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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8화 (149/232)
  • 148화

    원리나 이유는 모르지만, 꿈의 주체가 죽으면 남해수처럼 검귀로 변한다.

    죽으면 검귀.

    죽어가는 중이면?

    그 탓에 박효만의 신체 일부가 검귀로 변했다고 나는 추측한다.

    ‘검귀는 현실에 없지.’

    꿈에 염증을 느끼고 현실로 돌아가고 싶어도 그가 깨어날 수 없는 이유. 가더라도 죽어버린 두 손은 놔두고 가라는 의미였다.

    “허튼짓하지 마.”

    고문 기술자들이 초능력과 의학기술을 조합해서 박효만의 손이 회복되지 못하게 봉인했다.

    일단은 그것부터 해제해야 다음으로 넘어갈 수 있으리라.

    톡.

    내가 그의 두 팔을 건드리는 것만으로도 초능력이 해제됐다.

    다음은?

    서걱-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휘둘러 수술로 봉합한 두 팔을 절단했다.

    “큭...!”

    나만큼은 아니지만, 이젠 웬만한 고통에는 만성이 된 박효만.

    내가 마법소년 최강민에게 농락당했던 과거가 스멀스멀 떠올라서 불쾌했지만, 내가 박효만에게 한 짓이기에 불평할 수도 없었다.

    (너랑 다르니 신경 쓰지 마라. 이 녀석이 버티는 건 일시적인 생리현상일 뿐이다.)

    그래요?

    (통각은 몸에 이상이 있음을 알리는 도구다. 몸에 고통을 주기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란 얘기지. 그래서 고통이 계속되면 통각을 차단해서 완화해. 고문 좀 많이 해봤다는 놈들은 다 아는 상식이다.)

    많이 해보셨나보네요?

    (누구에게나 끔찍한 고통을 주고 싶은 원수가 있는 법이지.)

    스르륵-

    내가 선배랑 대화하는 사이에 박효만의 두 손이 자라났다.

    “인간의 손으로 못 바꾸나?”

    “이젠 안 돼...”

    처음 만났을 때는 검귀와 인간의 손을 자유롭게 교체했었는데, 이마저도 못하게 된 듯하다.

    “가만히 있어. 지금부터 움직이면 2차 고문 들어간다.”

    “......”

    이건 하나의 기회가 아닐까?

    사극 <궁녀 덕춘이>에서 검귀를 잔뜩 상대했었지만, 이렇게 가까이에서 살아있는 검귀의 팔을 관찰할 기회는 없었기 때문이다.

    톡톡.

    손목 부분은 일반적인 칼보다도 두꺼웠지만, 칼끝에 가까워지면 잠자리 날개처럼 얇아졌다.

    이러니 잘 부러지지!

    하지만 ‘무엇이든 공기처럼 베어내는 칼날’이라면 내구성은 딱히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그 속성이 통하지 않는 상대만 만나지 않는다면.

    (이 답답한 놈아. 바보냐?)

    또 왜요?

    (그 반대다. 저 칼날은 너 같은 녀석을 전문적으로 죽이게 설계됐다. 날카로운 단검을 여러 자루 챙기고 다니는 전문 살수랑 비슷하지.)

    “아...”

    검귀의 팔은 2쌍이다. 그래서 칼날도 넷, 다리까지 합치면 여섯.

    그 형태가 얇은 칼날이 부러졌을 때를 대비한 대비책이라면?

    앞뒤가 딱딱 맞았다.

    (이제 좀 머리가 굴러가는군. 어디 가서 검술 배웠다고 하지 마라. 너의 호위기사였던 발렌타인에게 미안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끙...”

    나의 아픈 곳을 사정없이 찌르시네.

    “뭔가 알아냈습니까?”

    “...기다려.”

    방법은 간단하다. 이 손을 다시 인간의 것으로 바꾸면 해결!

    하지만 어떻게?

    여기서부터 무당이 나설 차례다. 그리고 선배님의 도움도.

    (나는 왜 끌어들이냐?)

    도와주세요!

    어떻게든 될 줄 알았는데, 어떻게도 되질 않았다.

    (실전에 강하다고 몇 번 칭찬해줬더니 정말인 줄 아는군.)

    설쳐서 죄송합니다...

    (하나씩 정리해보자. 너는 거짓말이라고 했지만, 마녀는 항상 진실 속에 교묘한 말장난을 섞는다. 우리 업계에서는 능숙한 술사로 통하지.)

    거짓말이 아니다?

    (선물을 분명히 줬을 것이다. 선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설명해주지 않았을 뿐. 환자가 저 손을 선물로 착각하도록 유도한 건 맞지만, 남을 속였다고 꼭 거짓말인 건 아니다. 계약서를 꼼꼼하게 읽지 않은 건 본인 잘못이지.)

    아하!

    계약서를 꼼꼼히 읽어봐야 한다는 말에 바로 이해했다.

    당한 사람은 ‘이건 사기야!’라고 외치겠지만, 계약서를 조작한 건 아니기에 엄연한 합법!

