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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41화 (142/232)
  • 141화

    암살에 실패하면 자신을 포함해서 사랑하는 사람, 수백만 목숨이 1초 뒤에 사라진다고 생각해보라.

    심지어 성공률은 절망적!

    덜덜.

    땡그랑!

    그 중압감을 견디지 못한 사람들이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급기야,

    “명령을- 컥?!”

    “나는 죽기 싫어!”

    “너 때문이야!”

    나를 죽이는 것만이 유일한 살길인 주동자들.

    실패하면 모두 죽는다고 선동했던 그들은 부하들의 반란으로 하나둘 생포되어 내 앞에 끌려왔다.

    “해신(海神)이 된 기분인걸.”

    바다의 폭풍을 가라앉히기 위해 사람들이 제물로 바친 희생양들을 바라보는 것 같다.

    “웁웁!”

    “으우웁!”

    분노한 신(神)을 자극하지 못하도록 입에 재갈이 채워진 주동자들의 얼굴에는 공포가 깃들어 있었다.

    주동자뿐이랴?

    아무것도 모르는 그들의 가족까지 전부 끌려왔다.

    “많네.”

    죽이는 건 간단하다.

    깜빡깜빡~

    적의 숫자만큼 칼날이 늘어나는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이용하면 순식간에 처리할 수 있다.

    “살려주십시오.”

    “저희는 전혀 몰랐어요.”

    “이들의 짓입니다.”

    희생양들을 내 앞에 바친 자들이 무릎 꿇고 용서와 자비를 구걸했다.

    “...받아주지.”

    좀 더 숨어있을 것이다. 희생양들 뒤에 숨은 진짜 주동자 혹은 배신자가 분명히 있으리라.

    그러나 전부 잡으러 다니기에는 내 시간과 노동력이 아깝다.

    “아몰랑 님.”

    “준비됐어요.”

    암살자였던 나틸리아는 무인도에 버리고, 보호막을 잘 쓰는 녹색 요정들을 새로운 보좌관으로 뽑았다.

    “좋아.”

    옛정을 생각해서 죽이지 않고 F급 괴물들이 사는 무인도에 나틸리아를 풀어준 나에게 감명받은 걸까? 새로운 보좌관들은 불만 없이 내 지시를 잘 따랐다.

    (진정한 19금 산타로군.)

    “흠흠.”

    (다리가 예쁜 송선영이 저 녹색 미니스커트와 검은색 가터벨트를 입는 모습을 상상했구나.)

    “......”

    내 인권은 여전히 유린당하고 있다.

    삑-

    전 세계의 텔레비전에 송출되는 생방송이 시작됐다.

    “안녕하십니까, SSS급 괴물 뱀파이어 로드를 단독으로 사냥하고, 남아메리카 대륙과 시베리아 벌판을 인류에 다시 되돌려준 GGG급 헌터 산타 아몰랑입니다.”

    이 세계의 어떤 헌터도 달성하지 못한 압도적인 업적!

    이런 나를 비난할 수 있는 인간은 없으리라.

    “하지만 이런 저를 죽이고 인류를 위기에 빠트리려는 세력이 있습니다. 그들을 숨겨주거나 보호하는 도시는 이유를 막론하고 인류의 적입니다. 오해가 없도록 확실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 적은 그 도시에 사는 모든 시민입니다. 공동책임으로 예외는 없습니다.”

    여기까지가 서론.

    지금부터가 본론이다.

    “하지만 저는 괴물이 아닌 인간을 죽이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기회를 주기로 했습니다. 저 이전에 인류를 위해 헌신하다가 전사한 SSS급 헌터 박효만, 그를 죽인 SSS급 괴물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를 토벌하면 용서해주겠습니다.”

    (답답한 네가 생각한 계획치고는 제법이군.)

    감사요.

