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201화 (202/232)

201화

(그가 옵니다...)

(괜히 떨리는군요.)

(저도 같은 심정입니다. 동계 올림픽의 금메달을 홀로 쓸어 담는 선수가 양궁장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양궁은 다를까요?)

(전문가들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입니다. 힘으로 하는 종목이 아니란 이유입니다.)

(그렇네요. 귀신을 활로 잡는 모습은 상상이 되질 않아요.)

(저기, 보십시오. 강문수 선수가 손을 흔들며 여유를 과시합니다.)

“와아아!”

“와아!”

활대를 쥐지 않은 오른손으로 환호하는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오늘의 나는 강하다.

‘실패는 없다!’

어젯밤, 발끝부터 골반에 이르는 송선영의 길고 매끈한 다리를 보며 수없이 맹세했으니까.

내가 여기서 약한 모습을 보인다면 그녀가 미안해하며 다시는 시간을 안 내줄 게 틀림없다. 금메달도 같은 이유로 절대 놓쳐선 안 된다.

“......”

“......”

P의 적성 조건인 걸까? 양궁 선수들은 과묵했다. 하지만 눈빛은 내 얼굴에 화살을 박을 기세!

양궁(洋弓).

건전한 스포츠로 자리매김했지만, 엄연히 따지면 원거리에서 생명을 빼앗는 흉흉한 기술이다. 그래서 일부 스포츠 종목은 2가지 적성이 공존한다.

선수, 병사.

양궁도 그런 대표적인 스포츠다. 순수하게 활만 잘 쏘면 양궁 선수, 재능에 더해 폭력성도 있으면 궁수. 하지만 폭력성을 억제하기 쉽지 않아서 궁수 대부분이 ‘기사도’로 빠진다.

“좋은 경기 부탁합니다.”

“네.”

“......”

예의상 짧게 대답하거나 고개를 까딱인 그들이 멀어졌다. 국적이 같아도 양궁은 지극히 개인적인 종목이니까.

훈련 시절부터 함께했다면 동료 의식이라도 있었을 테지만, 나는 갑자기 튀어나온 경쟁자나 다름없기에 가차 없다.

“힘내~”

쫑긋!

선수들에게 방해가 안 되도록 양궁장 외곽에 마련된 관람석에서 응원하는 송선영의 목소리.

소음에 묻혀야 정상이지만, 내 귀에는 복음(福音)처럼 뚜렷하게 들렸다.

“물론이지...”

오늘의 나는 지구에서 가장 강하다!

(강문수 선수가 활을 쏘는 모습은 한 번도 보지 못했는데요.)

(그런 점도 스포츠토토 배당금에 영향을 준 것 같습니다. 지난 올림픽 때, 승부 조작 논란이 터져서 위축됐음에도 굉장히 높습니다.)

(활로 귀신을 잡지 못한다고 생각해서 아닐까요?)

(하하! 그럴 수도... 아! 말씀하시는 순간, 10점 나왔습니다. 선수의 표정도 차분하고 시작이 좋습니다.)

(다음은 강문수 선수의 차례입니다!)

“바람도 좋고.”

쌀쌀한 바람마저 오늘의 나를 축복해주는 것 같았다.

삐잉-

쏴도 좋다는 신호가 떨어졌다.

“......”

“......”

다른 선수들의 따가운 시선이 집중된 가운데, 나는 태연하게, 하지만 빠르게 활시위를 당겼다.

끼긱-

양궁은 힘으로 하는 종목이 아니라고?

그건 틀렸다.

‘화살이 그냥 날아가는 줄 아나.’

활대는 탄성 좋은 소재로 제작된다. 탄성이 좋을수록 멀리, 강하게, 빠르게 화살을 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릴 적에 고무줄로 맞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잘 알 것이다.

그러면 탄성이 좋으면 무조건 좋은가?

이게 또 그렇지 않다.

끼기기긱-!

탄성이 좋을수록 활시위를 당기기 힘들어지니까!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서 탄성도 뛰어난 합성 소재가 많지만, 사람이 감당하질 못한다.

반면,

‘가라! 사랑의 화살...!’

피요오옹!

겨울바람을 찢으며 날아간 내 화살이 과녁을 부술 기세로 박혔다.

정확히 10점 정중앙.

다른 선수들의 화살이 포물선을 그리며 날아갔다면, 내가 쏜 화살은 총알처럼 거의 일직선이었다.

“와아아!”

“와아아아!”

(10점입니다! 강문수 선수, 의심과 걱정을 비웃듯 가볍게 10점으로 무당의 힘을 과시합니다!)

(카메라에 잡힌 저 소리를 들어 보세요! 위력이 무시무시합니다!)

(활로도 귀신을 잡는다는 것이 입증된 거나 다름없습니다!)

