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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06화 (207/232)
  • 206화

    [11장-7절] 두근! 두근! 두근!

    (아아! 올림픽의 황제가 또 거침없이 돌진합니다!)

    (후퇴가 없어요!)

    (이름 있는 고참 기사들이 손도 못 쓰고 낙마합니다...!)

    (군마만 8번째 교체!)

    (기사가 타국의 말을 탈취하는 사례는 종종 있었지만, 이렇게 빈번한 적은 처음입니다!)

    (황제 폐하께서 쉬질 않습니다! 동계 올림픽 전 종목을 제패한 사람 같지 않은 체력이에요!)

    (발견하자마자 또 돌진!)

    “으아악~?!”

    “히잉~?!”

    해설진은 신났지만, 나는 죽지 않기 위해 극도로 집중하고 있다. 최소한의 보호 장비도 없이 뛰어들었으니까.

    한 방만 잘못 맞아도 송선영이랑 영원히 작별이다!

    그래서,

    ‘다 죽어...!’

    과하다고 생각될 정도로 쓸 수 있는 수단은 전부 활용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수단이 살기(殺氣).

    사지(死地)로 돌진해야 하는 군마는 겁먹지 않도록 꾸준히 훈련하지만, 내가 뿌리는 살기는 그 선을 한참 넘어섰다.

    내가 얼마나 많이 죽였던가?

    꿈속이긴 하지만, 그들의 피가 강물처럼 흐를 만큼 죽이고 또 죽였다. 그 경험에서 나오는 살기는...

    “히잉?!”

    “히이잉?!”

    상대의 말들이 겁에 질려서 통제를 잃도록 하기에 충분했다.

    그 다음은,

    퍽! 퍼벅! 빡! 뻐걱...!

    추진력을 잃은 기사들에게 사뿐히 다가가서 창을 후려치는 것이다.

    “아악?!”

    “컥~?!”

    그 상황이 끊임없이 반복. 나를 위협하는 변수는 마지막까지 없었다.

    “돌겨어격~!”

    “P를 위하여~!”

    두두두두-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나에게 도움을 주며 인연이 살짝 있었던 신성로마제국의 기사단.

    자신들이 믿는 신(神)의 후손을, 황족으로 알려진 나를, 죽일 기세로 달려들어도 괜찮은 걸까?

    그런 의문이 잠시 들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일이 없었다.

    (마상 시합에서 금메달~!)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강문수 선수가 멜랑시아 선수를 제치고 피메달을 확정 짓습니다...!)

    (국내 최초 피메달!)

    (올림픽 기사도가 끝나지 않았지만, 미리 축하드립니다!)

    피메달!

    송선영이랑 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함께해서 영광이었습니다...”

    마상시합 종료 후, 경기 내내 남자의 엉덩이를 빤히 쳐다보던 기사단장이 감명받은 얼굴로 말했다.

    “저도 즐거웠습니다.”

    “제대로 싸울 줄 아시더군요.”

    “그럴 리가요. 힘만 믿고 무작정 돌진했을 뿐인걸요.”

    “그런 것으로 해두겠습니다.”

    “하핫!”

    나는 괜찮을지 몰라도 뒤따라오는 기사단은 무적이 아니다. 포위되면 순식간에 깃발을 빼앗기리라.

    그래서 포위되지 않도록 이리저리 돌파구를, 빈틈을 끊임없이 개척했다.

    “폐하. 술을 하십니까?”

    “폐하라뇨. 그건 그냥...”

    “저희에겐 호칭이 곧 이름입니다. 그리고 지위도 겸합니다.”

    “아!”

    그러면 ‘여신(女神)’은 기사들 사이에서 얼마나 지위가 높은 거야?

    “나중에 밥 한번 사고 싶습니다. 폐하 덕분에 연금이 늘었으니까요.”

    “그거라면 언제든 연락 주세요.”

    공짜는 사양하지 않는다!

    * * *

    최고의 인기 종목인 마상시합이 끝나면 이때부터는 진짜 도박이다.

    왜?

    마상시합에서 무수히 많은 부상자가 발생하니까! 부상으로 기권하는 기사들이 상당히 많다.

    물론,

    “전부 덤벼...!”

    “내가 돌아왔다!”

    “다 찢어주마!”

    처음부터 마상시합을 포기하고 잘하는 종목만 준비한 기사도 당연히 있다.

    얌체라고 욕먹을 짓일까?

    아니다.

    대규모 전쟁을 방불케 하는 마상시합은 자리가 없어서 못 나갈 만큼 기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많으니까.

    흘러드는 돈도 많고!

    스포츠토토는 원칙상 ‘어떤 선수가 금메달일까요?’만 취급하지만, 사설 도박장은 꼴찌까지도 취급하기 때문이다.

    갑자기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푹 쉬세요.”

