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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2화 (143/232)
  • 142화

    [7장-8절] 재활용을 해보자

    나도 이런 생각을 종종 했었다.

    SSS급 헌터들의 말처럼, 박효만 씨는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에게 잡아 먹혔지만, 그 뒤에 신통한 방법으로 탈출한 게 아닐까?

    자연스러운 추측이었다.

    “아몰랑 님.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의 몸속을 꼼꼼히 수색해봤지만, 생존자는커녕 멀쩡한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습니다.”

    “...수고했어요.”

    “아뇨! 아몰랑 님이야말로 정말 수고하셨습니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능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죄인들을 이용하셨던 거였군요!”

    “뭐...”

    “그것도 모르고, 저는 단순한 악감정으로 죽인다고 오해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오해가 전혀 아니니까. 적의 숫자만 늘릴 의도였다면 굳이 돌격시킬 필요까지는 없었다.

    “달리 지시하실 게 있으신가요?”

    “흠. 수고스럽겠지만, 괴물에게 삼켜진 박효만 씨의 유품이라도 찾고 싶습니다.”

    “아! 노력해보겠습니다!”

    내 지시를 또 오해한 걸까? 녹색 요정들이 흠모의 눈빛을 보냈다.

    “...곤란한걸.”

    라누벨 환자, 박효만 씨는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걸까?

    이 세계는 그의 꿈이다. 그를 위한 무대이며, 그가 주인공인 이야기다. 그런데 팥소 없는 찐빵처럼 가장 중요한 인물이 빠져버렸네?

    혼란스럽다.

    ‘어딘가에 숨어있는 것 같은데...’

    괴물 코끼리의 똥으로 탈출한 박효만 씨를 비밀리에 보호하는 나라가 있을 가능성. SSS급 헌터들에게 배신당한 그는 공개적인 활동에 어려움이 많으니까. 현재로선 이 추측이 가장 신빙성 있다.

    “젠장.”

    빠르게 끝내고 꿈에서 탈출한다는 계획이 어그러졌다. 이번 작전은 뒤를 전혀 고려하지 않고 강행했으니까.

    사회, 경제, 정치...

    나를 적대한 기득권층을 싹 몰살시켰기에 인류의 모든 나라와 도시가 혼란스러운 상황.

    권력을 원하는 자들은 시냇물의 돌멩이처럼 널렸기에 걱정은 안 하지만, 그들도 단시일 안에 이 대혼란을 수습할 순 없으리라.

    (좀 더 걸리겠군.)

    그러게요.

    (네가 사랑하는 다리 예쁜 소녀가 여행 계획을 짜고 있었는데, 무기한 연기해야 한다고 전하마.)

    “헉!”

    단둘이요?

    (당연한 걸 묻는군.)

    “으아...”

    여자친구랑 단둘이 여행이라니!

    별의별 상황을 겪은 덕분에 웬만한 일에는 미동조차 없는 내가 상상만으로 피가 쏠렸다.

    (또 음란마귀가 득실대는구나.)

    “흠흠!”

    (어차피 무기한 연기됐지만.)

    “큭!”

    (그 아가씨의 마음이 바뀌어서 취소될 수도 있고.)

    “으아아...”

    선배님. 심심하세요?

    아무런 잘못도 없는 후배를 열심히 괴롭히고 있다.

    (잘못이 없긴 왜 없어? 내가 현실에서 네 뒤치다꺼리하는 중인데. 처음에는 나도 흥미로워서 동조해줬지만, 이젠 모르는 인간이 네 이름을 부르며 다가오면 짜증부터 난다.)

    “......”

    죄송합니다. 그것까진 전혀 생각하지 못했네요.

    (빨리 어른이 돼라.)

    “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여행을 위해 내 머리를 쥐어짰다.

    * * *

    박효만 씨가 당연히 괴물 코끼리의 뱃속에 갇혀있다고 확신하며 미뤄둔 일들을 진행했다.

    그를 배신한 SSS급 헌터들의 죽음을 공개적으로 널리 알리고,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토벌을 기념하여 박효만 씨의 추모식도 크게 열었다.

    “......”

    “......”

    박효만 씨가 꿈속에서 결혼한 아름다운 아내들과 어린 자식들도 만나볼 수 있었는데, 그들은 슬퍼하는 기색 없이 담담히 추모식에 참석했다.

    박효만 씨를 좋아했던 대중에게 손가락질당하지 않기 위해 형식적으로 모습을 비쳤다는 느낌.

    이상한 일이다.

    “안녕하십니까, 부인.”

    나는 그의 아내 중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했던 SS급 헌터, 첫 번째 부인을 조용히 찾아갔다.

