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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6화 (147/232)
  • 146화

    [7장-10절] 시작은 좋았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P의 적성검사에 자유로울 수 없다.

    “젠장! 젠장!”

    팔이 안으로 굽는 부모조차 포기할 정도로 머리가 나쁘다는 소리를 종종 들었던 박효만. 그래서 공부 쪽은 애초에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 대신, 어릴 적부터 체력이 좋았던 그는 또래랑 주먹다짐하면 10번 중 9번은 이겼었기에...

    ‘운동 계열일 줄 알았는데!’

    아무리 부정해도 그의 손에 들린 적성검사결과표는 바뀌지 않았다.

    「적성: 건설업 실무자」

    정부에서 적성의 편견을 줄이기 위해 표현에 굉장히 신경 썼지만, 그 의미를 모를 만큼 멍청하진 않았다.

    직역하면, 건설노동자.

    P의 적성검사기는 체력이 좋은 그에게 건설현장에서 열심히 땀 흘리며 일하라고 외쳤다.

    “아... 살기 싫다.”

    “내가 어부라니...”

    “어부? 나는 농부!”

    박효만처럼 적성검사결과에 만족하지 못 하고 불평과 짜증을 부리는 학생이 주위에 많았다.

    적성은 유전자 탓일까?

    유년기의 영향일까?

    여전히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모두가 인정하는 것이 있다.

    P의 적성검사결과는 절대 틀리지 않는다는 진리(眞理)!

    아무도 의심하지 않는 상식이다.

    “효만아! 뭐 나왔냐?”

    “...봐.”

    그는 P의 적성검사결과표를 친구에게 휙 던졌다.

    “오! 괜찮네. 건설업 실무자.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서 급여가 정말 좋다던데.”

    “일이 많잖아.”

    “그러면 지금처럼 부모님께 용돈 받으며 살려고 했냐?”

    “......”

    같이 학교 성적 밑바닥을 까는 바보 주제에 맞는 소리만 하는 친구가 짜증 났던 박효만.

    휙~

    그는 신경질적으로 P의 적성검사결과표를 돌려받으며 요구했다.

    “너도 보여줘.”

    “그래.”

    「적성: 애완동물 훈련사」

    친구의 적성을 확인한 박효만은 더욱 짜증이 났다.

    “나보다 훨씬 좋잖아!”

    “어느 부분이?”

    “개와 고양이가 시끄럽게 울 때마다 때려주고 돈 받는 일이잖아. 일하면서 스트레스도 풀고, 돈도 버는 최고의 적성이네!”

    “...진심으로 하는 소리야?”

    “내가 틀린 말 했냐?”

    “쩝. 생각나는 대로 내뱉는 녀석에게 말해봐야 내 입만 아프지.”

    “야! 어디 가?”

    “집에. 애완동물 훈련사의 평균 급여라도 알아보고 말해라. 병신아.”

    “......”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친구의 적성은 ‘건설업 실무자’랑 비교가 안 될 만큼 열악했다.

    매우 낮은 급여.

    24시간 애완동물 관리.

    동물학대 고발.

    사랑하는 반려견을 돈 주고 남에게 맡기려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학대했다고 주장하면서 역으로 위자금을 청구하기까지...

    훈련사는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지 못하면 절대 못 할 직업이었다.

    그럴지라도,

    “젠장.”

    박효만은 자신의 적성에 만족할 수 없었다.

    * * *

    한 번 가정해보자.

    도시에 청소부가 단 한 명뿐이라면 어떻게 될까?

    모두가 그 청소부에게 청소를 의뢰할 것이고, 일거리가 넘쳐나는 청소부는 의뢰비를 높게 부를 것이다.

    “와...”

    전화 한 통으로 취업에 성공한 박효만은 통장에 찍힌 첫 월급에 감탄사를 연발했다.

    이게 내 월급이라고?

    처음에는 매일 몸살을 앓았지만, 선배들의 조언대로 일에 익숙해지고 요령이 생긴 뒤부터는 할 만했다.

    “좋냐?”

    “네!”

    “안 다치는 게 최고다. 힘들게 돈만 벌다가 죽으면 억울하지 않겠어?”

    “명심하겠습니다!”

    “효만아. 너는 진짜 좋은 시대에 태어난 거다.”

    “그런가요?”

    “내가 네 나이 때는 말이다, 월급이 너무 짜서 내 집 마련은 꿈도 못 꿨다. 내가 지은 아파트가 수백 채인데, 정작 내 집이 없다는 게 말이 되냐?”

    “안 되죠!”

    “그리고 나 때는 말이다...”

    “......”

    시간은 흐르고 시대는 변한다.

    P의 적성검사결과.

    그 지표는 결혼적령기에 접어든 남녀가 배우자를 선택하는 데 지대한 영향을 준다.

    그리고 적성은 창의력, 순발력, 암기력, 지구력 등을 결정하는 유전자의 영향을 안 받을 수 없다.

