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05화 (206/232)
  • 205화

    기사도의 인기는 몇 번을 강조해도 부족하지 않다.

    살인이 허용된 유일한 스포츠.

    과부를 양산하는 전쟁의 대안으로 등장한 게 스포츠고, 올림픽이었지만, 돌고 돌아서 원점으로 돌아왔다고 할까!

    기사도는 ‘필요악’이었다.

    군인, 용병, 전사, 살수, 무술가...

    P의 적성검사기에는 폭력성이 다분한 적성도 종종 튀어나오니까. 그런데 이 비율이 생각보다 높다.

    “싸워라!”

    “와아아아!”

    “죽여~!”

    이 사람들은 ‘무당’의 10배쯤 취업이 어려운데, 간신히 취업해도 울컥해서 직장 동료를 때리는 사례가 빈번하다.

    옛날에 태어났다면 시대를 풍미하는 영웅이 됐겠지만, 현대는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두르는 무역전쟁, 외교전으로 싸우기에 이들이 필요하지 않다.

    그러면 인생 포기?

    아니다.

    (불타는 것 같은 저 붉은색 갑주와 마갑이 보이십니까? 지난 올림픽에서 맹활약한 화염의 기사입니다!)

    “와아아!”

    “와아!”

    (상대도 만만치 않아요! 강하기도 하지만, 얼굴도 깡패인 흑기사! 오늘도 서비스로 투구를 벗은 채 입장합니다!)

    “꺅꺅!”

    “오빠아~!”

    (소개에 이분을 빼먹으면 큰일이죠! 적성은 나무꾼! 하지만 사람도 장작처럼 쪼개는 남자! 죽음의 나무꾼!)

    “쪼개버려!”

    “나무꾼의 힘을 보여줘!”

    이들에게 부와 명예 그리고 죽음을 모두 선사해주는 올림픽 기사도.

    정신과 약을 꾸준히 먹지 않는 이상, 죽을 때까지 함께해야 하는 폭력성을 해소할 수 있는 유일한 탈출구다. 사회에 억지로 적응하려다가 사고 치기 전에 싹 몰아넣는다고 할까!

    또한, 이 폭력성은 남자들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철퇴의 공주가 옵니다! 그녀 앞에서 얼굴을 자랑하면 소리 없이 철퇴가 날아온다고 하죠!)

    “예쁘다!”

    “휘이~!”

    (강철의 성녀가 손을 흔드네요! 아픈 자에게 영원한 휴식을! 그녀가 자주 하는 말입니다!)

    “안 아파요!”

    “성녀! 성녀...!”

    (오오! 지난 올림픽의 최강자, 가시의 여신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갑주에 돋아난 가시들이 흉흉합니다!)

    “와아아아!”

    “멋지다!”

    코흘리개 신인을 제외한 모든 ‘기사’에게는 개성에 맞는 별명이 있다.

    단, 여성들은 오해하면 안 된다.

    공주, 여왕, 부인, 성녀, 여신...

    호칭만 보면 굉장한 미녀 같지만, 갑옷 안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여자랑 전혀 다른 생명체가 들어있다.

    ‘이게 현실이지!’

    팔다리가 나뭇가지처럼 가녀리고 매끈한 여성이 잘 싸우는 건 판타지에서나 가능한 허구다.

    그 증거로, 기사도의 인기가 높아질수록 판타지 문학 작품의 수요가 감소한다는 연구 결과도...

    (올해가 처음인 견습기사지만, 이분을 소개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별칭을 굳이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네! 존재만으로도 이미 있으니까요! 그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족이며, 올림픽의 황제!)

    (올림픽 역사상 가장 많은 금메달을 단시간에 정복한 황제, 강문수 폐하가 입장하십니다...!)

    “와아아아!”

    “폐하! 믿습니다!”

    “황제 폐하~!”

    해설진의 과도한 허세에 웃음보가 터질 뻔했지만, 여러 꿈속에서 여러 감투를 써본 몸이다.

    올림픽의 황제?

    그 정도면 내가 썼던 감투 중에서 중위권은 될 것 같다.

    “가자.”

    “푸르르릉~!”

    무거운 나를 태운 채 오랫동안 달릴 수 있는 야생마를 끌며 마상 경기장 한복판으로.

    환호하는 사람들.

    내 덕분에 스포츠토토로 재미 본 사람들일 것이다.

    “황제라니...”

    “견습 주제에....”

    내 인기에 아랑곳하지 않는 기사들의 용맹한 태도가 썩 마음에 들었다.

    ‘이래야지!’

    올림픽 검도는 솔직히 시시했다. 겁에 질린 얼굴로 머리를 방어하기 급급한 검도선수들.

    피구는 또 어땠는가? 동료가 공에 맞고 실신하는 광경을 본 뒤부터 초식동물처럼 전의를 상실했다.

