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50화 (151/232)
  • 150화

    위이잉-

    부웅-

    우리가 속도를 올리자 추적자들의 차도 덩달아 속도를 올렸다. 이것으로 추적당한다는 게 확실해진 셈.

    송선영에게 질문했다.

    “선영아. 나는 온종일 누워있어서 모르는데, 누구랑 원수 졌어?”

    “죽기 싫으면 말 시키지 마! 운전에 집중해야 하니까!”

    “네.”

    그러면 나는 누구에게 질문의 답을 들어야 할까?

    띠리리링~♪

    주인의 마음을 이해한 스마트폰이 나를 불렀다.

    “여보세요.”

    (문수야! 무사하니?! 선영이는 옆에 있고?)

    “감독님. 안녕하세요.”

    여자친구 송선영의 모친이기도 한 장서연 감독님이었다.

    (오랜만에 인사해준 건 고마운데, 태평하게 대화할 때가 아니야! 이미 눈치챘겠지만, 너를 노리는 위험한 추격자들이 있어!)

    “누굽니까?”

    (아직은 몰라. 수영협회가 의뢰해서 차량번호를 조회해봤는데, 도난신고 접수된 차들이래.)

    “저를 노리는 게 맞습니까?”

    (맞아. 틀림없어. 전형적인 보복 방식이야.)

    “보복이요?”

    (스포츠토토. 너 때문에 돈과 자존심을 많이 잃은 재벌의 소행. 여태 잠잠했었는데, 네가 일정에 없는 외출을 하자마자 움직였어!)

    “...그렇군요.”

    선배는 이런 점까지 고려해서 안전한 엘몰랑스 병원에 머물렀으리라. 나에게 얘기해주지 않은 걸 보면 단순한 우연일 수도 있지만.

    (경찰이 도착할 때까지만 참아.)

    “그때까지 아무런 일도 없을까요?”

    (...조심해.)

    “네.”

    감독님의 설명은 정황만으로 추측한 범행 동기지만, 선배가 여기저기 시비 걸고 다니면서 원한을 쌓지 않았다면 거의 확실하리라.

    스포츠토토.

    정작 나는 스포츠토토로 돈을 한 푼도 만져보지 못했는데, 엉뚱한 위험만 따라오는 상황. 억울해서 화병으로 쓰러질 것만 같다!

    “문수야. 그래서 어디로 가야 해? 내비게이션 찍어줘.”

    운전대를 쥔 송선영이 바짝 집중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디로?

    그건 추적자들이 얌전히 쫓아오기만 하는 이유를 알아내야만 정할 수 있을 것 같다.

    “뭐야? 민폐잖아.”

    대형 트럭 2대가 고속도로 1차선, 2차선을 완벽하게 똑같은 속도로 나란히 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철벽!

    추월할 수가 없었다.

    단순한 우연으로 치부하기에는 너무 공교로웠다.

    ‘뒤에는 추적자, 앞에는 철벽인가?’

    이 포위망을 빠져나가고 싶어도 가장 가까운 나들목과 휴게소는 21km를 더 가야 했다.

    앞에 트럭이 급정거하면?

    곧바로 교통사고다.

    ‘고민이네.’

    가만히 당해줄 생각은 없지만, 먼저 움직였다가 법적인 책임을 따지기 시작하면 누구 탓?

    총알도 피하는 나뿐이라면 먼저 당해준 후에 정당방위로 반격해도 되지만, 옆에 송선영이 있다.

    그녀가 방해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 식이라면, 나는 죽을 때까지 외롭게 혼자 살아야 하니까!

    결론.

    뒷수습은 나중에 생각하고 일단은 정면돌파다.

    “내가 해결할게.”

    “어떻게?”

    “이거 오픈카지? 지붕 열고, 반자율주행으로 바꾼 후에 상체를 최대한 밑으로 숙여.”

    “뭘 하려고?”

    “어서.”

    “...죽으면 네 책임이야.”

    “물론입니다.”

    위이잉-

    노란색 스포츠카의 뚜껑이 접히면서 상부가 활짝 개방됐다.

    “다음은?”

    “의자 좀 밟을게.”

    “응?”

    폴짝!

    안전띠를 푼 나는 스포츠카의 의자를 밟으며 높이 뛰었다.