    “아! 아몰랑 님이시죠?”

    “네.”

    “서서히 잊혀가는 제 남편을 신경 써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형식적인 답변.

    정중하고 예의에 어긋나는 부분은 없었지만, 억지로 참석했다는 분위기까지 감추진 못했다.

    불편한 자리라서?

    나도 아버지의 조촐한 장례식을 어린 나이에 주관했었다. 그때 내가 느낀 감정은 허탈감.

    공짜 조문 식사를 노린 불청객을 빼면 아무도 아버지의 빈소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친구, 친척, 동료, 동창...

    아무도 오지 않았다. 그 당시에 나를 맡았던 중학교 담임선생님이 조문을 오시긴 했지만, 아버지의 지인도 아니고 오래 계시지도 않았다.

    ‘부끄러웠지.’

    내가 어렸기 때문일까? 바로 옆의 칸은 조문객이 끊이지 않은 탓일까? 이유가 뭐였든 참담한 기분이었다.

    반면,

    ‘정말 많네.’

    인류를 구원할 11번째 SSS급 헌터였던 박효만 씨의 추모식에는 정말 많은 유명인이 찾아왔다.

    헌터, 정치인, 경영인, 친구...

    그들의 진심이야 어떠하든 추모식 자리를 훌륭하게 채워주고 있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었다.

    “부인. 박효만 씨는 좋은 남편이었습니까?”

    “질문하시는 의도가...?”

    의도가 단순한 호기심이라면 ‘네. 훌륭한 남편이었어요.’ 같은 형식적인 답변이 돌아올 터.

    의도를 만들기로 했다.

    “당신처럼 매력적인 분을 놔두고 떠난 박효만 씨를 얼마나 마음에 두고 계신 지 궁금해서요.”

    “......”

    “......”

    박효만 씨의 아내가 내 얼굴을 빤히 올려다봤다.

    슥-

    그러다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표정을 감췄다.

    “애 딸린 과부를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진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조금 놀랐어요. 아직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의젓한 아몰랑 님의 남자다운 박력에.”

    “감사합니다.”

    아무런 원한도 없는 사람을 죽이는 잔혹한 전쟁을 몇 번 겪고 나면 의젓해질 수밖에 없다.

    “조금 걸어도 될까요?”

    “좋습니다.”

    엿듣는 귀가 많은 추모식장을 벗어난 우리는 인적이 드문 공원의 산책로로 장소를 옮겼다.

    죽은 남편을 닮은 아이를 친자매에게 맡기고 온 과부. 그녀는 주위를 한 차례 둘러본 후, 속앓이하듯 감춰온 진심을 드러냈다.

    “이건 확실하게 말할 수 있어요. 그는 헌터로서 우수했을지 몰라도, 좋은 남편은 절대 아니었어요.”

    “어째서입니까?”

    “저를 사랑한다면서 집에 여자를 셋이나 더 들였어요. 1/4의 사랑? 그게 사랑일까요? 친구들의 우정이랑 다를 게 없지 않나요?”

    “뭐...”

    무릎 꿇고 싹싹 빌어본 경험이 있는 나로선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아쉬운 쪽은 저라서 이해해줬어요. 아내 외에도 함께 괴물을 사냥하는 내연녀가 6명이나 됐지만, 모르는 척하며 넘어갔죠.”

    “그런 속사정이...”

    이건 조금 소름인데?

    “하지만 이런 저도 남편의 초능력 중독은 견디기 힘들었어요.”

    “......”

    초능력 중독!

    그 단어를 듣자마자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남편은 모두가 알다시피 다중능력자입니다. S급 초능력 가속과 SS급 초능력 강화. 궁합이 좋은 두 초능력을 활용해서 그는 최강의 SSS급 헌터가 됐어요.”

    S급 헌터 나틸리아의 상위호환.

    그녀는 매우 빠르지만, 괴물의 튼튼한 가죽에 상처를 줄 마땅한 공격수단이 없었다.

    그래서 S급.

    하지만 몸에 닿는 무엇이든 강화하는 SS급 초능력 ‘강화’도 보유한 다중능력자, 박효만 씨는 달랐다. 나틸리아에게 부족한 공격력까지 겸비했으니까.

    그래서 최강의 SSS급.

    “뭐가 문제였습니까?”

    “자신의 물건을 강화한 후에 가속으로 빠르게 움직입니다.”

    “......”

    이건...?

    “처음에는 딱 기분 좋은 정도로 완급을 조절하지만, 흥분하기 시작하면 제어하지 못해요. 그때부터 여자는 천국에서 지옥으로 떨어집니다.”

