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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4화 (145/232)
  • 144화

    ‘빠르긴 엄청 빠르네!’

    그 탓에 ‘가속 초능력 좀도둑’을 현장에서 붙잡는 건 실패했지만, 인지력으로 그의 동선을 파악하고 있기에 상관없었다.

    느긋한 발걸음.

    혼란스러운 현장을 빠져나온 좀도둑은 금방 평범한 시민 행세를 했다.

    그러나,

    “S급 초능력자가 살기에는 너무 허름한 곳이네요. 특수제작한 자전거로 배달업만 해도 여기보다는 나은 곳에서 지낼 수 있을 텐데...”

    나를 따라온 나틸리아가 황당하다는 어조로 말했다.

    “그러게.”

    “믿기지 않아요. 정상에 올라서 호화롭게 살던 그가 이런 허름한 빈민가에 만족한다는 것이.”

    “...이 좀도둑이 박효만 씨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

    “반반이요.”

    좀도둑은 떳떳하지 못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흉흉한 동네로 들어갔다.

    흉흉하다는 건?

    괴물이 자주 방문하는 위험한 지역이란 뜻이다.

    멀쩡한 건물, 편의시설이 없는 탓에 초능력을 마음껏 쓰길 원하는 헌터들도 외면한 곳. 박효만 씨랑 어울리지 않긴 했다.

    ‘가보면 알겠지.’

    인생을 포기하고 괴물의 간식이 될 날만 기다리는 빈민들이 골목 좌우에 빼곡했다. 내가 마녀 라누벨라의 뒤를 쫓아서 들어갔던 골목처럼.

    그때랑 너무 비슷한 풍경과 상황이 우연처럼 보이지 않았다.

    유일한 차이라면,

    “...음? 헉!”

    “다, 당신은...!”

    “아몰랑...?”

    현실에서는 ‘올림픽 국가대표’인 나를 아무도 몰랐지만, 이들은 ‘GGG급 헌터 아몰랑’을 바로 알아봤다.

    모르는 게 이상하지.

    내가 이 헌터물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운동선수랑 비교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좀 지나가지.”

    “네! 네!”

    “지나가십시오!”

    바닥에 널브러져 있던 사람들이 벽에 행위예술처럼 바짝 붙었다.

    툭툭.

    그들은 깊게 잠들어서 내가 온 줄도 모르는 동료와 친구들도 깨웠다.

    “하암! 뭐야? 죽을래?”

    “너야말로 죽고 싶어?”

    “이 새끼가 뭔...”

    “여기에 아몰랑이 왔어!”

    “야. 그런 잘난 인간이 요런 시궁창에 올 리가... 헉!”

    후다닥!

    금방 길이 생겼다. 내가 지나가다가 밟지 않도록 쓰레기와 오물을 구석으로 치우는 자도...

    거지들의 왕이 된 기분이다.

    깜빡깜빡~

    내 오른팔에 감긴 눈깔 촉수가 신기하다는 듯이 주위를 구경했다.

    “히익?!”

    “SSS급...”

    “으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도 아는 걸까? SSS급 괴물이랑 눈이 마주친 자들은 겁에 질려 숨도 제대로 못 쉬었다.

    깜빡깜빡!

    “헙!”

    “읍!”

    뱀 앞의 개구리처럼 꼼짝 못 하는 인간들의 반응이 재미있는지, 눈깔 촉수는 길을 가는 내내 부지런히 두리번거렸다.

    “괜한 참견이겠지만, 이들에게 길을 안 물어봐도 되나요?”

    “필요 없어. 도시의 모든 것을 파악하고 있어서.”

    “...모든 것?”

    “예를 들어, 네가 도망친다고 판단되면 언제든지 죽일 수 있어. 내가 눈치채기 전에 이 도시를 빠져나갈 수 있다면 얘기가 다르지만.”

    “......”

    나틸리아는 닭살 돋은 팔뚝을 문지르며 말을 아꼈다.

    뚝.

    나는 묘하게 정갈한 3층짜리 건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재미있네.”

    건물 출입구에는 문지기로 짐작되는 건장한 사내가 벽에 몸을 기댄 채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내부는?

