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74화 (175/232)

174화

[9장-6절] 최강의 용왕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는 상태창에 이름이 없다. 그래서 이용자든 원주민(NPC)이든 직접 물어보거나 조사하지 않으면 알 방법이 없다.

그런 이유로,

“최강의 용왕이라...”

용으로 환생한 라누벨라 10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다.

그녀가 용으로 환생했으며, 최강의 용왕이란 사실을 어떻게 알아냈는지 의문이긴 하지만, 제국의 높으신 분들이 서민을 상대로 거짓말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

게다가 ‘최강’이란 수식어가 붙을 정도가 아니면 신성로마제국의 충성스러운 백성들이 라누벨라 10세를 생포해서 진즉 바쳤을 것이다.

“돌아가라!”

“도망쳐라!”

쿵! 쿵! 쿵! 쿵...!

그녀의 둥지를 지키는 파수꾼들이 나를 발견하자마자 달려들었다. 입으로는 오지 말라고 외치면서 죽이려는 행동이 모순적이었다.

골렘.

진흙이나 바위 등으로 인간의 형태를 모방해서 만든 마법 생물.

덩치는 3층 건물 높이랑 비슷한 12m 정도 되는 남성형 거인으로, 몸은 주변의 바위나 흙 같은 자연물로 구성되어 있었다.

“돌아가라!”

“물러나라!”

쿵! 쿵! 쿵! 쿵...!

무기는 따로 없지만, 체급만으로도 이미 흉기였다. 500레벨 미만은 탈출 시스템을 사용할 틈도 없이 압살!

그래서 평균 600레벨의 최상위권 길드에서 토벌을 시도했다.

그들처럼 나도,

서걱-

골렘의 팔다리를 벴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회복하네?

“어라?”

업적과 레벨 상승에만 특화된 내 직업과 적성으로는 골렘에게 피해를 줄 수가 없는 걸까.

산에서 칼로 삽질하는 느낌?

상성이 너무 좋지 않았다.

“반성하라!”

“후회하라!”

쿵! 쿵! 쿵! 쿵...!

추정 레벨은 800레벨 정도. 한 마리뿐이라면 길드에서도 어렵지 않게 골렘을 토벌했겠지만, 서너 마리가 협공해오면 답이 없다.

...그것도 아닌가?

서걱-

이상했다. 이 골렘들은 신체의 어디를 절단해도 죽질 않았다.

“심장이 어디 있는 거야?!”

골렘은 심장이 파괴되기 전까지 계속 재생하고 부활할 수 있다.

하지만 나도 레벨로 밀어붙이기만 하는 바보가 아니다. 귀여운 30레벨부터 800레벨까지 다양한 골렘을 사냥하며 요령을 쌓았다.

“돌아-”

“닥쳐!”

쿵! 쿠앙! 퍼어엉~!

나의 장점이자 전부인 압도적인 레벨은 허공에 대충 칼질만 해도 살인적인 충격파가 발생한다.

바스스스...

그러나 과자 부스러기처럼 파괴된 골렘은 금방 형태를 복원했다.

(과연... 그런 거였나.)

선배님?

(답답한 후배야. 머리를 써라.)

“생각... 아!”

골렘의 심장이 다른 장소에 숨겨져 있는 것 같습니다.

(호오? 후배야. 너도 심장을 뽑아서 안전한 장소에 숨겨두지 그러냐?)

“......”

내 머리는 쓸모없는 모양이다.

(충격파로 쉽게 쓰러트릴 생각을 버리고 직접 썰어라.)

“그건 좀...”

젓가락으로 콩을 하나씩 주우라는 거나 다름없었다.

(선택은 네 몫이다.)

“끙...”

“돌아가라!”

“...너나 돌아가!”

굉장히 번거롭지만, 일단은 선배가 시키는 대로 해봤다.

서걱-

썰고, 또 썰고, 다시 썰고...!

정육점에서 기계가 아닌 칼로 고기를 다질 때처럼 절단해갔다.

쿵! 쿠우웅!

시간은 충격파로 쓰러트릴 때보다 100배쯤 오래 걸렸지만, 그 대신에 골렘이 부활하지 않았다.

“...뭐지?”

(궁금하면 심장을 찾아봐라.)

네.

자연물로 이루어진 골렘의 잔해에서 심장을 찾는 건 쉽지 않았지만, 골렘이 죽은 시점을 통해서 심장이 숨겨진 위치를 추정,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수색해서 찾아냈다.

그리고 마침내,

톡.

반으로 쪼개진 골렘의 심장을 주운 나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랬구나.”

[파괴된 골렘의 로맨티움 심장(A)]

[망가진 골렘의 로맨티움 심장(A)]

싸구려 장비로는 흠집조차 낼 수 없는 S급 재료로 골렘의 심장이 얇게 코팅되어 있었다.

