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40화 (141/232)
  • 140화

    [7장-7절] 배신의 맛이로군!

    내가 무시할 수 있는 공격은 ‘꿈의 설정’으로 탄생한 것들뿐이다.

    순수한 물리력.

    판타지가 아닌 것.

    이런 현실적인 부류의 공격에는 상대적으로 매우 취약하다.

    “해보자고.”

    푹!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땅에 꽂았다.

    적의 숫자만큼 늘어나는 칼날.

    내 머리 위로 떨어지는 미사일의 숫자만큼 소환됐다.

    “나를 감싸.”

    깜빡!

    이렇게 생성된 칼날을 꼭 공격용으로 쓰라는 법은 어디에도 없다.

    슝! 슝! 슝! 슝...!

    땅속에서 솟구친 칼날 촉수가 움막처럼 나를 감싸며 보호했다.

    (뜨거울 거다.)

    콰앙~!

    미사일이 터지면서 발생한 열기가 내 피부를 불태웠다.

    “큭...!”

    직접적인 타격은 없었다.

    헌터물 소설의 공통점.

    헌터들의 역할을 강화하기 위해 괴물들은 초능력이 아닌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다는 설정이 있다.

    그리고 이건 인피니티 블레이드도 예외가 아니었으니!

    쾅! 콰광! 펑! 쿠왕~!

    대도시를 초토화할 수 있는 미사일 폭격을 받고도, 칼날 촉수에 흠집조차 생기지 않았다.

    “크윽...!”

    하지만 촘촘한 칼날의 틈새로 파고든 열기까지 막아주지는 못했다. 눈알 같은 연한 부위부터 수분이 바짝 마르며 타버렸다.

    시력을 잃고, 청각을 잃고, 후각을 잃고, 미각을 잃고, 촉각을 잃고...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쥔 오른손만 남기고 모든 감각을 상실했다.

    (허! 그걸 사는군.)

    “......”

    미사일이 전부 폭발하면서 적의 숫자는 0이 됐지만, 나를 보호하는 칼날은 여운처럼 남아있었다.

    아무것도 못 느껴도 확신하는 이유?

    내가 아직 살아있기 때문이다.

    미사일이 절반쯤 터졌을 때, 칼날 일부가 사라지며 방어에 빈틈이 생겼다면 내 몸뚱이가 못 버텼을 테니까.

    스르륵...

    망가진 육체가 빠르게 재생됐다.

    (너도 인간이기를 포기했으면서 검귀만 욕하냐?)

    검귀랑 비교하면 섭섭하죠. 제 외형은 완벽한 인간입니다만?

    아메바 같은 회복력과 생명력이 있을 뿐이다!

    (그러면 흡혈귀는?)

    “...오! 이제 좀 살겠네! 공기가 여전히 후끈후끈하지만!”

    (말 돌리지 마라.)

    “어흠!”

    선배의 날카로운 지적을 반박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현실의 내 육체는 살짝 아슬아슬한 수준이지만, 여기선 이미 인간의 탈을 쓴 외계인이지 않은가? 인류의 존속을 위협하는 괴물이란 존재보다 나를 더 우선할 정도로.

    인간의 형태.

    지금까지 나는 ‘나의 세계’를 스스로 좁은 틀에 가둬두고 있었다.

    (포기하면 편해.)

    선배처럼요?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무고한 갓난아기까지 몰살한 혈신이랑 비교하면 너는 어떻게 변해도 인간적이지.)

    “흐음~”

    미사일 공격이 실패한 사실을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이려나?

    책임 전가, 희생양, 제2의 수단...

    생각나는 건 많았다.

    (분노하는 건 자유지만, 죽으면 아무 소용 없다. 미사일은 요란해서 눈치챌 수 있었지만, 길목에 지뢰 하나만 매설해놔도 죽을 거다.)

    “흠...”

    정말 방법이 없나?

    (이미 답을 내놓고 심각하게 고민하는 건 답답한 멍청이나 하는 짓이지.)

    “그러게요.”

    나는 과학으로 무장한 인류에 복수하기 위해 인간이기를 포기했다.

    * * *

    “아몰랑 님?”

    “네. 저입니다.”

    잿더미로 변한 대지를 산책하듯 걷는 나를 발견한 나틸리아.

    방독면을 착용한 그녀와 루돌프의 일원들은 멀쩡한 나를 발견하고는 무척 놀라워했다.

    “...무사하셨군요.”

    “지상에 안 내려오는 편이 좋을 겁니다. 방사능, 독가스 같은 인체에 치명적인 것들이 깔렸으니까요.”

    “그런 치명적인 곳에서도 아무렇지 않으시네요.”

    “그러게요.”

    “......”

    멀쩡한 건 아니다. 해로운 것들이 내 몸을 파괴하는 속도보다 재생이 빨라서 그렇게 보일 뿐!

    다만,

    따끔따끔!

    태연한 척하고 있지만, 피부가 매우 가려워서 고통스럽다.