    “...아몰랑 님?”

    “아무래도 정답인 것 같네. 대낮부터 침대 위에서 가속 초능력을 쓰는 남자가 또 있지 않다면.”

    뚜벅.

    내 발소리와 인기척을 감지한 문지기가 눈을 떴다.

    “돌아가. 여긴 아무나... 어?”

    “아무나?”

    “아, 아무것도 아니란 뜻이었습니다!”

    사사삭-

    다른 자들이랑 마찬가지로 단번에 나를 알아본 사내는 겁에 질린 얼굴로 잽싸게 비켜섰다.

    “문은 잠겨 있나?”

    “초인종을 누르면 됩니다!”

    “그래?”

    흉흉한 주위를 둘러보면 초인종보다 문을 부수는 지렛대가 더 어울릴 것 같지만, 이곳만 진흙 속의 연꽃처럼 잘 갖춰져 있었다.

    딩동♪

    싸우러 찾아온 게 아니기에 예의를 지키기로 했다.

    “......”

    “......”

    “...바쁜 모양입니다.”

    문지기가 내 눈치를 보면서 조심스럽게 말했다.

    “맞아. 바쁘겠지. 여자 셋을 동시에 상대하려면.”

    “그, 그렇죠! 하, 하하...”

    내 표정이 썩어갈수록 문지기의 얼굴색도 시커멓게 변했다.

    “너는 문지기인가?”

    “네!”

    “잠겨있는 현관문도 못 따면서 왜 지키는 거지?”

    “아! 저는 마님들이 외출할 때 호위하는 역할입니다! 여긴 젊고 예쁜 여자가 혼자 다니기에는 너무 위험해서...”

    “다른 건?”

    “...마님들이 몰래 도망치지 못하도록 지킵니다.”

    문지기가 내 눈치를 보며 솔직하게 고백했다.

    “그럴 것 같았어.”

    방음이 잘 되어 있어서 일반인은 듣지 못했지만, 인간이기를 포기한 나는 아니다.

    ‘아파요!’

    ‘그, 그만...!’

    ‘꺄아악?!’

    고문실에서나 들릴 법한 여자들의 비명과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초인종은 완벽히 무시!

    나는 예의를 지킨 온화한 만남을 원했지만, 흥분한 집주인은 손님을 맞이할 마음이 없는 듯했다.

    “부술까요?”

    “내가 하지.”

    현관문의 손잡이를 잡고 힘으로 가볍게 밀었다.

    끼이익-

    철판으로 된 문이 휘면서 제구실을 못하게 됐다.

    “...아몰랑 님도 다중능력자였나요?”

    “아니. 이건 순수한 힘.”

    “......”

    나틸리아는 물론이고, 보좌하기 위해 뒤따라온 녹색 요정들도 불신의 눈빛을 보냈지만, 자세히 설명해줄 필요성을 못 느꼈다.

    휙~

    현관문을 활짝 열며 외쳤다.

    “박효만 씨! 거실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 * *

    건설업계에서 일하며 다양한 인테리어를 본 덕분일까? 박효만 씨의 집은 잘 꾸며져 있었다.

    부엌, 화장실, 거실, 옷방...

    호화롭진 않지만, 필요한 것들은 전부 갖춰진 아늑한 집이었다.

    ‘멋진데?’

    내가 쭉 꿈꿔온 ‘내 집’이 완성된다면 딱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최근에는 돈이 좀 생기면서 이것보다 사치를 부리고 싶어졌지만.

    “나틸리아?”

    “정말로 살아있었군요.”

    허겁지겁 옷을 입고 거실로 나온 남자는 나틸리아를 보자마자 얼굴을 일그러트렸다.

    “어째서 날 배신했지?!”

    “그 이야기는 나중에 따로 하죠. 지금은 이쪽이 우선입니다.”

    불리해진 나틸리아가 나를 방패로 삼았다.

    “...혼자서 SSS급 괴물을 토벌한 최강의 헌터님께서 저에게 무슨 용무입니까? 동료 제안이라면 정중히 거절하겠습니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그도 굉장히 조심스러운 말투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박효만 씨.”

