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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66화 (167/232)

166화

(후배야, 축하한다. 답답한 네가 마녀들보다 잘하는 게 있긴 하구나.)

“헉헉...!”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다. 정말 목숨 걸고 도망쳤으니까!

1레벨.

현재의 나는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가장 약한 존재만 상대할 수 있는 최약체였다.

띠링~!

[코볼트랑 조우했다!]

[푸른 갈퀴 코볼트랑 조우했다!]

[코볼트를 따돌렸다!]

[푸른 갈퀴 코볼트를 따돌렸다!]

[10레벨 이상의 강적을 따돌렸다!]

[20레벨 이상의 강적을 따돌렸다!]

[30레벨 이상의 강적을 따돌렸다!]

[40레벨 이상의 강적을 따돌렸다!]

......

시스템 메시지로 내가 업적을 달성했음을 알려왔다.

업적.

편의점 사장님이 관심도 없는 나에게 자랑하며 주입한 지식에 따르면,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서 강해지기 위해선 업적을 쌓아야 한다.

왜냐?

업적이 높아야만 더 좋은 직업으로 전직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요구치가 좀 악랄하다.

업적 10 이상: 2차 전직

업적 100 이상: 3차 전직

업적 1000 이상: 4차 전직

업적 10000 이상: 5차 전직

......

바로 아래 단계의 10배! 그래서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의 이용자 대다수가 3차 전직에 머물고 있으며, 즐길 줄 알면 4차, 조금 열심히 했다면 5차, 편의점 사장님처럼 인생을 갈아 넣었으면 6차...

그 위에 영역은 사용자가 아닌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 세계관 최강의 원주민(NPC)들만 달성했다.

나는?

[칭호] 용왕의 아들(B)

[레벨] 1

[직업] 미숙한 영혼의 사냥꾼(3차)

[업적] 429

[적성] 제사장

도망치면서 업적이 조금 올랐다.

“와! 진짜 갈 길이 머네!”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 내 인생을 갈아 넣을 생각이 없어서 더욱 멀게 느껴졌다.

(답답한 후배야. 엄살은 그만 부리고 마을이나 도시를 빨리 찾아라.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

“선배님.”

푸른 갈퀴 코볼트가 있는 지역이 어디냐고 물어봐 주세요.

(흐음?)

그러면 알 겁니다.

(...기다려라.)

1레벨인 내가 사람 사는 곳을 찾는 것보다, 마녀 쪽에서 오는 편이 더 빠르고 안전할 것이다.

(후배야. 현재 너의 위치는 평균 100레벨 사냥터인 푸른 갈퀴 코볼트의 숲이라는구나.)

후후후!

(...게임 감각은 네가 나보다 나은 것 같군. 근처에 마을과 도시가 없고, 이동 중에 숲을 배회하는 푸른 갈퀴 코볼트 우두머리랑 마주치면 확실하게 죽는다고 하는군.)

“오우!”

살벌하네!

(그러니 까불지 말고, 멀리서도 잘 보이도록 높은 나무 꼭대기에서 얌전히 기다리라고 한다.)

“네.”

탁!

나는 곧바로 원숭이처럼 나무를 타고 올라갔다.

게임이기 때문일까? 나의 세계를 포기했음에도 육체 능력이 현실을 가볍게 웃돌고 있었다.

‘그럴 리 없지.’

간혹 허세를 부리긴 하시지만, 나에게 거짓말할 이유가 없는 편의점 사장님의 정보를 신뢰한다. 내가 평범한 사람의 기준인 ‘1레벨’인데도 그 이상의 능력을 갖춘 이유가 있을 터!

하나하나 살펴봤다.

[칭호] 용왕의 아들(B)

용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니지만, 용왕에게 아들로 인정받았다.

비슷한 레벨의 상대는 본능적으로 위축되어 순발력이 대폭 감소한다. 하지만 등을 돌리고 도망칠 때는 이동속도가 매우 빨라진다!

“호옹...”

내가 게임을 해본 건 아니지만, 설명만 봐도 용도가 뚜렷했다.

비슷한 레벨을 상대로 압도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으리라. 도망치면 잡기 힘들다는 단점이 있긴 하지만, 매우 만족스러운 효과.

(...너는 정말 단순하구나.)

“왜요?”

(생각 좀 해라. 아들이다. 이 세계에 막 들어온 네가 만난 적도 없는 용왕에게 어떻게 아들로 인정받았겠냐?)

“......”

이유는 명확했다.

진짜로 아들.

현실에서 전혀 닮지 않았던 ‘마녀’가 내 어머니일 가능성이 생겼다.

(용왕을 만나서 확인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지.)

“일단... 나머지도 살펴보죠.”

[직업] 미숙한 영혼의 사냥꾼(3차)

망령의 흔적을 쉽게 추적하고 대화할 수 있으며, 평범한 무기로도 망령에게 물리적인 타격이 가능하다.