    계산은 본능과 직감으로!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세계에서 8등급 괴물 ‘배트 스나이퍼’의 등에 올라탔을 때보다 훨씬 느리다.

    즉, 만만하다.

    “미친?!”

    “뭐, 뭐야?!”

    우리를 뒤따라오던 추적자들의 운전석과 보조석에 앉은 사내들이 놀라서 두 눈을 부릅떴다.

    자동차의 정면 유리는 탑승자의 생명이랑 직결되기에 상당히 튼튼한 편.

    하지만 내 다리도 만만치 않다.

    쨍그랑!

    못 깨면 고속도로 한복판에 나뒹구는 위험천만한 상황이었지만, 내 의도대로 잘 풀렸다.

    “아악?!”

    “으아악?!”

    운전석과 보조석의 에어백이 터지면서 시야를 가리고, 운전대가 틀어지며 옆의 차량이랑 충돌했다.

    끼이익- 쾅!

    평범한 사람은 사고가 진행되는 내내 비명만 지르다가 끝날 짧은 시간.

    하지만 나에게는 보고, 듣고, 생각하고,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시간이었다.

    “웃차!”

    내 얼굴로 날아드는 유리 파편을 피하고, 당구공처럼 이리저리 충돌할 예정인 차에서 뛰어내렸다.

    꿈속의 내 육체처럼 괴물 같은 신체 능력은 없지만, 현실도 정상이라고 말하기는 힘든 수준.

    탁, 타닥, 탁탁-

    결승선을 통과한 직후의 육상선수처럼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이며 고속도로 갓길에 멈춰섰다.

    쾅!

    차들이 불타올랐다.

    “...완벽해.”

    찰칵-

    뒤편에서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소리가 천둥처럼 들렸다.

    탕!

    이 정도는 보지도 않고 피해줬다.

    “괴, 괴물... 콜록콜록!”

    불타는 차에서 기어 나온 피투성이의 남자가 심한 소리를 했다.

    일단,

    “선영아. 차 세우고 후진해.”

    고속도로는 완전히 전복된 상태. 구경하는 사람이 있을 법도 하지만, 총성이 들린 뒤부터 조용했다.

    나란히 달리는 트럭 2대의 위험한 꽁무니를 따라가지 않고, 역주행해도 문제가 안 되리라.

    내 통화를 받은 송선영이 당당하게 말했다.

    (나, 아직 후진 못 해.)

    “...면허는 어떻게 땄어?”

    (외모로.)

    “농담할 상황이 아닌데.”

    (진짜야. 주위에 대신해줄 남자가 많은 예쁜 아가씨는 좀 못해도 된다면서 실습관이 합격시켜줬어.)

    “아하!”

    대단히 현실적인 운전면허시험 실습관이로군.

    (무사해? 갑자기 미친 짓을 해서 깜짝 놀랐잖아!)

    “당연하지. 너는?”

    (괜찮아. 후진은 무리지만.)

    “말이 많아진 걸 보니 차를 도로 한복판에 완전히 세운 모양이네.”

    (어. 운전 중에 절대로 스마트폰을 만지지 말라고 당부하셨거든.)

    “그건 잘 배웠네. 우리의 앞을 막은 트럭들은?”

    (그냥 가버렸어.)

    “의리가 없네.”

    번호판을 알고 있으니 나중에 조회해보면 알 수 있으리라. 트럭들도 도난 차량일 확률이 높긴 하지만.

    (너, 감옥 가는 거 아니야?)

    “면회 와줄 거지?”

    (무릎 꿇고 부탁하면 가줄게.)

    “오! 고마운... 조금 이따가 다시 연락할게. 도망치려는 인간이 있어서.”

    (응.)

    뚝.

    송선영이 무사한지 확인하기 위한 통화를 끊고 사고현장으로 달려갔다.

    “젠장...!”

    탕! 탕! 탕!

    쩔뚝쩔뚝 걸어가던 남자가 제대로 조준하지 않은 권총을 내게 쐈다.

    “흠.”

    나중에 조사받을 때, 나도 불쌍한 척하기 위해 왼팔에 총알 한 발을 허용해줬다.

    주르륵...

    얕은 부상은 아니지만, 최근에 미사일 폭격을 받았을 때랑 비교하면 간지러운 수준이었다.