    즉,

    “혼자 살기도 힘들다고 결혼을 포기한 동료가 정말 많았지...”

    “...30년 전에요?”

    “그래. 30년 전에.”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희소해진 ‘건설업 종사자’의 가치가 올랐다. 반면에 결혼 선호도가 매우 높았던 직종은 흔해지며 수입이 감소했다.

    예를 들자면?

    의사는 넘쳐나는데, 병원을 지어줄 사람이 없어서 개원을 못 하는 상황!

    “제가 일하기 좋은 세상이 왔네요.”

    “아무렴. 나 때는 정말 힘들었지. 복 받은 줄 알아라.”

    “네! 선배님!”

    “이 늙은이랑 대화하려니 힘들지?”

    “아닙니다!”

    “나 때는 말이다. 깐깐한 감독관을 욕할 동료가 참 많았어. 지금처럼 현장이 휑하지 않았지.”

    “그랬군요!”

    박효만의 인생은 누가 보더라도 수월하게 풀리고 있었다.

    * * *

    “헉!”

    푸욱!

    꾸벅꾸벅 졸던 박효만은 발밑에서 갑자기 튀어나온 칼날에 식겁하며 가속 초능력을 활성화했다.

    상대적으로 느려진 칼날.

    그리고 이 기습에 익숙해지면서 피하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눈에 초점이 제대로 안 잡혔다.

    칼날이 둘로 보이는 기현상!

    원인은 매우 명확했다.

    ‘자고 싶어!’

    극심한 수면 부족!

    하지만 추적자는 그에게 원초적인 욕구를 허락하지 않았다.

    푹!

    집중력이 흐트러지면서 발밑에서 솟아난 두 번째 칼날을 보지 못했다.

    “아악?!”

    송곳처럼 그의 발바닥을 관통하며 올라오는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곧바로 발을 뺀 덕분에 다리를 잃진 않았지만, 고통은 이미 한계에 도달한 그의 정신을 억지로 또 깨웠다.

    한계 위에 한계!

    이대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한 박효만은 도시 밖으로 탈주했다.

    “따돌려야 해...!”

    도시 밖은 괴물이 득실거려서 매우 위험하다.

    안다.

    도시 밖은 물과 식량을 제대로 구할 수 없다.

    안다.

    도시 밖에는 평온한 잠자리와 예쁜 여자가 없다.

    안다!

    도시 밖에는...

    안다! 안다! 안다!

    “자야 해!”

    하지만 당장 드러누워서 10분이라도 편히 자고 싶은 박효만에게는 중요하지 않았다.

    푹! 푹! 푹!

    ‘이 새끼는 괴물인가...!’

    가속 초능력까지 써서 달리고 또 달려도 대지에서 튀어나오는 칼날 촉수의 습격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던 탓이다.

    도주를 포기하고 결판을?

    자살행위다.

    “안 돼.”

    대화 도중에 습격했으니까.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셈.

    GGG급 헌터 아몰랑.

    그가 정당한 보복이란 명분으로 얼마나 많은 인간을 죽였는지 모르는 인간이 없다.

    여자, 학생, 갓난아기...

    자식, 부모가 무슨 일을 하는지조차 모르는 가족들까지 엮어서 가차 없이 SSS급 괴물의 먹이로 던져줬다.

    하물며 직접적으로 습격했다면?

    덜덜.

    상상만으로도 몸이 떨렸다. 용서는커녕 인간다운 편안한 죽음조차 허용하지 않으리라.

    ‘과거로 돌아갈 수 있다면...’

    건설업 실무자.

    처음에는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적성이 맞다 보니 금방 일에 적응했고 수익도 만족스러웠다.

    그러나 천성(天性)이 어디 갈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더 좋은 적성을 가진 것 같은 인간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했다.

    서걱!

    “아아악!”

    과거를 회상하며 꾸벅꾸벅 졸던 박효만의 발목이 깔끔히 절단됐다.

    대구르르.

    처절한 절규와 함께 흙바닥을 구른 그는 손바닥으로 땅을 짚고-

    “.......”

    이대로 눕고 싶다.

    절단된 발은 그 짧은 사이에 벌써 복구됐기에 일어나서 달리는 건 문제가 안 됐지만, 그의 의지가 육체를 따라가질 못했다.

    털썩.

    절대로 붙잡히면 안 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욕구에 굴복했다.

    ‘나는 또...’

    소설의 주인공처럼 남 부럽지 않은 SSS급 헌터가 되고 싶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뤘을 때, 그처럼 더 잘난 인간을 질투하는 SSS급 헌터들의 야합으로 다시 추락!

    “젠장...”

    푹!

    박효만은 허리가 절단되는 고통을 무시하고 깊은 잠에 빠졌다.

    * * *

    시체처럼 잠든 박효만은 나의 지시로 수송되어 지하실에 감금됐다.

    무엇이든 절단하는 오른손.

