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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90화 (191/232)
  • 190화

    우주는 매우 넓다. 인간의 상상력을 가볍게 초월할 정도로 넓다는 표현조차 성의 없게 들릴 만큼.

    그런 우주에서 사람 크기의 검귀 1마리를 찾는다?

    지구에서 ‘강문수’랑 똑같이 생긴 여성을 찾기보다도 어렵다.

    “그런데 엄마는 어떻게 찾으셨어요?”

    “레이더 전파처럼 영혼을 전방위로 퍼트리는 거예요. 아주 멀리~”

    “우주인데요?”

    빛의 속도로 수백억 년을 가도 끝에 도달할 수 없는 곳이 우주다.

    빛의 속도.

    이게 얼마나 빠르냐? 1초면 지구를 7바퀴 반을 돌 수 있다는 건 넘어가고, 사람이 빛의 속도로 1초 동안 질주하면 지구의 모든 생명체가 죽는다.

    “꿈의 세계는 그다지 넓지 않아요. 모형 정원 같은 거죠.”

    “별은요?”

    “집 천장에 붙여둔 형광 스티커라고 생각하면 돼요. 아들도 어릴 적에 그 별을 보며 자는 걸 좋아했죠~”

    “아...”

    “꿈의 세계는 환자의 상상력을 기반으로 완성되는데, 인간의 뇌는 우주를 전부 구현하기엔 성능이 떨어져요. 슈퍼컴퓨터도 무리인걸요.”

    “그 얘기는...”

    “우주라고 겁먹을 것 없어요. 아들이 좋아하는 공상과학영화를 생각해봐요. 절대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공간도약기술. 행성과 행성 사이를 왕래하는 건데, 그 행성과 행성 사이에 무엇이 있는지는 절대 설명하지 않잖아요?”

    “그렇죠.”

    소설에서 행성 이름만 쭉 나열해도 책 여러 권이 나올 것이다. 애초에 그 많은 행성, 소행성, 항성, 위성 등의 이름을 전부 지을 수나 있을지 의문이고.

    전부 상상할 순 없다.

    “그러나 안 넓다는 건 아니에요. 원시인이 아닌 이상, 현대인은 기본적으로 지구가 둥글고 달이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으니까요. 아! 예전에 아프리카의 환자를 돌보러 갔었는데, 지구가 평평한 줄 알더라고요. 아직도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는 사람도 있었고.”

    “아, 네.”

    어머니 특유의 수다가 시작됐다.

    ‘이마저도 감동이네...’

    어릴 적에는 어머니의 수다가 너무 재미없어서 귀를 틀어막고 자는 척한 적도 있었는데, 그랬던 내가 어설픈 어른이 돼버렸다.

    “자! 지금부터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엄마의 특강을 시작할게요! 수업료는 뽀뽀 10번입니다!”

    “어... 그건 좀...”

    이제 저도 엄연한 성인입니다만? 여자친구도 있다.

    “그러면 7번! 그 이하는 절대로 양보 못 해요.”

    “...5번으로 하죠.”

    “좋아요! 5번!”

    “......”

    절대는 무슨...

    “내 아들은 매우 똑똑해서 한 번 보면 전부 따라 할 수 있다고 했어요.”

    “누가요?”

    “소운현 씨가요!”

    “답답하다고 혼내기만 하셨는데요.”

    “상대는 신(神)이잖아요? 천재의 눈에는 뭐든 답답할 수밖에요.”

    “그런가요.”

    “네. 본 적도 없는 마녀의 최상급 기술을 필요하다는 이유만으로 즉석식품처럼 만드는 존재인걸요? 내 아들이 못난 건 절대 아니에요.”

    “흠...”

    하지만 어머니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자신감이 붙진 않았다.

    “소운현 씨는 신(神)이니 논외로 치고, 인간끼리 비교하면 아들은 고조모님이랑 비슷한 천재에 속해요.”

    “정말요?”

    내가 P랑 비슷하다고?

    “네. 엄마가 아들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잖아요?”

    “...많은데요.”

    자식의 자존감을 키워주려는 부모가 얼마나 많은데. 학원과 학교 선생들이 학부모 상담할 때 단골처럼 하는 말이 있잖은가?

    당신의 아이는 똑똑한데,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

    거기에 홀라당 넘어가서 지갑이나 마음을 여는 게 부모다.

    “라누벨라는 선대들의 지식과 경험을 꿈으로 전승해요.”

    “그렇다고 하더라고요.”

    “하지만 아들은 그런 편법 없이 여기까지 왔어요. 그리고 한 번 본 기술은 바로 따라 할 수 있죠.”

    “그게 대단한 건가요? 남의 것을 흉내 내는 건데.”

    “라누벨라는 검귀의 팔을 흉내 내지 못해요.”

    “어? 정말요?”

    “네. 아들이 엄마를 벨 때 사용했던 칼은 자작품이죠?”

    “맞습니다.”

    “P는 타고난 발명가예요. 적성검사기도 그 발명품 중 하나죠. 반면에 아들은 발명가는 아닌 것 같아요. 기초지식이 부족한 탓일 수도 있지만.”

