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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88화 (189/232)
  • 188화

    [10장-4절] 원한이 없잖은가?

    인간이 그림이나 조각으로 표현한 ‘날개 달린 인간’은 전혀 현실적이지 않다. 인간은 원래 날개가 없기 때문이란 이유가 아니다.

    몸무게.

    인간 정도의 생명체가 하늘을 날 수 있는 양력(揚力)을 만들려면 날개가 무지막지하게 커야 한다.

    아니면 헬리콥터나 곤충처럼 날개를 매우 빠르게 움직이거나.

    펄럭~ 펄럭~

    이 천사들처럼 우아하게 날개를 젓는 정도로 허공에 머물려면, 저 정도의 날개로는 어림도 없다.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으냐?

    ‘전부 판타지지!’

    여신을 수행하는 천사들과 새로운 형태의 검귀들이 사용 중인 비행 방식은 현실을 벗어났다.

    “흠.”

    저것들을 뭐라고 불러야 할까?

    공중 공격에 취약한 검귀를 보완하는 상위 개체.

    그 대가로 팔이 줄어들었지만, 현대전만 보더라도 공중 장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대체...”

    게다가 놈들의 몸에서 풍겨 나오는 압박감은 검귀를 한참 상회했다.

    익귀(翼鬼).

    정식 명칭이 따로 없다면 일단은 ‘날개 달린 귀신’이라고 부르자.

    “......”

    “......”

    내가 놈들을 관찰하듯 놈들도 바로 공격하지 않고 지그시 쳐다봤다. 이것도 뭐든지 눈앞에 보이면 썰어버리고 시작하는 일반적인 검귀랑 다른 행동.

    머리가 장식품이었던 검귀랑 달리 지혜가 있다는 뜻이다.

    “헉! 으으...”

    여신의 부드러운 가슴에 안겨서 마음을 치유 중이던 환자가 익귀를 보고는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었다.

    애인들을 살해한 놈들에게 분노 대신 공포를 느끼다니?

    애초에 적성이 ‘소설 작가’인 그에게 전사 같은 패기를 기대하긴 무리. 포식자 앞의 초식동물이나 다름없었다.

    “걱정하지 마세요, 용사님.”

    “여신님!”

    “자고 일어나면 신기루처럼 사라질 악몽이에요. 행복한 일만 생각하세요.”

    “...네!”

    정신이 벼랑 끝까지 몰린 용사는 맹목적으로 여신에게 매달렸다.

    지능이 퇴화한 걸까? 초등학생도 저러진 않을 것 같다.

    “자... 그러면...”

    벌벌 떠는 용사를 안심시킨 여신이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던 오른손을 치켜들며 손가락을 까딱였다.

    “네! 여신님!”

    “분부대로!”

    “적을 치워라!”

    하늘이 빗장처럼 열리며 수많은 천사가 추가로 합류했다.

    그들의 무장은 활.

    검귀에게 무력한 판타지가 가미되지 않은 순수한 활과 화살이었다.

    끼익-

    피융! 샤샤삭!

    활시위를 당긴 천사들은 경고 없이 활을 쏘기 시작했다.

    ‘와우?’

    검귀와 나는 판타지 요소가 일절 통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판타지의 괴력과 순발력으로 쏜 화살은 어떨까? 이걸 판타지라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정답은...

    푹! 푸욱! 푹! 푹...!

    기관총에 버금가는 연사속도에 지상의 검귀들은 맥없이 쓰러졌다. 한 발, 한 발이 철판처럼 두꺼운 검귀의 피부를 꿰뚫고 깊숙이 박혔던 탓이다.

    ...저 정도면 나에게도 위협적이다.

    깜빡~

    물론, 내가 당하기 전에 혈신 만세를 힘껏 외치겠지만.

    “온 보람이 있군.”

    “조금 즐겁겠어.”

    말했다?!

    익귀에게 지혜가 있다고 생각하긴 했지만, 말까지 할 줄은 몰랐다.