    통각을 막으면 해결되지만, 오감을 극대화하려면 고통도 품어야 한다. 발바닥에 못이 박혀도 눈치 못 채는 눈뜬장님이 될 순 없잖은가?

    게다가 오염된 지역만 벗어나면 해결될 문제다.

    “저기... 안 물어보세요?”

    “방독면이 매우 답답해 보이네요. 안전한 장소에서 하죠.”

    방독면.

    피에 맹독을 품은 배트 스나이퍼를 상대하기 위해 준비하긴 했지만, 보호막 초능력이 있어서 아무도 착용하지 않았다.

    “...네. 안전한 장소에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그런데 그 옷은 어디서 나셨어요?”

    “주웠습니다.”

    “그, 그러셨군요.”

    내 답변에 나틸리아가 당황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아무것도 없는 시베리아 한복판에서 검은색 가죽옷을 주웠다는 게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되니까. 하물며 미사일로 싹 태워버린 이 땅에서.

    (이걸 속는군. 자세히 보면 옷이 아님을 알 수 있는데.)

    “멋지죠?”

    “네. 아몰랑 님의 몸에 딱 맞는 옷을 구하셨네요.”

    딱 맞는 게 당연하다. 이건 가죽옷이 아닌 나의 진짜 살가죽이니까!

    거북이 등껍질에서 착안한 이것은 소매를 걷는 간단한 변화는 줄 순 있어도 완전히 벗진 못한다. 내 몸의 일부이기에.

    “이미 늦긴 했지만, 지금이라도 방독면을 드릴까요?”

    “괜찮습니다. 이런 공격은 저에게 안 통하니까요.”

    “...그렇군요.”

    “방독면 때문에 숨쉬기 불편한 듯하니 대화는 이쯤에서 그만 하죠. 저쪽에서 다시 만납시다.”

    “네. 기다릴게요.”

    부웅~

    루돌프가 빠르게 떠났다.

    (네가 너무 멀쩡해서 혼란스러운 모양이군.)

    “어딜 봐서요?”

    당황해서 내 피부를 자세히 보지 못한 게 틀림없다.

    생화학물질이 침투하지 못하도록 머리털과 눈썹을 제외한 모든 모공(毛孔)을 없앴으니까. 그 탓에 사람이 아닌 마네킹 같은 피부가 됐다.

    (좋게 생각해라. 피부 미용을 위해 모공 축소 수술을 받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그런 것도 아세요?

    (잊은 모양이군. 네 장인어른이 될 남자가 성형외과 의사다.)

    그게 왜요?

    (너는 둔감해서 눈치채지 못한 모양이지만, 송선영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남자친구의 말만 듣고 수영복 모델 시장에 뛰어든 줄 아냐?)

    “아!”

    (말 나온 김에 하나 더 해주마. 눈치 없이 그건 왜 따졌어?)

    그거?

    (네가 남자로 안 보인다는 것.)

    그래서 대답을 들었는데요? 좀 더 멋진 남자가 되기 위해 노력하라는 함축적인 의미였다고...

    (이 답답한 놈아!)

    또 왜요?

    (여자는 중요한 약속에 늦는 한이 있더라도 화장하는 생물이다. 마음에 둔 남자랑 만날 때는 특히.)

    “......”

    ...수수께끼인가요?

    여전히 모르겠다.

    (병원에서 눈을 뜬 송선영의 몰골을 떠올려봐라. 예뻤냐?)

    네.

    (이건 송선영에게 전달하지 않을 테니 솔직하게 말해도 돼.)

    ...정말요?

    (이 나이에 새파란 애송이를 상대로 거짓말하진 않는다.)

    그때는 예쁜 미라 같았죠.

    (이제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자. 그런 무서운 몰골의 여자가 너에게 고백하면 사귈 거냐?)

    ...보통은 아니지만, 선영이는 특별하니까요.

    꿈속에서 우리가 함께한 시간과 강렬한 추억이 적지 않았다.

    (그래. 하지만 남자의 속마음을 모르는 여자는 불안하지. 안 예쁜 모습으로 고백했다가 차이면? 세상에 남자는 너밖에 안 보이는 송선영이 그런 불확실한 도박을 할 것 같냐?)

    “아!”

    (그녀가 너에게 남자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자신에게 한 말이었다. 사귈 준비가 안 됐다고.)

    “......”

    선배는 감탄이 나올 정도로 여자의 마음을 잘 아시네요.

    (내가 훔쳐본 여자의 기억이 한둘인 줄 아냐?)

    “아하!”

    나는 선배에게 연애 강의를 받으며 만남의 장소로 이동했다.

    * * *

    (아! 깜빡할 뻔했군. 내 조언은 송선영 한정이다. 다른 여자에게는 안 통할 수도 있다.)

    “켁!”

    (왜? 배워서 다른 여자에게도 써먹을 생각이었냐?)

    “그, 그럴 리가요.”

