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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3화 (144/232)

143화

“저에게 뭘 원하시나요?”

영화, 드라마 등에서는 여주인공이 외모 관리를 안 해도 항상 아름다운 자태를 유지한다.

하지만 현실은?

감옥에 며칠만 갇혀도 사람은 몰라볼 정도로 피폐해진다. 최악의 위생과 스트레스성 탈모, 햇빛을 오랫동안 못 받으면 비타민D 부족으로 심각한 결핍증상에 시달리게 된다.

“고생이 심했던 모양이네.”

“절 비웃으려고 부르신 건가요?”

“필요해서 불렀다는 얘기를 듣지 못한 건가.”

“어떤 SSS급 헌터처럼 젊은 여자들을 납치해서 고문하는 취향에 눈을 뜨셨을 수도 있죠.”

“...미친놈이네.”

“미친년이었습니다. 자기보다 젊고 예쁜 일반인을 싫어했죠.”

“그렇군.”

풍요의 여신 같았던 나틸리아는 고향을 잃고 전쟁터에서 10년쯤 떠돌아다닌 과부 같은 몰골로 변했다.

그만큼 고생했다는 반증.

그래도 팔다리가 멀쩡히 붙어 있잖은가? 회복 초능력을 받고 안정을 취하면 예전 미모를 회복할 것이다. 시간은 좀 걸리겠지만.

“저에게 뭘 원하시나요?”

“도움이 필요해.”

“......”

“아! 설명이 너무 부족했군.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를 토벌했다는 얘기는 들었나?”

“오면서 들었습니다. 토벌에 사용하신 전략을 듣고 허탈했습니다.”

“맞아. 숙청을 겸한 숭고한 희생이 있었지.”

“발언에 거침없으시네요.”

“사실이니까.”

남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당신은 복수할 자격이 있어요. 하지만 저에게도 개인적인 감정이 있습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한지는 모르겠지만, 진솔하고 적극적인 협조는 기대하지 마세요.”

“박효만 씨를 찾고 싶어.”

“그분은 죽었습니다.”

“네 의견은 중요하지 않아. 여러 근거를 통해 그가 멀쩡히 살아있다고 결론을 이미 내렸으니까.”

“......”

주름이 생긴 이마를 찡그리며 나틸리아가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이것 하나는 약속하지. 네 정보가 도움이 되면 암살미수는 없었던 것으로 해줄게. 그리고 박효만 씨를 찾으면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고. 어때?”

“...어째서 박효만 씨를 신경 쓰는지 궁금하지만, 안 묻겠습니다. 제가 거절하면 무인도로 다시 보내거나 괴물의 미끼로 쓰겠죠. 하겠습니다.”

“좋은 판단이야.”

거절하면 정말로 그럴 생각이었다. 세상에 가속 초능력자가 그녀뿐인 건 아니니까.

굳이 이 배신자를 선택한 이유는 강제로 ‘야생’에서 생활해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코끼리 괴물의 똥으로 탈출한 박효만 씨처럼!

“정보가 필요해요.”

“그건 내가 하고 싶은 말인데. 가속 초능력 덕분에 괴물의 위협에서 안전했던 너의 생활이.”

“...짐승이었죠.”

“편리한 문명의 혜택을 못 누린다는 의미?”

“아뇨. 먹을 것을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가득했습니다. 식욕의 지배를 받았죠. 하루라도 먹을 것을 고민하지 않은 적이 없었습니다. 저장도 못 해요. 금방 상하니까요. 또-”

“알겠어, 알겠어! 그만! 충분히 알아들었어.”

“......”

숨도 안 쉬고 설명하던 나틸리아가 또 불편한 얼굴로 변했다.

“진짜 도움이 됐어.”

“그런가요.”

나는 조용히 대기 중인 보좌관들을 돌아보며 지시했다.

“도둑을 찾지 못한 음식물 도난사건들을 조사해줘. 얼굴이 잘 알려진 박효만 씨가 대범하게 도시 중심가를 돌아다니진 않았겠지. 초능력 사용이 자유로운 외곽 위주로 찾아봐.”

“네.”

“네. 아몰랑 님.”

생필품은 한 번 훔치면 오래 쓸 수 있다. 하지만 먹는 것은 괴물이 아닌 이상, 꾸준히 소모된다.

그가 완벽하게 얼굴을 고치고 당당하게 도시를 활보하는 게 아니라면... 아! 이것도 가능하겠군.

“아니길 바라지만, 공간도약 초능력자들도 심문해줘. 박효만 씨가 다른 지역으로 이동했을 가능성도 있으니.”

“바로 조사할게요.”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거짓말을 탐지하는 초능력자들이 이때는 참 유용하다.

“나틸리아.”

다시 나틸리아를 돌아봤다.

