 한다는 겁니까?”

    (네. 병원으로 가세요.)

    “알겠습니다.”

    나는 송선영이 당황하지 않도록 스마트폰에 문자를 남긴 후, 조용히 옷을 입고 엘몰랑스 병원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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