(강문수 선수! 양궁도 그냥 참가한 게 아니었어요!)

(너도 금메달을 내놓으란 거겠죠!)

(하지만 아직 모릅니다!)

(네. 양궁은 집중력 싸움이란 말이 있을 만큼 실수란 변수가 매우 크니까요!)

(함께 지켜봅시다!)

양궁 경기는 고요한 침묵 속에 빠르게 진행됐다.

피요오오옹- 퍽!

“......”

“......”

그러나 내가 단 한 번의 실수도 없이 여유롭게 10점에 계속 박는 모습을 보며 모두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날씨가 참 좋네요!”

“......”

“......”

내 활대는 평범한 사람... 아니, 양궁 선수들조차 팔이 떨려서 힘들 정도로 탄성이 좋은 특수 제작품.

그러나 나는 여유롭다.

풍향? 풍속?

10점은 약간의 오차만 생겨도 9점으로 떨어지기에 중요하지만, 힘으로 찍어 누르는 나에게 이건 큰 변수로 적용되지 않았다.

휘이잉~!

바람이 심하게 불 때는 형평성을 고려해서 중단하기까지 하니, 내가 10점을 놓칠 가능성은 없었다.

(아아! 여기서 실수가 나왔네요!)

(강문수 선수를 의식하면서 흔들린 것 같습니다.)

(양궁장을 보세요. 다들 표정이 심각합니다.)

(조금 전에 강문수 선수의 반칙이란 주장이 받아들여지지 않은 영향을 크게 받은 모양입니다.)

(그가 사용 중인 활이 문제라는 것 같아요. 일반적인 선수용보다도 탄성이... 3배? 이게 맞는 수치인 건가요?)

(네! 3배! 제대로 봤습니다. 그리스 신화의 헤라클레스가 사용해도 될 것 같은 강도입니다!)

(그런 소재가 휘어진다는 것 자체가 놀랍네요...)

(기술은 끊임없이 발전합니다. 인간의 몸이 그걸 감당하지 못할 뿐.)

(저기 있군요.)

(네. 저기 있습니다.)

판타지 소설에서는 팔이 가녀리고 연약한 미녀가 쏜 화살이 갑옷이나 방패의 철판을 뚫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명백한 허구.

과학과 상식이 전혀 없는 작가가 뇌내 망상으로 쓴 것이다.

‘석궁이라면 모를까.’

석궁은 ‘기계식 활’이다. 인력(人力)이 아닌 도르래 같은 기계의 도움으로 활시위를 당기기 때문이다.

“마무리.”

퍽!

완벽하다.

(총합 500점! 강문수 선수가 실점 없이 금메달을 확정했습니다!)

(바로 이어, 물 위에서 과녁을 맞히는 수상전이 시작됩니다.)

(이쪽은 정통 양궁 선수보다 궁수들의 성적이 좋은 편인데요. 무당은 어쩔지 함께 지켜봅시다!)

양궁 종목은 총 4가지다.

단거리, 장거리, 수상전, 속도전.

과거에는 움직이는 과녁을 쏘는 경기도 있었지만, 기계장치로 움직이는 과녁이 오작동을 일으킨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뒤부터 폐기됐다.

그래서 현재는 총 4가지.

지금부터 진행되는 양궁은 흔들리는 물 위에서 활을 쏘는 수상전이다.

양궁 수상전.

일반인은 1점도 어렵지만, P의 적성검사에서 ‘양궁 선수’ 혹은 ‘궁수’가 나온 괴물들은 평균 9점.

하지만 500점 만점에 498점을 받고도 메달을 못 따는 단거리보다는 훨씬 분별력이 있다.

흔들흔들~

형평성을 위해 줄로 연결된 나룻배 위에 서서 주어진 20발의 화살을 30분 안에 전부 과녁에 쏘면 끝.

“쉽지.”

요즘은 짬뽕이 돼버렸지만, 나의 시작은 엄연한 수영선수. 이 자리에 나보다 물이 친숙한 사람은 없으리라.

30분?

너무 길다.

퍽! 퍽! 퍽! 퍽! 퍽...!

주어진 20발을 빠르게 소진했다.

(빠릅니다!)

(강문수 선수! 종목을 혼동한 거 아닙니까?!)

(혼자만 다른 경기! 빨리 쏘는 속도전을 수상전에서 하고 있습니다!)

(10점! 10점! 10점! 수상전에서도 9점을 용납하지 않습니다!)

(저 속도를 보세요! 저희가 말하는 사이에 20발을 전부 쐈어요!)

(점수 확인이 벌써 끝났습니다. 200점 만점! 단거리도 아닌 수상전에서 22년 만에 만점이 나왔습니다!)