    “토벌은 죄인들의 집결이 마무리되는 즉시 진행됩니다. 참가를 거부하거나 어려워하는 자는 남녀노소 불문하고 일괄적으로 사형. 이 결정에 예외나 자비는 없습니다. 올바른 선택을 하시리라고 믿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삑-

    일방적인 통보였던 생방송이 깔끔히 마무리됐다.

    “공간도약만으로 죄인들을 전부 모으려면 시간이 너무 걸립니다. 항공기를 정비해주세요. 이 기회에 제공권을 되찾을 계획입니다.”

    “제공권...?”

    “드디어 비행기가...”

    “이런 날이...”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하늘을 되찾을 수 있다는 말에 놀란 사람들.

    내 계획에 반대하거나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자는 없었다.

    “빨리 시작하죠.”

    “네!”

    “네!”

    나를 괴물로 만든 이 꿈을 끝낼 때가 됐다.

    * * *

    나를 죽인다는 황당한 계획을 세운 자들의 생각은 매우 간단했다.

    인류의 번영보다 나의 이익!

    내가 기존의 SSS급 헌터들처럼 통제할 수 없고, 언젠가는 자신들의 기득권을 빼앗을 게 뻔하기에 일찌감치 제거하기로 한 것이다.

    툭!

    그 이야기를 어렵게 풀어놓은 보고서를 책상에 대충 내려놓았다.

    “참 다르네.”

    P의 적성검사로 뽑힌 현실의 정치인들은 자신의 이득보다 국가의 안녕과 번영을 생각한다.

    도중에 타락한 정치인이 종종 뉴스에 등장하지만, P의 적성검사로 뽑힌 정의로운 판사님의 심판으로 감옥에 갔다는 내용뿐!

    이렇게 제멋대로 나라가 운영되지 않는다.

    이런 세계라도 좋은 점이라면?

    “나는 아니야!”

    “결백해!”

    “모함이에요!”

    한 번이라도 범죄를 의심받으면 빠져나갈 수 없다는 점이다.

    “거짓말이네요.”

    “정말이네요.”

    나처럼 무효화 할 수 없는 이상, 거짓말을 감지하는 초능력에 걸리기에 뚜렷한 증거조차 필요 없었다.

    앉혀놓고 물어보면 끝!

    그래서 거짓말을 탐지하는 초능력자들을 매수하거나 협박하는 2차 범죄가 등장했지만...

    진짜 기가 막힌 세계다.

    (하지만 그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군.)

    “그렇죠.”

    라누벨 환자, 박효만 씨를 삼킨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놈을 사냥하기 위해 수많은 용사가 모였다. 그중에는 헌터는커녕 무기조차 제대로 못 쥐는 노인과 아이도 섞여 있었지만, 자비 같은 융통성을 발휘할 마음은 전혀 없다.

    “아몰랑 님. 배치가 끝났습니다.”

    “1열부터 돌격.”

    “...네.”

    부모의 잘못으로 끌려온 자들은 억울하다고 부르짖었지만, 억울한 것으로 따지면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무슨 잘못?

    SSS급 헌터들을 몰살시키긴 했지만, 정당방위란 명분이 있고, 그 머저리들이 100년 동안 활약해도 못 채울 만큼 많은 괴물을 사냥했다.

    “뿌우우우...!”

    넓은 둥지에서 느긋하게 낮잠을 즐기고 있던 SSS급 괴물,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침입자를 감지한 놈이 포효하며 축구 경기장 크기의 몸을 움직였다.

    푸슈우우-!

    놈의 긴 코에서 수증기처럼 뿜어져 나온 안개가 지상을 뒤덮었다.

    “......”

    “......”

    아직 큰 피해는 없었다.

    저 안개에 흑사병(pest)을 일으키는 물질이 섞여 있다는 정보를 알고 있었기에 대비를 철저하게-

    “아악?!”

    “꺄아악?!”

    그러나 괴물 코끼리의 압도적인 물리력은 알아도 막을 수 없었다.

    쿵! 퍼억! 쾅!