    “뭐...”

    둘 다일 것이다.

    “그 대신에 아들은 흉내를 잘해요. 그리고 발전시켜서 원본을 뛰어넘죠. 덕분에 검귀의 팔도 절단했잖아요?”

    “그거야 제가 더 강해서...”

    “힘으로 가능했다면 P가 진즉에 검귀들을 몰살시켰을 거예요. 운전자의 실력이 뛰어나다고 자동차 엔진 성능이 올라가는 건 아니잖아요?”

    “그런 겁니까?”

    “그런 거예요~”

    너무 잘난 선배 덕분에 심해(深海) 밑바닥에 처박혀 있던 내 자존감이 미미하게 부상했다.

    “수업을 시작할게요. 엄마의 손을 꼭 잡으세요.”

    “...잡는 의미가 있나요?”

    “물론이죠!”

    “흠.”

    일단은 시키는 대로 했다.

    ...기분이 묘하네.

    비록 꿈이긴 하지만, 어머니가 실종되기 직전에 동물원에서 잡아본 이후로 처음이었다.

    “뭔가 느껴지나요?”

    “아...”

    전쟁에 비유하면, 적대국 영토를 점령하지 않고 빠르게 진격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거침없는 진격은...

    높은 성벽에 막혔다.

    “...이게 검귀?”

    “정답!”

    “쉽네요.”

    원리는 간단했기에 조금만 생각하면 나 혼자서도 가능했다.

    ...아니지.

    발명품이 대부분 그렇다. 막상 보면 별거 아닌데, 그 별거 아닌 걸 고안해내기가 참 어렵다.

    “혼자서 할 수 있겠어요?”

    “네.”

    여신과 천사들을 동원해서 환자를 찾고 있던 내가 바보 같았다.

    “좀 더 가르쳐주고 싶지만, 여긴 시간의 흐름이 너무 비효율적이에요. 그러니 다음 기회로 넘어갈게요~”

    “아! 그랬죠.”

    환자의 건강 탓에 꿈속의 하루가 현실에선 며칠이나 된다.

    “잡을 수 있겠어요?”

    “물론이죠.”

    깜빡!

    눈깔 촉수가 검의 형태로 바뀌었다.

    “정용상 씨. 구하려는 시늉조차 하지 않아서 미안합니다.”

    푹!

    칼끝을 땅에 꽂았다.

    “혈신 만세.”

    포물선을 그리며 솟구친 칼날 촉수가 우주를 꿰뚫고 검귀도 꿰뚫었다.

    * * *

    “어서 와~”

    “...다녀왔습니다.”

    챙이 넓은 밀짚모자와 새하얀 원피스로 풋풋한 아가씨처럼 꾸민 어머니가 손을 흔들며 나를 환영해줬다.

    “늦었잖아.”

    내 옆에 앉아 있는 송선영이 불편한 기색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어... 미안.”

    이쪽도 평소랑 달리 얌전한 소녀풍 치마로 내가 너무나도 좋아하는 다리를 가리고 있었다.

    그나저나 여긴 어디?

    풍경이 움직이고 있었다.

    “아들. 엄마랑 유원지는 오랜만이지? 선영이랑도 한 번밖에 안 갔다며? 진짜 너무했어.”

    관람차 안이었다.

    “선배가 제 몸을 조종했나요?”

    기절하듯 잠든 나를 업고 관람차에 태웠을 것 같진 않다.

    “아니.”

    “그러면 대체 누가...?”

    “인피니티 블레이드.”

    “예?”

    설마, 어머니는 괴물이 내 몸을 조종했다고 말하는 건가?

    “정말이야. 소운현 오빠가 너를 위해 남겨놨다고 하던데.”

    “......”

    선배는 어디까지 나를 챙겨주는지 모르겠다.

    진정한 선신(善神)!

    그가 중원을 피로 물들였다고 해도 나에게는 위대한 신이다.

    “몸을 빌리는 대신에 보살펴준다고 약속했다며?”

    “비슷한 말을 하긴 했었죠.”

    무협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선배의 말을 진지하게 듣질 않은 탓에 기억이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신(神)이라면 자기가 내뱉은 말을 꼭 지켜야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발렌타인이 내 말을 아주 잘 들어서 마음에 들어.”

    나에게 늦었다고 투덜대던 송선영의 표정이 미소로 바뀌었다.

    “그건 또 무슨 소리?”

    “오빠가 녀석에게 송선영만 믿고 따르라고 명령했다던데? 아주 훌륭해. 애완동물을 키우는 기분이었어.”

    “......”

    감사하고 존경하는 선배님, 어째서 그런 무시무시한 짓을...?

    천재가 실수한 것 같다.

    “아들. 벌써 겨울이야. 뭔가 생각나는 거 없어?”

    “어... 글쎄요?”

    송선영과 어머니의 생일 날짜를 아는 나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기사도.”

    “아! 맞다!”

