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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67화 (168/232)
  • 167화

    [9장-3절] 짐을 도와다오!

    온라인 롤플레잉게임이 등장한 초창기부터 자연의 법칙처럼 자리매김한 국민 설정.

    “히에에에~?!”

    “끼에에에~?!”

    [하찮은 유령을 처치했다!]

    [하찮은 유령 대장을 처치했다!]

    [공동묘지 청소를 완수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의뢰를 완수하거나 무언가를 죽이면 경험치를 얻고, 경험치가 일정량 이상 쌓이면 아바타의 전투력을 결정하는 레벨이 상승한다.

    게임을 모르거나 안 해본 사람도 알 만큼 흔해 빠진 규칙.

    하지만 얼마나 빠르게 레벨을 올려서 강해지느냐는 순전히 본인의 몫이고 역량이다.

    “쉽네요.”

    (게임이 처음부터 어려우면 모든 사람이 즐길 수 없지.)

    “그렇죠!”

    주술에 통달한 선배님의 말씀이 무조건 옳다!

    (업적의 총량은 네가 압도적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순수한 전투로만 따지면 너는 마녀들에게 밀리지 않아. 그러니 기죽지 마라.)

    왜요?

    (네가 4차 전직을 할 수 있는 시기가 오면 이어서 설명해주마.)

    네!

    주술에 통달한 선배님의 말씀이 무조건 옳다!

    4차 전직.

    업적에 가산점이 붙는 적성 ‘제사장’의 효과 덕분인지 그 시기가 멀지 않았다.

    [칭호] 용왕의 아들(B)

    [레벨] 10

    [직업] 미숙한 영혼의 사냥꾼(3차)

    [업적] 935

    [적성] 제사장

    (흠. 똑똑한 황녀를 불러서 사냥터를 옮길 때가 됐군.)

    선배님은 마녀 라누벨라 13세가 마음에 드시는 것 같았다.

    (싫어할 이유도 없지. 말귀를 잘 알아듣고, 황족이면 신분도 좋고, 혈통도 외모와 적성을 고루 갖췄으니. 싫어하기가 더 힘들지 않느냐?)

    성격은요?

    (송선영이나 이쪽이나 크게 다를 건 없다고 본다만.)

    “......”

    묵비권을 행사하겠다!

    (기다려라. 황녀를 불러오마.)

    “네.”

    체력이 부족한 줄 모르고 살다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피로감. 불편하긴커녕 내 정신을 느슨하게 풀어줘서 기분이 썩 좋았다.

    뿅!

    근처에서 접속을 종료했던 마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벌써?”

    “초반이니까요. 망령을 상대로 유리한 직업이기도 했고.”

    “...학살을 즐기던 분답네요. 저는 10레벨까지 이틀이나 걸렸는데.”

    “즐긴 적 없는데요?”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모르는 게 뭡니까?”

    “잡담은 이쯤하죠. 다음은 어디로 이동시켜줄까요?”

    “망자의 숲.”

    숲에 벌레보다 유령이 많은 평균 30레벨 사냥터.

    특이점은, 이 숲에서 죽으면 시체가 빛의 알갱이로 사라지지 않고, 유령으로 변해서 동료를 공격한다.

    “강문수 씨. 10레벨에 망자의 숲에 들어간다고요?”

    “이상합니까? 망자의 숲은 10레벨부터 50레벨까지 다양한 유령이 분포한다고 들었는데요.”

    “누구에게 들었나요?”

    “귀족 영애의 묘지에 꽃을 전달하는 의뢰를 수행 중이던 전사A에게요.”

    “그 전사A라는 분은 당신이 싫었던 모양이네요.”

    “하핫!”

    쿵!

    마녀의 부름을 받은 흑룡이 금방 날아와서 우리를 머리에 태웠다.

    “그르르...!”

    너는 나를 정말 싫어하는구나?

    “그나저나 복장이 정말 하찮네요.”

    “오! 바로 알아보시네요. 가벼워서 쓸 만합니다.”

    [하찮은 유령 대장의 장갑]

    [하찮은 유령 대장의 바지]

    [하찮은 유령 대장의 목걸이]

    [하찮은 유령 대장의 망토]

    [하찮은 유령 대장의 신발]

    ......

    너무 가벼워서 방어력을 기대하기 힘들다는 것 빼고는 마음에 든다.

    “생각이 바뀌면 언제든지 말해요.”

    “네.”

    여학생 교복처럼 생긴 그 갑옷을 착용하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펄럭~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 > 세계관에서 가장 빠른 교통수단 용.

    “크아앙!”

    포효를 터트리며 하늘로 높이 날아오른 흑룡은 나를 몽환의 숲에 금방 데려다줬다.

    * * *

    내 검술 실력과 재능이 변변찮다는 것은 나도 알고, 선배도 알고, 마녀도 알고, 발렌타인도 알았다.

    하지만 뭐든지 상대평가잖아?

    [유령 나무꾼을 처치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유령 나무꾼의 도끼를 주웠다!]

    댕강!