    별다른 피해도 못 주고 피해만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했다.

    “2열 돌격.”

    “...네.”

    “이어서 3열 돌격.”

    “아몰랑 님. 3열은 전투능력이 전혀 없는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어요.”

    “그래서요?”

    녹색 요정이 내 눈치를 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무의미한 죽음보다는 다른 방식으로 죗값을 치르도록 하는 게 어떨까요?”

    “무의미하지 않습니다. 평등한 법(法)의 잣대는 정치의 부패를 막고, 사회의 질서를 지켜줍니다.”

    “그건... 하지만...”

    “그리고 이게 가장 큰 이유인데, 저를 죽이려고 한 범죄자들의 가족과 후손을 지켜주기 싫습니다.”

    “아...”

    “이해했으면 3열 돌격.”

    “네. 3열 돌격.”

    나를 잔인하다고 욕해도 상관없다.

    “뿌우우우...!”

    “꺄악?!”

    “사, 살려~!”

    콰앙! 쿵! 뿌직!

    박효만 씨의 바람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에 아무런 미련도 없으니까. 빨리 끝내고 싶을 뿐이다.

    “도망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

    깜빡!

    공포에 사로잡혀서 탈주하는 자들은 미리 땅에 찔러둔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에 처형됐다.

    빠르게 줄어드는 생명.

    확장된 나의 인지력은 전장의 상황을 인공위성보다 정확하게 실시간으로 파악했다.

    “뿌우우우!”

    인간들을 밟는 것에 질린 걸까?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를 SSS급 반열에 올려준 능력이 발현됐다.

    코끝을 하늘 높이 치켜들고,

    촤아아아!

    석유처럼 시커먼 액체를 분수처럼 수직으로 뿜었다.

    “죽음의 비다!”

    “어서 보호막을!”

    “모두 숨어!”

    툭! 툭! 투툭! 투두둑!

    괴물 코끼리의 코에서 분출된 저것은 초능력으로도 땔 수 없는 초강력 접착제 같은 성질이 있다는데...

    접착제 위에 올려둔 먹이로 벌레를 유인해서 잡는 제품처럼, 돌격한 모든 사람이 땅에 달라붙은 광경은 우스꽝스러우면서도 소름이 돋았다.

    “윽!”

    “으윽!”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처럼 적의 숫자를 세지 않고 넓은 범위를 초토화하는 능력!

    유일한 단점은?

    몸속에서 생산하기 때문에 한 번 분출하고 나면 재충전 될 때까지 쓸 수 없다.

    휙~

    슬쩍 손으로 만져봤다.

    “역시...”

    이건 하이브리드(hybrid)라고 해야 할까? 내 몸을 접착제처럼 강하게 붙잡아두진 못하지만, 진흙 같은 특유의 점성이 남아있었다.

    무엇이든 절단하는 검귀의 손이 나를 상대로는 평범한 칼이 되듯이.

    이것도 비슷했다.

    ‘성가시네.’

    이래저래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는 나랑 상성이 좋지 않은 괴물이었다.

    그러나,

    (홀쭉해졌군.)

    박효만 씨의 희생으로 사전에 입수한 놈의 원거리 공격수단을 제거했다.

    남은 건 거대한 몸뚱이뿐!

    “슬슬 가볼까.”

    사정없이 머릿수만 늘려서 투입한 죄인들의 역할은 이걸로 충분하다.

    깜빡!

    땅에서 뽑은 인피니티 블레이드에는 상당한 힘이 축적되어 있었다.

    원래는 대가가 필요한 힘.

    하지만 나는?

    (멋진 설정 붕괴로군.)

    “뿌우?”

    원작 소설의 주인공은 꿈도 못 꾸는 강대한 힘. 그것을 눈치챈 괴물 코끼리의 거대한 머리가 나에게 향했다.

    “안녕?”

    “뿌우우...!”

    위협을 느낀 SSS급 괴물의 긴 코가 빠른 속도로 거리를 좁히는 나에게 휘둘러졌다.

