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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87화 (188/232)
  • 187화

    여신(女神).

    등에 새하얀 날개가 달린 여인들의 호위를 받는 저 여성을 달리 뭐라고 표현할 수 있겠는가?

    ‘와... 다리가 예쁘네.’

    선배 외의 신(神)을 만나본 내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쿠구구구-!

    현재, 그 신의 기분이 매우 안 좋아 보였다.

    “감히...!”

    그녀가 손을 휘젓자 하늘에서 번개가 줄기차게 떨어졌다.

    번쩍! 쿠르르! 쾅쾅-!

    하지만 진짜 번개가 아닌 인위적으로 만든 번개에 ‘나의 세계’로 분리된 검귀들이 당할 리 없었다.

    “으아아아!”

    “살려~!”

    “신이시여...!”

    피해는 엄한 공작령의 시민들만 받고 있었다.

    “이, 이게 대체...”

    새로운 공작이 취임(?)하자마자 벌어진 대재앙.

    그들로선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어렵지.’

    지구에서 초대한 용사의 복지를 신경 쓰는 여신의 관점에서 보자면, 집에 초대한 손님(용사)이 매우 힘들어하는 건 참기 힘들 것이다.

    그 결정적인 원인은...

    끼기긱!

    끼긱!

    용사의 동료(애인)들에게 거의 몰살에 가까운 타격을 준 검귀가 진격했다.

    표적은 용사.

    꿈속에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던 라누벨 환자를 새로운 동료로 만들기 위해 모든 걸 베고 있었다.

    “막으러 가보죠.”

    “저걸...?”

    공작은 이 엽기적인 사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았다. 그의 관점에서 보자면, 태풍을 인간의 힘으로 막겠다는 개소리로 들렸을 테니까.

    간단한 설명에 들어가자.

    “저건 신입니다. 용사만을 위해 존재하는 비틀린 신.”

    한 인간만을 편애하는 신이라니? 심지어 그 인간은 다른 별 출신이다. 이건 그야말로 소설, 만화에서만 가능한 비정상적인 관계.

    용사를 위해 하나의 세계(꿈)가 존재하는 거나 다름없다.

    “용사만을 위해?”

    “쉽게 말해, 여러분이 용사를 건드리지 못하도록 막기 위해 온 겁니다.”

    “뭔...”

    “그런...?”

    “허...”

    하늘에서 내려온 여신이 집중적으로 공격하는 대상이 누구인지 본다면 안 믿을 수 없다.

    그러니 인간의 편?

    아니다. 거기에 휘말린 인간들이 죽고 있었으니까. 저건 인간을 구하기 위한 행동으로 해석할 수 없다.

    “어찌...”

    “허어!”

    딸의 복수는커녕 역으로 당하게 생긴 그들로선 매우 억울하겠지만, 애초에 이 꿈은 환자만을 위해 존재하기에 놀랍지도 않다.

    그때,

    “실례합니다.”

    우리가 창문 너머의 재앙에 시선이 팔린 사이, 뒤편으로 소리 없이 접근한 천사가 말했다.

    “천사...?”

    “정말로...?”

    판타지 세계인데도 등에 날개 달린 인간이 흔하지 않은 모양이다.

    “신께서는 여러분의 딸들에게 벌어진 비극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피해보상으로 영원한 젊음의 묘약과 망각의 축복을 내리기로 했습니다. 용사를 용서하고 다시 시작하라는 의미입니다.”

    “딸을 부활시켜주십시오.”

    “저도 딸을 원합니다.”

    하지만 천사의 제안을 조심스럽게 거절하는 사람들. 이게 자식 가진 부모의 마음이란 걸까?

    “이런이런. 단단히 오해하셨군요. 이건 제안이 아닌 통보입니다. 여러분은 선택권이 없습니다.”

    “그런...!”

    “터무니없는...!”

    그들은 딸을 선택하고 싶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는 듯했다.

    어떻게 할까?

    여신으로선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만, 너무 설명이 부족했다.

    “이봐.”

    “당신은 관련 없는 인간이군요.”

    “똑바로 설명해야지. 죽은 그들을 여신도 부활시킬 수 없다고.”

    “불경한...!”

    “블레이드 팬텀에게 살해된 영혼은 신도 되살릴 수 없기에 내놓은 차선책이잖아? 하지만 그걸 설명해주지 않으면 당연히 반발하지.”

    “......”

    천사는 긍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대답을 회피한 것만으로도 충분하리라.

    “그런...”

    “신도 살릴 수 없다니...”

    “아아! 어찌하여...”

    신이라면 살릴 수 있지 않을까, 이미 포기했다가 다시 희망을 품은 사람들은 다시 좌절했다.

    그리고 결정했다.