이 단단한 걸 충격파만으로 파괴할 생각을 했으니 될 리가.

(쉬운 길만이 정답은 아니다. 이미 뼈저리게 느꼈을 텐데? 아직도 후회가 부족했나.)

“끙...”

자괴감이 또 몰려왔다.

(농담이다. 이건 단순한 경험 부족일 뿐. 네 잘못이 아니다. 검사가 최적의 효율을 추구하는 건 당연하지. 호랑이는 토끼를 잡을 때도 최선을 다한다고 하지만, 소 잡는 칼로 닭을 잡지 말라는 말도 있다.)

“헤에~ 속담도 아시네요.”

(속담은 그 나라의 민족성을 대변해주지. 예를 들어...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던가.)

“돌아가라!”

“후회하라!”

쿵! 쿵! 쿵! 쿵...!

둥지를 지키는 파수꾼은 계속 튀어나왔다. 그리고 둥지에 가까워질수록 그 숫자도 점점 늘어났다.

“지긋지긋한... 어?”

“크아아앙!”

골렘만 상대하기 귀찮아진 나를 위해 새로운 파수꾼이 등장했다.

용.

백성이 없는 ‘왕’이 있던가? 라누벨라 10세가 용왕이라고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펄럭~

왕의 둥지 주변에 살림을 차린 용들이 일제히 나에게 날아왔다.

“오우!”

콰과광! 콰광!

퍼엉! 퍼엉~!

용들이 입에 머금은 화염의 숨결이 내 머리 위로 떨어졌다.

땅은 골렘.

하늘은 용.

마녀들이 신성로마제국의 충성스러운 백성들과 막대한 자금력으로도 이 방어선을 뚫지 못한 이유가 있었다.

“내려와!”

단단한 S급 재료로 심장이 코팅된 골렘에게는 충격파가 안 통했지만, 용들은 다르다.

“꾸에에에~?!”

“크어어엉~?!”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의 세계에서 내가 사냥한 용 중 가장 강한 객체도 880레벨 정도.

그나마 그 용은 그 일대를 지배하는 우두머리였고, 내 눈앞의 용들은 둥지를 지키는 졸개. 손맛을 보아하니 700레벨 중반대인 것 같다.

반면에 나는 1100레벨!

우리 사이에는 싸움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쿵!

쿠웅!

용들이 파리처럼 추락했다.

“...아주 좋아.”

이쪽은 전리품을 아예 챙기지도 않고 무시했다. 용의 부산물보다 좋은 전리품을 수없이 봤으니까. 바닥에 떨어진 동전만도 못하다.

팟.

그대로 둥지 안쪽까지 진격!

아름다운 장원이 보였다.

“멈춰라.”

장원의 입구에 푸른 머리카락의 요정 청년이 서 있었다.

“싫은데?”

정중히 거절한 나는 초음속으로 공간을 찢으며 요정에게 돌격했다.

틱, 틱, 틱-

내가 일으킨 충격파와 후폭풍이 장원을 덮쳤으나, 벽에 설치된 투명한 보호막이 이를 저지했다.

“침입자 주제에 무례하군.”

“흡?!”

7차 전직을 마친 뒤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내 속도에 제대로 반응한 괴물이 없었다.

캉-

그런데 완벽하게 막혔다.

심지어 S급 재료로 만들어진 ‘정말 하찮은 솔로늄 검(A)’마저 요정 청년의 칼을 절단하지 못하고 막혔다.

그 얘기는?

“너도 A급 무기- 큭?!”

“여왕님께 하사받았다.”

부웅-

자랑스러움이 묻어난 목소리로 대답한 요정 청년이 반격을 개시했다.

빠르면서도 현란한 움직임.

레벨로 찍어 누를 수 없는 진짜 강적임을 단번에 깨달았다.

“젠장!”

캉! 챙! 챙!

공방을 주고받는 우리의 칼이 충돌할 때마다 주위에 충격파를 동반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레벨은 내가 확실히 위.

하지만 레벨을 제외한 모든 부분에서 밀리고 있었다.

(부족한 재능을 노력으로 찍어 누른 자의 검이로군. 어디 보자... 순수하게 검술만 1000년 정도 연마하면 딱 저 정도 수준이려나?)

“큭!”

이러다가 죽겠다.

(재능의 한계 탓에 정직할 수밖에 없는 검이야.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믿음으로 올곧게 한 길만 걸은 게 느껴지는군.)

“후회하라.”

“너도 그 소리냐!”

그런데 진심으로 후회 중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레벨을 더 높이고 왔어야 했는데!

캉! 챙! 서걱-

몸에 상처가 생기기 시작했다.