“...끝났나요?”

“설마. 이 정도로 GGG급 헌터 살인미수가 무마될 리 없잖아?”

“박효만 님이 살아있다고 확신한다는 건 이해했어요. 하지만 그 근거를 말씀해주시지 않으면 제대로 도와드리기 어렵습니다.”

“하긴...”

지당한 요구다.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좋아. 다중능력자인 박효만 씨는 3번째 초능력을 숨기고 있었어.”

“3번째...?”

“C급 초능력 부활.”

“......”

이게 그토록 충격적인 걸까? 나틸리아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왜?”

“정말 외람된 질문이지만, 확실한 정보인가요?”

“밤에 흥분한 남편을 죽여본 SS급 부인께서 확인해주셨지.”

“아...”

털썩.

내 앞에서 쭉 의연한 태도를 보이던 나틸리아가 다리의 힘이 풀린 듯 비틀거리다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왜?”

조금 놀랐다. 내가 모르는 비밀이 더 있다고?

“박효만 씨는 가속 초능력자입니다.”

“그게 왜?”

“매우 빠른 자극을 추구하죠. 침대 위에서 초능력을 안 쓰면 문제없지만, 일단 사용하면 평범한 여자에게 만족하지 못하게 돼요.”

“흐음? 아!”

경험은 없지만, 머릿속에 음란마귀가 득실거리는 나는 이해하고 말았다!

“그건 마네킹이랑 하는 기분이죠. 대화도 똑같습니다. 가속 초능력을 사용하면 다른 사람이랑 대화가 전혀 안 돼요. 상대방의 대답을 기다리다가 지치니까요.”

“...잘 아네.”

“당연하죠. 가속 초능력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사람은 같은 가속 초능력자뿐이니까요.”

“그 말은...?”

“우리는 몇 차례 같이 잤습니다. 침대가 못 버틸 정도로 격하게.”

“아아.”

부인에게 듣긴 했었다. 남편에게 내연녀가 많았다고. 이렇게 가까이에 있었을 줄은 몰랐지만!

“도와드리겠습니다.”

“사랑을 위해?”

“그 반대입니다. 통제가 안 되는 최강의 헌터를 차별할 리 없잖아요? 그도 똑같습니다.”

“아하!”

질투심에 사로잡힌 SSS급 헌터들끼리만 작당한 범죄가 아니었다.

‘또 배웠네.’

이 세계는 라누벨 환자가 읽은 소설을 기반으로 창조됐다.

하지만 하나가 아닌 두 소설을 참고했기에 설정이 뒤죽박죽, 통일성이나 정해진 규칙이 없다.

즉,

‘사람의 사고방식이 자유로운걸?’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나 사극 <궁녀 덕춘이>처럼 주인공을 강제적으로 사랑하도록 설정된 인물이 없다. 그게 아니면 ‘박효만’이란 인물이 원작 소설에 없기 때문이리라.

꿈속의 부하와 아내의 배신으로 죽은 남해수처럼...

“그에 대해 잘 알겠네.”

“...남녀가 같이 자면 서로에 대해 다 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죠?”

“아니면 말고.”

동정인 나의 환상을 깨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 * *

본의는 아니지만, 내 머리에 미사일을 투하한 보답으로 기득권층을 싹 물갈이했다.

그 결과, 이 헌터물 세계에서 내 지시보다 우선시되는 건 없었다.

“아몰랑 님. 보고해도 될까요?”

조사를 시작하고 하루는커녕 1시간도 안 지나서 조사가 마무리됐다.

따져보면 어려울 것 없잖아? 경찰서와 파출소 등에 협조 공문을 돌리고 미해결 도난 사건을 수집하면 끝.

다만,

“빨리 끝났네.”

“사소한 문제로 아몰랑 님을 기다리게 할 순 없으니까요. 최우선으로 처리하게 했습니다.”

“고마워. 결과를 들어볼까?”

“네!”

산타클로스를 돕는 녹색 요정의 보고는 제법 상세하고 유의미했다.

미해결 도난 사건.

내가 간과한 게 있다면, 이 세계에는 과학과 상식으로 판단하기 어려운 다양한 초능력이 존재했다.

“좀... 많은걸?”

“모든 초능력자가 헌터로 정직하게 돈을 버는 건 아니라서...”

“흐음...”

시작부터 막히네?

시간을 멈추는 SSS급 헌터의 대범한 범죄를 봐도 알 수 있지만, 증거를 남기지 않는 초능력자 범죄가 전국적으로 활개치고 있었다.

그때,

“저에게 상세한 사건 자료를 보여주시면 추려보겠습니다.”

협조를 기대하지 말라던 나틸리아가 적극적으로 나섰다.

“아몰랑 님?”