    “누가 시켰냐고 물으면 대답할 용의가 있으신가요?”

    정중한 어조로 질문했다.

    “오, 오지 마!”

    찰칵, 찰칵-

    남자는 겁먹은 얼굴로 방아쇠를 열심히 당겼지만, 총알이 다 떨어진 권총은 침묵했다.

    “솔직하게 대답하면...”

    “오지 말라고!”

    슥-

    권총을 버리고 호주머니에서 맥가이버칼을 꺼낸 남자가 허공에 휘두르며 나를 위협했다.

    “거참...”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의 나였다면 뒤로 물러섰을 것이다.

    휙!

    그러나 현재는 가소롭다는 듯이 웃으며 앞으로 더 나아갔다.

    그리고 시원한 앞차기!

    “오지- 악?!”

    우득!

    맥가이버칼을 쥔 오른팔이 기형적인 방향으로 꺾인 남자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뿐.

    빡!

    후속타로 턱주가리를 허용한 그는 주둥이를 강제로 닫고, 뒤편으로 훨훨 날아가 쓰러졌다.

    “자... 이제...”

    나 대신 뒷수습해줄 사람들을 느긋하게 기다려보자.

    * * *

    “축하해, 사위. 무죄야.”

    “오!”

    총에 맞은 왼팔을 치료하기 위해 엘몰랑스 병원에 입원한 나를 찾아온 서혜주 부원장님.

    이것이 돈의 위대함인 걸까? 이젠 비공식적인 자리에선 ‘사위’라고 자연스럽게 부르신다.

    “국가보안청에서 사과하러 줄줄이 찾아올 거야.”

    “저에게요?”

    “국가의 소중한 국가대표선수를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으로부터 전혀 보호하지 못했다는 책임. 청장부터 말단까지 싹 옷을 벗을 예정이야.”

    “굳이...”

    “신경 쓸 것 없어. 그만큼 정부에서 이번 사안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는 뜻이니까. 국보급 선수에게 정말 미안하다는 표시이기도 하고.”

    “흠... 네.”

    나머지는 흔한 이야기였다.

    배후는 못 찾음.

    고속도로를 막은 트럭 운전기사들은 주모자에게 돈을 받고 이용된 평범한 노동자들. 하지만 이쪽도 강한 처벌을 받을 예정...

    ‘남해수가 떠오르네.’

    이제 저격수가 투입되고, 내가 탄 비행기가 납치당하는 걸까.

    “흠. 앞으로는 마음 편히 밖을 못 돌아다니겠네요.”

    “그게 배후가 바라는 거지.”

    “못 찾았다면서요?”

    “하지만 너에게 전달할 내용은 이들이 가지고 있었어.”

    “저는 못 받았는데요?”

    “전달하기 직전에 터진 엽기적인 교통사고로 정신없었으니까.”

    “아하!”

    “웃을 일이 아니야. 사고 차량의 블랙박스에 찍힌 네 모습은 진짜 엽기였으니까. 영화 찍는 줄 알았어.”

    “계산된 행동이었어요.”

    본능 90%, 계산 10%를 버무린 완벽한 계획이었다.

    “사위. 자기 몸을 좀 더 사랑해줘. 내 딸을 과부로 만들 셈이야?”

    “어...”

    결혼은커녕 어른스러운 연애도 해보지 않았습니다만...

    “알겠지?”

    “...네. 조심하겠습니다.”

    하지만 애써 지적할 필요성을 못 느낀 나는 얌전히 넘어갔다.

    “배후의 요구는 승부 조작. 동계 올림픽의 꽃인 기사도에 참가해서 패배하라는 거였어.”

    “기사도에서 패배? 죽으라는 소리인데요?”

    살인(殺人)이 허용되는 유일한 올림픽 스포츠 종목.

    전쟁이 없는 현대에 불필요한 적성을 보유한 사람들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하다.

    “거절하면 트럭이 갑자기 멈추면서 충돌사고가 났을 거야. 우발적인 사고로 위장해서.”

    “...붙잡은 트럭 운전기사가 그렇게 진술했습니까?”

    “어. 하지만 멈추라는 지시를 받기 전에 진짜 예기치 못한 충돌사고가 터졌잖니? 일이 잘못됐음을 깨닫고, 현장에서 무작정 도망쳤다고 하더라.”