    좀 더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깡패들보다 훨씬 낫네!’

    약자 앞에서만 강해지는 겁쟁이들만 상대하다가 드디어, 제대로 된 싸움꾼들을 만난 기분이다.

    그런 이들에게,

    “무운을 빕니다.”

    마지막까지 그들의 용기와 투지가 계속되길 간절히 빌었다.

    * * *

    기사도는 올림픽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답게 금메달 개수도 많다.

    ...스포츠토토의 수익과 종목의 숫자가 비례한다는 과학적인 근거인 셈.

    그래서 나는 전부 참가한다.

    일기토, 마상시합, 검투장, 공성전, 서바이벌, 토너먼트, 수상전...

    인기에 편승해서 너무 많은 종목을 만든 것 같지만, 폭력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욕구를 충족하려면 이것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물론,

    (첫 경기, 마상시합이 시작됩니다! 각국의 기사단이 준비에 들어갑니다.)

    그중에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은 가장 규모가 커서 실제 전쟁을 방불케 하는 마상시합!

    가장 맛있는 건 마지막에 먹는 법이지만, 이미 기사도 자체가 올림픽 마지막을 장식하니까. 여기서 마지막의 마지막으로 또 미루는 건 양심이 없어서 보통은 첫 번째 종목으로 선정된다.

    “히이잉!”

    “푸르릉!”

    다그닥, 다그닥.

    육중한 군마를 탄 수많은 기사가 광활한 평원에 모습을 드러냈다.

    무기는 모두가 랜스(장창).

    그 외의 규칙은 간단하다. 타국의 기사단이 보유한 깃발을 가장 많이 빼앗으면 바로 금메달!

    그리고 무언의 규칙이 있다.

    “유럽 연맹에서 발언권이 강한 제국 덕분에 협상이 잘 풀렸습니다. 저희는 유럽 연맹이랑 거리를 두면서 아메리카 연맹부터 쓰러트릴 겁니다.”

    초반에는 대륙끼리 편을 먹는다.

    대륙(인종)의 자존심부터 지킨 후에 승자를 가린다고 할까?

    아시아 연맹은 기마민족의 후예.

    유럽 연맹은 기사의 본고장.

    아프리카 연맹은 전사의 영혼.

    ......

    대륙마다 자신들이 가장 잘 싸우는 혈통이란 근거와 자부심이 있다.

    현실은?

    마상시합은 유럽의 국가가 금메달을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

    “달리 주의사항이 있습니까?”

    “다치지 않을 것. 그리고 빨리 지치지 않을 것.”

    올림픽 기사도에 4번째 참가 중인 기사도 국가대표 선수의 주장을 맡은, 기사단장이 말했다.

    4번째.

    성적에 상관없이, 무려 4번이나 연속으로 살아남았다는 소리이기에 그 자체만으로도 실력자란 의미다.

    “알겠습니다.”

    마상시합은 눈치 싸움이기도 하다.

    기사단끼리 제대로 맞붙으면 피해가 엄청나기에 2경기, 3경기는 불가능.

    그래서 모든 기사단을 몰아넣은 이 평원 위에서 금메달부터 꼴찌까지 단 하루 만에 결정된다.

    두두두-

    하늘에는 생중계를 위한 헬리콥터와 드론들이 날아다니고 있었다.

    기사도의 경기 자체는 중세를 배경으로 하지만, 중계방송에 동원된 기술은 현대과학이 아니면 무리.

    지금이기에 가능한 스포츠다.

    ‘음?’

    두두두두-

    땅이 진동하는 게 느껴졌다.

    “단장! 뭔가 이상합니다!”

    “...당장 달려! 배신이다! 흰둥이만도 못한 이 새끼들이...!”

    경험 많은 기사단장이 다급히 외쳤다.

    “이랴!”

    “히이잉~?!”

    나는 처음이라서 상황이 어떻게 굴러가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시키는 대로 달릴 뿐.

    “앞에도 옵니다!”

    “포위인가!”

    “허! 같은 민족은 무슨!”

    “창을 들고 삼각대형으로! 창녀 궁둥이처럼 뚫어버린다...!”

    “네!”

    걸쭉한 욕설과 폭언이 난무하는 전쟁 같은 스포츠.

    딱 봐도 심각한 상황이었지만, 나는 투구 안쪽에서 실실 쪼개며 웃었다.

    ‘큰일이네.’

    나도 이쪽 취향인 것 같다.

    두두두-

    이변을 눈치챈 헬리콥터가 가까이 따라붙으면서 해설진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배신입니다! 배신이에요!)

    (아시아 연맹의 분열!)

    (이건 분열이 아닙니다! 저희만 노리고 있어요!)

    (다른 연맹보다 우리나라가 위험하다는 뜻이겠죠!)