    갈증에 시달리는 사람처럼 목소리가 갈라지긴 했지만, 놈들이 똑바로 말을 할 수 있다는 게 중요했다.

    어째서냐?

    말을 할 줄 안다면 협상도 가능하다는 얘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팅! 팅! 팅! 팅...!

    기관총처럼 날아드는 화살을 전부 쳐내는 저들이 나를 ‘위협’으로 간주하게 만들 수 있다면 말이다.

    ‘와! 저게 가능해?!’

    영화처럼 모든 총알이 주인공을 빗나가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두 익귀는 회피하지 않고 허공에 가만히 떠 있는 상태로 그 모든 화살을 막아내고 있었다.

    쌍검술의 달인처럼 현란하게!

    그 매끄러운 동작은 검술의 하수인 내가 봐도 완벽했다.

    “쏴라.”

    “계속 쏴!”

    하지만 천사들은 포기하지 않고 두 익귀에게 화살을 퍼부었다.

    “다른 세계의 인간. 너는 언제까지 구경만 할 거지?”

    여신이 나를 쏘아보며 물었다.

    “구경이라뇨? 호위 중입니다. 저들의 목적은 용사니까요.”

    “필요없다.”

    “그렇게 말씀하신다면야...”

    마녀가 말하길, 검귀는 판타지 원주민들에게 살해되면 나처럼 꿈의 세계에서 추방될 뿐, 죽진 않는다.

    즉, 불사신(不死身).

    그렇기에 동료 1마리를 늘리기 위해 이토록 많은 희생이 가능한 것이다. 그러니 무의미한 희생이 계속돼도 괜찮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줄여야 돼.’

    두 익귀가 신경 쓰이긴 했지만, 천사들의 일방적인 활 공격으로 죽는 검귀들이 너무 아까웠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적었다.

    사극 <궁녀 덕춘이> 때처럼 바글바글했으면 좋겠는데, 라누벨 환자가 천사의 부축을 받으며 하늘로 도망친 뒤부터 충원이 안 이루어지고 있었다.

    “정 그러시면 저는 지상을 지원하겠습니다. 어차피 날개도 없어서 여긴 힘드니까요.”

    “어엇?!”

    휙.

    붙잡고 있던 천사의 발목을 놓으며 수직으로 자유낙하했다.

    “잘 부탁해.”

    깜빡!

    검으로 변한 발렌타인의 칼날 촉수가 검귀의 정수리에 박혔다.

    끼긱...?

    푹!

    검귀를 가볍게 양단한 촉수가 대지에 박히면서 스프링처럼 낙하 충격을 완화해줬다.

    “고마워.”

    깜빡~

    환자를 살릴 수 있으면 살린다는 방침을 바꿨다.

    환자 ‘정용상’이 검귀로 변하더라도, 내가 여기서 검귀의 숫자를 1마리 이상 줄이면 이득이지 않은가?

    물론, 내가 이 꿈속에 투자한 시간과 정성을 고려하면 한두 마리 줄인 정도로는 수지타산에 안 맞지만.

    “가볼까.”

    여신의 간섭으로 내 계획에 크나큰 차질이 생겼지만, 불평만 하고 있을 순 없었다.

    끼긱...!

    아무 생각 없이 돌진하는 검귀를 향해 발렌타인을 휘둘렀다.

    “꺼져.”

    내 조상님은 그만 괴롭히고.

    서걱-

    무엇이든 벨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대충 팔을 휘두른 검귀를 썰어줬다.

    지금이라도 ‘혈신 만세!’를 외치면 간단히 끝낼 수 있지만...

    ‘저 둘이 신경 쓰인단 말이지.’

    인간처럼 생각하고 말할 수 있는 두 익귀의 존재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한 마리씩 차근차근.

    이 싸움이 끝났을 때, 검귀의 절대적인 숫자가 역으로 줄어든 원인을 놈들이 모르게 하고 싶다.