    “커윽...?!”

    최강자를 가리는 검투장 토너먼트.

    스포츠토토는 1위만 중요하지만, 사설 도박장은 모든 경기가 내기 수단이다. 그래서 적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열성적으로 응원하는 관객이 많았다.

    “좋았어!”

    “안 돼~!”

    “아아, 젠장...!”

    마상시합의 뒤를 이은 검투장 토너먼트는 1대1로 겨루는 진짜 싸움이다.

    살인(殺人)? 허용! 무죄!

    경기에서 사용할 무기도 자유지만, 기사의 품행에 어울리지 않는 편법은 엄격히 금지되어 있다.

    예를 들어 ‘독’이라던가? 총기 같은 현대문물도 당연히 용납되지 않는다.

    (경기가 또 2초 만에 끝납니다!)

    (사정없는 황제 폐하!)

    (귀신 잡는 손으로 사람을 상대하니 가히 일방적입니다!)

    (무섭습니다! 사람이 귀신을 잡으려면 저 정도는 돼야 하는 걸까요?!)

    (벌써 금메달이 보이는 것 같습니다!)

    (폐하께서 올림픽에 맡겨둔 금메달을 찾으러 가는 중이에요!)

    “수고하셨습니다.”

    “수고는 무슨...”

    나에게 2초 만에 패배한 기사가 굴욕감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당신은 귀신이 아닙니다. 저를 못 이기는 게 당연한 겁니다.”

    “귀신이라니...”

    “귀신이랑 싸워보신 적이 있습니까?”

    “본 적도 없는 귀신이랑 싸움은 무슨... 귀신이 아닌 인간은 널 이길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은 거겠지, 황제 폐하?”

    “네. 그러니 실망하지 마세요.”

    “...쩝. 분부대로 하겠나이다.”

    내 설명에 기분이 조금 풀린 기사가 과장되게 예의를 차리며 떠나갔다.

    대체로 이런 식이랄까?

    기사들이 어떤 무기와 전략을 들고 오든 내 상대가 되지 않았다. 기관총이나 화염방사기 정도는 들고 와야 가망이라도 있으리라.

    (결승전이 3초 만에 끝났습니다!)

    (황제 폐하의 예정된 승리!)

    (스포츠토토 커뮤니티는 벌써 축제와 장례식이 공존합니다.)

    (그렇습니다. 경기를 끝까지 안 봐도 안다는 거겠죠!)

    (기교가 중요한 기마전에 희망을 걸어보지만...)

    (양궁 금메달을 쓸어 담은 분이 말 위라고 못 쏠 것 같진 않군요.)

    (저도 공감합니다.)

    인기만큼 가장 다양한 종목과 금메달을 보유한 올림픽 기사도.

    그러나 내가 압도하지 못하는 종목은 단 하나도 없었다.

    ‘당연하지.’

    이 지구에 나보다 다양한 경험을 해본 사람은 없으리라.

    궁극의 아름다움을 자랑하는 여신(女神)이 내 앞에서 천박하게 엉덩이를 흔들며 춤추는 모습도 보았을 정도.

    이런 나를 정신 못 차리게 흔드는 송선영의 다리는 대체...

    (강문수 선수가 동계 올림픽에서 딴 금메달이 총 몇 개죠?)

    (듣고 놀라지 마십시오. 승마를 뺀 10가지 종목에서 총 39개를 획득했습니다!)

    (믿기지 않네요.)

    (종목마다 포상금과 연금의 차이가 있지만, 39개면 대체 얼마입니까?)

    (어렵게 생각할 것 없습니다. 직장인 월급을 일당으로 평생 받는다고 보시면 되니까요!)

    (와우~!)

    금메달의 숫자가 상당히 많은 승마를 놓치고, 피메달 점수용으로 간신히 1개를 딴 스키가 못내 아쉬웠다.

    “드디어 끝났네.”

    “아들, 수고했어요.”

    여자친구와 어머니가 반갑게 나를 맞이해줬다.

    푹!

    “...왜?”

    부드럽게 포용해줄 줄 알았던 송선영이 팔꿈치로 다짜고짜 내 옆구리를 제법 강하게 찔렀다.

    “갑옷을 왜 벗었어? 노출증? 관종?”

    “어... 음...”

    할 말은 많았지만, 그녀가 무엇 때문에 화가 났는지 잘 알기에 입을 다물었다.

    “놀랐잖아.”

    “죄송합니다.”

    “무모한 짓은 하지 마.”

    “어흠! 무모하지 않았어. 봐봐! 크게 다친 곳은 없잖아.”

    아예 안 다쳤으면 더 좋았겠지만, 수백kg이 허공으로 날아오를 만큼 거친 마상시합은 그게 힘들었다.

    “앞으로는 절대 안 돼.”

    “하지만...”

