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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82화 (183/232)
  • 182화

    [10장-2절] 깜빡?

    나는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업적을 제대로 쌓았다.

    무려 5배 이상!

    그 이전에도 상당히 강한 축에 속했는데,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효율적으로 업적을 쌓으면서 ‘나의 세계’가 5배 확장됐다.

    그러나,

    “이런 느낌인가.”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선배가 말하지 않았던가? 도시에는 고층건물만 빼곡한 게 아니라고, 공원과 광장 같은 공간도 필요하다고. 그러니 세계를 전부 쓰지 말라고 했다.

    그 결과는?

    나의 세계가 확장됐다. 육체에 한정됐던 세계가 주변을 잠식, 나의 생가죽을 옷처럼 보이게 하는 꼼수가 불필요해졌다.

    ‘일단.’

    이 세계의 원주민들에게 동화될 수 있도록 현대적인 복장부터 바꿨다.

    스으윽-

    중세시대의 서민 같은 차림. 속옷은 안 보이기에 그대로 유지하고 겉옷만 근처 행인의 것을 복사했다.

    “선배.”

    불러도 대답이 없다.

    깜빡?

    “...어?”

    내가 만들지도 않은 SSS급 괴물이 옷소매에서 빼꼼 눈깔을 내밀었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진짜로 너야...?”

    깜빡~

    눈깔 촉수가 기분 좋게 몸을 흔들며 긍정했다.

    “선배는 어디 가고... 어?”

    고양이의 머리를 쓰다듬듯 눈깔에 손을 데자마자 정보가 보였다.

    [발렌타인]

    혈신 소운현이 답답한 후배를 위해 솔로늄으로 제작한 신화급 마검.

    힘차게 ‘혈신 만세!’를 외치면 적의 숫자만큼 칼날이 소환된다.

    동료나 연인이 주위에 없으면 효과 범위가 대폭 상승한다!

    ※선배를 능가해야 수정 가능.

    “이름이 발렌타인이라니...”

    당혹스러운 건 둘째 치고, 내가 사랑했던 여인의 이름을 SSS급 괴물에 붙인 건 횡포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끙...”

    설명에 붙은 추신 때문에 ‘나의 세계’임에도 수정할 수 없었다!

    깜빡깜빡~

    눈깔 촉수가 내 오른팔에 기분 좋게 눈깔을 비비적거렸다.

    “...그렇구나.”

    이 녀석을 보니 더욱 실감이 됐다. 선배가 내게서 떠났음을. 마지막까지 도움만 주다가 갑자기...

    현실의 내 몸이 살짝 걱정됐다.

    * * *

    깜빡깜빡!

    라누벨 환자의 손을 건드리자마자 잠든 강문수의 육체가 바로 눈을 떴다.

    “소운현 씨. 잘 지냈나요?”

    아무것도 모르는 서혜주 원장이 자연스럽게 안부를 물었다.

    그러자,

    “아무런 능력도 없는 미개한 인간. 송선영을 데려와라.”

    “음?”

    말투와 대사가 이상했다.

    “혈신께서 우수한 숙주의 암컷 외의 인간은 믿지 말라고 하셨다.”

    “...실례지만, 누구신지 말씀해주셔야 그녀를 불러줄 수 있어요.”

    다양한 환자를 경험해본 서혜주 원장은 당황하지 않고 장단에 맞춰줬다.

    소운현이 아니다?

    그러면 대체 누가 강문수의 육체를 조종하고 있는 걸까.

    “내 이름은 발렌타인이다.”

    “아! 강문수 씨의 전 여자친구였던 호위기사였군요.”

    강문수는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에 등장하는 ‘발렌타인’이 매우 여성스럽다고 했는데, 직접 만나보니 전혀 달랐다.

    “아니다.”

    “아니었군요.”

    “나는 미개한 인간들이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라고 불렀던 존재다.”

    “아!”

    대부분의 이야기를 공유한 서혜주 원장은 상황을 바로 눈치챘다. 어째서 이성적인 소운현이 사라지고 SSS급 괴물이 튀어나왔는지는 모르지만.

    혈신.

    그 이름을 언급한 것으로 보아선 단순한 우연은 아니었다.

    “미개한 인간. 이해했으면 어서 송선영이란 암컷을 불러와라.”

    송선영.

    눈을 뜨자마자 그녀를 찾는 인피니티 블레이드.

    혈신 소운현이 신뢰할 수 있는 안전장치로 여자친구 ‘송선영’을 선택했음을 알 수 있었다.

    “...기다리세요.”

    인정한다.

    만약,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자신(서혜주)을 신뢰했다면 모두에게 비밀로 하고 강문수의 피부터 뽑았을 테니까!

    그녀의 조수 윤소라였다면?

    한 달 안에 산부인과에 가게 될 확률이 매우 농후하다!

    ‘소운현씨 답네.’

