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02화 (203/232)
  • 202화

    (아아! 또 시작됐습니다!)

    (강문수 선수, 점수를 허용하지 않아요! 공이 바닥에 닿질 못합니다!)

    (못 받아내는 공이 없어요!)

    배구의 규칙은 간단하다.

    공이 상대편 코트 바닥에 닿도록 악랄한 공을 주고, 반대로 아군 코트에 안 닿도록 열심히 방어하면 된다.

    그 외에는?

    똥을 싸지 않는 동료 7명을 잘 만나길 기도하자!

    (또 옵니다...!)

    (강문수 선수~!)

    (스매시~!)

    터엉~!

    공을 터트릴 기세로 후려쳐서 상대편 네트 안쪽에 내리찍었다.

    막아내는 건 불가능.

    배구 선수의 반응속도는 일반인을 가볍게 추월하지만, 내 공격은 그 이상으로 강력하다.

    ‘오늘의 나는 더 강하다!’

    터엉~!

    송선영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서라면 올림픽 배구가 피범벅이 돼도 상관없다!

    “하아...”

    “아아아...”

    움직임이 너무 솔직해서 스매시를 예상하고도 막지 못한 상대편 선수들의 탄식과 한숨이 이어졌다.

    변수 따위 없는 배구 시합.

    나의 존재가 실점을 막고 득점만 끊임없이 토해냈다.

    (결승전이 맞나요?)

    (전의를 완전히 상실했습니다!)

    (이미 2승 0패.)

    (고통의 시간만 계속되고 있어요!)

    (스포츠토토는 이미 결과가 나왔다는 듯이 축배와 욕설이 난무합니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모습. 아름답습니다.)

    (하지만 이미 기울어진 이 경기는 누가 와도 못 뒤집습니다!)

    “좋아.”

    유감스럽게도 우리나라는 배구를 잘하지 못한다.

    역대 최고 성적이 4위!

    메달을 못 땄음에도 잘했다며 국민 영웅으로 대접해줬을 만큼 배구의 역사는 먹구름이 가득하다.

    그러나,

    “와아아아!”

    “와아아!”

    나에게 동료의 실력은 중요하지 않다.

    삐~!

    (상대편 선수의 부상으로 경기가 잠시 중단됐습니다.)

    (온몸을 날려 강문수 선수의 스매시를 받아낸 말랑바토르 선수! 머리에 공을 맞고 실신했습니다!)

    (받아도 받아낼 수 없는 그의 무시무시한 공!)

    (에이스의 이탈로 감독의 표정이 매우 좋지 않습니다.)

    (경기, 속행합니다!)

    사소한 문제가 있었지만, 이대로 금메달이 확정될 듯했다.

    물론,

    “......”

    “......”

    동료팀의 표정도 좋지 않았다. 누가 보더라도 나 혼자서 경기를 주도하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어쩔 수 없다. 상대는 정통적으로 배구를 잘하는 강국이고, 우리나라는 순위권 밖에서 맴돌던 잔챙이. 내가 없었으면 결승전이 아닌 예선전에서 진즉 탈락했을 것이다.

    (모든 실점은 어처구니없는 자책. 하지만 강문수 선수는 아랑곳하지 않고 경기를 이끌어갑니다.)

    (강문수 선수만 즐겁고, 모두가 죄인처럼 얼굴을 들지 못합니다! 저 7점은 전부 자책점이거든요!)

    “마지막까지 힘냅시다!”

    “아, 네.”

    “네에...”

    “......”

    의욕이 없구먼!

    뚜렷한 실적도, 실력도 없으면서 나에게 건방진 태도를 보였던 배구 대표팀 주장은 첫 경기 뒤부터 완전히 침묵.

    요구대로 실력을 보여달라고 해서 보여줬더니 저 모양이다.

    삐-!

    (대표팀 감독이 선수를 교체합니다.)

    (바꾸는 선수는... 헉!)

    (강문수 선수가 나갑니다.)

    “마지막까지 치졸하네.”

    결승전이고, 다 이긴 상황에서 지치지도 않은 나를 뺀다고?

    그 의도가 훤히 보였다.

    “강문수 선수. 수고하셨으니 이젠 다음 종목을 위해 쉬십시오.”

    “수고라... 제 수고를 안다면 이런 짓을 할 수 없는데요.”

    “...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습니다.”

    다른 종목의 국가대표 감독들이 내 앞에서 까불다가 어떻게 됐는지 잘 알기에 태도는 매우 정중했다.

    하물며 제국의 황족으로 알려진 몸.

    나를 모욕했다가 국제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기에 말을 조심하는 편이다.

    “금메달만 확실하게 가져오십시오.”