    “아빠가 되기 싫어?”

    “...뭐?”

    송선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하질 못했다.

    “네 아기가 생겼어.”

    “......”

    내 머리에 천둥이 쳤다.

    * * *

    학창 시절에 성교육은 받았다. 피임하는 방법도 잘 알고.

    그러나 딱 한 번, 아무런 생각 없이 욕망에 몸을 맡긴 적이 있었다.

    ‘첫날...’

    발끝부터 골반까지 그 무엇으로도 가리지 않은 송선영의 다리를 처음으로 보았던 역사적인 날!

    원초의 계획은 한 침대에서 손만 잡고 잘 생각이었는데, 술김에 힘입어 한 몸으로 합쳐지고 말았다.

    그런데 그 한 번으로?

    내 기분 탓인 줄 알았는데, 나는 정말로 강했다.

    “앞으로는 몸조심해.”

    “알겠습니다.”

    나는 군말 없이 수긍했다.

    ‘기분이 묘하네.’

    외견상으로 별 차이 없었다. 송선영의 허리는 여전히 잘록했고, 자궁이 있는 아랫배가 조금도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나도 최근에 알았어. 그 뒤에도 경기에 방해되지 않도록 비밀로 했지만.”

    “...진짜야?”

    믿기지 않아서 한 번 더 물어봤다.

    “봐. 아기의 사진.”

    “아...”

    “4mm쯤 했을 때 찍은 거야. 동영상도 있어.”

    “......”

    두근, 두근, 두근~♪

    그녀의 스마트폰에 아기의 사진과 심장 뛰는 동영상까지 있었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앞으로 위험한 행동은 금지야.”

    “네.”

    “위험의 기준은 일반인의 관점. 나를 불안하게 하지 마. 의사의 말로는 태교에 매우 안 좋대.”

    “네.”

    이것이 아기의 힘일까? 송선영의 잔소리에 군말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가 아빠가 된다고...?’

    법적으로 결혼해서 자녀를 갖고 가족을 꾸려도 될 나이이기는 하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전혀 되지 않은 상태에서 벌어진 일.

    심지어 결혼도 아직 안 했다!

    “강문수 씨! 이젠 안 가면 진짜 늦습니다...!”

    “...네. 갑니다.”

    관계자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수행원이 나를 다급히 불렀다.

    피메달 수상식.

    남들은 금메달 하나를 걸면서도 눈물을 글썽거리는데, 나는 2년에 단 한 명에게만 주어지는 메달을 따고도 별 감흥이 없었다.

    지금의 내 머릿속에는?

    아기!

    강문수 2세 혹은 송선영 2세로 불리게 될 새 생명에게 쏠렸다.

    “다녀와.”

    “응.”

    안 가고 좀 더 이야기를 듣고 싶었지만, 피메달 수상자가 수상식에 참석하지 않을 순 없잖은가?

    싫은 발걸음을 뗐다.

    ‘내 아이라니!’

    당연히 기쁘지만, 명백한 증거를 보고도 꿈처럼 믿기지 않았다.

    “축하합니다, 강문수 선수.”

    “올림픽을 멋지게 개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수상식장에서 주최국 대통령이 내 목에 직접 피메달을 걸어줬다.

    그 뒤에는?

    송선영에게 바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기념사진 촬영과 수상 소감 등의 행사 순서가 잔뜩 남아 있었다.

    ‘진정해.’

    송선영이 도망가는 건 아니다. 지금도 행사장에서 어머니랑 함께 나를 보며 대화 중이었다.

    “안녕하십니까. 강문수입니다.”

    “......”

    “......”

    수많은 시선과 카메라의 렌즈가 나를 주시했다.

    “늘 스마트폰이나 텔레비전으로만 보았던 피메달을 제 목에 직접 걸게 되어 대단히 영광입니다.”

    상투적인 얘기는 여기까지. 이렇게 말하면 멋지겠다고 생각해둔 게 있었지만, 상상도 못 했던 변수가 생기면서 전부 생략했다.

    그냥 솔직하게,

    “이 피메달은 내년에 태어날 제 아이에게 선물로 주고 싶습니다.”

    “아이?!”

    “아이라고?!”

    나만큼은 아니어도 사람들은 깊은 관심을 보냈다.

    “강문수 선수. 다음 올림픽에도 피메달을 노리실 겁니까?”

    저 기자는 아닌 모양이다.

    “그건 하늘에 맡기도록 하죠. 딸이면 귀신 잡는 본업에 전념하고, 아들이면 또 참가할 겁니다.”

    이유?

    딸이면 ‘라누벨라 14세’가 될 확률이 매우 높으니까. 아빠가 딸에게 밀리면 체면이 안 선다.

    아! 이 말을 깜빡했네.

    “선영아, 사랑한다. 얼른 결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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