    올해의 동계 올림픽에 ‘기사도’를 출전한다고 신청해놨었다.

    “더 있어.”

    “음?”

    이건 무슨 소리?

    송선영이 귀엽게 뺨을 부풀리며 이상한 말을 하기 시작했다.

    “내 뒤를 강아지처럼 졸졸 쫓아다니는 너를 보면서 왕자가 비웃는 거야. 예전에도 섬에서 날 귀찮게 했었는데, 이름이 아마... 어...”

    “레온?”

    “그런 이름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어머님이랑 상의 끝에 동계 올림픽 전종목을 신청했어.”

    “어떻게 그런 결론이?!”

    송선영의 황당한 결론을 어머니가 지원하고 나섰다.

    “열 받잖니. 왕자 나부랭이가 내 아들을 비웃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지. 꿈속에 처박아 주려다가 전 재산을 스포츠토토에 거는 선에서 봐줬어.”

    “맙소사...”

    올림픽 선수 여러분, 내 어머니와 여자친구가 미안합니다.

    “그렇게 됐으니, 오늘은 놀고 내일부터 준비하면 될 거야.”

    “아들. 부담 갖지 말고 편하게 해. 대충 해도 완승일걸?”

    “......”

    방금 눈치챈 건데, 두 여자의 호흡이 무서울 정도로 딱딱 맞았다.

    내가 없는 사이에 무슨 일이?

    적응이 안 됐다.

    “아들.”

    “네.”

    “어른들도 아들의 올림픽을 지켜볼 거예요. 말로는 선수들의 노력을 짓밟지 말라고 하지만, 그건 우리끼리 있을 때나 하는 말이랍니다. 황족은 체면과 명예 빼면 시체라고요.”

    “아...”

    그랬다.

    내가 ‘무당’이기 때문에 출전하면 안 된다고 시비 거는 인간은 없다. 안 된다는 규정이나 전통도 없고.

    올림픽에서 선수의 적성과 종목을 똑같이 맞추는 이유는, 그게 성적이 가장 잘 나오기 때문일 뿐.

    “그리고 아들. 피메달은 애초에 적성을 무시하고 여러 종목에 참가해요. 단체전 편법도 흔하게 쓰이고. 아들이 양보할 이유가 전혀 없어요.”

    피메달(P-medal).

    P의 적성검사기 등장으로 올림픽도 초인대전 비슷한 혁신을 맞이하며, 새롭게 등장한 명예로운 훈장.

    예전에는 욕심이 안 났는데, 이름에 P가 들어갔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매우 신경 쓰였다.

    못 따면 안 될 것 같은?

    노벨물리학상을 노벨의 후손이 못 받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랄까!

    “...진지하게 해보죠.”

    “잘 생각했어.”

    “후후! 제국에 계신 어른들도 기뻐할 거예요. 당연히 그분도.”

    “...네.”

    검귀 때문에 움직이질 못하는 P도 지켜본다는 말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어머님. 다음은 어디로 갈까요?”

    “흐음~ 아들도 왔으니 조금 짜릿한 놀이기구로 가볼까요? 무서우면 내 아들을 꽉 끌어안아도 돼요.”

    “어머님도 참~”

    “조금 전에 우리 대신 줄을 선 수행원으로부터 문자가 왔어요. 롤러코스터를 탈 준비가 끝났다고.”

    “롤러코스터! 저는 좋아요.”

    “아들은?”

    “...저도 좋습니다.”

    계속 우리의 주위를 맴도는 것 같은 커플이랑 눈이 마주쳤다.

    살랑살랑~

    자연스럽게 손을 흔들어준다.

    “흠.”

    나도 답례한 후에 다른 커플을 쳐다봤더니,

    살랑살랑~

    그쪽도 손을 흔들어주네?

    마찬가지로 나도 손을 가볍게 흔들며 호응해줬다.

    ‘아니, 대체...’

    우리 때문에 수행원과 경호원이 얼마나 많이 동원된 거야?

    “언니! 어서 타요!”

    “고마워~”

    “언니, 고마워요.”

    “감사합니다.”

    나는 롤러코스터 앞에서 우리 대신 2시간 가까이 기다린 수행원에게 고개를 숙이며 감사를 전했다.

    저희 때문에 고생이 많으시네요.

    “아들~”

    “네! 갑니다!”

    나는 아까부터 호흡과 대화를 방해하는 마스크를 벗으며 외쳤다.

    그런데,

    “야! 저기를 봐! 어서!”

    “강문수다!”

    “정말? 와! 진짜네!”

    꿈에서 깨어났을 때부터 쭉 마스크를 쓰고 있던 이유가 있었다.

    아직도 공항 때랑 비슷하다고?

    기가 막혔다.

    “여러분도 유원지에서 즐거운 추억을 많이 쌓으시길 빕니다.”

    “제 아들이랑 손 좀 잡아주세요!”

    “같이 사진 한 장만...!”

    “문수 오빠! 저 좀 봐줘요!”

    “......”

    아무래도 롤러코스터가 내 마지막 놀이기구가 될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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