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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5화 (146/232)
  • 145화

    ‘이건... 고맙다고 해야겠는걸?’

    이 세계의 인간들이 나를 괴물로 만들지 않았다면, 박효만의 기습을 절대 막지 못했을 테니까!

    무엇이든 베어내는 검귀의 손.

    터무니없이 빠른 가속 초능력.

    그리고 방심!

    나를 암살하기 가장 좋은 완벽한 조합이었다. 검귀라면 SSS급 괴물 인피니티 블레이드도 간단히 절단할 것이고, 가속 초능력은 ‘나의 세계’가 통하지 않으며, 환자는 내가 구해야 할 대상이기에.

    “흡...!”

    빠르긴 했지만, 똑같은 S급 초능력자인 나틸리아의 기습도 막아낸 내가 반응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으니!

    왼팔을 들어서 머리를 방어했다.

    “흥!”

    이런 내가 가소롭다는 듯이 박효만은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자신만만한 태도.

    내가 어떤 방어 수단을 쓰더라도 두부처럼 썰어버릴 수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자신감이리라.

    그것이 검귀의 손!

    하지만 자신만만한 건 나 또한 마찬가지다.

    푹!

    “아?”

    박효만의 오른팔은 내 왼팔을 감싼 옷과 팔등을 절반쯤 절단하며 파고들다가 멈췄다.

    푸르륵.

    절단면에서 피가 흘러나왔지만, 내 목숨을 빼앗기에는 역부족이었다.

    내 혈육(血肉)으로 만들어진 옷은 ‘매우 튼튼하다.’라는 설정도 있지만, 검귀를 상대할 때를 대비해서 현실적으로도 두꺼운 편.

    “놀랐지?”

    서걱!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박효만의 어깨를 베어내며 오른팔을 분리했다.

    “아아아악?!”

    고통에 익숙하지 않은 남자가 비명을 지르며 뒷걸음치더니, 망설임 없이 탈출을 시도했다.

    쨍그랑!

    그는 가속 초능력으로 벽을 평지처럼 밟으며, 여자들이 빠져나갈 수 없도록 설계된 높이의 창문을 간단히 부수고 뛰쳐나갔다.

    힘이 좋은 걸까?

    창문에 설치된 쇳창살이 엿가락처럼 휘어졌다.

    “...판단이 빠르네. 이것도 가속 초능력 덕분이려나.”

    깜빡?

    눈깔 촉수가 나를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쳐다봤다.

    “괜찮아. 살짝 긁혔을 뿐이야.”

    뚝뚝...

    말로는 괜찮다고 했지만, 출혈이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검귀랑 똑같은걸?’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서 당해본 결과, 검귀에게 당한 상처는 ‘나의 세계’에 간섭할 수 있어서 재생 속도를 눈에 띄게 늦췄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검귀의 손도 ‘나의 세계’에 간섭받아서 ‘무엇이든 벨 수 있다.’라는 설정이 상쇄. 잃는 만큼 얻는다고 할까?

    조건은 대등하다고 볼 수 있다.

    (아몰랑 님. 용무 중에 정말 죄송하지만, 조금 전에 창문 깨지는 소리가 들려서요. 괜찮으신가요?)

    “흠. 전혀. 회복 초능력자 말고 평범한 의사를 불러주세요. 초능력은 저에게 안 통하니까요.”

    (많이 다치셨나요?!)

    나는 이 세계의 최강자. 다른 헌터들이랑 비교 자체가 안 될 만큼 가히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건 다시 말해, 내가 죽거나 다치면 인류의 전력이 크게 깎인다는 의미.

    보좌관들이 내 건강과 안위에 신경 쓰는 건 당연하다.

    “지혈만 하면 됩니다. 박효만 씨에게 현상금을 걸고 수배해주십시오. 죄목은 살인미수입니다.”

    (네! 그리고 아몰랑 님.)

    “말하세요.”

    (죄목을 추가해도 될까요?)

    “뭡니까?”

    (성범죄에 해당하는 모든 것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아요.)

    헌터.

    아무리 잘못을 저질러도 대처할 사람이 없기에 웬만한 죄는 묵인 혹은 사냥 성과로 상쇄할 수 있게 해준다.

    하지만 박효만은?

    나를 공격한 시점에 ‘용서’라는 선택지가 사라졌다. 그렇기에 거침없이 죄목을 추가하는 것이리라.

    “뜻대로 하십시오.”

    (감사합니다!)

    “그를 돕거나 숨겨주는 사람은 이유 불문하고 가족까지 사형. 몰랐다는 변명이 안 통한다는 점까지 확실히 명시해서 바로 공지하십시오.”

    (네! 아몰랑 님!)

    뚝.

    통신을 끊은 후, 나는 소파에 편안히 몸을 기대며 정신을 집중했다.

    ‘엄청난 재생력인걸?’

    인피니티 블레이드에 잘린 오른팔을 벌써 회복한 박효만이 아무도 없는 골목길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저것이 부활 초능력 효과.

