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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61화 (162/232)
  • 161화

    [8장-5절] 한 판 하실래요?

    비엔나 수잔은 어릴 적부터 먹는 걸 좋아했다. 어느 정도 좋아하냐고 묻는다면, 맞는 옷이 없어서 수선해야 할 만큼.

    너무 살이 쪄서 아이들에게 놀림당한 스트레스를 과식으로 풀고, 먹으면 살이 쪄서 더 놀림받고...

    악순환의 반복이었다.

    ‘괜찮아.’

    그래도 비엔나 수잔은 멈출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녀는 먹는 게 정말 좋았고, 다이어트가 금방 효과가 나오는 게 아니며, 운동은 힘들잖아? 침대 위에 누워서 편하게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리는 게 좋았다.

    내가 살이 찌든 말든 남들이 무슨 상관인가? 참견쟁이들은 다 죽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

    「적성검사결과: 요리연구가」

    그녀가 먹는 것을 좋아했던 이유가 있었다.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는 P의 적성검사기가 간과한 게 있다면, 그녀의 비만까지 고려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만사가 귀찮음!

    몸이 무거워지면서 부엌 앞에 가만히 서 있는 것조차 버거운 그녀에게 요리 연구는 불가능했다.

    더구나,

    “호호!”

    “하하!”

    사춘기와 2차 성장까지 마친 또래들은 연애를 즐기기 시작했다.

    그녀를 끈질기게 놀리던 아이들도 거짓말처럼 관심을 끊고, 괜찮은 이성에게 눈을 돌렸다.

    “...잘됐네.”

    정말로 잘 된 게 맞을까? 그토록 무관심을 원했는데, 비엔나 수잔은 전혀 행복하지 않았다.

    살랄라~

    늘씬한 여자애들이 예쁜 옷을 입고 남자애들의 주목을 받는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날이 늘었다.

    그리고 또 스트레스!

    그리고 또 폭식!

    이 현실이 싫어진 그녀는 집 밖으로 나가는 게 싫어졌고, 몸을 안 움직이면서 체중은 더욱 가파르게 상승했다.

    “고혈압이...”

    “간염이...”

    “당뇨병이 의심...”

    부모의 손에 이끌려 억지로 받은 건강검진도 최악!

    이러다가 죽을 수도 있다는 의사의 말에도 그녀는 시큰둥했다. 이런 몸뚱이로 살 바에 차라리 일찍 죽는 편이 낫겠다고...

    * * *

    “공녀님.”

    “공녀님.”

    “...어?”

    하루의 절반 이상을 보내는 침대 위에 오늘도 누워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던 비엔나 수잔.

    하지만 그녀는 다시 태어난 것처럼 가벼운 자신의 몸에 놀랐고, 아리따운 하녀들이 침대에 누워있는 자신을 부르는 호칭에 또 한 번 놀랐다.

    공녀.

    ‘내가 공녀라고?’

    그녀는 자신이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의 주인공이 됐다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았고, 너무 좋아서 ‘꿈’이란 가정 자체를 하지 않았다.

    “공녀님! 이것을...!”

    “공녀님! 받아주십시오!”

    “공녀님을 위해...”

    현실에서는 실물로 만날 인연이 없었던 초절정 미남들이 달콤한 말과 선물로 자신을 유혹했다.

    “와아!”

    그리고 최고의 주방장이 요리한 음식들은 ‘요리연구가’에서 ‘미식가’로 변질한 그녀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킬 만큼 뛰어났다.

    ‘아, 안 돼...!’

    비엔나 수잔은 꾹 참았다.

    다시 찾아온 기회.

    심지어 대륙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체(女體)를 뒤룩뒤룩 살찌워서 망칠 순 없었다.

    그러나,

    “너무 아까워...”

    안 먹으면 버려지거나 하인들의 뱃속으로 사라지는 음식들! 그녀를 위해 고급 식자재를 공수해온 상인들과 열심히 조리한 요리사들을 위해서라도 먹어주는 게 예의다.

    빼꼼!

    그리고 몸은 솔직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공녀의 잘록한 허리에 살이 붙으면서 평범한 허리가 되었다.

    “윽...”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의 원작 주인공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2시간씩 산책한다.’라는 설정이 있다.

    이게 산책 도중에 미남이랑 마주치기 위한 일회성 장치일지라도, 공녀의 체질을 결정하는 요인이 된다.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공녀의 완벽한 몸매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아침마다 2시간씩 산책해야 유지된다.

    ...라는 주인공 설정도 자연스럽게 추가된다는 의미!

    “공녀님. 산책하실 시간입니다.”

    “...응. 그래.”

    안 하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비엔나 수잔은 억지로 몸을 움직였다.

    그녀는 2시간이 이토록 긴 시간인 줄 처음 알았다.

    “공녀님. 산책하실 시간입니다.”

    “...알아.”

    일주일을 버텼다.

    “공녀님. 산책하실 시간입니다.”

    “...해야지.”

    보름을 버텼다.

    “공녀님. 산책하실 시간입니다.”

    “...오늘은 쉴래.”