    송선영을 제외한 인간은 목적이 최소 하나씩은 있으니까. 보호자로 가장 적합한 인물을 선택한 셈이다.

    “송선영!”

    “인피니티 블레이드-”

    “발렌타인이다!”

    “발렌타인. 기다려주세요.”

    “나는 인간 사회를 잘 안다. 얼른 그 암컷에게 전화해서 불러라!”

    “흐음~”

    아무래도 헌터물 의 인류문명 지식을 가진 듯했다.

    “어서!”

    하지만 기다린다는 개념은 그 안에 포함되지 않은 모양이다.

    띠리링~!

    (언니. 문수는 잘 들어갔나요?)

    “잘 들어갔지. 그런데 사소한 문제가 생긴 것 같아.”

    송선영이 통화를 받자마자 서혜주 원장은 한숨부터 내쉬었다.

    (운현 오빠 때문에요?)

    “어... 비슷해. 일로 바쁘지 않으면 와줄 수 있을까?”

    “송선영~!”

    “...내가 지금 매우 곤란하거든.”

    (갈게요. 하지만 시간은 좀 걸릴 거예요. 관저가 멀잖아요.)

    그랬다.

    강문수가 멀리 이사 가면서 엘몰랑스 병원도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그래도 부탁할게.”

    (네.)

    뚝.

    통화를 마친 서혜주 원장은 의료용 침대에서 비틀비틀 일어서는 강문수(괴물)에게 말을 걸었다.

    “발렌타인. 배고프지 않나요?”

    길들이지 않은 애완동물처럼 먹는 것으로 회유해보자.

    “배고프다.”

    “그러면...”

    “하지만 안 먹는다. 송선영이나 빨리 데려와라.”

    “...통화하는 것을 들었죠? 먹으면서 기다리는 게 어떤가요?”

    “안 먹는다. 너는 못 믿는다. 송선영이 주면 먹는다.”

    “흐음~”

    교육이 잘 되어있네.

    혈신 소운현의 명령을 절대적으로 따르는 것 같다.

    “발렌타인.”

    “뭐냐?”

    “소운현 씨가 다른 말은 없었나요?”

    “있었다.”

    “이것도 송선영이 올 때까지 말할 수 없나요?”

    “아니다.”

    “어머!”

    뜻밖이었다.

    “그러면 제가 들을 수 있을까요?

    “혈신께서는 나중에 다시 만나게 될 거라고 말씀하셨다.”

    “나중이라면...”

    “그건 나도 모른다.”

    “그렇군요. 아! 화장실은 이용할 줄 아시나요?”

    “미개한 인간. 나를 얕보지 마라. 숙주가 이용하는 것을 보았다. 그러니 나도 할 수 있다.”

    “아아, 그렇겠네요.”

    비틀~

    그러나 걷는 것부터 시원찮은 이 괴물이 정말로 할 수 있을까?

    간호사를 부르지도 못한다. 강문수가 걷지도 못한다는 소문이 외부에 퍼지면 절대 안 되니까.

    “인간의 육체는 미개해서 불편하군.”

    “......”

    서혜주 원장은 송선영이 어서 오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 * *

    선배가 떠났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나에게 충격이었던 것 같다.

    “후우...”

    시작 지점은 ‘환자’랑 가까운 장소로 지정되기에 가장 중요한 시기였지만,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혈신 소운현.

    접촉한 대상의 기억을 읽는 선배의 능력이 유용하기도 했지만, 주술사가 아닌 어른으로서 나에게 해준 조언의 비중이 훨씬 컸다.

    깜빡깜빡?

    “...그러게.”

    나도 다시 보고 싶다. 이 녀석의 이름과 발동 조건도 멋지게 수정하고.

    ‘혈신 만세라니?’

    사교의 광신도로 오해받기 딱 좋다.

    그런 이유로, 웬만큼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봉인하기로 결정.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존재의미나 다름없는 능력이긴 하지만, 내 선택은 확고하다.

    “...가볼까.”

    깜빡!

    분수대 앞에 힘없이 주저앉아있던 나는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쉽군.’

    내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용사물만 써온 작가답게 꿈속도 용사를 위한 세계.

    용사로 시작해서 용사로 끝나는...

    전형적인 용사물이었다.

    “용사님의 새로운 동료를 봤어?”

    “또 여자겠지.”

    “하하! 그래도 종족은 다양하잖은가?”

    “그래서? 이번에는 무슨 종족인데?”

    “라미아라는군.”

    “헐. 라미아라면... 아름다운 여성의 몸뚱이에 하반신이 뱀인 몬스터?”

    “맞아.”

    “허허! 사랑에는 차별이 없다지만 아무리 그래도 몬스터는...”

    “뭘 새삼스럽게. 드래곤도 따지고 보면 몬스터잖아?”

    “그건 그렇지.”