    “그, 그렇군요!”

    정말 위험한 초능력 중독이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크게 사고가 났었어요. 초능력은 남편만의 전유물이 아니니까요.”

    “......”

    “침대 위에서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다가 이성이 마비된 제가 초능력으로 남편을 죽이고 말았어요. 정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었죠.”

    “...그런데 되살아났군요. 부인께서 처벌을 안 받으신 걸 보니.”

    “네. 남편은 세 번째 초능력을 보유한 다중능력자였어요. 정신력이 고갈되기 전까지 절대 죽지 않고 회복되는 C급 초능력 부활.”

    고작 C급.

    예기치 못한 사고로 죽는 비극은 막아주겠지만, 괴물을 상대로는 일반인이나 다름없는 애매한 초능력.

    하지만 이것도 누가 소유하느냐에 따라 가치가 달라진다.

    (진짜로 똥이었군.)

    그러게요.

    (부활은 의 여주인공이 갖고 있던 초능력이다. 여주인공을 죽여서 독자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먹은 작가가 급하게 추가한 설정이란 소문이 있지.)

    “...부인께서는 남편이 안 죽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여태 재혼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가속은 괴물보다 인간에게 더 유용한 초능력이니까요.”

    “아아.”

    확실히 그랬다.

    “물론, 아몰랑 님이라면 안심하고 저를 맡길 수 있겠지만.”

    “정말 매력적인 제안이지만, 전 남편이신 박효만 씨를 찾는 시늉이라도 해본 뒤로 미루겠습니다.”

    “그날을 기대할게요.”

    살라라~

    나에게 고혹적인 눈웃음을 보낸 SS급 유부녀가 도도한 걸음으로 공원을 떠나갔다.

    (또 남해수 수법을 쓸 거냐?)

    “...아뇨.”

    꼭꼭 숨은 수영황제 남해수가 나를 찾아오도록, 그의 아내 박한희를 유혹해서 도발했었다.

    효과는 확실했지만, 결과적으로 환자를 죽이고 말았다.

    게다가,

    (그래. 두 번은 못 참지.)

    “그렇죠...”

    내가 꿈의 세계에서 다른 여자랑 연애했다는 사실을 송선영이 알게 되면 현실이 초토화되리라.

    즉, 연애만은 내가 꿈의 세계에서 자살로 탈출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선택지.

    다시는 절대로...

    (윤소라가 네 안부를 묻더군.)

    “으으.”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 갇혔던 환자 윤소라가 이상한 것이다. 나는 그녀에게 식칼을 휘두른 스토커를 제압했을 뿐이니까.

    정말 억울하다!

    (법정에 들어선 죄인들이 판사 앞에서 가장 많이 하는 말이지.)

    “...그래도 공략의 길이 보이네요.”

    (공략이냐?)

    “공략이죠.”

    모든 환자가 다르다. 그래서 매번 수수께끼 같은 상황이나 난해한 문제가 나에게 고통을 준다.

    그러니 공략!

    앞으로는 모든 라누벨 환자에게 치료 대신 ‘공략’이란 표현을 쓸 것이다.

    (멋진 마음가짐이군.)

    “시작하죠.”

    표현만 바뀐 게 아니다.

    삑-

    늘 휴대하고 다니는 통신기기로 보좌관에게 연락했다.

    (아몰랑 님. 받았습니다.)

    “우리가 무인도에 버려둔 나틸리아가 아직 살아있을까?”

    (질문하시는 의도를 모르겠지만, 가속 초능력 덕분에 쉽사리 당하진 않았을 겁니다.)

    “아직은 살아있을 거란 의미?”

    (네. 그녀가 삶을 포기하고 자살하지 않았다면.)

    “나틸리아가 살아있다면 최대한 빨리 데려오세요. 의도한 건 아니지만, 그녀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가속 초능력자가 필요하신 건가요?)

    “조금 다릅니다.”

    박효만 씨는 인류의 문명권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배신자들이 전부 죽었음에도 생존 신고를 안 하니까.

    그 의미는?

    여전히 괴물이 우글거리는 야생에서 생활하고 있다. 마치 타잔처럼...

    (알겠습니다.)

    삑-

    통신이 종료됐다.

    “...배신자를 이런 식으로 재활용하게 될 줄은 몰랐네.”

    타잔이 된 박효만 씨를 찾으려면?

    야생에서 살아남은 비슷한 초능력자의 생생한 경험이 필요하다.

    (너답지 않게 원시적인 방법이군.)

    “하핫!”

    이게 얼마나 과학적인지는 지켜보시면 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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