    “흥!”

    전에는 놈의 가벼운 꼬리치기조차 막을 수 없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보인다.

    나틸리아의 ‘가속’ 초능력에 버금가는 터무니없는 속도였지만, 반응하지 못할 수준은 아니었다.

    내가 성장했다는 증거.

    인간의 형태를 포기하고 얻은 성장이라서 기쁘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슬퍼할 필요도 없다.

    “흡!”

    평지에서 개미가 위협을 느끼고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인간의 마수를 피할 수 없다.

    압도적인 체급 차이!

    그 냉정한 물리법칙은 나와 괴물 코끼리 사이에도 적용되지만, 여기에 변수가 있다.

    깜빡!

    내 발밑에서 솟구친 수많은 칼날 촉수가 ‘파도타기’하듯 밀어줬다.

    “계산대로군?”

    나의 적은 하나가 아니다.

    많이 죽긴 했지만,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를 향해 무모하게 돌진한 죄인 모두가 나의 적!

    즉, 조금이라도 숨이 붙어있다면, 혹은 최근에 죽었다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사기적인 능력 조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

    부우웅-

    나를 밀고 끌어주는 칼날 촉수들의 도움으로, 채찍처럼 휘둘러진 괴물 코끼리의 코를 회피했다.

    “뿌우우?!”

    “하핫!”

    많이 놀란 모양이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하다. 놈의 강력한 공격수단인 코를 절단하지 않고 지나쳤다.

    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에 은하수처럼 모인 빛의 알갱이들.

    괴물 코끼리의 가죽이 내 예상치보다 두껍고 튼튼할 수도 있어서 최대한 힘을 비축했다. 코를 무시한 것도 확실한 한 방을 위해...!

    (도박이군.)

    이 공격에 괴물 코끼리의 뱃속에 갇힌 박효만 씨의 몸까지 절단될 수도 있지만, 그건 어쩔 수 없다.

    “뿌우...!”

    이젠 나를 박효만 씨처럼 삼켜버릴 의도로, 입을 쫙 벌리고 마주 돌격해오는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하지만 자신의 운명을 이미 예감한 걸까? 놈의 거대한 눈에서 자신감을 찾아볼 수 없었다.

    “뒈져라.”

    헌터물 소설 <나만 SSS급 헌터>의 세계관 최강의 SSS급 괴물.

    그리고 그것을 아무런 제약 없이 마음껏 휘두르는 무당.

    진짜 환장하는 조합이군?

    번쩍!

    “뿌우우~?!”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의 거대한 몸뚱이가 ‘모세의 기적’처럼 수직으로 예쁘게 갈라졌다.

    쿠웅! 쿵!

    (흠. 도박에 성공한 건가.)

    “그러게요.”

    이걸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박효만 씨가 안 죽어서 꿈이 계속됐다.

    그런데,

    (이상한 상황이 벌어졌군.)

    “...뭐지?”

    박효만 씨는 SSS급 헌터다. 괴물이 살아있을 때는 어려웠다고 해도, 죽은 지금이라면 자력으로 빠져나올 수 있을 텐데...

    그런 낌새가 보이지 않았다.

    “와아아아!”

    “SSS급 괴물이 죽었다!”

    “아몰랑 님! 만세!”

    승리에 환호하는 사람들. 그리고 아직 죽지 않은 죄인들을 구출하기 위해 수많은 구급요원이 투입됐다.

    “루돌프.”

    (네! 아몰랑 님!)

    이 계획에 부정적이던 녹색 요정조차 기쁨과 흥분이 뒤섞인 목소리로 내 무선통신을 받았다.

    “괴물의 몸을 해부해서 생존자가 있는지 확인해세요.”

    (아! 바로 사람을 보내겠습니다!)

    “설마...”

    박효만 씨가 괴물 코끼리의 똥으로 탈출하는 모습이 자꾸 상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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