    다른 세계(지구)에서 소환된 용사란 설정인 라누벨 환자 ‘정용상’의 모험 기간은 1년 4개월 정도.

    그동안 이 세계는 조금도 평화를 되찾지 못했다는 것 같다.

    “실례합니다.”

    용사가 몬스터를 동료로 받아들여도 되는가란 주제로 열띤 토론 중인 시민A와 시민B에게 다가갔다.

    “뭡니까?”

    “누구시오?”

    “용사님이 어디에 계신지 혹시 알고 계십니까?”

    도시를 뒤덮을 정도의 사기적인 오감도 포기했기에 정보가 필요했다.

    “지금쯤 도시를 떠났을 거요.”

    “벌써요?”

    “몬스터 동료 탓에 여관 주인이랑 싸웠거든. 아무리 용사라도 몬스터를 여관에 데려오는 건 민폐지.”

    “그렇군요.”

    내가 너무 늦장을 부린 것 같다.

    “그런데 형씨. 오른팔에 매달린 그 눈깔은 뭐요?”

    “친구입니다.”

    “아아, 몬스터 조련사였군. 희귀한 직업이지. 하지만 조련한 몬스터가 그렇게 작아서야...”

    “하하! 괜찮습니다.”

    작아도 이까짓 도시는 1초 안에 시체 바다로 만들 수 있는 괴물이다.

    “일거리를 찾는다면 용병 길드로 가보시구려.”

    “용사의 동료는 꿈 깨시오. 용사님은 예쁜 여자가 아니면 아예 거들떠보지도 않으시니까.”

    “참고하겠습니다.”

    친절한 시민A와 시민B에게 감사인사를 전하며 헤어졌다.

    ‘용병 길드라...’

    환자랑 길이 엇갈리긴 했지만, 크게 개의치 않았다.

    내 목적은 검귀니까. 라누벨 환자를 설득해서 현실로 복귀시키는 일은 천천히 해도 늦지 않다.

    그런 이유로,

    “용병 길드에 어서 오세요!”

    험악한 인상의 용병들이 득실거리는 이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귀여운 여성 접수원이 있는...

    용병 길드로 갔다.

    “일거리를 찾고 있습니다.”

    “그러시면 저쪽의 의뢰 게시판을 둘러보세요.”

    “손발이 칼처럼 생긴 괴물을 찾는 중입니다.”

    “블레이드 팬텀이요?”

    “아, 네. 맞습니다.”

    이 세계에서는 놈들을 ‘블레이드 팬텀’이라고 부르는 모양이군.

    블레이드 팬텀(Blade Phantom).

    검귀는 P가 두려워하는 형태를 구체화한 망자들이기에 환자가 쓴 소설 세계관에 원래 존재하지 않는 괴물.

    용병 길드 접수원이 ‘검귀의 형태’를 안다는 사실만으로도, 이 꿈을 선택한 보람이 있다.

    “괜한 오지랖이겠지만, 블레이드 팬텀은 용사님의 파티도 당했을 만큼 위험한 몬스터에요.”

    “용사님도요?”

    “네. 그 사건으로 인간과 엘프의 사이가 완전히 틀어졌어요. 블레이드 팬텀에게 엘프 공주님이 살해되는 바람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환자가 절대 바라지 않는 형태로 이야기가 조금씩 전개되고 있었다.

    검귀의 개입.

    그게 원인이리라.

    “조심하세요. 블레이드 팬텀에게 당하면 부활도 안 돼요. 신전에서는 헛소문이라고 계속 부정하지만, 엘프 공주를 못 살린 것만 봐도...”

    “충고, 감사합니다.”

    이걸로 ‘블레이드 팬텀’이 검귀란 사실이 추가로 입증됐다. 꿈의 세계 규칙이 통하지 않는 놈들에게 당하면 되살릴 수 없는 게 당연하니까.

    “이봐!”

    등에 대검을 찬 사내가 손짓했다.

    “저, 말입니까?”

    “그래. 너. 어째서 블레이드 팬텀을 찾고 있지?”

    참견꾼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당연히 죽이기 위해서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만 둬. 너 같은 애송이는 아까운 목숨만 잃을 뿐이야.”

    오지랖도 어디에나 존재한다.

    “충고, 감사합니다.”

    “이봐! 대답이 잘못됐잖아. 팬텀에게 어떤 원한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아까운 목숨 버리지 말고 돈을 써. 나처럼 뛰어난 일류 용병에게 의뢰하라고. 제법 비싸긴 하지만.”

    오지랖이 아니라 흥정이었군.

    용병답다.

    “그건 제가 하고 싶은 말인데요. 놈들에게 원한이 있으시면 저에게 의뢰하십시오. 저렴하게 모시겠습니다.”

    “허! 이 애송이가... 따라 와. 실력 차이를 보여주마.”

    “가시죠.”

    안 그래도 이 세계의 원주민 전투력 수준이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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