    빼먹으니 너무 행복했다!

    “공녀님. 산책하실 시간입니다.”

    “...앞으로는 안 해.”

    귀찮고 지루한 산책 시간을 빼는 만큼 식사량도 줄이기로 했다.

    그러나,

    “공녀님! 남쪽 나라에서 어렵게 구해온 열대과일입니다.”

    “공녀님! 없어서 못 파는 인기 과자를 샀습니다.”

    “공녀님! 깊은 바다에서 어렵게 잡은 해물로 만든 수프입니다.”

    “공녀님...!”

    사방에서 쏟아지는 미남들의 유혹은 비엔나 수잔의 다이어트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았다.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의 주인공은 조금만 운동해도 살이 빠지는 축복받은 체질이지만, 그 조금조차 안 하면 찔 수밖에 없다.

    빼꼼! 빼꼼!

    야금야금 불어난 살은 공녀의 아름다움을 묻어버렸다.

    또한,

    “하하! 제가 이겼군요!”

    “......”

    “대륙 최고의 카드게임 실력을 자랑하는 공녀님이 봐주신 덕분에 제가 이겼습니다.”

    “맞아요, 왕자님.”

    비엔나 수잔은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의 원작 주인공 기억도 갖고 있다.

    카드게임 규칙.

    카드게임 기술.

    카드게임...

    그중에는 카드게임이랑 관련된 것들도 많았으나 한계가 있었다.

    아무리 뛰어난 기술자도 자신의 손에 익은 도구가 아니면 완벽한 실력을 발휘할 수 없는 법.

    새로운 도구에 다시 익숙해지면 되지만, 비엔나 수잔의 인내심이 그때까지 기다려주지 못했다. 그녀가 다이어트를 매번 실패한 원인도 따져보면 인내심 부족이었으니까.

    마찬가지였다.

    “안 해!”

    연전연패에 짜증 난 그녀는 카드게임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결국,

    ‘또 망했어...’

    화장실과 식당으로 걸어가는 최소한 운동량 덕분에 현실의 몸처럼 심각하진 않았지만, 미녀의 비율이 비현실적으로 높은 판타지 세계관 기준에선 충분히 비만이었다.

    그래도 위안이라면?

    “공녀님!”

    “공녀님!”

    그녀의 모습이 변해도 사랑해주는 미남들이 주위에 바글바글했다.

    그야말로 맹목적인 사랑!

    비엔나 수잔을 놀리거나 무시했던 현실이랑 전혀 달랐다.

    “호호!”

    그래. 살이 좀 찌면 어떤가? 나만 행복하면 되지!

    ...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공녀’에게도 있었다.

    * * *

    어디서부터 어떻게 망했는지 전부 설명하려면 자서전으로 10권 분량은 나오기에 과감히 생략.

    판타지가 없는 로맨스 판타지 <아낌없이 받는 공녀님> 세계에 유일한 판타지는 ‘공녀의 동안’일 것이다.

    60살에도 30살로 보이는 기적!

    하지만 그녀를 사랑했던 남자들은 전부 늙었고, 젊은 사내들은 맹목적으로 사랑해주지 않았다.

    재산, 지위, 명령.

    물질적인 욕망이나 이유에 이끌려온 자들뿐이었다.

    그 끝은?

    “공녀님! 큰일 났습니다!”

    공녀.

    여전히 그녀는 공녀였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들이 ‘무슨 부인’으로 불리는 것과 대조됐다.

    왜?

    중세시대 귀족으로 태어난 영애들의 의무나 다름없는 결혼을 안 했고, 머리 아픈 정치와 경영도 남에게 떠넘기면서 ‘대공’의 자리를 회피...

    그러나 공국의 모든 권력은 공녀에게 집중되어 있었다.

    “무슨 큰일? 전쟁으로 식자재 공급이 어려워졌느냐?”

    의무는 내팽개치고 권리만 챙긴 공녀는 태연하게 물었다.

    “졌습니다!”

    “...뭐?”

    “전쟁에서 졌습니다! 곧 이곳까지 연합군이...”

    “절대로 안 진다면서! 그런데 이게 무슨 말이냐!”

    엄선해서 고른 잘생긴 사내들로 구성된 공국의 기사단은 세계 최고!

    그녀는 그렇게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막아! 이기라고!”

    전쟁에 무관심한... 아니, 무관심하기에 쉽게 생각하고 세계에 선전포고한 비엔나 수잔은 고함을 질렀다.

    “노력해보겠습니다.”

    “이겨라! 명령이다!”

    “네.”

    그리고 공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하지 않는 신세대, 젊은 간부들은 공녀를 버리고 탈주했다.

    남은 측근은 친위대와 도망칠 능력이 안 되는 미소년들뿐!

    견고한 외성은 최소한의 병력조차 주둔하지 못해서 쉽게 뚫렸고, 내성도 함락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으으...”

    비엔나 수잔은 수집한 미소년들로 가득한 자신의 방에 틀어박혔다.

    똑똑!

    “공녀님.”

    여성에게 예민한 결혼 문제를 함부로 꺼냈던 집사의 노크.

