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99화 (200/232)
  • 199화

    “이게 말이 돼...?”

    꿈이 현실에 간섭해서 철저하게 대비 중인 사람을 농락했다. 내 상식으로는 말이 안 되는 일.

    “아들도 당했군요?”

    “네. 이게 대체...”

    “말했잖아요. 7세는 할 줄 안다고.”

    “하지만 꿈이잖아요?”

    선배에게 당했을 때랑 다르다. 어디까지나 내 몸으로 한 거니까. 그러나 나보다 먼저 쫓겨난 어머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어깨를 으쓱했다.

    “추방이란 표현을 썼지만, 원리는 어린 아들이 자기 발로 비행기를 타고 제국에 들어간 거랑 비슷해요.”

    “우리가 알아서 현실로 나가도록 7세는 부추겼을 뿐이란 건가요?”

    “네.”

    “흐음...”

    재능을 자각한 뒤부터는 한 번 본 기술은 잊지 않고 흉내를 잘 내는 나지만, 이것만은 감도 잡히지 않았다.

    “자자, 아들은 어서 공항으로 가요. 짐은 전부 싸뒀습니다.”

    “아! 상황이 어떻게 되죠?”

    “그건 선영이에게 가면서 들으세요~”

    “하지만 환자가...”

    “그쪽은 엄마가 다시 들어가서 뒷수습할게요. 아들은 간혹 착각하는데, 엄마도 마녀랍니다?”

    “일하기 싫어서 가출한 마녀죠...”

    “덕분에 멋진 아들을 낳았잖아요? 자자, 어서 가세요~!”

    등을 떠밀린 나는 관사 앞에 대기 중인 차를 타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부우웅~

    “저기...”

    “말씀하십시오.”

    내 부름에 차 앞좌석의 경호원이 바로 반응을 보였다.

    “선영이는 어디에 있습니까?”

    “개인 일정을 마친 뒤에 공항 라운지에서 합류하기로 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호주머니 안에 든 스마트폰으로 오늘 날짜와 시간을 확인했다.

    ‘허! 개막식까지 2일? 진짜 촉박했네!’

    개막식이 끝나면 동계 올림픽의 시작을 알리는 스케이트부터 총 12가지 종목을 쉴 틈 없이 달려야 한다.

    아무런 준비가 없는 것 같지만, 어머니가 꿈과 현실을 왕복하면서 나랑 조율했기에 큰 변수는 없으리라.

    ...스포츠 토토는?

    언제, 어디서나 돈을 걸 수 있도록 설치해둔 스마트폰 앱을 확인했다.

    “......”

    마음 같아서는 통장의 돈을 전부 눈썰매에 걸고 싶지만, 일말의 불안감이 내 발목을 잡았다.

    배당금은 현재 481배!

    앱에는 내가 눈썰매에서 금메달을 딸 확률이 거리에 상관없이 0.02%로 집계되어 있었다.

    ‘고민되네!’

    실패하면 전 재산을 날리는 위험한 도박이었다. 송선영에게 빌붙어서 사는 기둥서방이 될 수도 있다.

    톡, 톡톡, 톡, 토톡...

    결국은 눈물을 삼키며 안전하게 통장의 전 재산을 12등분으로 나눠서 12종목에 골고루 걸었다.

    “...강문수 씨.”

    “네.”

    “자신 있으십니까? 연습하시는 모습을 전혀 못 봤습니다.”

    경호원의 질문은 당연했다. 올림픽에 출전하는 국가대표가 연습을 전혀 안 하고 있으니 불안하리라.

    “여러분도 돈을 거셨나요?”

    “조금... 흠흠!”

    “걸었습니다. 어흠!”

    배당금을 높이려면 정보는 최대한 감추는 편이 좋지만, 주변인에 한해선 조금 풀어도 괜찮지 않을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종목별로 내 우승에 걸린 배당금을 쭉 확인한 후에 웃으며 말했다.

    “피구, 역도는 매우 자신 있습니다. 가장 불안한 종목은 전문가들의 평가처럼 눈썰매와 승마고요.”

    스포츠 토토 앱에는 흥미로운 기능이 많았는데, 그중 하나가 스포츠 전문가들의 소견이었다.

    양궁을 예로 들자면,

    「전문가 A: 양궁은 무식하게 힘으로 하는 스포츠가 아닙니다. 강문수 선수의 참가는 만용이나 다름없습니다. (예상 승률: 3%)」

    「평론가 B: 강문수 선수는 하계 올림픽에서 참가한 모든 종목 금메달을 땄습니다. 양궁도 자신 있다는 거겠죠. (예상 승률: 62%)」

    「도박사 C: 그는 올해의 마지막을 장식할 최고의 선수다. 누구에게는 천사로 보일 테고, 누구에게는 악마가 되리라. (예상 승률: 27%)」

    ‘헤에~’

    하계 올림픽 때랑 달리, 동계 올림픽은 현실에서 연습과 준비를 전혀 안 한 것이 주효했다.

