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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204화 (205/232)
  • 204화

    (길고도 길었던 동계 올림픽도 후반전에 접어들었습니다.)

    (네. 남은 종목은 다섯!)

    (사격, 역도, 기사도, 피구, 스키. 하지만 오늘, 피구가 끝납니다.)

    (그리고 저는 피구가 기사도 못지않은 무서운 스포츠란 사실을 오늘 깨달았습니다.)

    “으어억~?!”

    “커윽~?!”

    내 공을 받아내겠다는 발칙한 생각을 한 피구 선수들이 비명을 지르며 픽픽 쓰러졌다.

    피구.

    공으로 사람을 패는 경기.

    초등학생 시절에 말랑한 공으로 체육 시간에 자주 했었는데, 그때는 친구의 머리를 공격하지 말라는 규칙이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에선?

    빡!

    “아악?!”

    어디를 맞춰도 무죄다.

    애초에 보호장비를 착용하기에 큰 통증은 없지만, 그것도 위력이 상식 범위 안일 경우고.

    맨손으로 늑대를 잡는 내 손에 걸리면 말랑한 공도 흉기로 변한다.

    (저 움직임은 대체 뭔가요?! 공이 전혀 안 보여요...!)

    (수제 대포알입니다! 타격음이 무시무시합니다!)

    (더블킬!)

    (도저히 막을 수 없습니다!)

    (쿼드라킬!)

    (학살이에요~! 강문수 선수가 미쳐 날뛰고 있습니다!)

    (펜타킬!)

    (그가 피구장을 지배합니다! 대적할 선수가 없어요!)

    (마무리~!)

    (내야수가 순식간에 전멸하면서 결승전이 단 12분 만에 끝났습니다!)

    제법 역사가 깊은 피구 종목은 장소에 따라 3가지 종목으로 나뉜다.

    평지, 모래.

    평지는 우리가 흔히 하는 피구고, 모래는 이동의 제약을 받아서 회피가 힘들다는 특징이 있다.

    덥석!

    하지만 제자리에서 어떤 공이든 잡을 수 있다면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다.

    “아...”

    “괴물...”

    나를 어떻게든 탈락시켜야 희망이 보인다는 사실을 잘 아는 피구 선수들이 부단히 애썼으나, 예선전을 포함해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빨리 끝내고 호텔로~!’

    시간은 금이고, 오늘의 나는 또 강하다!

    (쿼드라킬!)

    (펜타킬!)

    (또 마무리~!)

    (피구장의 지배자!)

    다른 올림픽 종목도 내가 선전하긴 했지만, 피구만큼 빨리 끝난 경기는 없었던 것 같다.

    “수고했어.”

    “바로 갈까?”

    “늑대가 다 됐네.”

    “하핫...”

    바쁜 동계 올림픽 일정을 소화하면서도 내가 즐거울 수 있는 이유. 여자친구가 밤에도 곁에 있기 때문이리라.

    음란마귀가 득실거리는 이유이긴 하지만, 내 나이에 선비 같은 사고라면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뜻이다!

    (피구가 이렇게 빨리 끝나는 스포츠가 아닐 텐데요.)

    (네. 심리전과 협력, 체력 분배, 그리고 감독의 판단과 역할이 매우 중요하기에 빨리 끝나지 않습니다.)

    (맞습니다. 정직하고 평범한 공을 못 잡는 선수는 없으니까요.)

    피구는 시간제한이 없다. 학교에서 피구를 해봤다면 알 것이다.

    마지막 한 명을 못 잡아서 체육 시간 끝날 때까지 피구 경기가 질질 끌려가는 상황을!

    선수를 맞추더라도 공이 땅에 떨어져야 탈락시킬 수 있어서 쉽지 않다. 다른 선수가 공을 잡아버리는 경우가 제법 허다하니까!

    그래서 현란한 공방이 오가도, 철벽처럼 견고해서 좀처럼 탈락이 안 나온다.

    반면에 나는?

    원샷, 원킬!

    그 철벽을 힘으로 뚫어버리기에 피구 경기가 빨리 끝날 수밖에 없다.

    (모든 선수가 열심히 했습니다만...)

    (강문수 선수가 돋보이는 경기였다는 건 부정할 수 없겠네요.)

    (그렇습니다. 애초에 피구 감독님도 강문수 선수를 중심으로 전술을 짠 것처럼 보였습니다.)

    (네. 거의 모든 공격 기회가 그에게 집중됐었죠.)

    (그게 결과적으로 승리를 앞당긴 것 같습니다.)

    (하이라이트 장면, 함께 보시죠.)

    내일은 사격이다.

    * * *

    (안녕하십니까, 국민 여러분. 여기는 올림픽 사격장입니다!)

    (이번에야말로 강문수 선수가 힘들지 않을까요?)