    댕강!

    무엇이든 벨 수 있는 검귀의 팔을 역으로 자르는 나를 판타지 원주민으로 착각해준다면 말이다.

    ‘녀석들은 아직도 막기만... 어?’

    사라졌다.

    갑자기 허공에서 사라진 두 익귀. 그리고 천사들의 비명이 시작됐다.

    “꺅?!”

    “아악?!”

    그건 비행이 아니었다.

    공간이동.

    놈들이 날개를 한 번 펄럭일 때마다 순식간에 위치가 바뀌었다.

    “허!”

    저 능력을 한 마디로 표현하면?

    미쳤다.

    검귀는 ‘무엇이든 벨 수 있는 팔’을 가졌다. 그렇다면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날개’도 가능하다는 의미!

    보자마자 이해했다.

    ‘나도 따라할 수 있겠는데?’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나의 세계’를 5배 넘게, 대폭 확장한 지금의 나라면 할 수 있다. 여유 공간을 할당하기만 한다면!

    그게 문제다.

    “감히...!”

    하늘이 떨릴 정도로 격분한 여신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기 시작했다.

    우우웅-

    차원을 비틀었다.

    다른 차원의 인간을 데려와서 용사로 임명한 존재인 만큼 차원을 조작하는 건 일도 아니리라.

    그 비트는 속도는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두 익귀를 따라잡았다.

    그러나,

    “멍청하군.”

    “학습이 부족해.”

    차원을 비트는 무지막지한 능력도 결국은 판타지.

    화살보다도 위협이 안 됐다.

    “이 버러지들이...!”

    용사 때문에 감정을 억제하고 있었던 여신이 마침내 폭발했다.

    쿠구구-

    “저, 저... 미쳤나?!”

    하늘에서 운석이 우박처럼 떨어지기 시작했다.

    판타지로 이동시키긴 했어도 엄연히 현실에 존재하는 물리 공격!

    저거라면 틀림없이 죽음에 이르는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눈이 멀었네.”

    분노로 이성이 마비된 여신은 지상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있었다. 아니면 아예 안중에 없거나.

    후자일 가능성이 높다.

    이 판타지 세계는 용사만을 위한 모형정원 혹은 놀이터.

    입으로는 마왕의 위협으로부터 세상을 구하기 위해 용사를 소환했다고 말하며 부탁하지만, 차원을 비트는 여신이 마왕보다 약할 것 같지 않다.

    깜빡?

    “...그러게. 여기에 있다가는 진짜 죽을 것 같네.”

    헌터물 의 세계에서 미사일 사례도 버틴 나지만, 그때보다 세계의 사용량이 훨씬 줄었다.

    진짜로 죽을 수도?

    깜빡깜빡!

    “아니야?”

    깜빡!

    아무래도 내가 잘못 이해한 듯했다.

    “...하자고?”

    깜빡!

    병신 같은 여신 때문에 내 능력을 두 익귀에게 들키는 게 마음에 안 들지만, 달리 방법이 없었다.

    “운석이 떨어진다!”

    “신이시여!”

    “그 신이 미쳤어!”

    “헌금을 그렇게 많이 했는데!”

    “엄마! 엄마!”

    공작령은 검귀의 습격 때보다 더 큰 혼란에 빠져 있었다.

    차라리 검귀가 훨씬 나았다. 내가 놈들의 강점과 약점, 대응법까지 상세히 가르쳐준 덕분에 석궁 등을 활용해서 수월하게 막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운석은?

    답이 없다.

    “두 녀석은... 젠장.”

    여신이 노려야 할 익귀들은 어디든지 갈 수 있는 날개로 운석은 간단히 피하고 불구경하는 모양새.

    저 여신은 용사밖에 모르는 멍청한 설정 덩어리가 틀림없다. 신(神)다운 지혜가 없고, 공정함도 없으며, 감정은 똥구멍으로 나이만 처먹은 늙은이처럼 자존심밖에 없다.