    “강문수 선수가 수고한 사실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지만, 저희가 결승전까지 올라올 수 있었던 건 모든 선수의 기량이 뛰어난 덕분입니다.”

    “보면 알겠죠.”

    “......”

    나는 2대0으로 앞서고 있는 결승전을 감독 옆에 앉아서 조용히 지켜봤다.

    탕! 텅! 퉁! 삐~!

    솔직히 좀 짜증 났지만, 금메달만 딸 수 있으면 내가 나가도 상관없다.

    ‘그게 일반적이긴 하지.’

    피메달을 노리는 선수들은 자신의 종목이 아닌 경기에서는 발만 살짝 담갔다가 바로 빠진다. 대표팀에 민폐를 끼치지 않기 위해.

    후보선수도 금메달을 주기에 각국에서 애용하는 편법이다. 나처럼 열심히 뛰는 경우가 특이한 경우고.

    “좋았어!”

    “1점만 더!”

    “멋져!”

    내가 강제로 떠나면서 배구장에 활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다만,

    “몸을 던져!”

    “네가 거길 왜 가!”

    “자리를 지켜!”

    우리나라 대표팀의 활력은 매우 안 좋은 방향으로 살아났다.

    순식간에 따라잡힌 점수.

    상대편은 배구 세계 1위로 불리는 에이스, 말랑바토르 선수가 빠졌음에도 압도적인 기량을 보여주고 있었다.

    삐!

    “해냈다!”

    “이길 수 있다!”

    “잘했어~!”

    3경기에서 내가 교체되자마자 역전당하면서 순식간에 2대1이 됐고, 이 희망의 불씨를 절대 놓치지 않겠다는 기세로 밀어붙여서 2대2까지...

    망했다.

    (세상에 이런 경기가 또 있을까요? 감독의 판단 실수!)

    (강문수 선수가 빠지자마자 대표팀이 모래성처럼 무너집니다!)

    (하지만 한 번 교체된 선수는 다시 경기장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어떻게 책임지실 겁니까?”

    “강문수 선수. 아이처럼 보채지 마십시오. 아직 경기는 안 끝났습니다.”

    “두고 보죠.”

    “......”

    그러나 나에게 보채지 말라던 감독의 상태도 점점 나빠졌다. 5경기 전의 쉬는 시간에 선수들을 닦달할 만큼 조바심을 냈으니까.

    “이기자!”

    “아자!”

    “힘내자!”

    그러나 뚜렷한 기량 차이는 시간이 지난다고 메꿀 수 있는 게 아니다.

    2대3.

    역전을 허용했다.

    “감독님?”

    “...강문수 선수 탓에 대표팀이 위축되어 실력을 발휘하지 못한 겁니다.”

    “당신이 저를 교체한 탓이라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으시는군요?”

    “당연히 아닙니다.”

    “사람들도 당신의 말을 믿어주길 기대해보죠.”

    “...이젠 몸이 풀렸을 겁니다.”

    하지만 내 탓으로 치졸하게 떠넘기기에는 정황이 너무 뚜렷했다.

    바보가 아닌 감독도 그 사실을 매우 잘 알기에 표정도 좋지 않았다. 사형 선고가 내려지기 직전인 죄인처럼.

    2대4.

    이어지는 7경기에서 끝내 패배하고 말았다.

    은메달 확정.

    그리고 은메달은 아무리 많아도 피메달에 도움이 안 된다. 스포츠토토에서도 취급하지 않고!

    (이게 무슨 일인가요!)

    (졌습니다!)

    (금메달이 눈앞에서 사라졌습니다!)

    (감독의 판단 실수로 강문수 선수가 처음으로 금메달을 놓칩니다.)

    (강문수 선수, 굳은 얼굴로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

    “어이없게 돈 날렸네.”

    이미 다른 종목에서 금메달을 싹쓸이한 덕분에 스포츠토토는 본전 회수가 끝났지만, 잃지 않아도 될 돈을 허공에 날렸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덤으로 최초의 패배!

    내 올림픽 경력에 처음으로 ‘은메달’이라는 찜찜한 흠집이 생겼다.

    “수고하셨습니다.”

    패배가 확실해진 순간부터 안절부절못하던 감독이 도망치듯 배구장을 떠나려 했다.

    그러나,

    “감독님. 당신을 승부 조작 혐의로 체포합니다.”

    검은색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감독을 붙잡았다.

    “스, 승부 조작?!”

    “배구 협회도 수사 중입니다. 지금부터는 정부에서 파견한 임시 감독이 총책임을 맡을 겁니다.”

    “말도 안 돼...!”

    “피해 규모가 상당합니다. 상황 판단이 아직 안 되는 모양인데...”