    나도 마녀에게 몇 번 당했다. 선배가 말해주지 않았으면 여전히 모르고 있지 않았을까?

    (감사는 됐고 머리를 써라.)

    쓰는 중입니다만...

    (마녀의 수법은 간단한 최면이다. 저 멍청이가 선물을 받았다고 믿도록 만들었지.)

    이젠 안 믿잖아요?

    (무당인 너랑 똑같이 취급하지 마라. 속았다는 사실을 깨닫자마자 바로잡을 재주가 없어.)

    “머리 아프네.”

    “알아요. 저는 틀렸어요...”

    “흠...”

    이젠 방법이 없는 걸까?

    (있다.)

    어? 정말요?

    (너도 마녀처럼 저 멍청이에게 최면을 걸면 된다.)

    최면... 아!

    (마녀가 시대착오적인 마녀 복장을 고집하는 이유가 뭐겠냐?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관심받고 싶어서? 진짜 마녀일지도 모른다는 믿음을 조금이라도 심어주기 위해서다.)

    “...어리석은 중생아.”

    나는 곧바로 목소리에 근엄하면서도 고전적인 분위기를 깔았다.

    “예?”

    “아직도 네가 벌을 받는 이유를 깨닫지 못했구나.”

    “그, 그게 무슨...”

    갑자기 바뀐 내 태도에 박효만이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너의 인생을 돌아보거라. 현실에서 동료들을 배신하지 않았느냐? 그 대가로 꿈속에서 동료들에게 배신당하는 벌을 받았느니라.”

    “아!”

    순전히 박효만의 오만한 태도가 문제였지만, 지금은 그를 적당히 속일 수만 있다면 아무래도 좋았다.

    (마녀랑 똑같군.)

    “...어리석은 중생아. 너의 두 팔을 돌아보아라. 멋지더냐? 숟가락과 젓가락도 못 쓰고, 화장실에서 휴지로 엉덩이도 못 닦는 그 손이?”

    “절대 아닙니다...”

    박효만이 멍청하긴 해도 손이 없으면 어떻게 되는지는 이해한 듯했다.

    절망에 찬 얼굴.

    그는 남의 손에 의지하지 않으면 제대로 먹고 싸지도 못한다. 그리고 틀림없이 괴물로 몰려서 헌터들에게 사냥당하리라.

    “이 세계에 네 자리는 없다.”

    “아...”

    “SSS급 헌터가 돼서 좋았더냐? 이 세계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더냐? 그 착각에서 얼른 깨어나라. 여긴 너처럼 어리석은 중생에게 천벌을 내리고 회개할 기회를 주는-”

    (팔대지옥.)

    “...팔대지옥이다!”

    (공부 좀 해라.)

    “저, 저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이대로 계속되면 두 발마저 칼날로 변하고, 모든 죄를 청산할 때까지 이 지옥에서 고문받게 되리라.”

    “아아.”

    “...하지만 아직 늦지 않았다.”

    “정말입니까?!”

    “회개해라. 두 손으로 열심히 일해서 동료들에게 돈을 갚겠다고 스스로 맹세하면 된다. 네 진심이 하늘에 닿는다면 옥황상제-”

    (태산대왕.)

    “...밑에 있는 태산대왕께서 너에게 기회를 줄 것이다.”

    선배님. 태산대왕이 누구예요?

    (팔대지옥 중 재물이랑 관련된 죄를 범한 자들을 심판하는 거해지옥의 관리자지. 죄인들의 사지를 묶고 톱과 칼로 절단한다.)

    정말 멋진 곳이네요!

    혹시, 자식을 버리거나 괴롭힌 부모가 가는 지옥도 있나요?

    (없다. 그 반대는 있지만.)

    “......”

    쓰레기네.

    전혀 공정하지 못한 지옥이었다.

    (너는 부모가 없어서 한빙지옥에 떨어질 일은 없겠구나.)

    대단히 추울 것 같은 이름이네요.

    (맞다.)

    “현실로 돌아가서 동료들에게 사죄하고 돈을 갚을 마음이 있느냐?”

    “네!”

    “진심이 안 느껴지는구나.”

    “정말입니다!”

    박효만이 진짜 억울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에게 말해도 소용없느니라. 진심으로 회개했을 때, 네 손은 원래대로 돌아갈 것이다”

    “아...”

    명백한 증거에 박효만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고마운 줄 알아라. 내가 거해지옥의 태산대왕에게 빌어서 회개할 시간을 벌어줬으니.”

    “당신은 대체...?”

    “무당.”

    “무당...”

    “오늘부터 이틀. 그때까지도 회개하지 못하면 거해지옥에서 몸이 썰리는 형벌을 계속 받게 될 거다.”

    계속 기다려줄 생각은 없다.

    (아몰랑 님!)

    “...뭐지?”

    통신기 너머로 들리는 보좌관의 목소리는 무척 다급했다.

    (새로운 형태의 괴물들이 도시로 몰려오고 있습니다!)

    “새로운 형태?”