    “여긴 어떻게 아셨습니까?”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깜빡~

    내가 소개해주자 눈깔 촉수도 반갑게 인사했다.

    “소설 <나만 SSS급 헌터>를 읽으셨다면 잘 아실 겁니다. 이 녀석을 잘 다루려면 인지력이-”

    “자, 잠깐!”

    “......”

    “어떻게 그 소설을 아는 겁니까?! 당신은 대체 누구-”

    “박효만 씨. 말하는 중입니다.”

    “...실례했습니다.”

    박효만 씨가 발작하듯 흥분한 이유는 충분히 이해하고도 남는다. 내가 지금까지 상대한 라누벨 환자 대부분이 그랬으니까. 그들은 금기어에 민감하게 반응했다.

    본명, 소설 제목, 꿈, 가족 이름...

    그리고 나, 무당 강문수.

    현실에 적응하지 못한 환자들은 맞춤복처럼 완벽한 꿈의 세계를 부정하는 모든 증거물을 싫어했다.

    일단,

    “2층과 3층에 몸이 안 좋은 여성들이 누워있을 겁니다. 우리의 대화가 끝날 때까지 그들을 돌보며 대기하세요.”

    “네.”

    “...네.”

    내 지시에 모두가 거실을 떠나서 위층으로 올라갔다. 진짜 떠나기 싫다는 얼굴로!

    드디어 단 둘.

    환자와 무당.

    내가 가장 원하는 환경이 마침내 만들어졌다.

    “박효만 씨. 저랑 약속부터 하죠.”

    “무슨 약속입니까?”

    “질문은 번갈아 가면서 하나씩. 대답은 거짓 없이 솔직하게. 대화는 한쪽이 일방적으로 끝내지 말 것. 어겨서 생기는 불이익은 감수하기.”

    “불이익이라면...”

    “목숨.”

    나는 이 헌터물 세계에서 많은 것을 내려놨다.

    양심, 인간성, 인형(人形)...

    그만큼 정나미도 떨어졌기에 더 오래 있고 싶지 않았다.

    “......”

    “하시겠습니까?”

    “...네. 하겠습니다.”

    궁금한 게 많았던 박효만 씨는 하나뿐인 목숨이 걸렸음에도 고민 없이 내 제안에 응했다.

    “제가 제안했으니 질문은 박효만 씨가 먼저 하세요.”

    “음...”

    신중한 얼굴로 내게 할 질문을 고민하는 라누벨 환자.

    검귀가 방해하지만 않으면 이런 접근법도 괜찮은 것 같다.

    “......”

    시간은 좀 걸리지만, 환자가 잔인한 현실을 부정하며 도망쳐서 생기는 시간 소실보다는 낫지 않을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무당입니다.”

    “무당?”

    “아! 대답이 너무 성의 없었군요. 저는 현실에서 온 무당입니다.”

    “현실...?”

    그는 바로 또 질문하려는 듯이 입술을 열었지만, 내가 더 빨랐다.

    “이젠 제 차례입니다.”

    “...네. 하십시오.”

    “시대착오적인 마녀 복장을 한 소녀를 만나셨을 겁니다. 그 여자가 무슨 말을 했습니까?”

    내가 금전적인 이득을 포기하고 이 환자의 꿈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은 결정적인 이유.

    마녀 라누벨라 13세.

    그녀가 이 환자를 만나기 위해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이유를 알기 위해서다.

    “저는 SSS급 헌터들의 배신으로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에 먹혔습니다. 그리고 위액에 온몸이 녹아내리는 끔찍한 고통을 견디며 누군가 구해주길 기다렸습니다.”

    “흠.”

    나는 SSS급 헌터들이 잘못 보고 착각했을 가능성도 열어뒀었는데, 그건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때, 당신이 말한 마녀 복장의 여인이 제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도와준다고 말했습니다.”

    “...끝?”

    “제 차례입니다.”

    “......”

    “당신도 직업 빼고는 아무것도 설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이 정도면 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질문하세요.”