    그들은 스마트폰으로 친절하게 뉴스 생방송을 보여줬다.

    (무능한 자에게 막중한 자리를 맡긴 책임을 통감하며 사의를...)

    (승부 조작의 정황이 뚜렷해지자, 체육부 장관은 곧바로 대국민 사과를...)

    (예기치 못한 이번 참사로, 배구 관계자들도 일제히 옷을...)

    (배구 국가대표 감독의 이해할 수 없는 행동에 승부 조작이란...)

    “아...”

    “이제 이해가 되셨습니까?”

    “......”

    감독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거액이 걸린 올림픽 결승전에서 승부 조작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는 잘 아시리라고 봅니다.”

    “아니야! 절대로...!”

    “그건 법정에서 말씀하십시오.”

    “아니라고~! 강문수 선수! 제발! 제발 살려주세요~!”

    “......”

    감독이 미치지 않았다면 승부 조작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추하게 애원하는 그를 깔끔히 무시했다.

    “강문수 씨.”

    “네.”

    “정말 죄송합니다. 다시는 이런 터무니없는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

    “그건 누가 한 말입니까?”

    일개 공무원이 사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맨 위에 계신 분입니다.”

    “아아, 그분이요.”

    체육부 장관이 허물 벗듯 옷을 벗고 끝날 줄 알았는데, 대통령도 책임을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매우 정신없습니다. 승부 조작으로 잃은 돈을 정부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난리입니다.”

    “흠.”

    오우! 그럴싸하게 들리는데? 나도 보상해줬으면 좋겠다.

    “강문수 씨의 금메달에 걸었던 판사와 검사가 이번 사건을 자진해서 맡았습니다. 변호사 선임도... 제대로 된 사람은 구하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흐음.”

    끌려간 감독이 조금 불쌍해졌다.

    “모든 국가대표 감독이 의무적으로 사상검증을 받고 있습니다. 승부 조작의 정황이 이토록 뚜렷하고, 피해 규모가 컸던 적도 처음이라...”

    “임시 감독은 누구입니까?”

    “강문수 씨가 잘 아시는 장서연 감독님입니다.”

    “......”

    수영선수에게 배구 감독을? 정부의 의도가 훤히 보였다.

    “방해하지만 않으면 누가 감독이 되더라도 상관없다는 게 체육계 관계자의 판단입니다. 남은 배구 종목을 수월하게 넘기시면 그 주장에 힘이 실려서 남은 올림픽이 더욱 편하실 겁니다.”

    “말씀을 잘하시네요.”

    “저는 전달할 뿐입니다.”

    “...좋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배구 올림픽을 던져버리고 싶지만, 금메달 하나가 아쉬운 상황이라서 어쩔 수 없다.

    싫어도 최소 하나!

    남은 배구 종목 중에서 따내야 한다.

    “...이번은 그냥 넘어가지만, 두 번은 없다고 전해주세요.”

    “꼭 전달하겠습니다.”

    대화는 그렇게 일단락됐고, 나도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섰다.

    “......”

    “......”

    감독이 끌려가는 모습을 본 탓일까? 내 덕분에 은메달(줄어든 연금)이라도 딴 선수들은 마음껏 기뻐하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있었다.

    그들이 잘해서 금메달을 땄다면 조용히 넘어갔을 문제지만, 부족한 실력이 잘못은 아니잖은가?

    “...남은 경기도 잘해봅시다!”

    억지로 쥐어짠 밝은 목소리. 그러나 효과가 있었다.

    “네!”

    “네에!”

    이에 화들짝 놀란 선수들이 동아줄에 매달리듯 서둘러 대답했다.

    남은 종목은 둘.

    모래사장에서 하는 ‘비치발리볼’과 최정예로 구성되는 ‘4인 배구’다.

    ‘나를 칭찬해!’

    돈을 잃고도 짜증 안 내고 꾹 참는 내가 너무나 대견했다.

    다만,

    “괜찮아. 네 잘못이 아니라 이상한 감독을 만난 탓이잖아.”

    “흠...”

    하지만 송선영이랑 어젯밤에 했던 약속을 지키지 못해서 통탄스러웠다.

    “은메달 하나쯤은 괜찮아. 너무 완벽하면 인간미가 없어.”

    “네가 그렇게 말한다면야...”

    밤에 함께한 뒤부터 송선영의 말이라면 무조건 따르는 경향이 생겼다. 보이지 않는 목줄에 걸린 기분이랄까!

    그런데 싫지 않다.

    “오늘은 안 돼.”

    “......”

    최악의 날이다.

    “...안 될 예정이었는데, 네가 힘들어 보여서 기운을 넣어줄게.”

    “오오!”

    알고 보니 최고의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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