    포위망을 짜도 순식간에 빠져나갈 수 있는 가속 초능력까지 곁들여진 그를 붙잡는 건 매우 어려우리라.

    ‘후욱, 후욱... 안 쫓아오나?’

    ‘젠장! 이럴 리 없는데!’

    ‘내 계획이 완전히 꼬였어.’

    박효만은 마녀에게 받은 선물이 나에게 통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크게 당황한 듯했다.

    기습으로 나를 죽이고 다시 최강의 SSS급 헌터로 급부상!

    심각한 살인죄도 ‘필요’에 의해 무마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렸으리라. 나를 잃은 인류는 박효만이라도 써먹어야 할 만큼 전력 공백이 클 테니까.

    하지만 실패했다.

    “필요한 정보는 다 얻었고...”

    내가 박효만의 꿈에 들어온 이유는 마녀 라누벨라의 계획을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 목적은 달성.

    아직 말하지 않은 정보가 더 있을 수도 있지만, 마녀에게 잘못된 정보를 주입받은 그에게 기대하지 않는다.

    ‘나를 죽이면 수명이 늘어? 허! 진짜 어이가 없네.’

    그 반대다!

    내가 만약에 라누벨 환자의 손에 죽었다면?

    현실로 돌아가자마자 서혜주 부원장님에게 가망 없다고 통보, 입원비를 내줄 사람이 없는 박효만은 곧바로 안락사 처리될 것이다.

    깜빡~

    내 오른팔에 감겨 있는 눈깔 촉수가 왼팔의 상처를 빤히 쳐다봤다.

    “흠. 괘씸한 녀석을 조금 놀래켜줄까?”

    깜빡!

    이 도시는 나의 인지력 안에 있다.

    수많은 시민 중에 누가 박효만인지 모를 때는 번거롭게 찾아다녔지만, 콕 찍어서 ‘특정’한 현재는?

    박효만은 검은색 개미 무리에 섞인 흰개미나 다름없다.

    ‘헉! 젠장!’

    발밑에서 기습적으로 솟구친 칼날 촉수에 식겁한 박효만.

    가속 초능력으로 피해낸 그는 오른팔로 죽순처럼 솟아난 칼날을 절단하며 장소를 옮겼다.

    “호오~”

    박효만은 처음 발견될 당시에도 몸이 상당히 단련되어 있었다.

    그게 건설현장을 전전하며 자연스럽게 생긴 근육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그의 움직임은 검술을 전문적으로 배운 검객(劍客)의 것이었다.

    (헛소리하지 마라. 너랑 어깨를 나란히 하면 다 검객이냐?)

    “어흠!”

    계셨어요?

    (처음부터 쭉 있었지. 답답한 네가 어떻게 일을 처리하는지 보려고 가만히 있었을 뿐.)

    아하!

    (그런데 네가 검술을 품평하는 헛소리는 도저히 못 참겠더군. 기습? 그 새끼는 그전부터 오른팔로 너를 찌를 각도를 잡고 있었어. 너만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지. 그리고 왼팔로 왜 막냐? 두 다리는 장식품이냐? 죽을 때까지 앉아있을 거면 휠체어를 타라.)

    “......”

    또 시작된 잔소리에 내 정신력이 조금씩 깎여나가는 기분이다.

    “아몰랑 님!”

    “어서 지혈을...!”

    위층에서 내려온 보좌관과 수행원들이 내 부상에 호들갑 떨었다.

    “다치셨네요.”

    나틸리아만 차분했다.

    “왜? 내가 다친 게 신기해?”

    “SS급 괴물을 상대할 때도 안 다치셨으니까요. 방사능과 생화학물질로 오염된 대지 위에서도 태연했고. 들은 얘기로는 SSS급을 상대로도 상처 하나 없이 멀쩡하셨다면서요?”

    “하핫! 나도 다칠 때는 다쳐.”

    미사일 폭격을 맞은 직후의 내 모습을 보지 못해서 하는 소리다.

    부상이나 고통의 정도로 따지면 그때랑 비교 자체가 불가!

    지금은 회복이 매우 더딘 생채기에 지나지 않는다.

    “아몰랑 님. 팔을...”

    “아, 고마워.”

    어딘가에서 붕대를 가져온 보좌관이 내 앞에 무릎 꿇더니, 왼팔의 상처 부위를 정성스럽게 감아줬다.

    (어여쁜 보좌관의 녹색 미니스커트가 말려 올라가면서 훤히 드러난 새하얀 허벅지 사이를 빤히 쳐다보는 중이라고 전달하마.)

    “헉?!”

    “죄, 죄송합니다. 아프셨나요?”

    “아니. 깜빡한 일이 떠올라서. 계속 해줘.”

    나는 의사가 올 때까지 눈을 감고 얌전히 기다렸다.

    * * *

    (SSS급 헌터 박효만 씨는 SSS급 괴물 에이션트 블랙 앨리펀트 토벌 도중에 사망했습니다.)