    “거절하겠소. 나는 딸을 팔아서 얻는 젊음 따위는 필요없소.”

    “나도 마찬가지요. 신의 제안은 달콤하지만, 사랑하는 딸을 잊는 짓만은 절대 할 수 없습니다.”

    “용사는 심판받아야 해요.”

    결론이 났다.

    “감히...”

    그리고 그들의 명백한 거절 의사에 천사의 얼굴에서 미소가 사라졌다.

    “그렇다면-”

    천사의 손에 빛의 창이 소환됐다.

    “헉!”

    “미친...!”

    의도를 눈치챈 사람들이 경악하며 뒷걸음질쳤다.

    “너희는 기회를 놓쳤다! 신의 자비를 무시한 대가를- 어?”

    푹!

    거창하게 연설하는 천사의 배에 칼날이 예쁘게 박혔다.

    “말이 많아.”

    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능력 중에 가장 기본적인 공격수단.

    칼날 촉수로 찌르기!

    적의 숫자만큼 대규모로 칼날을 소환하려면 선배의 주문이 필수지만, 이건 눈깔의 자체적인 의지다.

    “어, 어떻게...?”

    털썩!

    몸에 두른 투명한 보호막이 간단히 뚫리고, 회복도 안 된다는 사실에 당황하며 맥없이 쓰러진 천사.

    공격 의사만 안 보였으면 그냥 보내줬을 텐데, 놈은 넘어선 안 되는 선을 아무렇지 않게 넘었다.

    “천사를 처리하긴 했지만, 여긴 위험하니 안전은 스스로 챙기세요.”

    이젠 가야 한다.

    “고맙네. 이 은혜는 꼭 갚지.”

    “내 딸이 살아 있었다면... 후우...”

    “나중에 보세.”

    그들의 감사 인사에 고개를 살짝 숙이며 답례한 후에 깨진 창문을 통해서 밖으로 나왔다.

    “갈까?”

    깜빡!

    용사만 편애하는 신이 어떻게 싸우는지 한 번 보러 가보자.

    * * *

    번개가 안 통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신은 다른 방법을 선택했다.

    쩌적-!

    갈라진 땅에 검귀를 빠트려서 묻어버린다는 획기적인 공격법. 이게 무식하긴 해도 물리적인 수단이라 검귀에게 잘 통하고 있었다.

    “나의 세계에서 꺼져라...!”

    선배처럼 설정으로 창조된 신(神)이긴 했지만, 바보가 아니었다.

    물론,

    “꺅?!”

    “아악?!”

    그녀가 데려온 수많은 천사의 희생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끼긱-?!

    끼기긱!

    모든 판타지 요소를 무시하는 검귀도 내디딜 땅이 없으면 밑으로 추락할 수밖에 없었다.

    ‘저건 나에게도 위험하겠는데?’

    저 정도로 죽진 않겠지만, 생매장당하면 빠져나올 방법이 없다.

    깜빡!

    “아! 네가 삽질해주면 되겠네.”

    깜빡?!

    농담이다. 내가 재능이 없긴 해도 엄연한 검사니까. 선배가 선물해준 검을 삽으로 쓰진 않는다.

    ‘아아, 저기 있네.’

    폐인처럼 실의에 빠진 용사가 아리따운 천사들의 부축을 받으며 여신의 앞으로 이동하고 있었다.

    곤란한걸. 죽어가는 그에게 여신이 산소호흡기를 달아주려고 하니까.

    검귀를 싹 처리한 뒤에 구할 수 있으면 구하려고 했는데, 저런 식으로 다시 희망을 불어넣게 되면 안 된다.

    문제는?

    “저기까지 갈 방법이 없네.”

    천사처럼 등에 날개를 만들면 가능하겠지만, 고작 그런 것에 ‘나의 세계’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깜빡!

    “...아! 그렇네.”

    헌터물 에서 종종 사용했던 이동법.

    하지만 그 방법이 조건부가 되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게 나쁘다는 건 절대 아니지만.

    푹!

    발렌타인의 칼끝을 땅에 꽂으며 외쳤다.

    “혈신 만세~!”

    어째서 선배는 이런 제약을 선물에 추가해둔 걸까?

    처음에는 나를 골탕먹일 의도라고 생각했었는데,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것 외에도 깊은 뜻이 있었다.

    ‘저지르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라.’

    충동적으로 결정하지 말고, 이 칼로 적들을 몰살시키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해보라는 안전장치.

    현재로선 만족하고 있다. 아니, 설사 장난이었다고 해도 나와 어머니를 구해준 선배에게 그 어떤 악감정도 없다.

    ‘혹시?’

    신(神)은 신(神)에 대해 알지도? 세계관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신’이란 설정의 무게감을 무시할 순 없다.

    촤악!