    그 말을 듣자마자 느낌이 싸했다.

    (네! 그것들은 인간처럼 생겼으나 팔이 4개고, 손발은... 아! 박효만의 손처럼 생겼습니다!)

    “......”

    검귀였다.

    (더 심각한 문제는 헌터들의 초능력이 전혀 통하지 않습니다.)

    “그렇겠지.”

    (예?)

    “그러니 나에게 연락했을 거란 의미였어.”

    (아, 네. 정말 위험한 상황입니다!)

    “숫자는?”

    (현재까지 관측된 괴물은 총 283마리입니다. 총화기가 안 통하는 일반적인 괴물들이랑 달리, 이놈들은 취약해서 크게 밀리지 않지만...)

    “도시에 침투한 놈들이 문제란 거군.”

    (네. 정확합니다.)

    사람과 편의시설이 밀집된 도시에 미사일을 투하하고, 기관총을 난사할 순 없으니까. 그것들을 다룰 줄 아는 인재도 매우 적고.

    즉, 헌터가 인류의 전력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 헌터물 세계관에서 초능력이 전혀 안 통하는 검귀는 재앙일 수밖에 없다.

    F급 헌터도, SS급 헌터도...

    검귀 앞에서는 썰기 좋은 평범한 인간일 뿐이기 때문이다.

    “다른 도시는?”

    (여기만 공격받고 있습니다.)

    사극 <궁녀 덕춘이>에서 검귀들이 환자 윤소라를 노렸듯, 이번에는 박효만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지금 나가지.”

    (네!)

    환풍구만 남겨놓고 완벽하게 밀폐된 독방을 빠져나오자마자 나의 인지 범위에 검귀들이 포착됐다.

    “아몰랑 님!”

    “걱정할 필요 없어.”

    “하지만 초능력이 안 통해서...!”

    “그걸 알면서도 나를 다급히 찾은 이유가 있을 텐데?”

    “네... 인류 유일의 GGG급 헌터이신 아몰랑 님이라면 어떻게든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에...”

    부끄러움에 고개를 푹 숙인 보좌관이 순순히 고백했다.

    “맞아. 어떻게든 해주지.”

    “저, 정말로요?!”

    “정말로.”

    내 인지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건물 밖 공터로 나왔다.

    깜빡?

    눈깔 촉수가 묻는다.

    “맞아. 이 녀석들은 초능력이 전혀 안 통해.”

    깜빡?

    “그래. 나처럼. 하지만 통하게 할 방법이 있지.”

    스르릉-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적의 숫자만큼 칼날을 소환할 수 있는 최강의 SSS급 괴물.

    하지만 검귀 앞에서는 이 녀석도 수수깡에 지나지 않는다.

    내가 없다면.

    “한 방에 정리해주지.”

    푹!

    인피니티 블레이드로 내 발등을 찍고 그대로 땅속까지 찔러 넣었다.

    주르륵...

    칼날에 스며드는 나의 세계.

    그리고 이 칼날들은 도시 곳곳에 흩어져 있는 검귀들을 관통했다.

    ‘끼긱-?!’

    ‘끼기긱...?’

    푹! 푹! 푹! 푹...!

    도시를 혼란에 빠트렸던 수백 마리의 검귀가 말끔히 정리됐다!

    “...아쉽네.”

    이 녀석을 다른 꿈에서도 활용할 수 있으면 최강일 텐데.

    깜빡? 깜빡~

    내 마음을 모르는 눈깔 촉수는 즐겁게 몸을 흔들 뿐이었다.

    * * *

    “...돌아왔네?”

    눈깔 촉수를 쓰다듬고 있던 내 시야가 자연스럽게 바뀌었다.

    환자를 노리는 검귀를 전멸시켜서?

    이유는 모르지만, 내가 안 죽고 현실로 돌아왔다는 게 중요하다.

    “왔어?”

    “과장님.”

    “부원장이야.”

    서혜주 부원장님이 보였다. 선배 덕분에 식물인간처럼 누워있을 필요가 사라진 나는 어째선지 병원 천장을 바라보는 자세였고.

    “제 몸이 아팠나요?”

    “네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사용할 때마다 멀미하듯 휘청거렸거든. 그래서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어제부터 여기서 안정을 취하는 중이야.”

    “아아.”

    꿈속에서 내 감각이 예민해지면 현실에도 영향을 준다.

    그래서 내가 전투할 때는 약한 소리를 안 하는 선배조차 몸을 안 움직이려고 했을 정도.

    “뭔가 수확이 있었어?”

    “네. 환자는요?”

    “진즉에 일어나서 입원비부터 물어보던데? 너에게 감사 인사를 전하고 싶어 했지만, 시커먼 직장 동료들에게 둘러싸여서 정신없더라.”

    “그랬군요. 웃차!”

    예전보다 고급스러운 병실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뭐가 급해?”

    “급하죠. 오랫동안 기다려준 여자친구를 챙기려면.”

    절대적인 지위를 맛본 나를 현실로 끌어 내려줄 그녀가 절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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