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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97화 (198/232)
  • 197화

    “적어...”

    내가 빠진 하계 올림픽은 일부 종목만 은메달이 금메달로 바뀐 것 외에는 변화가 없었다.

    짤랑!

    나는 명랑한 동전 소리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오늘만큼은 전혀 즐겁거나 기쁘지 않았다.

    “오빠, 다 맞춘 거예요?!”

    송선영은 나의 스포츠토토 결과를 보고는 화들짝 놀랐다.

    “뭐... 위대한 신(神)께 여쭤보면 다 알 수 있지.”

    “이게 대체 얼마야...?”

    현실에서 내가 기록한 200배 배당금이랑 비교하면 푼돈이지만, 확신하고 들이부은 돈이 워낙 많아서 결과적으로 어마어마한 수익이 났다.

    ...그러면 뭐 해?

    ‘어차피 꿈인데!’

    현실에서는 동갑인 송선영이 나보다 훨씬 부자다. 남자친구의 금메달을 의심하지 않고, 모델 활동으로 번 돈을 몽땅 들이부은 승부사의 위대한 승리!

    주식이나 도박이 좋다는 건 아니지만, 인생은 타이밍이다.

    “아몰랑 씨! 제 딸을 잘 부탁해요!”

    “내 딸을 잘 부탁하네!”

    “네. 맡겨 주십시오.”

    내가 어마어마한 부자라는 식으로 미화된 영향일까? 아니면 송선영이 좋게 설명해줘서?

    꿈의 세계에서는 아직 한 번도 소개받지 못했지만, 여자친구의 부모님은 나를 가족처럼, 아들처럼 환영해주며 공항까지 마중 나오셨다.

    “다녀올게!”

    누가 보더라도 추운 나라로 해외여행을 떠나는 여행객 복장을 한 송선영이 내 옆구리에 팔짱을 꽉 끼고, 부모님에게 손을 흔들었다.

    내 마음 같아서는 그녀의 길고 늘씬한 맨다리를 마음껏 볼 수 있는 따뜻한 남쪽 나라로 가고 싶지만, 내 개인적인 욕망을 위해 일을 내팽개칠 순 없었다.

    ‘미안해지네.’

    여행을 이토록 좋아하는데, 현실에선 한 번도 해외를 같이 가본 적이 없었다.

    매번 꿈, 또 꿈, 계속 꿈...

    라누벨라 13세처럼 나도 진지하게, 그녀처럼 2년은 아니더라도 여자친구를 위해 시간을 길게 빼야 할 것 같다.

    “아들.”

    “네.”

    “계획이 살짝 틀어지면서 환자의 건강에도 악영향을 준 것 같아요. 시간의 흐름이 빨라졌어요.”

    소리 없이 공항에 등장한 어머니가 매우 안 좋은 소식을 가져오셨다.

    “오빠~!”

    “어. 가고 있어.”

    나는 어머니랑 나란히 걸으면서 이야기를 계속했다.

    “얼마나 남았나요?”

    “이 속도면 한 달 정도? 환자의 계획이 이대로 쭉 틀어지면 지금보다 더 빨라질 수 있어서 서둘러야 해요.”

    “흠...”

    라누벨 환자가 노리고 있던 어린 강문수를 괜히 시험했나?

    후회가 약간 됐지만, 세 종목 외에는 성공적으로 동계 올림픽 준비가 마무리됐기에 나쁘진 않았다.

    “오빠?”

    어머니가 안 보이는 송선영이 고개를 갸우뚱했다.

    “아, 미안.”

    “무슨 생각 중이에요?”

    “...결혼?”

    “어멋?!”

    삑, 삐익-

    비행기를 택시처럼 이용하는 라누벨라 13세는 공항의 모든 출국 절차를 무시했지만, 나는 그렇지 않았다.

    어머니께 배운 최면술을 활용해서 신분증부터 여권까지 한 방에 합법적으로 만들었으니까. 현실에서도 최면술을 사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몸뚱이에 투자한 게 많은 탓에 어렵다고...

    즉, 현실에서는 내면이나 외면의 세계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아들, 환자는 어떻게 할래요?”

    “설득해야죠.”

    내 방침은 늘 똑같다.

    다만,

    “방법이 듣고 싶은데요.”

    어머니의 말씀처럼 상황에 따라서 방법이 달라진다.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꿈속의 인생을 망가트려서 현실로 다시 돌아오게 하거나, 꿈이란 증거를 보여줘서 눈을 뜨게 하거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준 후에 설득하거나...”

    “방법이 많네요.”

    “뭐... 이게 11번째 꿈이니까요. 그동안 다양한 경험을 했죠.”

    “실패도요?”

    “네. 실패도 2번이나 했고요.”

    위대한 선배가 안 도와줘서 내 손으로 어머니를 살해했으면 3번이 됐으리라. 지금도 어머니를 볼 때마다 그때가 떠올라서 소름이 돋곤 한다.