하지만 아직 미숙하다.

망령!

떠도는 영혼!

귀신이랑 싸우거나 설득하는 일에 특화된 전문직인 것 같다.

“과연...”

내 직업을 활용하려면 망령이 많은 사냥터로 가야 했다.

(거참! 평소에는 답답한 녀석이 게임에서는 머리가 제법 돌아가는군.)

“그러게요?”

나에게 게임의 재능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끝으로,

“적성을 볼까나.”

이건 현실 반영이다. 그래서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가 욕을 먹는 부분이기도 하지만, 적성을 바꿀 수 있는 시스템이 존재해서 매력적이란 평가도 있는 양날의 칼.

참고로, P의 적성검사를 아직 받지 못한 미성년자들은 일괄적으로 ‘학생’ 적성을 받는다.

나는 어떨까?

[적성] 제사장

망령을 구제한 대가로 업적 일부를 받으며, 전직에 필요한 업적 점수에 가산점이 붙는다.

죽으면 업적을 대폭 상실한다!

“이건...?”

여태까지 불분명했던 내 적성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었다.

(엘몰랑스 병원에서 정기검사를 받을 게 아니라, 가상현실게임에 접속했어야 했군.)

“그러게요?”

어째서 아무도 나에게 이 중요한 걸 설명해주지 않은 걸까?

(즐기려고 만든 게임의 설정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우습지.)

“허허!”

죽어도 안 바뀌는 현실이랑 달리, 자신의 적성이 마음에 안 들면 바꿀 수 있기에 현실성 없는 오락 요소로 받아들인 것 같다.

(벌써 도착했군.)

“...용?”

나무 꼭대기에 매달린 나를 잡아먹을 기세로 날아오는 흑룡(黑龍)의 머리에 사람이 타고 있었다.

펄럭~

용이 시커먼 날개를 펄럭일 때마다 나무가 부러질 듯이 흔들렸다.

“까르르?!”

“꾸르르~?!”

숲에서 먹잇감을 찾아다니던 푸른 갈퀴 코볼트가 식겁하며 도망쳤다.

...나랑 마주쳤을 때랑 반응이 완전히 정반대로군.

“100레벨 사냥터에서 1레벨로 용케 살아있네요.”

머리부터 발끝까지 검은색 갑주로 완전무장한 여성이었다.

“...누구세요?”

여성스러운 목소리와 갑옷의 형태 덕분에 여자라는 건 알겠는데, 투구로 얼굴을 완벽하게 가리고 있어서 누구인지 전혀 알 수 없었다.

“라누벨라 13세입니다.”

“아!”

“부끄러운 일이지만, 마녀 중에서는 그나마 제가 <몰랑 판타지>를 잘하는 편입니다.”

“답답하지 않습니까?”

내가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할 당시에 사장님이 구독하던 <몰랑 판타지>의 잡지 표지 모델들이랑 자연스럽게 비교됐다.

짧은 치마, 노출된 배꼽, 긴 다리...

방어력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답답하긴 하지만, 무장도 안 하고 외출할 만큼 어리석지 않습니다. 적성이 제사장이기에 더욱.”

“그렇군요.”

마녀와 나의 적성이 같다는 것을 우연찮게 알게 됐다.

“잡담은 이쯤하고 얼른 타세요.”

“네.”

나는 조심스럽게 흑룡의 머리에 올라탔다.

“멋지지 않나요? 게임을 잘하는 백성이 진상한 용입니다. 보통은 새끼 때부터 키워준 주인이나 조련사 직업 외에는 탈 수 없는데, 미녀를 매우 좋아한다는 속성이 있어서 저는 길들일 수 있었습니다.”

“크르르릉...!”

그 용이 아까부터 나를 매우 못마땅해하는 이유를 깨달았다.

펄럭~

용이 날아올랐다.

“우앗?!”

균형을 잡지 못한 나는 아무거나 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가-

멈칫!

그냥 볼썽스럽게 자빠졌다.

“...자기중심적인 강문수 씨도 최소한의 예의는 갖추고 있네요. 제 몸에 손을 대지 않고 넘어지는 쪽을 선택한 점은 칭찬해주겠습니다.”

“매우 감사하네요.”

신성로마제국의 황녀를 성추행했다는 오해를 사서 손모가지... 아니, 알몸으로 교수형 당하고 싶진 않다.

“하지만 당신이 추락해서 죽으면 곤란하니 이번만 허락할게요.”

“오! 감사합니다.”

안 그래도 위태로웠던 나는 잽싸게 일어나서 마녀의 허리를 양팔로 끌어안았다.

“...망설임이 없네요.”

“있어야 합니까?”

나는 당당하다!