    “......”

    그 자리에는 송선영도 있었다. 내 여자친구이긴 하지만, 그게 같이 공격받아도 되는 이유는 아니다.

    그런데...

    “고마워. 내 딸을 지켜줘서.”

    장서연 감독님은 원망은커녕 역으로 나에게 고마워했다.

    ...이건 이상하잖아?

    나 때문에 아무런 잘못도 없는 송선영이 위협받는 상황도 포함해서!

    “아뇨. 저야말로 선영이를 위험에 빠트려서 죄송합니다.”

    “그런 생각하지 말렴. 선영이는 처음부터 각오했으니까... 각오한 애치고는 너무 태평하지만. 인터넷에 선영이보다 자기가 더 낫다는 여자애들의 글이 수두룩해.”

    “하아...?”

    “정말이야. 검색해보렴. 강문수 여자친구. 올림픽 당시에는 실시간 검색어 1위였어. 지금도 20대 여성 실시간 검색어 10위 안에 있을걸?”

    “......”

    말이 좀 이상하지만, 현실이 너무 현실적이라서 현실 같지 않다.

    “편히 쉬렴~”

    “네.”

    장서연 감독님이 친근하게 손을 흔들며 병실을 떠났다.

    “사위 사랑은 장모라는 옛말이 맞는 것 같네.”

    “...안 바쁘세요?”

    조용히 엿듣고 있던 서혜주 부원장님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바쁘긴 한데, 내 본업보다 우선할 순 없지.”

    “본업이 의사잖아요?”

    “어머! 섭섭한 소리. 국보(國寶) 강문수 선수 주치의가 본업이야. 대단히 명예로운 자리지.”

    “흠. 그래서 진단 결과가 나왔나요?”

    “왼팔은 총알을 뽑은 직후부터 빠른 회복세에 접어들었어. 이 속도면 한숨 푹 자면 나을걸? 사람인지 의심스러울 지경이야.”

    “다행이네요.”

    팔이 아메바처럼 회복되는 꿈속이랑 비교하면 현실의 육체는 그나마 현실적인 편이다.

    “문제는 정신쪽.”

    “뇌세포가 많이 파괴됐나요?”

    “아니. 분노가 머리에 쏠려서 뇌출혈로 쓰러질 것 같은 상태. 조금은 진정하는 편이 어떨까?”

    “......”

    하지만 일방적으로 얻어맞고도 누구에게 맞았는지 모른다는 사실이 너무 분하고 짜증 났다.

    “배후를 찾고 싶어?”

    “네. 진심으로.”

    “그러면 머리를 식히고 하나씩 되짚어봐.”

    “가르쳐주세요. 지금은 머리가 잘 안 돌아가네요.”

    “스포츠토토에 거액을 쓰는 사람들은 이걸 도박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자신만의 과학적인 통찰과 분석으로 가장 우수한 선수에게 돈을 걸지.”

    “그렇겠죠.”

    딴다는 확신이 있기에 큰돈을 걸 수 있는 거겠지.

    “하지만 사람은 시간과 돈이 제한적이라서 모든 종목을 분석하지 않아. 자기가 가장 잘 안다고 믿는 종목에만 돈을 걸지.”

    “아!”

    “네가 출전한 종목은 수영, 육상, 태권도야.”

    “배후의 관심사가 딱 보이네요.”

    “그리고 기사도에도 관심이 많지.”

    “맞네요!”

    “덧붙이자면, 어중이떠중이는 이처럼 치밀한 테러를 할 수 없어. 유명한 재벌 혹은 정치인이겠지.”

    “오오...”

    범위가 굉장히 축소됐다.

    “그런데 이 정도는 누구나 생각할 수 있어. 국가보안청이라면 조금 더 근접했겠지만, 결정적인 연결고리나 증거는 못 찾았겠지. 그래서 전원이 옷을 벗는 거고.”

    “흠.”

    좋다가 말았다.

    “그래도 찾고 싶으면 남은 수단은 딱 하나야.”

    “뭔데요?”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굴에 들어가야 하는 법.”

    “기사도?”

    “정답.”

    “...어쩔 수 없네요.”

    내가 우매한 현대인들에게 로맨스 판타지의 기사도를 보여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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