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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80화 (181/232)
  • 180화

    [10장-1절] 죄송합니다!

    검귀(劍鬼).

    P가 가장 두려워하는 형상!

    연료의 찌꺼기 같은 놈들을 처리해야만 P의 건강이 회복되고, 인류는 적성검사기의 혜택을 계속 누릴 수 있다.

    아주 간단한 해결책!

    하지만 이 방법을 알면서도 마녀들은 손 놓고 방관하기만 했다.

    왜?

    선배는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단언했지만, 마녀들은 그런 나보다도 싸움에 소질이 없었던 탓!

    진짜 환장할 노릇이다.

    “왔다!”

    “강문수 씨!”

    “실종된 모친께서 신성로마제국의 황족이란 소문이 사실입니까?”

    “강문수 씨~!”

    찰칵! 찰칵! 찰칵!

    공항의 입국 게이트에는 기자와 구경꾼들로 바글바글했다.

    올림픽 금메달 삼관왕으로 유명인의 반열에 올랐을 때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하지만 나는 안다. 이것도 며칠 지나면 흐지부지 잊히리란 걸. 그때까지만 참으면 된다.

    “형~!”

    “오! 강훈이잖아.”

    구경꾼들 틈에 섞인 후배 최강훈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 녀석은 나날이 잘생겨지네.

    최강훈의 적성이 ‘간웅’인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성격도 좋고 영화배우나 모델이 딱 어울리는 외모인데.

    “강문수 씨~!”

    “강문수 씨~!”

    “.....”

    가까이 가고 싶어도 사람에 치여서 쉽지 않았다.

    “강훈아! 주차장에서 보자!”

    “응!”

    경호원들의 도움으로 인파를 뚫으며 주차장까지 내려가는 길.

    우우웅-

    어차피 안 들릴 것 같아서 무음으로 설정해둔 스마트폰이 호주머니 안에서 진동했다.

    (......)

    “미안! 선영아! 잘 안 들려! 조금만 크게 말해줘!”

    (...어머님은?)

    “따로 오셔!”

    (휴우! 나에 대해 이상한 소리를... 아니, 됐어. 만나서 얘기할게. 그 자리에서 꼼짝 말고 30초만 기다려.)

    “어? 어.”

    나를 보기 위해 몰려온 구경꾼들도 상당히 줄어들었다.

    저를 본다고 여러분께 복이 오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것도 아님을 드디어 깨달으셨군요?

    기자와 카메라맨 몇 명이 끈질기게 따라붙고 있긴 하지만, 경호원들 덕분에 방해가 되진 않았다.

    “아...”

    카페에서 산 냉커피 한 잔을 들고 큰 보폭으로 걸어오는 송선영.

    나를 만날 때는 긴 다리를 강조한 청바지나 핫팬츠, 짧은 치마 등을 주로 입던 그녀가 오늘은 꽁꽁 감추고 있었다.

    그래서 유감이냐?

    아니었다.

    단아한 분위기를 내는 푸른색 원피스가 그녀의 골반을 중심으로 살랑살랑 물결처럼 흔들리며 호수의 요정 혹은 인어공주를 연상시켰다.

    “어... 예쁘네.”

    옷에 관심이 없는 내가 봐도 신경을 많이 쓴 티가 나는 옷차림이었다.

    찰칵!

    분위기를 깨는 카메라 플래시만 없었으면 더 좋았을 텐데.

    “어머님도 같이 오시는 줄 알고 신경을 좀 썼어.”

    “아아...”

    여자친구가 내 가족을 신경 쓴다는 사실에 가슴이 간질간질? 뭐라고 표현할 수 없는 웅장한 기분이 들었다.

    “그래서 어머님은?”

    “주목받는 것을 싫어하셔서 조용히 따로 오시는 중이야.”

    제국의 전용기를 타고.

    어쩌면 나보다 먼저 입국해서 짐을 풀고 있으실 수도 있다.

    “그렇구나. 가자.”

    “그래.”

    나는 앞장서서 주차장으로 가려는 송선영의 손을 조심스럽게 잡았다.

    꾸욱-

    손아귀에 힘을 주면 부서질 것처럼 가녀리면서도 부드럽다.

    “너를 공항에 데려다준 후에 기분이 이상하더라고.”

    “그래?”

    “남자친구가 미녀랑 해외로 나가는데, 어째서 나는 분노하지 않을까, 하는 심각한 문제였어.”

    “그, 그랬구나!”

    최면술 때문입니다!

    “쉽게 듣지 마. 내가 문수를 안 좋아하는 걸까? 그런 고민이 들었을 만큼 심각한 문제였어.”

    “...진짜 심각했네.”

    그녀의 고민이 이해돼서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하지만 기우였던 모양이야. 다시 보니 기분이 좋은걸.”

    “어흠!”

    낯뜨거웠다.