    (전문가들도 힘들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방아쇠를 강하게 당긴다고 총알이 더 빨라지진 않는다는 이유입니다.)

    (비슷한 전문가를 양궁에서도 보았던 것 같은데요...)

    (하하! 저도 같은 기분입니다.)

    올림픽 사격.

    구시대의 사격이 선수의 기량에 전적으로 의존했다면, 현재는 그 나라의 방위산업체가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척도가 됐다.

    왜?

    총기에 제약이 없다.

    (첫 종목은 저격입니다. 강문수 선수가 금메달을 노리고 싶다면, 얼마나 좋은 총기를 보유했느냐가 관건입니다.)

    (맞습니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대신 조준해주니까요!)

    그래서 사격장에선 선수 같지 않은 사람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기술자, 과학자, 배불뚝이 아저씨...

    전혀 운동선수 같지 않은 사람이 올림픽 국가대표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는 유일한 종목이다.

    또한, 자국의 기술력을 자연스럽게 홍보할 수 있기에 정부에서 가장 신경 쓰는 종목이기도 하다.

    사격, 저격, 야전...

    제한 시간 안에 분야별로 뛰어난 총기로 교체하며 멀리 떨어진 표적을 전부 명중시켜야 한다.

    (경기가 시작됩니다.)

    탕! 탕! 탕! 탕...!

    사격장에 발포 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오오! 좋아, 좋아!”

    “허! 제법이군. 그러나...”

    “나에게는 안 되지.”

    양궁이 구시대를 대변한다면, 사격은 현시대의 기술력을 보여준다.

    인공지능을 활용한 자동조준은 기본!

    선수는 표적을 설정하고 방아쇠를 당기기만 하면 된다. 나머지는 인공지능이 해주니까.

    (강문수 선수. 쉽지 않아요.)

    (매우 어렵습니다! 사격은 아메리카가 꽉 잡고 있습니다!)

    국가기술력에서 밀리는 까닭에 압도적인 성적은 나오지 않았다. 하지만 실망하기에는 아직 이르다.

    내 노림수는 애초에 금메달.

    딸 수 있으면 전부 따고 싶지만, 내 상대가 인간이 아닌 인공지능이라서 쉽지 않았다.

    미세한 바람의 세기까지 계산하는 슈퍼컴퓨터가 정조준해주는데, 못 맞추면 그게 더 이상하지 않겠는가?

    금메달은 하나만 따면 된다.

    (강문수 선수, 본선에서 탈락했음에도 표정이 나쁘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노리는 듯한데요.)

    (그 무언가를 우리는 예상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네. 강문수 선수가 가장 잘할 것 같은 종목이죠.)

    선수보다 나라의 기술력이 압도적으로 중요한 사격에서, 유일하게 선수가 중요한 종목이 있다.

    컴퓨터 금지!

    모든 첨단기기를 무력화하는 전자기펄스에 당한 상황을 가정한 종목으로써, 구시대 사격에 가장 근접했다.

    “흐음...”

    “흠...”

    총기에 설치된 초소형 컴퓨터의 조준 보정에 의존하던 선수들의 표정이 처음으로 진지해졌다.

    생각해보라.

    방아쇠만 당기면 적이 죽는 총.

    이런 기능이 잔뜩 있다면 훈련이, 선수가 필요 없으리라.

    (저건 뭔가요?!)

    (쌍총입니다! 올림픽에 쌍총이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다른 선수들이 엎드려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 나는 미리 받은 여분의 총으로 난타!

    탕! 탕! 탕! 탕! 탕...!

    ‘좋아.’

    인공지능이 빠진 시점에 사격 선수들은 내 적수가 안 됐다.

    탕~!

    올림픽 사격은 금메달 하나로 만족했다.

    (압도적입니다!)

    (저는 구시대의 서부영화를 보는 줄 알았습니다!)

    (쌍총! 요즘 아이들의 로망 아닙니까?)

    (저도 놀랍습니다. 올림픽에서 양손의 총을 보게 될 날이 올 줄은...)

    (총기 휴대가 엄격한 우리나라인데, 어디서 배웠는지 신기합니다.)

    (사격만이 아닙니다. 모든 종목이 신기합니다.)

    탕! 탕! 탕! 탕~!

    해설진들이 잡담하는 사이에 사격이 끝나고, 나는 금메달 하나를 목에 걸며 사격을 마무리했다.

    * * *

    사격의 뒤를 이은 스키, 역도 또한 큰 변수 없이 금메달을 딸 수 있었다.

    스키에서 하나.

    역도에서 셋.

    (올해의 동계 올림픽은 세계신기록이 많이 바뀌었습니다.)

    (네. 맞아요. 강문수 선수가 대청소하듯이 싹 교체했지요!)

    (다른 종목들도 어렵지만, 역도는 영원히 안 깨질 것 같습니다.)

    (그가 강한 이유를 확연하게 볼 수 있는 기회의 장이었죠.)