    “어떤 방법을 쓰고 싶나요?”

    “...3번째입니다. 현실의 문제를 해결해주고 싶습니다. 솔직히, 해결하고 말고 할 것도 없고요.”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자가 예뻐서 손해 본 적은 없었다.

    학교폭력에 가담한 가해자란 사실은 변함이 없지만, 과거에 보상하고 화해하며 마무리된 문제이기도 하다.

    물론, 논점은 인성(人性)에 문제가 있는 가수가 공중파에서 활동하면 안 된다는 식의 여론.

    잔인하긴 하지만, 인성이 좋으면서 노래도 잘 부르는 가수가 많기에 아무도 아쉬워하지 않는다. 약물을 한 번이라도 복용한 전적이 있는 선수는 기회 없이 사회적으로 매장당하듯이.

    P가 완성한 현대 사회는, 재능 있는 사람이 넘쳐나기에 ‘하자’가 보이는 사람은 곧바로 내쳐진다.

    “와! 일등석은 처음이야!”

    “넓지?”

    “응!”

    현실에서도 내가 송선영보다 한두 살쯤 많았으면 좋겠다는... 매우 불경한 생각이 가끔 들곤 한다.

    어린 송선영은 거의 항상 애교가 넘쳐나니까. 반면에 현실은? 동갑은 영원한 동갑이기에 죽을 때까지 그녀의 애교를 볼 수 없다.

    ‘그건 좀 슬프군...’

    알면서도 미련을 못 버리는 ‘남자’라는 생물의 고질적인 문제 같다.

    “후후! 아들도 이젠 사치에 다소 익숙해졌네요?”

    “흠... 그러게요.”

    졸부처럼 우쭐대지 않으려고 늘 경계하지만, 편한 길을 놔두고 힘든 길을 고를 필요는 없잖은가?

    특히, 꿈속에서는 귀족 생활에 익숙해져서 마음껏 사치를 부리는 것 같다. 허세도 강해지고.

    “부담 갖지 마세요. 당신은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신(神)의 혈통입니다. 모든 것을 누릴 자격이 있어요.”

    “거참...”

    어머니는 자부심이 매우 강하시다. 마땅한 대접을 받지 못한다는 사실에 분개해서 가출했을 만큼.

    나도 대가를 받거나 목적이 있을 때만 일하는 ‘직장인’ 중 하나로서 공감하긴 하지만, 사치를 누리고 감사와 찬양을 들을 대상은 내가 아닌 P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자손일 뿐이니까.

    남은 시간은 한 달.

    그 안에 동계 올림픽 3종목을 어떤 식으로든 마무리하기로 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들, 휴가 간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관광하면서 괜찮은 종마나 썰매견을 발견하면 기록해놔요. 엄마가 현실에서도 찾아볼 테니.”

    “네. 감사합니다.”

    “그리고...”

    “환자.”

    “네. 환자요. 강훈이가 맡아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아! 강훈이가요?”

    최강훈은 마오짜이, 박한희랑 공동대표로 회사를 차렸다.

    마오짜이가 자기 경험을 바탕으로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를 실사 영화로 제작 중인 영화사도 여기다. 인연이 있는 무당 가문 증손녀 ‘전지은’이 미봉 역할을 맡는다고...

    영화 외에도 다양한 사업에 투자 중인데, 그중의 하나가 연예기획사다. 송선영과 전지은도 여기 소속이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 갇혔던 윤소라도 명단에 있다.

    “가수보다는 봉사 활동 위주로 돌면서 이미지 세탁을 하고, 추락한 인지도는 영화 <이 천마 실화냐?>에 배우로 출연한다는 계획이에요.”

    “와우! 좋네요.”

    그래도 세간에 깔린 편견 탓에 예쁜 악역을 맡긴다고 한다.

    음마(音魔)라고...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에서 노래와 춤으로 남자를 홀려서 원기를 빼앗는 아름다운 악녀다.

    사생활이 너무 문란해서 유부녀들처럼 중원의 미녀 순위에서는 배제됐지만, 외모만 놓고 보면 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절세가인.

    나쁘지 않다.

    “아들, 그러니 걱정은 내려놓고 잘 다녀와요~”

    “네. 감사합-”

    뿅!

    눈치 없이 데이트까지 따라오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어머니는 할 말만 하고 잽싸게 현실로 돌아가셨다.

    “오빠! 샤워장도 있어!”

    어린 송선영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며 일등석 서비스를 구경하기 바빴다.

    “흠.”

    이쪽이 즐거워할수록 현실의 송선영에게 미안해진다.

    ‘꼭 가자.’

    다시 한번 다짐했다.

    * * *

    구시대에는 온난화가 심해져서 시베리아의 눈이 모두 녹고, 해수면도 급상승해서 인류 종말론까지 나왔었다.

    얼마나 심각했느냐?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남아메리카 대륙은 너무 뜨거워서 사람이 도저히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미친 시대지.’