    “내가 걱정했던 그 미녀도 먼 친척인 것 같고. 전혀 안 닮았지만.”

    “엄마도 나랑 전혀 안 닮았어.”

    “그래?”

    “외가 쪽의 얘기에 따르면, 나는 고조부? 아니, 고조모의 아버지? 아무튼, 조상님을 많이 닮았다고 하더라.”

    나는 P의 부친을 닮았다. 이걸 격세유전이라고 하던가.

    “정말로 황족(皇族)이구나.”

    “뭐...”

    그보다 더한 신족(神族)입니다!

    내가 잘난 건 아니라서 떠벌릴 생각은 추호도 없지만.

    “그 편의점의 배불뚝이 아저씨가 진짜 대단한 거네. 어린 황족을 마음껏 부려 먹은 거잖아.”

    “어... 그렇게 되나?”

    편의점 사장님께는 정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니 사형?”

    “쿨럭! 그럴 리가!”

    “농담이야.”

    “......”

    “흐응~ 여전히 안 믿기네. 여자 다리나 훔쳐보는 변태가 황족이라니.”

    “흠흠!”

    변태라서 죄송합니다.

    “앞으로 큰일이네. 너도 들었지?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너를 사칭한 악당이 활개 치고 다닌 거.”

    “어... 어, 응.”

    그 악당도 바로 접니다.

    “올림픽 스타일 때도 이 정도인데, 황족까지 곁들어지면... 질투하는 악당이 훨씬 늘어날 것 같아.”

    “제국에서 어떻게든 해줄 거야.”

    이건 내가 장담할 수 있다.

    P의 자손 사칭.

    이건 신성모독에 해당하기에 신성로마제국에서 가만히 있지 않을 거다. 이번 사건은 사칭범이 ‘진짜’였기에 흐지부지 넘어갔지만 말이다.

    “그렇다면 다행이고.”

    “잘 지냈어?”

    “나? 일은 무서울 정도로 수월하게 잘 풀리는 중이고... 스포츠토토로 엄마가 돈을 벌면서 부모님도 화목해졌어. 아빠가 엄마에게 새 의료기기를 사달라고 애교를 부린다니까? 사람이 너무 달라져서 아빠가 아닌 줄 알았어.”

    “헐.”

    역시 자본주의사회다.

    “너는?”

    “흠. 엄마랑 감동 없는 재회를 하고, 내가 몰랐던 외가의 족보를 배우고, 뒷일을 생각하며 행동하라는 교훈을 뼛속까지 새기고 왔지.”

    “그 외에는?”

    “음?”

    “황족이잖아. 다리 예쁜 하녀에게 옷을 벗으라고 명령했다던가...”

    “송선영 양? 실례지만, 여긴 중세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짓을 했다가는 황족이라도 감옥에 갑니다.”

    “안 가던데?”

    “음? 그럴 리가...”

    “제국에 있었으면서 나보다 제국을 모르는구나? 황태자를 신고하는 여자가 제국에 어디 있어? 그걸 기회 삼아서 첩실 자리를 노리지.”

    “아하!”

    “반응을 보니 전혀 몰랐구나.”

    “몰랐습니다.”

    사극 <궁녀 덕춘이>에서 궁녀들이 하던 일이 현실에서 벌어질 줄 몰랐다.

    “알아도 하지 마.”

    “안 해. 어른들에게 품위를 잃는 행동을 절대 하지 말라고 잔소리만 10번 넘게 들었어.”

    조상님은 인류를 위해 헌신하시는데, 그 자손인 내가 병신 같이 행동하면 얼마나 실망하시겠는가?

    P가 아니더라도, 나는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의 주인공이 된 ‘비엔나 수잔’처럼 살고 싶진 않다.

    “형~!”

    주차장에서 다시 기다리고 있던 최강훈이 반갑게 손을 흔들었다.

    “외모만 보면 저쪽이 황족인데...”

    송선영이 남자친구에게 대단히 실례되는 발언을 중얼거렸다.

    “미안하게 됐네요.”

    “삐지지 마. 외모만 보면 그렇다는 거니까. 애초에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너랑 사귀기 시작했잖아. 아니야?”

    “그건... 그렇지.”

    불편했던 마음이 평온해졌다.

    “단순해.”

    “내 장점이지!”

    황녀는 그게 나의 매력이라고 했다.

    “콧대 높일 정도로 우쭐댈 장점은 아니라고 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저 녀석보다는 네가 훨씬 나아.”

    “그래?”

    최강훈의 생각을 알 수 없는 건 당연하다. 평화로운 꽃밭을 노니는 초식동물처럼 생각을 안 하고 사니까.

    “형~!”

    “크게 안 불러도 들려.”

    “문수 혀엉~!”

    “거참...”

    나는 최강훈이 탄 리무진에서 5분 정도 대화를 나눈 후에 집으로 향했다.