“아무리 허락했어도 애인이 있는 신사가 보일 태도는 아닙니다. 당신은 정중히 거절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 같네요.”

“목숨이 위태로워도?”

“어머! 여자친구에게 죽는 건 괜찮으신 모양이네요?”

“......”

그녀의 노골적인 비아냥을 반박할 수 없었다.

* * *

여러 마을을 지나쳐서 1레벨 사냥터가 가까운 도시로 이동.

마녀는 은행에서 돈을 찾고, 창고에서 자신이 1레벨 시절에 사용했던 무기와 갑옷을 꺼냈다.

짤랑!

그녀에게 넘겨받은 돈주머니가 내 마음을 포근하게 해줬다.

“...돈을 참 좋아하네요.”

“돈이 귀한 환경에서 자라면 누구나 저처럼 될 겁니다.”

돈이 귀한 줄 모르는 신성로마제국 황녀님께 한마디 해주려다가 내 목숨이 귀해서 참았다.

“이 무기와 갑옷도 훌륭한 백성이 진상한 겁니다.”

“대충 봐도 고급스럽네요. 그런데 이 갑옷은 여성용입니다만?”

이런 나를 마녀가 한심하게 쳐다보며 답했다.

“여긴 게임입니다. 치수는 자동으로 조절돼요.”

“그건 압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죠?”

“갑옷에 들어간 꽃무늬와 짧은 치마만 보더라도 이건 여성용입니다.”

“편견입니다. 이 갑옷은 고대 로마의 근위병을 모티브로 한 겁니다.”

“그래도 싫습니다.”

“...성능은 보장해요. 코볼트 따위는 이 갑옷에 흠집조차 낼 수 없어요.”

“이걸 입을 바에 죽겠습니다.”

“네. 죽으세요.”

마녀는 설득하기 귀찮다는 듯이 바로 단념했다.

붕붕!

나는 신성로마제국의 백성이 진상한 최고급 칼에 익숙해지기 위해 몇 번 휘둘러보며 질문했다.

“다른 지원도 있습니까?”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의 모든 장비는 성능이 좋아질수록 무게가 높아집니다. 그래서 적당한 레벨을 달성하기 전까지는 우수한 장비가 있어도 제대로 쓸 수 없죠.”

“헤에~”

이건 편의점 사장님이 가르쳐주지 않은 정보였다.

(네가 관심이 없었던 탓이지.)

그 말도 맞고요.

“저는 평범한 이용자로 접속한 상태입니다. 위험하게 세계로 뛰어든 당신이랑 다르죠.”

“참 편리하네요.”

“저는 사냥터를 졸업하고 이동할 때만 와서 잠깐 도와줄 겁니다. 호출은 당신의 훌륭한 선배님께 말하면 5분 안에 접속해서 다른 사냥터로 빠르게 이동시켜줄게요.”

“그런데...”

“질문이 있나요?”

“훌륭한 선배님입니까?”

“자기중심적인 강문수 씨보다 100배는 훌륭한 신사분입니다. 사람 보는 기준이 까다로운 추기경 예하도 매우 높게 평가하고 계세요.”

“아, 네.”

(잘 새겨들어라, 후배야.)

듣고도 믿어지지 않아서 잘 듣고 있습니다.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로 도망친 라누벨라 10세는 용으로 환생했습니다. 당신이 허공에서 시작한 것도 그 때문이죠.”

“...진짜 용입니까?”

“네. 진짜 용입니다. 매우 잘 적응해서 모든 용의 정점인 용왕까지 스스로 올랐죠.”

“......”

내 칭호가 다시금 떠올랐다.

“하지만 처음부터 용이었던 건 아닙니다. 게임의 환생 시스템을 이용해서 용의 육체를 얻은 거죠.”

“아하!”

게임에 별것이 다 있네.

“접촉을 몇 번 시도해봤지만, 대화는커녕 둥지를 지키는 호위병들조차 뚫을 수 없었습니다. 신성로마제국의 용맹한 백성들로 구성된 대규모 토벌대조차 문턱을 넘지 못했죠.”

“......”

“그래서 둥지 밖으로 나올 때를 노려봤습니다. 그런데 용이잖아요? 매번 비행해서 이동하는데... <몰랑 판타지>의 세계관에서 가장 빠른 이동수단인 용들은 그녀만 보면 겁에 질려서 무조건 도망칩니다.”

“......”

“참고해주세요.”

“저기요? 이건 참고가 아니라 절망적인 소식입니다만?”

항의하는 나에게 마녀가 게임 접속을 끊으며 말했다.

“쉬우면 당신을 초대했겠어요?”

“......”

뿅!

나는 한마디도 안 지는 마녀를 마음속으로 소심하게 욕해준 후...

(시작은 공동묘지냐?)

“네.”

무덤을 떠도는 평균 8레벨 망령들을 사냥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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