    정보 부족!

    백지나 다름없기에 섣불리 나에게 돈을 걸지 못하고 있었다. 덕분에 배당률이 나쁘지 않은 편.

    물론,

    「평론가 D: 강문수 선수가 두 발로 직접 썰매를 끈다면 가능성이 있다. (예상 승률: 12%)」

    「도박사 Q: 우리는 이미 정답을 알고 있다. (예상 승률 1%)」

    「전문가 K: 뛰어난 썰매견은 단시간에 육성되지 않는다. (예상 승률: 0%)」

    눈썰매와 경마는 내 명성을 찍어 누를 만큼 평가가 참혹했다. 그만큼 배당금도 높아지지만, 이런 부정적인 얘기만 릴레이처럼 달리니 나마저 자신감이 뚝뚝 떨어졌다.

    “......”

    “강문수 씨. 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아, 네. 감사합니다.”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스포츠 토토 앱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나는 아무 생각 없이 차에서 내렸다.

    찰칵! 찰칵! 찰칵...!

    내가 공항에 간다는 정보를 사전에 입수한 기자들이 공항 주차장에 빼곡하게 들어차 있었다.

    이 나라는 초상권이 존재하긴 하나?

    나에게 돈도 안 내고 막 찍어대는 것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니다.

    “강문수 선수! 자신 있습니까?”

    “모든 종목 참가는 너무 무리하시는 거 아닙니까?”

    “피메달을 노리시나요?”

    “강문수 선수!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나가는 각오의 말씀 부탁합니다!”

    “제국으로 이민을 계획 중이십니까?”

    우르르-

    공항에 먼저 와서 대기 중이던 경호원과 수행원들이 몰려든 기자와 구경꾼들을 밀어내며 길을 열었다.

    ‘...힘들구먼.’

    이런 관심과 주목을 즐기는 정치인과 방송인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강문수 씨!”

    “이쪽으로!”

    “네.”

    나는 송선영이 기다리는 라운지까지 혼잡한 인파를 뚫고...

    “어서 와. 멀리서도 알 수 있을 만큼 요란하던걸.”

    먼저 와서 기다리고 있던 송선영이 라운지 앞까지 마중 나왔다.

    “오랜만이야.”

    “진심으로?”

    “응?”

    “연하의 나랑 즐거운 시간을 함께했다는 소문이 있던데...”

    “.......”

    또 무릎 꿇어야 하나? 사람이 많은 공항 한복판에서?

    “이해해줄게.”

    “어? 정말?”

    “내가 다른 남자랑 사귀지 못하게 하려고 한 거잖아. 이해해줄 수밖에.”

    “오오!”

    오랜만에 다시 만난 동갑의 송선영은 선녀처럼 눈부시게 보였다!

    “가자.”

    “어.”

    비행기표를 미리 예매하지 않았지만, 일등석은 거의 항상 비어 있기에 문제없이 표를 구할 수 있었다.

    “강문수 선수! 응원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국 심사도 정부와 공항 관계자들의 배려로 긴 줄을 기다리지 않고 빠르게 통과!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주목을 받아서 마음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했는데, 공항 안쪽은 아무나 못 들어오는 까닭에 숨통이 좀 트였다.

    “힘들어 보이네.”

    “너는?”

    송선영은 눈 하나 깜짝 안 했다.

    “나? 나는 마네킹들이 뭘 하든 전혀 신경 안 쓰니까.”

    “아하!”

    그녀의 이런 부분은 참 한결같다.

    ‘드디어 돌아온 기분이네.’

    애교 많은 어린 송선영도 좋긴 했지만, 나에게 의존하려는 경향이 강해서 부담스러울 때가 종종 있었다.

    반면,

    “...왜?”

    남은 신경 안 쓰면서 내 시선에는 민감하게 반응했다.

    동갑의 송선영은 알아서 척척! 내가 그녀를 힘들게 할 때도 의연하게 대처하는 모습을 볼 때는 ‘누나’ 같기도 하다.

    “좋아서.”

    “뭐야, 갑자기. 또 꿈속에서 이상한 걸 배워온 거야?”

    “아니. 전혀.”

    “수상한데...”

    “...시간이 좀 남긴 했지만, 여유 부릴 정도는 아니네. 게이트 근처 면세점을 둘러보자.”

    올림픽이 가까워지면 항공편이 늘어나면서 대기 간격이 1시간 미만이 된다. 덕분에 쇼핑에 관심이 없는 나로선 면세점도 눈에 들어오지...

    “어? 너다.”

    송선영의 가느다란 손끝에 내 사진이 떡하니 걸려 있었다.

    선글라스 가게.

    시커먼 안경이 평범한 얼굴을 가려준다는 의미로, 사진사에게 좋은 모델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던 기억이 난다.

    “면세점까지...”

    “뭘 놀래? 네가 지금 입고 있는 옷들도 전부 돈 받고 협찬받은 건데.”