    * * *

    “도련님. 기다리신 시간에 비해 소득이 없어서 아쉬우십니까?”

    운전 중인 리무진의 보조석에 앉은 경호원이 최강훈에게 물었다.

    “그렇게 보이나요?”

    “실례지만, 그렇습니다.”

    “우리의 우정을 질투하는 누나의 견제가 심해서 아쉽긴 합니다. 하지만 목적은 달성했습니다.”

    “그렇습니까.”

    경호원은 이해되지 않았다. 5분 동안 사업적인 이야기는 전혀 하지 않았던 것 같은데.

    “형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겠지만, 귀국하자마자 만난 사람이 사업가 최강훈이라는 것이 중요합니다.”

    “아!”

    “방음이 완벽한 리무진 안에서 5분 동안 소소한 대화만 나눴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우리밖에 없어요.”

    “그렇군요!”

    최강훈의 설명을 듣고 깨달은 경호원은 순수하게 감탄했다.

    “형의 성격상 외부활동을 활발하게 할 리 없어요. 지구 반대편에 있는 제국에서도 허튼짓하면 가만 안 두겠다고 정부를 압박하는 중이고. 보았잖아요? 가상현실게임 사칭범 사건.”

    “네. 기억합니다.”

    신성로마제국에서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강문수의 명예를 사수했다.

    황태자가 내연녀 성폭행 혐의로 욕을 바가지로 먹을 때도 무관심하던 제국이 고작 방계 황족을 위해.

    이상한 위계(位階)다.

    “그리고 형은 조만간 또 환자를 치료하러 간다고 했어요. 그러면 형이랑 제대로 대화한 사람은 저밖에 없게 되죠. 사업가가 아닌 여자친구를 제외하면 사실상 독점 창구(窓口)에요.”

    “거기까지...”

    “당연한 흐름이에요.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듯이. 사업이나 정치에 자질이 있다면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요.”

    “......”

    말은 쉽다.

    하지만 공항까지 찾아온 여러 유명인사를 거들떠보지도 않은 강문수가 ‘형!’이란 한마디에 반갑게 호응했다.

    어릴 적부터 친분을 쌓아온 최강훈이기에 가능한 일.

    냉정한 얘기지만, 강문수가 지금처럼 성공하지 못했다면 사업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시간 낭비였다.

    “도련님.”

    이번에는 운전기사가 말문을 열었다.

    “네.”

    “도련님은 강문수 씨가 황족이란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그럴 리가요. 제 적성은 예언자가 아니에요. 문수 형, 당사자도 몰랐던 족보를 제가 어떻게 알아내겠어요.”

    “순전히 운이란 거군요.”

    “음... 그건 또 그렇지 않아요.”

    “예?”

    최강훈은 과거를 회상하듯 시선을 위로 향하며 말했다.

    “여러분은 제가 어릴 적부터 버릇처럼 하던 말을 기억할 거예요.”

    “설마...?”

    “무슨?”

    “형 같은 남자가 되고 싶다.”

    “......”

    “......”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은 두 경호원은 소름이 돋았다.

    “그건 진심이에요. 형이 편의점 아르바이트나 상가건물 화장실 청소하는 모습도 저에게는 멋져 보였어요.”

    “허...”

    “아...”

    “이건 본능에 가까워서 말로 설명하기가 힘든데... 성년(成年)이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새끼 호랑이를 보는 기분이랄까. 대충 그래요.”

    두 경호원은 생각했다.

    간웅(奸雄).

    재능이 많은 최강훈의 적성이 사업가나 배우가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어릴 적에 소꿉친구처럼 지냈다고 할지라도, 재벌 2세가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을 친형처럼 따르기란 쉽지 않다.

    이삿짐도 같이 나르고...

    그때는 진짜 까무러치게 놀랐다.

    띠리링~♪

    “최강훈 대표님의 비서입니다. 네.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통화를 받은 경호원이 살짝 놀란 얼굴로 뒷좌석을 돌아봤다.

    “벌써 입질이 왔군요?”

    친한 호랑이의 등에 올라탄 여우가 빙그레 웃었다.

    “그렇습니다.”

    “지금은 통화가 어렵다고 해주세요. 문수 형이 공항에서 부탁한 일부터 처리해야 한다고.”

    “알겠습니다.”

    정말로 부탁하긴 했다. 분위기 좋은 고급 레스토랑을 추천해 달라고.

    「나: 형. 여기가 싸고 괜찮아.」

    「우상: 오! 고마워.」

    「나: 또 필요한 거 있어?」

    「우상: 아니. 나중에 밥이나 같이 먹자. 내가 살게.」

    「나: 나는 언제든 환영이지!」

    「우상: ^^b」

    「나: ^^/」

    “...도착하면 깨워줘요.”

    “네. 도련님.”

    최강훈은 문자를 마치고 기분 좋게 잠을 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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