    ‘선배...’

    보고 싶다.

    “생각, 생각, 생각...”

    미사일처럼 요격할 순 있다. 하지만 비를 자른다고 바닥에 안 떨어지던가?

    무의미하다.

    “......”

    꿈틀꿈틀.

    재앙을 눈치챈 개미들이 일렬로 도망가는 모습이 보였다. 건방지게 내 발을 밟고 지나가는 녀석도...

    “아!”

    적의 숫자만큼 칼날이 늘어난다.

    그 적의 기준은?

    내가 생각하기 나름이다.

    ‘모기, 파리, 바퀴벌레, 흰개미... 무당벌레, 거미, 지렁이, 잠자리는 이로운 생물이지만 내 여자친구가 곤충과 벌레를 매우 무서워하니 포함!’

    그밖에도 내가 당장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생물을 ‘적’으로 인식했다.

    인간 빼고.

    마음 같아서는 박테리아와 곰팡이까지 넣고 싶지만, 이건 내 상상력과 인지력이 극단적으로 부족했다.

    그리고 확인. 동료로 취급되는 방해꾼이 근처에 없는지 살핀 후...

    “후웁!”

    숨을 들이켰다.

    이 결정을 후회하지 않는다. 결과가 내 의도와 예상을 벗어날지라도.

    그러니 힘껏 외치자.

    “혈신 만세~!”

    깜빡~!

    수많은 칼날이 세상을 완전히 뒤덮을 기세로 잔디처럼 솟아났다.

    하늘까지 쭉쭉!

    멍청한 여신이 소환한 운석이 적은 숫자는 아니었지만, 위대한 혈신이 하사한 무기랑 비교할 수준은 아니었다.

    팍, 팍, 팍, 팍...

    쪼개고, 또 쪼개고, 계속 쪼개진 운석들이 땅에 충돌하지 못하고 잿더미가 되어 허공에서 소멸됐다.

    “와아!”

    없었던 신앙심도 자연스럽게 끄집어낼 만큼 웅장한 광경이었다.

    다만,

    휙! 서걱!

    할 일은 마친 칼날은 내가 임의로 취소할 수 없었다.

    스르르...

    그것들은 내가 상정한 ‘적이 아닌 적’을 향해 일직선으로 돌진해서 절단한 후에 하나씩 사라졌다.

    ‘이건... 앞으로 조심해야겠네.’

    숫자를 늘리기 위해 상정을 잘못했다가는 멀쩡한 아군까지 휘말리리라.

    사고 친 여신은?

    툭.

    “응?”

    목과 머리카락이 잘린 여신의 아름다운 머리가 내 옆에 떨어졌다.

    “우리의 선물은 마음에 드는가, 혈신의 제자.”

    “뭣-?”

    뒤편에서 익귀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면 P의 자손이나 마녀의 아들이라고 불러주는 쪽이 좋은가?”

    다른 익귀가 아름다운 여신이었던 살덩이에 방석처럼 앉은 채로 물었다.

    “그걸 어떻게...”

    “어떻게 알았을 것 같은가?”

    “......”

    모른다. 하지만 선배가 친절하게 가르쳐줬을 것 같진 않다.

    “우리 사이에 원한은 없다.”

    “P의 자손. 무의미한 소모전은 필요 없지 않은가?”

    “원한이야 있지. 몇 번이나 검귀의 습격으로 죽을 뻔했는데.”

    우연히 마주쳤다고 하기에는 너무 노골적으로 습격했다.

    “오해다.”

    “저것들은 생각이 없어. 본능대로 움직이는 짐승이지.”

    여신 앞에선 한없이 오만했던 두 익귀가 어울리지 않게 변명했다.

    그건 아마도...

    “너희의 그 날개, 내 근처로는 이동하지 못하는 것 같네.”

    “......”

    “......”

    여유로웠던 익귀들의 표정이 살짝 굳으면서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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