    (위기입니다...!)

    (경기 시작 5분 만에 탈락할 위기에 처했습니다!)

    아시아의 다른 국가들이 우리를 협공하기로 몰래 단합했다는 것 같다.

    흔치 않은 상황.

    보통은 다른 연맹이랑 싸우고 지쳤을 때를 노려서 뒤통수치는 것이 상식(?)이기 때문이다.

    지금처럼 쌩쌩할 때를 노리는 건 같이 죽자는 거나 다름없잖은가?

    이건 무언가가 있다.

    아무튼,

    “으아아아!”

    “우워어어!”

    쾅! 콰직! 콰당!

    양보하거나 물러서지 않고 맹렬한 기세로 돌진한 두 기사단이 충돌했다.

    “으아악~?!”

    “커억~?!”

    무거운 철갑을 두른 군마와 기사가 허공으로 튕겨 날아가는 광경은 언제 봐도 기이하면서도 황홀했다.

    찌릿찌릿!

    여기는 꿈이 아닌 현실이란 사실이 나를 더욱 자극했다. 여기서 죽으면 진짜 끝이니까. 절벽 위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기분이다.

    “피해는?”

    “흠집 난 정도입니다!”

    “좋아!”

    흠집이라고 하기에는 낙마한 부상자가 많았지만, 이들의 전의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강훈아, 보고 있냐?’

    이게 진짜 상남자란 거다.

    “단장! 뒤에!”

    “쉴 틈을 안 주는군! 갑옷을 벗고 속도를 올려서 어떻게든 따돌린다!”

    휙~

    투구부터 마갑(馬甲)까지 무게가 나가는 것들을 하나씩 해제했다.

    우리를 열심히 추적해오는 아시아 연맹을 따돌리려면 이 방법밖에 없긴 하지만, 자신의 생명줄을 버리는 무모한 결정인 건 틀림없었다.

    “단장님.”

    “지금은 바쁩니다.”

    대화할 시간이 없다는 건 동의한다.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가장 먼저 죽는 자리입니다.”

    “그건 곤란합니다. 결혼하기 전에는 죽을 수 없거든요.”

    “마음대로 하십시오.”

    “네.”

    나는 기사단 대열의 선두에 섰다. 적의 선봉이랑 가장 먼저 충돌하기에 생존율이 극히 희박한...

    그러나 나는 여길 자처했다.

    툭, 휙, 투둑.

    여기에 더해, 유연성과 민첩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투구와 갑옷도 벗었다.

    “너도 답답했지?”

    “푸르르~!”

    벌써 지치기 시작한 말의 갑주를 몽땅 벗겼다.

    마지막으로 안장과 고삐까지!

    이젠 내 손에 들린 창이 유일한 무기이자 방어책이었다.

    “무슨 짓을...”

    “당연히 돌격입니다.”

    “......”

    저들에게는 내가 무모한 자살희망자처럼 보이겠지만, 개미 떼처럼 몰려오던 검귀들이랑 비교하면 이건 위기 축에도 들지 못한다.

    척!

    전방에 기사단이 보였다.

    “조금만 버텨. 곧 쉬게 해줄게.”

    “히이이잉!”

    “영원히.”

    “히이이잉?!”

    나의 노력으로 투지가 되살아난 야생마의 속도가 점점 올라갔다.

    (너무 무모합니다!)

    (눈 뜨고 도저히 못 보겠습니다!)

    (황제가 선두! 우회하거나 항복할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저대로 들이박을... 허엇?!)

    “느려!”

    나와 야생마를 노리며 일제히 찔러오는 창을 잔가지처럼 옆으로 쳐냈다.

    “......”

    “......”

    그 한순간에 벌어진 공방에 기사들은 경악한 얼굴.

    내가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의 세계에서 자주 보았던 멋진 표정들이다.

    “하핫!”

    원래는 이대로 서로에게 인사하며 지나쳐가야 정상이지만, 나는 그들을 그냥 보내줄 마음이 없었다.

    부우우웅-

    창을 휘둘렀다.

    (황제가 또 저질렀습니다!)

    (렌스는 찌르는 용도일 텐데요?!)

    (저 무거운 쇳덩이를 가벼운 나뭇가지처럼 휘두릅니다!)

    (오! 맙소사! 창을 탈취!)

    (양손에 창을 하나씩! 한 손으로 창을 쥐었습니다! 역도 신기록은 장식이 아니었음을 제대로 보여주네요!)

    “이건 대체...”

    헬리콥터에서 내려다보는 해설진만큼이나 경악한 기사단장.

    나는 웃으며 말했다.

    “역할 분담을 할게요. 여러분은 깃발을 지켜주세요. 그동안 제가 깃발들을 빼앗아 오겠습니다.”

    참 쉽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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