(아아, 틀렸어요. 강문수 선수랑 재경기하려면 만점이 나와야 하는데... 벌써 9점 찍은 선수가 수두룩합니다!)

(강문수 선수가 카메라를 향해 여유롭게 손을 흔듭니다. 물귀신을 잡으려면 이 정도는 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8점! 7점! 8점! 큰일이네요! 강문수 선수의 기록을 본 선수들이 실점을 연발하고 있습니다!)

“와아아아!”

“강문수! 강문수~!”

그리하여 수상전도 금메달 확정. 이어진 경기는 선수들의 시력과 집중력에 크게 좌우되는 장거리.

평균 점수가 5점이라는... 망원경이 꼭 필요한 현실성 없는 거리에 떨어진 과녁을 맞히는 극악한 난이도를 자랑한다.

퍽...!

그러나 내게는 해당하지 않았다.

(또 시작됐습니다.)

(강문수 선수. 거리를 무시하듯 여유롭습니다.)

(장거리를 단거리 취급하고 있어요.)

(그에게 절대 시비 걸면 안 됩니다. 저 거리에서 머리에 화살을 맞으면 범인을 찾지도 못합니다...)

망원경에 버금가는 시력과 고성능 활로 장거리도 찍어 눌렀다.

“흠...”

하지만 종종 9점도 나와서 나를 불편하게 했다.

혼잡한 전쟁터에서 지휘관들의 머리통을 저격한 내 실력이 감소한 걸까?

아무튼, 매우 불편했다!

(강문수 선수가 또 저질렀습니다.)

(세계신기록 328점인 양궁 장거리에서 458점을 찍었어요!)

(또 금메달 확정입니다.)

(마지막 종목은 양궁의 하이라이트로 불리는 속도전입니다!)

(화살은 무제한! 수상전처럼 동시에 시작해서 10분 동안 가장 많은 득점을 한 선수가 이깁니다!

(이미 결과가 보이는 기분이 드는데요?)

(저도 마찬가지고, 올림픽을 시청 중이신 국민 여러분도 같은 마음이시라고 생각됩니다.)

속도전!

마음껏 쏘라는 취지의 경기로, 전쟁터에서는 보급만 풍족하면 화살을 옆에 쌓아두고 막 쏘기도 했다.

그렇기 때문일까?

속도전은 양궁 선수보다 궁수가 압도적으로 유리한 종목이었다.

같은 시간에 1발을 잘 쏴서 10점을 내는 것보다, 2발을 대충 쏴서 6점씩 12점을 따내는 것이 이득이니까.

“좋아.”

텅!

화살을 옆에 잔뜩 쌓아뒀다.

우득, 우드득!

본격적으로 해보기 위해 뻐근한 어깨도 풀어주고.

“......”

“......”

양궁에서 가장 중요한 눈에 힘이 없는 선수들이 그런 나를 넋 놓고 바라봤다.

띠잉~!

시작 소리와 함께 10분이란 제한 시간이 줄기 시작했다.

‘오늘의 나는 강하다...!’

내일도 강해지려면 송선영에게 강한 모습을 잔뜩 보여줘야 한다. 아주 도움이 됐었다고 주장하기 위해!

“미안합니다.”

이 경기, 오늘 밤을 위해 제가 찢어버리겠습니다.

(아아! 또 세계신기록입니다!)

(보이십니까? 기존의 세계신기록이랑 점수가 3배나 차이 납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요?)

(저 기록은 강문수 선수 본인만 깰 수 있을 겁니다.)

(2년 뒤에도 그가 참가한다면요.)

(.......)

(.......)

(강문수 선수가 2년 뒤에도 출전한다면 은메달 결승전이 될 것 같습니다.)

(양궁 스포츠토토는 망했군요. 맞춰도 수수료 떼면 손해일 테니까요.)

(잡담하는 사이, 강문수 선수가 양궁 금메달 4개를 목에 걸고 다음 경기장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어디죠?)

(배구장입니다.)

(...그의 스매시를 막을 수 있는 선수가 있을지가 관건이겠군요.)

(저희는 내일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여기는 강문수 선수의 독무대였던 동계 올림픽 양궁장이었습니다!)

“수고했어.”

주차장으로 향하는 길에 선 송선영이 웃으며 맞이해줬다.

“오늘은?”

“...또 하자고?”

“흠흠!”

“미안하지만, 네가 쉴 틈 없이 몰아붙이는 바람에 내 몸이 안 좋거든?”

“그럴 수가...!”

그녀의 명백한 거절 의사에 금메달 4개의 기쁨이 송두리째 증발했다.

“너무 실망하지 마. 내일 잘하면 한번 생각해볼게.”

“그래!”

내일의 나는 더욱 강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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