    나무꾼을 못 쓰러트릴 만큼 검술이 하찮지는 않다.

    덤으로,

    “...또 뒤냐.”

    피용-

    [유령 사냥꾼의 화살을 피했다.]

    원거리에서 활을 쏘는 유령 사냥꾼이 성가시긴 하지만, 쫓아가서 목을 따주면 그만이다.

    “죽어...!”

    “흐어어엉~?!”

    [유령 사냥꾼을 처치했다!]

    [경험치를 획득했습니다.]

    [유령 사냥꾼의 활을 주웠다.]

    [유령 사냥꾼의 화살을 주웠다.]

    [유령 사냥꾼의 화살을 주웠다.]

    ......

    나는 이용자가 아니라서 상태창 알림을 끌 수 없었다. 그게 불편하긴 했지만, 이용자들처럼 현실의 육체를 신경 쓸 필요가 없다는 건 편했다.

    식욕, 수면욕, 배설욕...

    그 모든 것에서 자유로운 덕분에 안전한 ‘접속 종료 장소’를 주기적으로 찾아갈 필요가 없었다.

    [유령 사냥꾼을 처치했다!]

    [유령 늑대를 처치했다!]

    [유령 나무꾼을 처치했다!]

    [유령 여우를 처치했다!]

    ......

    사냥, 또 사냥, 계속 사냥!

    숲의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망령들의 레벨이 높아졌지만, 내 레벨도 빠른 속도로 오르는 중이라서 벅차거나 무모하다는 느낌은 한 번도 받지 못했다.

    “실례합니다.”

    “네.”

    가끔 이런 나에게 호기심을 품은 이용자들이 말을 걸었다.

    “축복이나 성수를 적용하지 않은 평범한 칼 같은데, 어떻게 망령을 공격할 수 있는 겁니까?”

    “직업이요.”

    “아! 무슨 직업입니까?”

    “비밀이요.”

    “아, 네. 실례했습니다.”

    나의 사냥 시간을 빼앗는 이용자들이 정말 귀찮았다. 사람이 좀 없는 사냥터가 있으면 좋겠는데...

    (저레벨에 그런 사냥터는 없다.)

    그렇겠죠.

    (조용히 사냥에 집중하고 싶으면 500레벨은 돼야 해. 그때는 혼자서 사냥하기 버겁겠지만. 그나저나...)

    왜요?

    (너는 이 단순한 반복 작업을 잘도 즐기는군.)

    “하핫!”

    편의점 계산대에 10시간씩 서서 일할 때보다 훨씬 즐겁다. 손님이 들어오면 인사하고, 술과 담배를 팔 때는 주민등록증을 검사...

    애초에 이건 일이 아니잖아? 즐기라고 만든 게임이다. 재미없다면 그게 더 이상하리라.

    (4차 전직은 안 하냐?)

    선배가 화제를 전환했다.

    “여전히 고민 중이에요. 전부 마음에 들지 않아서.”

    [사령술사(4차)]

    [장의사(4차)]

    [망령기사(4차)]

    [성전사(4차)]

    ......

    전직하면 지금보다 사냥이 수월해지긴 하겠지만,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전직은 한 번 결정하면 바꿀 수 없는 중요한 요소.

    환생 시스템으로 싹 갈아엎을 수 있지만, 아바타를 처음부터 다시 키워야 하기에 고려할 가치도 없다.

    게다가,

    [난폭한 유령 곰을 처치했다!]

    [선택지가 추가됐습니다.]

    [추적자(4차)]

    새로운 업적이 추가될 때마다 내가 고를 수 있는 4차 전직의 선택지도 늘어났다.

    이러다가 3차에서 5차 전직으로 바로 건너뛸 것 같다.

    (신중한 건 좋지만, 4차 전직을 건너뛴다고 해서 더 좋을 건 없다. 이미 그 실험은 끝났다는군.)

    그래요?

    (너를 지원하기 위해... 황녀의 소개를 빌리자면,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를 잘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항시 대기 중이다. 네가 질문하면 바로 대답할 수 있도록.)

    “와우!”

    정말 든든했다.

    (4차 전직으로 고른 직업이 6차까지 성장시키며 쭉 간다는군. 7차는 이용자가 도달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서 논외로 치고.)

    그러면 중요하겠네요.

    (어차피 너는 이 게임을 잠깐 하다가 그만둘 것 아니냐? 업적을 쌓는 건 권장하지만, 잠깐 쓰고 버릴 게임 직업에 집착하지 마라.)

    “...네.”

    100번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리고 네 성장 속도가 빠른 이유는 1레벨에 3차 전직을 마쳤기 때문이라는군. 네가 게임에 재능이 있는 건 아니니 우쭐댈 필요 없다.)

    “아, 네.”

    가슴을 후벼파는 조언 감사합니다.

    (전문가의 설명에 따르면, 4차 전직을 서두르는 편이 좋다고 한다. 너의 3차 전직은 쓰레기라서.)

    어? 좋기만 한데요?