    “어?!”

    그거야말로 놀랄 얘기인데?!

    “저 면세점에서 파는 선글라스도 있지 않았어?”

    “그거, 내가 쓸 일이 없을 것 같아서 가방에 넣었는데.”

    “그러면 계약위반이네. 출국하면서 써주기로 계약했거든.”

    “설마... 위약금이 있어?”

    “당연히 있지. 10배.”

    “...기다려.”

    위약금이라니! 발렌타인이나 누군가가 나 대신 서명했겠지만, 몰랐다는 변명이 통할 리 없다.

    남은 방법은?

    이미 비행기 화물칸에 들어간 가방에서 선글라스를 찾아올 방법이 없으니, 여기서 새 선글라스를 사는 것이다.

    ‘아깝긴 하지만!’

    위약금보다는 쌀 것이다.

    “사려고?”

    “어.”

    “잠깐. 가장 싼 거 고르려고 하지?”

    “네. 그렇습니다만?”

    “너는 돈을 벌어도 똑같다니까. 가만히 있어. 내가 골라줄게.”

    “......”

    칠칠치 못한 남동생을 대하듯 나에게 핀잔을 준 송선영이 세심하게 선글라스를 고르기 시작했다.

    그녀는 현직 모델.

    옷은 코디네이터가 짜주지만, 여러 옷을 입고 벗다 보면 요령이든 지식이든 쌓이는 법이다.

    “써봐.”

    “오... 괜찮은데?”

    “잘하라는 의미로 내가 사줄게.”

    “감사합니다! 사모님!”

    나는 이해심 넘치는 송선영을 좋아하긴 하지만, 나 대신 무언가를 사주는 송선영이 더 좋은 것 같다!

    “진짜야?”

    “어머! 세상에나... 송선영이야.”

    “옆에는 강문수야! 전에 그 게임 동영상에서 봤어.”

    “진짜로 둘이 사귀는구나.”

    우리가 면세점에서 물건 사는 게 신기한가? 선글라스를 구경하는 척하면서 우리를 힐끔힐끔 훔쳐보며 수군거리는 사람이 점점 늘어났다.

    “강문수 씨.”

    비행기 이륙 시간이 가까워지자 수행원이 알려줬다.

    “슬슬 들어가자.”

    “그래.”

    슥-

    방금 구매한 선글라스를 쓴 나는 비행기에 올랐다.

    조금 지난 후의 일이지만, 내가 위약금을 물지 않으려고 임시방편으로 준비한 선글라스가 유행을 탔다.

    여자가 남자에게 주는 약혼 선물로 선글라스라니?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만, 내 탓이라서 할 말이 없었다.

    * * *

    올림픽 개최국을 홍보하는 자리나 다름없는 개막식.

    일면식조차 없는 선수뿐인 동계 올림픽은 삭막했다. 아니, 나에게 경쟁의식을 불태우는 적의마저 느껴졌다.

    물론,

    “잘 부탁합니다, 강문수 선수.”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종목마다 차이가 있었다. 개인전은 국적에 상관없이 모두가 경쟁자지만, 피구와 기사도 같은 단체전은 협력해야 하는 아군이었으니까.

    “태권도는 인상 깊게 봤습니다. 보다가 팬티에 지리는 줄 알았습니다.”

    “과찬이십니다.”

    내가 아닌 선배였으니까. 태권도를 빙자한 ‘재능 폭력’으로 모든 선수를 실의와 자괴감에 빠트렸다.

    힘으로 밀어붙이는 나랑 달리, 선배는 진짜 순수한 기교만으로도 태권도의 역사를 다시 썼다.

    결승전 시합 시간 1.34초.

    두 선수가 조작해도 달성하기 힘든 기록이었다. 한 방에 뻗어버린 상대 선수가 못 일어나고 기권했으니까.

    선배는 존재 자체가 사기다.

    “강문수 씨. 빙판은 수영장이랑 다릅니다.”

    일단, 나를 ‘선수’로 호칭하지 않는 사람은 비호감이라고 보면 된다. 선수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의미니까.

    스케이트 국가대표 선수들의 ‘형님’이란 사람도 그랬다.

    “잘 압니다.”

    “릴레이에서 1등은 바라지 않습니다. 3등만 해주세요. 그러면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네.”

    피메달의 원래 취지는 적성에 상관없이 여러 종목을 잘하는 최고의 선수를 뽑는 것이다.

    하지만 현재는?

    피메달을 따기 위해 편법으로 단체전에 묻혀가는 민폐 덩어리가 돼버렸다.

    그 첫 종목은 스케이트.

    저들은 나를 얼어붙은 물 위에선 아무것도 못 하는 수영선수쯤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강문수 선수. 대기실로...)

    “오! 벌써 나갈 때가 됐네요. 경기장에서 뵙겠습니다.”

    지금부터...

    동계 올림픽의 모든 연금(금메달)은 내가 접수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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