    지금 당장 무덤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은 노인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바쁘십니까?”

    “......”

    대답하지 않았다.

    “화려함만 신경 쓴 내성이 뚫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항복만이 유일한 살길입니다.”

    “...당신은 어째서 안 도망쳤지? 내가 미울 텐데.”

    “허허! 모르겠습니다. 고민할 때마다 어린 공녀님께 카드게임을 가르쳐드리던 날들이 떠오르지 뭡니까.”

    “그건 내가 아니야.”

    “허허! 이 힘든 현실을 부정해도 공녀님은 공녀님이십니다.”

    “......”

    그런 의미로 한 말이 아니었지만, 설명하기 귀찮았다.

    “시간이 없습니다. 적들이 내성까지 밀고 들어온 후에는 항복도 안 받아줄 겁니다.”

    “...항복하면 용서해줄까?”

    너무 철없는 어린애 같은 질문이란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녀를 맹목적으로 사랑해준 남자들이라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다. 그들은 그녀가 아무리 무리한 요구를 해도 지금까지 다 들어줬으니까!

    “그럴 겁니다.”

    집사는 솔직하게 대답했다.

    그래도 오랫동안 사랑했던 여인. 미천한 노예들도 보는 앞에서 치욕적인 공개처형만은 안 시키리라.

    “생각해볼게.”

    “네.”

    고민할 시간조차 아까웠으나 집사는 재촉하지 않고 물러났다. 설득하면 잔소리로 받아들여 무조건 반발하는 공녀의 성깔을 잘 알기에.

    그때,

    “저 말을 믿습니까?”

    마약에 취한 미소년이 몽롱한 얼굴로 말했다.

    “늙은 암퇘지처럼 해체될 겁니다.”

    다른 미소년이 말했다.

    “뭐, 뭔...?”

    늘 예쁜 인형처럼 고분고분했던 미소년들이 가식적인 가면을 벗고 한마디씩 했다.

    잔인하게.

    현실을 담아서.

    그 수위가 점점 높아졌다.

    “닥쳐~!”

    하지만 미소년들은 그간 쌓인 울분을 풀 듯이 계속 말했다.

    “공녀님을 쉽게 죽여줄까요?”

    “저라면 고문할 겁니다.”

    “십자가에 매달아둘지도...”

    도망칠 장소가 사라진 비엔나 수잔은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 * *

    중요한 몇 가지를 확인하기 위해 라누벨 환자 ‘비엔나 수잔’이 입원해 있는 엘몰랑스 병원으로 향했다.

    ‘나를 기억할까?’

    그녀가 나를 보자마자 어떤 식으로든 반응을 보인다면 검귀의 기억이 존재한다는 의미.

    검귀로 되살아난 남해수가 바로 옆에 있던 나를 무시하고, 배신한 아내와 부하들을 공격한 점을 고려하면 가능성이 매우 높다.

    띠로리~♪

    서혜주 부원장님의 전화였다.

    “여보세요.”

    (문수니?)

    질문이 조금 이상했다. 환자가 깨어났다면 당연히 ‘나’인 줄 아실 텐데.

    “네. 저입니다.”

    (환자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어떻길래요?”

    (눈을 뜬 조금 전부터 악몽의 후유증을 호소하듯 마구 날뛰고 있어. 현재는 움직이지 못하도록 간호사들이 제압해서 침대에 묶어뒀는데, 진정될 기미가 안 보이네.)

    “그렇습니까.”

    검귀로 변한 영향일까? 현재로선 아무것도 단정할 수 없었다.

    (오는 중이야? 꿈속에서 무슨 일이 있긴 했었구나?)

    “독약을 마시고 자살했습니다.”

    (남해수 씨처럼 꿈속에서 죽었다는 뜻이구나.)

    “네. 하지만 죽었다고는...”

    (여보세요?)

    “부원장님. 나중에 다시 전화할게요.”

    뚝.

    통화를 끊고 스마트폰을 호주머니에 넣은 나는 바쁜 걸음을 멈췄다.

    “어머? 바로 눈치채셨네요. 그냥 지나칠 줄 알았는데. 안녕하세요?”

    “라누벨라... 양.”

    마녀 라누벨라가 카페 야외 테이블에 다리를 꼰 채 앉아 있었다.

    “강문수 씨. 저랑도 카드게임 한 판 하실래요?”

    “어디까지 알고 있습니까?”

    “저를 이기면 질문에 답해드리죠.”

    “...좋습니다.”

    나는 그녀의 반대편에 마주 보고 앉았다.

    “내기는 공평해야겠죠? 제가 이기면 지구 반대편까지 동행해주세요. 서쪽의 마녀로 불렸던 라누벨라 7세가 당신을 만나고 싶어 하거든요.”

    “......”

    무슨 꿍꿍이지?

    “거절해도 상관없어요. 저는 아쉬울 게 없으니까요. 할머니는 무척 아쉬워하시겠지만.”

    “제가 섞겠습니다.”

    탁!

    나는 승낙의 의미로 테이블 위에 놓인 카드 뭉치를 섞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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