    부자와 정치인들은 자연을 망가트려서 번 돈으로 누구보다 빨리 북쪽으로 이민을 떠났다.

    아무런 잘못 없는 서민들만 살던 땅에 남아서 지옥 같은 열기와 홍수 같은 자연재해에 노출됐다고...

    P의 적성검사기는 바로 그 시기에 구세주처럼 등장했다. 부패한 정치인과 사업가들이 실컷 즐기고 버린 땅에.

    “좋아!”

    스키는 타협하기로 했다.

    지그재그로 움직이는 보편적인 스키 경기는 깔끔히 포기. 스키 종목에 포함된 스노보드도 같은 이유로 포기!

    전부 내려놓고, 스노보드의 다이빙만 금메달을 노리기로 했다.

    규칙?

    매우 간단하다.

    “와아! 오빠, 잘한다~!”

    스노보드로 최대한 속도를 내면서 내려오다가 하늘로 뛰어오르면서 회전.

    빙그르르~

    공중에서 회전한 횟수가 가장 많은 사람이 이긴다. 하지만 착지에 실패하거나 손이 바닥에 닿으면 무효 및 실격이기에 과욕을 부려선 안 된다.

    “하핫!”

    슈우우우~

    기교는 포기하고 팽이처럼 돌다가 강제로 균형을 잡으며 지상에 착지했다.

    ‘괜찮아.’

    내 욕심 같아서는 스키의 전 종목에서 금메달을 따고 싶지만, 피메달은 종목별로 금메달 하나씩만 인정된다. 일반 스키든 스노보드 다이빙이든 피메달 점수 카운트는 똑같다.

    남은 시간은 약 일주일.

    결과부터 얘기하자면, 금메달을 노려볼 수 있는 경주마와 썰매견을 구하는 데 실패했다. 이쪽은 스키처럼 하나만 노려보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

    “어? 오빠! 저기...!”

    송선영이 장갑 낀 손으로 스키장 외곽을 가리켰다.

    “늑대네.”

    P의 적성검사기로 뽑힌 ‘정상적인 정치인’들은 타국이랑 힘을 합쳐서 환경 복구에 힘썼다.

    저건 그 결과물 중 하나.

    밀렵이나 환경 파괴로 야생에서 사라진 동물들이 다시 돌아왔다.

    ‘다 좋은 건 아니지만.’

    수가 불어난 야생동물이 인류의 터전으로 넘어와서 민간인을 위협하거나 농장의 가축을 죽이는 사건...

    그런 이유로 스키장 주위에는 야생동물이 넘어오지 못하도록 단단한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다.

    “오빠. 늑대는 안 돼요?”

    “뭐가?”

    “썰매견과 늑대랑 비슷하게 생겼잖아요. 늑대를 썰매견이라고 속여서 올림픽에 나가면 안 돼요?”

    “.......”

    다소 엉뚱하긴 하지만, 송선영이 제안한 방법이 안 되는 이유를 머릿속으로 열심히 생각해봤다.

    ‘...없다?’

    안 될 이유가 없었다.

    “힘이 좋고 달리기에 특화된 썰매견이 늑대보다 빨라서 사람들이 안 쓰는 것 아닐까?”

    “그러면 어쩔 수 없고요.”

    “......”

    하지만 정말로 그럴까? 썰매견이 늑대보다 빠를까?

    모든 개가 썰매를 끌 수 없듯이, 모든 늑대가 똑같을 리 없다. 늑대 중에도 찾아보면 있을 것 같다.

    ‘길들이는 문제라면 쉬워.’

    사람보다 지능이 낮은 동물들은 정신에 간섭하기 쉬우니까. 정 어려우면 어머니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남은 시간은 일주일.

    뛰어난 경주마와 썰매견은 이미 다른 나라에서 선점해서 없다. 남은 녀석들도 타국에서 누군가가 못 가져가게 구매해서 묶어뒀을 정도니까.

    그래서 경마와 눈썰매는 올림픽이 시작하기도 전에 결판이 난 셈! 나는 두 종목의 생리를 시베리아에 와서 한참 돌아다닌 뒤에야 깨달았다.

    “...선영아.”

    “네.”

    “사랑해.”

    “저, 저도요. 오빠...”

    이대로 포기하는 것보다 뭐라도 해보는 편이 낫다.

    늑대, 야생마.

    어린 송선영의 엉뚱한 발상이 나에게 새로운 희망을 안겨줬다.

    덤으로,

    “꼭 행복하게 해줄게! 이번에는 300배에 도전하자.”

    “예?”

    하계 올림픽의 여파로 누구나 나의 우승을 예상하기에 배당금이 낮아졌다. 하지만 사람보다 탈것이 중요한 경마와 눈썰매는 어떨까?

    ‘기회가 왔구나!’

    완전히 포기하고 있었던 스포츠토토에도 희망이 생겼다.

    “선영아! 가자!”

    “네? 네!”

    이번에는 기필코 200배의 행운을 붙잡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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