    내가 먼저 제안했지만, 다시는 이 방법을 쓰지 않기로 했다.

    * * *

    처음에는 빈틈없이 내 질문에만 대답했던 라누벨 환자 박효만.

    하지만 동료들의 배신으로 고통받은 시간이 억울했던 그는 불필요한 넋두리를 섞기 시작했다.

    “인류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대가가 배신? 그때부터 저는 이기적으로 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건...”

    안 물어봤습니다만?

    “아름답고 능력 있는 아내? 처음에는 모두가 부러워해서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잠깐이었어요. 자존심 강한 그녀들은 저만 보면 잔소리하고 각방을 강제했습니다!”

    “......”

    이건 법정에 가서 양측의 주장을 비교해봐야 할 문제인 것 같다.

    “어... 질문이 뭐였죠?”

    “마녀가 당신에게 준 초능력이 뭔지를 물었습니다.”

    “아! 맞아. 그랬죠. 4번째 초능력. 저는 그 힘으로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의 몸을 가르고 탈출했습니다.”

    “갈랐다?”

    “네. 공기를 베듯이 정말 손쉽게 갈랐습니다.”

    “......”

    그의 설명을 듣자마자 자연스럽게 검귀가 떠올랐다.

    “이제 제 차례...”

    “박효만 씨. 어떻게 베었는지도 설명해줘야죠. 몸을 가르고 탈출했다는 건 결과입니다. 저는 위기에 빠진 당신이 마녀에게 받은 4번째 초능력이 무엇이냐고 질문했습니다.”

    “이겁니다.”

    스르륵-

    마주 보고 앉은 박효만 씨의 오른손이 칼날처럼 변했다.

    “......”

    그건 검귀의 팔이었다.

    “너무 강력해서 사용할 때마다 수명이 줄어든다는 경고와 함께.”

    “...그런데 이렇게 보여줘도 되는 겁니까?”

    “제 차례입니다.”

    “......”

    다시는 이 방법을 쓰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마녀는 저에게 오래 살고 싶으면 숨으라고 충고했습니다. 우리를 노리는 자가 있다면서.”

    “허!”

    이 마녀가...?

    배신한 SSS급 헌터들이 싹 죽었음에도 박효만 씨가 계속 몸을 숨긴 이유가 있었다.

    “당신이 그 사람입니까?”

    “아마도 맞을 겁니다.”

    “그렇군요. 이젠 당신이 또 질문할 차례입니다.”

    “마녀가 충고한 다음에 뭐라고 했습니까?”

    “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을 가르쳐줬습니다.”

    “그건 거짓말입니다. 당신을 이 거짓된 세계에 오래 붙잡아줄 뿐.”

    “이 세계가 가짜라는 건 처음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음?”

    이건 무슨 소리?

    “현실로 돌아가면 도박 빚에 시달릴 뿐입니다. 반면에 여기선 하루하루가 즐겁습니다.”

    “가짜입니다.”

    “좀 더 들어보세요.”

    “......”

    “현실에선 눈도 마주치기 힘든 미녀들을 거느릴 수 있습니다. 위층에 몇 명인 줄 아세요?”

    “9명. 지하에도 4명이 십자가 같은 것에 묶여있고.”

    “와! 대단하네요. 소설 <나만 SSS급 헌터>의 주인공보다 훨씬.”

    “......”

    칭찬을 들을 기분이 아니었다.

    “마녀의 충고대로 숨어지낸 초창기에는 따분했지만, 괴물을 상대하는 것보다 이쪽이 훨씬 즐겁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범죄입니다.”

    “어차피 가짜가 아닙니까? 죄의식을 가질 필요가 없죠. 그래서 당신도 거리낌 없이 SSS급 괴물의 먹이로 사람들을 던진 것 아닙니까?”

    “음...”

    정론이었다.

    “약속대로 질문에 답해드리죠. 제 수명을 늘리는 방법은...”

    “......”

    나는 변변찮은 이유로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이 정말 싫다.

    “추적자를 죽이는 겁니다.”

    휙~

    칼로 변한 박효만 씨의 오른팔이 나를 수직으로 내리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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