    무기처럼 압류할 수도 없어서 굉장히 성가셨지만, 이 세계에는 초능력 범죄자들을 효과적으로 포박하는 기술과 지식이 상당했다.

    “오른손이 문제라면 오른손을 제거하면 됩니다.”

    “잘라도 재생되잖아?”

    “간단한 수술로 해결됩니다. 나무가 다시 자랄 수 없도록 흙 위에 콘크리트를 매설하는 방식이죠.”

    “...기가 막히네.”

    박효만은 자신의 몸에 무슨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 채 꿈나라를 여행 중이었다.

    꿈속에서 또 꿈이라?

    무슨 꿈인지는 모르지만, 매우 행복한 표정이었다.

    ‘신기하네.’

    평범한 인간은 절대 못 버틸 한계까지 그를 몰아붙였다.

    이 정도로 고통받으면 현실이 그리워질 법도 한데?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주인공으로 잘 살다가 인생이 꼬이며 쫄딱 망했던 환자 김은정이 그랬다.

    (이상하긴 하군.)

    그렇죠?

    (어쩌면 이미 늦었을 수도 있지.)

    “......”

    선배의 추측이 맞을 확률이 점점 높아졌다.

    박효만은 검귀의 손을 가졌으니까. 온몸이 변한 건 아니지만, 일부가 검귀로 변한 것도 사실.

    ‘환자가 이미 죽었다면?’

    남해수는 죽자마자 완벽하게 검귀로 변하며 부활했다. 하지만 모든 환자의 죽음이 똑같으란 법은 없잖은가?

    천천히 죽어갈 수도, 천천히 변하지 말란 법도 없다.

    (후배야. 더 볼 것 없으면 이 병신을 죽이고 꿈을 끝내.)

    “흠...”

    (뭘 망설이지? 이번에는 네 인간성을 시험하는 게 아니니 걱정하지 마라. 원한다면 비밀을 보장해주지.)

    “...그가 깨어나면 알려줘요. 억지로 깨우진 말고.”

    “네. 아몰랑 님.”

    선배의 제안대로 이 세계를 당장 끝내고 싶다. 하지만 오랜만에 ‘무당’으로서 직감이 속삭였다.

    ‘아직이야.’

    내가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찾아야 했다.

    * * *

    무려 5일 만에 눈을 뜬 박효만은 허탈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포장을 꼼꼼하게 잘했네.”

    수세식 변기처럼 생긴 강철 의자에 앉히고 팔다리를 단단히 결합했다.

    묶는 게 아닌 진짜로 결합!

    박효만의 육체는 의자의 쿠션 역할이랄까? 혐오감 조성을 막기 위해 새하얀 천으로 아래를 가리고 있지만, 인권은 찾아볼 수 없었다.

    “고문하러 왔습니까?”

    “내가 아는 어떤 고문 전문가는 5살에 저지른 잘못까지 쥐어짠 후에 대화를 시작하지만, 나는 정신이 멀쩡한 상태의 인간이랑 대화하고 싶어서.”

    “...아몰랑 님. 대화에 협조할 테니 용서해주십시오.”

    굉장히 저자세로 나오는 박효만.

    하지만 본인이 저지른 죄를 잘 알기에 큰 기대는 안 하는 듯했다.

    “대화에 협조하면 용서받을 방법을 가르쳐주지.”

    “정말입니까?!”

    “어쩌면 짓궂은 말장난, 희망 고문일 수도 있지.”

    “그런...!”

    “어떻게 할래?”

    “...물어보십시오.”

    선택권이 없는 박효만은 체념한 말투로 대답할 준비를 했다.

    “마녀의 말을 의심하지 않은 이유가 뭐지?”

    “믿었던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SSS급 괴물의 뱃속에 갇힌 저를 구해줬기 때문입니다.”

    “자선사업이라서 믿었다?”

    “...바보 같게 들리겠지만, 정말입니다. 그만큼 절박했습니다.”

    “그랬겠지. SS급 미녀들의 엉덩이를 두드리다가 갑자기 SSS급 괴물의 간식으로 전락했으니.”

    “......”

    박효만은 대꾸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였다.

    “다음 질문.”

    “네.”

    “무엇이든 절단하는 오른손. 마녀에게 선물 받은 게 확실해?”

    “네?”

    “선물 받았다며.”

    “그렇습니다.”

    “어떤 식으로 받았어? 포장지로 예쁘게 싸서 줬나?”

    “아닙니다.”

    “그러면?”

    이건 굉장히 중요한 문제였다. 나에게도, 그에게도.

    “그녀가 강력한 힘을 준다고 말하면서 제 오른손을 만졌습니다.”

    “...그게 끝?”

    “네. 그때부터 오른손을 칼처럼 바꿀 수 있었습니다.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의 단단한 내장과 가죽도 이것 덕분에 빠져나올 수...”

    “당했네.”

    “예?”

    “너, 마녀에게 사기당했어.”

    그리고 이 모든 전개가 그녀가 나를 위해 준비한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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