(쯧쯧. 재능이 없는 줄 알았으면 다른 길을 찾았어야지.)

재능이 없는 것 맞아요?!

(내가 말을 잘못했군. 재능이 없긴 한데, 너보다는 재능이 있다.)

“크윽!”

“인간이여. 여왕님의 땅을 더럽힌 죗값을 치르게 해주마.”

쿵! 쿵! 쿵!

골렘들이 퇴로를 막고 있어서 도망칠 수도 없었다. 이 요정 청년의 추적을 뿌리치면서 골렘까지?

절대 못 한다.

(그런데 말투가 좀 건방지군. 천재가 진지하게 노력하면 10년 안에 따라잡힐 애송이 따위가.)

어... 겨우 10년이요?

(후배야. 시키는 대로 해라.)

또 시작됐다.

(갓난아기를 뛰어넘는 기분으로 가볍게 뒤로 물러나되, 오른발은 땅에 닿지 않게 해라. 왼팔은 등 뒤로 당겨서 활대처럼 꺾고, 오른손도 8시 방향으로 당기며 허리를 틀어라. 태엽을 감는다는 느낌으로. 손목은 반시계방향으로 13도 틀어라. 못하겠으면 15도까지는 허용 범위 안이다.)

“으아아...”

주문이 정말 많았다!

(무게중심 따위는 신경 쓰지 마라. 이후에 한심하게 넘어져도 괜찮다. 어차피 이후는 없을 테니. 감았던 태엽을 푸는 느낌으로 허리를 풀면서 오른손은 포물선을 그리며 3시 방향으로 허공을 베라. 네 여자친구의 엉덩이 굴곡을 상상하면 될 거다.)

“......”

복잡하긴 했지만, 내가 아르바이트로 단련돼서 시키는 건 잘한다.

하지만 허공을 베라니?

자살행위 같았지만, 선배를 믿고 시키는 대로 움직였다.

“회개하-”

그건 마법이었다.

나는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베기 위해 칼을 휘둘렀는데, 요정 청년이 그 안에 오른팔을 들이미는 것 아닌가?

댕강!

어깨부터 깔끔히 오른팔이 절단된 요정 청년이 경악했다.

팔을 자른 나도 경악했다.

방금,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재능의 차이다. 날개 없는 호랑이가 1000년을 노력한다고 하늘을 날 수 있겠느냐?)

마법이 아닌 재능.

하지만 내 눈에는 상식을 벗어난 마법으로만 보였다.

(정직한 검은 예측하기 쉽다. 우직하게 반복하면 늘 연습하던 대로 칼을 휘두르게 되어있지. 본인은 아니라고 생각하겠지만, 그걸 아니라고 생각한 시점에 재능이 없다는 뜻이다.)

“......”

잔인한 얘기였다.

털썩.

“내가 지다니...”

내 몸에 자잘한 생채기를 내면서 우위를 점하다가 한순간에 역전당한 요정 청년은 충격으로 무릎을 꿇었다.

(이 자는 이제 신경 쓸 필요 없다.)

안 죽여도 돼요?

(답답한 후배야. 그래서 네가 재능이 없다는 거다.)

“......”

또 왜요?

적을 죽이자고 했을 뿐인데, 어째서 내 재능을 욕하시는지 모르겠다.

(너는 이 자의 오른팔만 베었다고 생각하겠지만, 나는 마음을 벴다. 압도적인 재능의 차이를 실감하고 절망하도록.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다.)

어... 선배님. 선신이 맞으시죠?

(물론이다. 죽이지 않고 죽음을 선택할 기회를 주지 않았느냐. 이 정도면 선신이 아니라 호구지.)

“지나갈게요.”

“......”

넋을 놔버린 요정 청년은 내가 말을 걸어도 꼼짝하지 않았다.

(너는 이 자처럼 1000년 동안 헛짓하지 말고 네 길을 쭉 가라. 그건 지름길이나 운명이 아니라, 너에게 어울리는 길이다.)

...싫어도요?

(싫으면 다른 길을 가야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헛된 희망을 품으며 하루하루 보람차게. 하지만 P가 적성검사기를 개발한 이유를 생각해라.)

“어... 좀 당황스럽네요.”

여기서 갑자기 P가 등장하다니?

(P를 숭배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추기경과 황녀가 마녀인데, 둘의 연관성을 단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은 후배의 지능이 실로 두렵구나...)

“킁.”

요란하게 싸웠음에도 흠집은커녕 먼지조차 묻지 않은 장원.

나는 연못 주위로 꽃과 나무가 잘 가꾸어진 아름다운 정원의 돌길을 지나서 더욱 안쪽으로 들어갔다.

(잘 찾아온 것 같군.)

“실례합니다?”

라누벨라 10세로 추측되는 존재에게 말을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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