    (우리나라의 자랑입니다!)

    해설진들의 잡담을 들으면서 동계 올림픽의 마지막 장소로 향했다.

    기사도(騎士道).

    올림픽의 모든 종목을 통틀어서 내가 가장 기대하던 종목이다.

    이게 나만의 생각일까?

    아니다.

    기사도는 남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올림픽 스포츠로, 100년 넘게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심지어, 남성보다 폭력을 싫어하는 비율이 높은 여성들의 올림픽 종목 인기 순위에서도 무려 3위! 비실비실한 꽃미남보다 전사 느낌의 남성미를 좋아하는 여성들이 열광하기 때문이다.

    덤으로,

    “오오... 역시, 기사도네. 배당금의 자릿수가 달라.”

    가장 인기가 많은 종목답게 스포츠토토의 인기도 하늘을 찌른다!

    “자신 있어?”

    같은 자동차를 이용해서 함께 이동 중인 송선영이 물었다.

    내 대답은?

    “물론!”

    오늘의 나는 지구에서 가장 강한 남자다.

    “방심하다가 다치지 말고.”

    “당연하지.”

    다쳐서 병원에 입원하면 그녀랑 밤을 함께 보낼 수 없다. 그건 내 인생을 통틀어 가장 손꼽히는 비극이 아닐까!

    절대로 안 다칠 것이다.

    “피메달도 코앞이네.”

    “후후! 걱정할 것 없어.”

    승마에서 놓치는 바람에 아슬아슬하긴 했지만, 기사도만 무사히 넘기면 피메달 확정이다. 이미 멜랑시아 선수보다 1점 앞서는 상황이니까!

    그녀도 기사도에 출전하긴 하지만, 똑같이 금메달을 딴다면 1점씩 똑같이 올라서 피메달은 내 차지가 된다.

    “...약속, 잊지 말고.”

    “물론이지!”

    송선영이 허락한 날부터 나도 그 순간을 간절히 기대하고 있다.

    스포츠토토도 성공이고!

    물론, 모두가 나처럼 성공한 건 절대 아니다. 내가 돈을 벌어들인 만큼 누군가는 손해를 봤다는 뜻이니까.

    「이■■: 너, 어디 가서 스포츠 전문가라고 하지 마라.」

    「박■■: 양궁은 힘이 필요 없다며? 대가리에 화살 맞고 싶냐?」

    「최■■: 미쳐! 승마 빼고는 맞춘 전문가가 없네!」

    「김■■: 배구 감독. 의문의 1승.」

    ......

    스포츠토토 커뮤니티는 나 때문에 초상집, 초토화된 상황이었다. 나의 금메달을 맞춘 전문가가 없었으니까!

    그래도 올림픽 배구 채널이랑 비교하면 매우 신사적인 편.

    여긴 ‘승부 조작’ 논란이 활활 불타면서 밤새도록 욕설이 난무하고 있다.

    “...재미있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실실 웃는 나를 여자친구가 어이없게 쳐다봤다.

    “내 얘기를 하니까.”

    “의외네. 네가 정치인처럼 관심받고 싶어 하는 줄 몰랐는데.”

    “흠... 다시 생각해보니, 돈을 벌었기 때문인 것 같아.”

    그 증거로, 하계 올림픽 때는 한 푼도 벌지 못해서, 스포츠토토 앱을 쳐다보지도 않았으니까.

    지금은 송선영이랑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달고 사는 것 같다.

    달칵.

    차를 세운 경호원이 문을 열어줬다.

    “응원할게.”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열린 문을 통해서 기사도의 첫 경기인 마상시합이 열리는 원형경기장으로 당당히 걸어갔다.

    “와아아아!”

    “강문수 선수~!”

    “오빠! 사랑해요!”

    “또 이겨줘!”

    응원해주는 사람들에게도 가볍게 손을 흔들거나 고개를 숙이며 보답할 때,

    “강문수 씨.”

    자연스럽게 다가온 수행원이 내 귓가에 작게 말했다.

    “후보를 좁혔습니다.”

    길게 말하지 않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알아들을 수 있었다.

    고속도로에서 나와 송선영의 목숨을 노린 악당!

    특히, 기사도에 출전해서 승부 조작하라고 협박하면서 송선영도 함께 노린 짓은 절대 용서할 수 없다.

    “꼭 찾아야 합니다.”

    “네.”

    “실패하면... 불안해서 이민 갈지도 모릅니다. 제국의 황궁은 안전하니까요. 무슨 말씀인지 아시겠죠?”

    나는 조상님처럼 인류애가 넘치지 않아서 용서할 수 없다.

    “물론입니다.”

    수행원이 바짝 긴장한 얼굴로 떠났다.

    “자, 이제...”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서 익힌 기사도를 현대인들에게 가르쳐주러 가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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