    (그건 사냥터 레벨이 너무 낮아서 체감하지 못할 뿐이다. 개인차가 있긴 하지만, 대다수 이용자가 3차 전직을 200레벨에 한다는군. 2차까지는 매우 좋은 편이다.)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를 잘하는 신성로마제국의 충성스러운 백성이 한 말을 요약하면 이랬다.

    [1차: 사냥꾼]

    [2차: 영혼의 사냥꾼]

    [3차: 미숙한 영혼의 사냥꾼]

    앞단계를 건너뛰긴 했지만, 내 성장은 이런 식으로 진행됐다.

    협동이 아닌 단독사냥에 특화된 ‘사냥꾼’은 친구와 동료가 없는 나에게 매우 적합한 1차 직업.

    망령 사냥에 특화된 ‘영혼의’는 내 적성 ‘제사장’이랑 상성이 매우 좋은 최고의 2차 직업.

    문제는 3차였다.

    내가 받은 ‘미숙한’은 3차 전직을 안 했다고 생각해도 될 만큼 미미하게 성장했다.

    병신: 한심한(F급)

    최하급: 미숙한(E급)

    하급: 평범한(D급)

    중급: 준수한(C급)

    상급: 능숙한(B급)

    최상급: 대단한(A급)

    전설: 몰랑한(S급)

    등급표에서 알 수 있듯이, 나의 3차 전직은 밑에서 2번째. 병신보다 조금 나은 수준.

    (너처럼 3차를 망치면 4차 전직까지 버틸 가망이 없어서 아바타를 삭제하고 새로 시작한다는군.)

    “너무해...”

    불행 중 다행이라면 나는 4차 전직에 필요한 업적을 모았다.

    (이해했으면 빨리 바꿔라.)

    “네.”

    그래도 나는 서두르지 않았다. 존경하는 선배님이 빼먹은 게 있으니까.

    (내가?)

    아직 한 번도 도시에서 업적을 쌓지 않았다. 도시를 돌아다니면 좀 더 다양한 4차 전직 선택지를...

    (바보냐?)

    왜요?

    (망령들에게 밥해주는 영혼의 요리사라도 되려고? 사냥에 특화해도 모자랄 판국에 뭔 헛소리냐?)

    “어... 그렇네요.”

    나는 정말로 바보인가?

    (이런 바보에게 정복된 이 숲도 정말 불쌍하군.)

    “하핫!”

    망령의 숲 정중앙에는 이곳을 망령들의 왕국으로 만든 원흉이 있다.

    유령 요정왕!

    게임 시스템상, 괴물을 쓰러트리고 지형을 파괴해도 일정 시간이 흐르면 복구되기에 망령의 숲은 영원히 30레벨 사냥터로 남아있다.

    드르륵-

    이 사냥터에 어울리지 않는 이용자가 지나가면서 우두머리를 죽이고 가버리는 비극을 방지하는 장치는 필수.

    여긴 지하 무덤이었다.

    100레벨 이상의 이용자가 번거로운 수고를 들여서 이 아래까지 내려오는 일은 좀처럼...

    “오빠. 나, 무서웠어.”

    “하하! 이 오빠에게 걸리면 70레벨 유령 요정왕도 한 주먹이지!”

    “멋져! 고마워, 오빠!”

    “언제든 부탁만 해.”

    정답게 팔짱을 낀 커플이 나를 발견하고는 한마디 했다.

    “제가 조금 전에 토벌했으니 나중에 오세요.”

    “오빠가 한 방에 쓰러트렸어요!”

    “아, 네.”

    비겁한 커플 같으니...

    (원통하다. 짐에게 뼈와 살로 된 싱싱한 육체만 있었더라면...)

    음?

    한맺힌 망령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호호!”

    “하하!”

    팔짱 끼고 정답게 웃으며, 무덤을 떠나는 비겁한 커플은 전혀 눈치채지 못한 듯했다.

    “아아, 그랬지.”

    [직업] 미숙한 영혼의 사냥꾼(3차)

    망령의 흔적을 쉽게 추적하고 대화할 수 있으며, 평범한 무기로도 망령에게 물리적인 타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나는 망령이랑 대화할 수 있다. 예전에 무협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도 경험했던 능력.

    그때도 나는 천마의 숨겨진 딸이랑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원통해도 참아. 어쩔 수 없잖아.”

    (...짐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잘 들리지.”

    (짐의 복수를 도와다오. 그러면 봉인된 보물을 주겠노라.)

    “그건 힘들겠는데.”

    오빠라고 불리는 저 이용자에게 덤볐다가는 순식간에 살해되리라.

    그리고 보물?

    이미 공략집에 그 보물이 숨겨진 위치와 봉인을 푸는 방법이 상세하게 나와 있다.

    그때,

    (나약한 인간이여. 짐에게 싱싱한 육체만 빌려주면 된다.)

    음?

    [유령 요정왕이랑 조우했다.]

    [유령 요정왕이랑 대화했다.]

    [거래 조건을 충족했다.]

    [강령술사(4차)]

    평범한 사냥을 이탈한 4차 전직 선택지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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