“줘. 똑같은 초능력자니 범죄 심리도 잘 알겠지.”

“네.”

녹색 요정에게 자료를 넘겨받은 나틸리아가 초능력을 발휘했다.

스으윽-

우리는 잠깐이지만, 그 잠깐을 길게 늘려서 쓰는 그녀는 아니었다.

“...피곤하네요.”

안 그래도 상태가 안 좋았던 나틸리아가 더욱 수척해졌다.

가속 초능력의 부작용.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는 만큼 정신력과 체력의 소모도 비례해서 커진 탓이다.

“그래서 결론은?”

“찾았습니다.”

“...정말로?”

“네. 초능력자 범죄가 기승인 건 사실이지만, 가속 초능력은 S급입니다. 도둑질보다 헌터로 활동하는 편이 훨씬 수익성이 좋습니다. 특히, 가속은 사냥에 실패해도 괴물을 따돌리기 쉬워서 위험부담도 적고요.”

“요약하면, 가속 초능력자들은 취업률이 매우 높아서 범죄를 안 저지르는 편이다?”

“짧은 치마를 입은 미녀가 지나가면 속옷을 훔쳐보는 정도죠.”

“그렇군.”

진짜 부러운 초능력이잖아?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에요. 금방 질려서 때려치웁니다. S급 헌터가 감시카메라에 찍혀서 조사받는 굴욕을 감수할 가치도 없고요.”

“과연...”

내 목숨을 노렸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여전히 비호감이지만, 무인도에 버려둔 나틸리아를 데려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

그녀가 손끝으로 지도를 찍었다.

“그 근방인가?”

“네. 이 도둑이 박효만 님이라고 단정할 순 없지만, 먹거리 노점상에서 상습적으로 먹을 것만 훔치고 있어요. 감시카메라가 있긴 하지만, 사람이 밀집하면 손장난을 보기 어렵죠. 하물며 100배속으로 움직인다면.”

“허...”

한때 최강의 SSS급 헌터라고 불렸던 인간이 이래도 되나?

어린아이의 막대사탕을 뺏어 먹는 어른처럼 유치하고 조잡했다.

“바로 가보자고.”

이유는 모르겠지만, 이 좀도둑이 박효만 씨가 아니길 빌었다.

* * *

감기, 천식 등의 이유로 마스크를 착용하는 사람이 종종 있지만, 여기에 모자까지 착용해서 얼굴을 가리는 남성은 드문 편이다.

추가 액세서리로 선글라스까지 끼면 완벽한 범죄자 복장이고!

(동문으로 1명 들어갑니다.)

(서문으로 2명이 지나갔습니다.)

(북문은 아직 없습니다.)

먹거리 노점상이 밀집된 골목길로 진입하는 출입구마다 일반인으로 위장한 요원을 배치했다.

그들의 동선 파악은 기본.

나는 도난사건이 발생하면 바로 반응하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다.

(조용해요.)

(이상 없습니다.)

아무런 일 없는 평화로운 상황 속에서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오늘은 날이 아닌 것 같네요.”

확신했던 나틸리아의 목소리가 겸손해질 때쯤이었다.

‘맛있어요! 먹고 가요!’

‘둘이 먹다가 둘이 죽어도 모릅니다!’

‘잘생긴 총각! 맛이라도 보고 가!’

‘어? 어라?! 어디 갔지?’

‘지금 사면 하나 더!’

군중이 쏟아내는 수많은 잡음 속에서 찾아낸 당황한 목소리.

벌떡.

카페 2층 테라스에서 커피를 홀짝이던 나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아몰랑 님?”

“당장 D지역에 확성기 틀어.”

“네!”

내 지시가 떨어지자마자 범행현장 근처에서 폭음이 들렸다.

콰광!

(크아아아앙!)

건물 옥상의 폭음과 진동은 초능력으로 만든 진짜지만, 끔찍한 괴물의 포효는 녹음.

반응은 빨랐다.

‘괴물이다!’

‘헉!’

‘도망쳐...!’

이 사기극에 휘말린 사람들에게 미안하지만, 양심을 따질 만큼 이 세계에 미련이 없었다.

환자만 찾으면 그만!

나틸리아의 말대로라면, 괴물이랑 갑작스럽게 마주쳤을 때, 가속 초능력자는 가속으로 누구보다 빠르게 위험한 현장을 탈출한다.

“...진짜네.”

있었다.

평범한 사람은 절대 낼 수 없는 속도로 골목을 빠져나가는 인간 남성.

하지만 사람으로 꽉 막힌 길을 지나가지 못할...

“미친!”

“아몰랑 님?”

“알아서 쫓아와!”

팟!

나는 건물의 벽을 평지처럼 밟으며 현장을 떠나는 남자를 추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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