    (하지만 다중능력자였던 그는 모두에게 비밀로 했던 D급 초능력 부활로 생환했습니다.)

    (그러나 이 중요한 사실을 감추고 잠적한 그는 헌터의 의무를 내팽개채고 S급 초능력 가속을 활용해서 절도만으로 생계를 유지했습니다.)

    (그는 수많은 여성을 납치, 감금, 폭행, 협박을 자행했으며, GGG급 헌터 아몰랑 님을 공격했습니다.)

    (전문의는 아몰랑 님이 병원으로 이송되어 치료받는 중이며, 출혈이 심했으나 매우 빠른 속도로 회복세에 접어들었다고 밝혔습니다.)

    (박효만 씨는 금일 18시부터 현상 수배범 명단에 올라갑니다. 생포했을 시에 포상금이 2배...)

    삑!

    텔레비전을 껐다.

    “멋지군.”

    이 헌터물 세계에 존재하는 모든 대중매체를 활용해서 전파한 박효만의 범행과 현상 수배.

    가속 초능력으로 미꾸라지처럼 잘 빠져나갈 순 있지만, 어디에서도 발 뻗고 마음 편히 쉬지 못하는 환경까지 해결되진 않는다.

    무엇보다도,

    ‘망할 새끼가 벌써...!’

    ‘해외로 튈까? 하지만 어떻게?’

    ‘일단 뭐라도 먹어야 해.’

    나는 제자리에서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않았지만, 박효만이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

    해외로 탈주?

    공간도약 초능력자는 철저하게 관리되고 있어서 불가능. 두 발로 직접 도망치면 따라다니면서 온종일 칼날 촉수로 괴롭혀줄 의향이 있다.

    (변태냐?)

    “하핫!”

    조금 열받은 모양입니다.

    “...아몰랑 님의 표정을 보아하니, 그가 어디에 있는지 이미 아시는 것 같은데요.”

    약속대로 사면받은 나틸리아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나를 관찰했다.

    “너는 아직도 있었어?”

    “아몰랑 님. 이웃에게 너무 쌀쌀맞게 굴지 마세요.”

    “진짜 뻔뻔한걸.”

    “가속 초능력자의 특징입니다. 안 들키고 범죄를 몇 번 저지르다 보면 양심이 무뎌지죠.”

    “그건 모든 가속 초능력자들을 비하하는 지나친 일반화 같은데.”

    “하지만 사실입니다. 초능력이 사람을 만드니까요. 아몰랑 님도 똑같지 않으신가요?”

    “과연...”

    “바로 수긍하시네요?”

    “당연하지. 나도 이 녀석을 만나기 전과 후가 매우 다르니까.”

    깜빡~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이 녀석을 만나기 전의 나는 사고만 치고 해결은 못 하는, 선배의 표현을 빌리자면 답답한 애송이였다.

    그러나 현재는 어떤가?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사고와 수습을 빠르게 병행하고 있다. 나조차 그 끝이 안 보이는 자신감은 덤.

    사람이 달라졌다.

    (이 세계가 참 좋지?)

    “......”

    그만 시험하세요. 저는 다리가 예쁘고, 저만 바라보는 여자친구가 있는 현실이 무조건 더 좋습니다.

    (호오? 아주 조금 어른에 다가갔군.)

    “그를 안 잡고 풀어놓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괴롭힐 목적이라면 감금해서 고문하는 편이 나을 겁니다. 부활 초능력 덕분에 엽기적인 고문을 해도 안 죽을 테니까요.”

    “고문이라... 나틸리아는 사람을 고문해본 적 있어?”

    “없습니다.”

    “그래서 쉽게 말할 수 있는 거야. 고문은 죽이는 것보다 훨씬 많은 용기와 광기가 필요해.”

    “...아몰랑 님은 기억상실로 알고 있는데요. 잘 아시네요.”

    “아! 돌아왔어.”

    “......”

    내가 불리할 때는 기억상실이고, 유리할 때는 기억이 돌아온다는 편리한 설정이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 미사일 폭격을 받고 방사능을 좀 먹었더니 기억이 조금씩 돌아오더라고.”

    “원시적인 충격요법이네요.”

    “하핫! 그러게.”

    “하아...”

    나에게 진실을 따질 수 없음을 잘 아는 그녀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나틸리아.”

    “네.”

    “고문 중에 가장 고통스러운 고문이 뭔 줄 알아?”

    “물고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단시간에 사람의 혼을 빼놓는 데는 물고문이 최고지. 하지만 절대 못 견디는 고문은 따로 있어.”

    “뭔데요?”

    이건 고문의 황금기라고 불린 중세시대를 배경으로 한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배운 것이다.

    새로운 황제에게 불복한 반란군을 꼬치구이로 만든 심문관이 말하길,

    “수면 방해.”

    “아...”

    “고문은 이미 시작됐어.”

    꿈속에서 잠을 못 자도 사람이 미칠 수 있을까?

    이번 기회에 확인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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