    검귀들을 표적으로 삼아서 소환한 칼날이 죽순처럼 땅에서 솟구쳤다.

    탁.

    그것을 밟고 하늘까지 쭉!

    하지만 나의 접근을 못마땅하게 여긴 천사들이 앞을 가로막았다.

    “멈춰라!”

    “물러나라!”

    초대받지 않은 손님은 안 받겠다는 의지가 뚜렷했다.

    “좀 지나갑시다!”

    나도 불청객이란 사실을 알기에 웬만하면 싸우고 싶지 않다.

    챙!

    채앵!

    그렇다고 무기로 위협하는 상대에게 겁먹고 물러설 생각은 전혀 없지만.

    “혈신 만세!”

    푹! 푸욱!

    추가로 소환된 칼날이 천사들의 날개를 절단했다.

    불편한 진실이지만, 내가 직접 칼질하며 싸우는 것보다는 이쪽이 훨씬 편하고 강했다.

    “아...?”

    “허엇...?!”

    소환된 칼날을 막아선 창이 수수깡처럼 절단되고 날개마저 잃은 천사들이 맥없이 추락했다.

    깜빡~

    칼의 손잡이 정중앙에 박힌 눈깔이 즐겁다는듯 눈동자를 빙글빙글 돌렸다.

    “자... 그러면... 허!”

    방해하는 천사들을 ‘혈신 만세!’로 간단히 처리한 후, 위쪽을 올려다본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여신이 우매한 어린 양의 어리광을 받아주듯 라누벨 환자의 머리를 다정하게 쓰다듬어주고 있었던 탓이다.

    ‘저건 좀 강력한데?’

    환자에게 현실로 돌아가자고 설득할 자신이 없다. 반드시 설득해야 한다는 강박이나 사명감은 없지만.

    “너는 누구지?”

    용사에게 한없이 다정했던 여신이 나를 차갑게 노려보며 물었다.

    “신(神)의 자손입니다.”

    나에게 P의 피가 흐르니 틀린 말도 아니리라.

    “어떤 신이지?”

    “지구의 신입니다.”

    덥석!

    저들처럼 구름을 밟고 설 수 없었던 나는 근처에 있는 천사의 발목을 붙잡고 매달렸다.

    “꺅~?!”

    다리가 참 예쁘시네요.

    “...너도 저것들처럼 안 통하는구나. 정체가 뭐지?”

    “조금 전에 신의 자손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만...”

    “그게 어쨌다고?”

    “흠.”

    이 여신은 선배처럼 이쪽 분야에 통달한 존재는 아닌 것 같다.

    “쉽게 말해서, 당신과 저는 사는 세계가 다릅니다.”

    “헛소리. 나는 신이다. 나에게 불가능은 없어.”

    “하지만 눈앞에 있지 않습니까?”

    “네가 잘못된 거다. 이 세계에 있어선 안 되는 존재야.”

    내 모습을 담은 여신의 눈동자가 강렬한 살의로 번뜩였다.

    “용무만 마치고 떠날 겁니다. 믿으셔도 좋습니다.”

    “너의 세계로 떠난다는 거냐?”

    “네.”

    “......”

    여신이 자신의 깊은 가슴골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여전히 어리광부리는 용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와! 용사 복지가 미쳤네!’

    정령의 노동력을 공짜로 착취하는 세계관에서, 용사는 똥을 아무리 싸도 예쁘게 봐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완벽한 용사물!

    어이가 없지만, 그 기분을 잠시 내려놓고 본업으로 넘어갔다.

    “제 목적은 용사를 노리고 있는 저 밑에 괴물입니다. 같은 세계에서 넘어온 놈들이죠.”

    “지구라고?”

    “네.”

    다른 지구였지만, 그것까지 설명하려면 복잡해져서 생략했다.

    “...두고 보지.”

    “감사합니다.”

    우리가 공동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어설픈 동맹을 구축할 때였다.

    “커억?!”

    “악~?!”

    검귀의 손이 닿을 리 없는 하늘에서 천사들의 비명이 들려왔다.

    “무슨...?”

    그것은 새로운 형태의 검귀였다.

    “......”

    “......”

    양팔을 비비면서 소름 돋는 소리도 내지 않고 차분한 눈빛과 표정.

    굳게 다물어진 입에선 뚜렷한 의지가 엿보였다.

    또한,

    “날개라니!”

    머나먼 공룡의 시대에 존재했던 익룡(翼龍)의 날개는 길게 늘어난 새끼손가락이었다.

    검귀도 비슷했는데...

    두 쌍의 팔 중에 위쪽이 날개처럼 아주 넓은 면적의 칼날로 변화해 있었다.

    “저건?”

    “저도 모릅니다!”

    일단은 저것들부터 처리한 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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