    선배님. 오해의 소지가 다분한 추측성 발언은 곤란합니다.

    그나저나...

    (어설픈 분위기군.)

    방독면을 벗은 루돌프 일원들이 이동할 준비를 마친 채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아! 아몰랑 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오세요...!”

    그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콩닥콩닥!

    평소보다 매우 빠르게 뛰는 그들의 심장 소리 탓에.

    어디 그뿐이랴?

    “꿀꺽!”

    “꼴딱!”

    목구멍으로 마른 침을 삼키는 소리까지 뚜렷하게 들렸다.

    예외라면,

    “가면서 설명해드릴게요.”

    마중 나오듯 썰매에서 내린 나틸리아만 변화가 없었다.

    “좋습니다.”

    부웅~

    내가 탑승하자마자 루돌프는 매우 빠른 속도로 질주했다.

    “......”

    “......”

    무거운 침묵.

    입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우리의 관계는 내 머리 위로 미사일이 우박처럼 떨어지기 전후(前後)로 크게 나뉘었다.

    “반란이 있었어요. 주동자는...”

    “이름은 들어도 모르니 결과만.”

    “네. 미사일을 쏜 반란세력은 전부 제압했어요. 끝까지 저항하는 바람에 생포에는 실패했지만.”

    “꼬리를 자른 것처럼 들리네요?”

    “...믿기 힘드시다는 건 알아요. 그러니 상식적으로 생각해주세요.”

    “상식?”

    “아몰랑 님은 SSS급 괴물을 막을 수 있는 유일한 헌터에요. 그런 헌터를 죽이려고 할 리 없잖아요.”

    “역사가 증명해주죠. 만물의 영장을 자처하는 인간이 얼마나 어리석은 동물인지를.”

    “모두가 어리석은 건 아니에요.”

    “어리석은 극소수의 반란을 허용한 다수에게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말하는 겁니까?”

    “...당연히 책임을 질 거예요.”

    “누가?”

    “......”

    “설마, 없습니까?”

    “전부 알고 있는 건 아니지만, 반란군에 일부 가담한 인권단체는 전부 해체될 예정이에요.”

    “저를 바보로 아는군요. SSS급 헌터만큼 중요한 미사일 제어권이 변변찮은 반란군 따위에게 넘어갔다는 말을 믿으란 겁니까?”

    “......”

    “나틸리아, 당신은 누구의...”

    스윽-

    한 번도 싸우는 모습을 본 적이 없는 S급 헌터 나틸리아.

    대화 도중에 사라진 그녀의 칼이 내 목을 노리며 휘둘러졌다.

    ‘빠르네.’

    그러나 인간이기를 포기한 내 인지력을 넘어서진 못했다.

    푹!

    눈깔 촉수에 가슴을 꿰뚫린 나틸리아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꺅?!”

    “히익?!”

    그녀의 피를 뒤집어쓴 뒷좌석의 녹색 요정들이 비명을 질렀다.

    “조용.”

    “......”

    “......”

    그러나 진지한 내 한마디에 양손으로 입을 막으며 비명을 삼켰다.

    “나틸리아. 실패해서 놀랐습니까?”

    “그, 그 옷은 대체... 윽!”

    “당신만 거짓말하고 있던 게 아니었다는 뜻이죠.”

    이 가죽옷은 옷이 아니고, 길에서 주운 것도 아닌 수제품!

    참고할 표본이 없어서 엉성하지만, 도시에 도착하면 좀 더 옷처럼 보이도록 개선할 예정이다.

    “으윽!”

    “썰매에 설치된 폭탄은 안 터트리는 걸 추천합니다. 그때는 모든 인간을 몰살시킬 겁니다. 이 녀석이 있는 저는 가능하죠.”

    깜빡깜빡~

    나틸리아의 가슴을 꿰뚫은 눈깔 촉수가 즐겁게 몸을 흔들었다.

    “아악...!”

    그때마다 그녀는 참을 수 없는 고통의 비명을 질렀다.

    “실망하지 마세요. 저는 처음부터 당신을 믿지 않았습니다. 가속. SSS급 괴물이 지키는 나를 죽일 수 있는 유일한 초능력.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석연치 않았습니다.”

    물리적인 공격에 취약한 나를 보완해줄 ‘보호막’이 훨씬 적합하다.

    “누가 시켰습니까?”

    “......”

    입을 꾹 다무는 나틸리아. 대답해줄 입은 주위에 많았지만, 그녀만큼 깊게 관여하진 않았을 것이다.

    보호막, 증폭, 비행.

    나를 위협할 수 없고, 그들의 사슴과 요정 복장에는 부끄러움을 초월한 진심이 담겨 있었다.

    (이번에는 안 도와줄 거다.)

    압니다.

    “나틸리아. 지금부터 당신이 대답을 거부할 때마다 가까운 도시부터 하나씩 사라질 겁니다.”

    “뭔...”

    “못 믿겠으면 시험해봐도 좋아요.”

    “......”

    “긴장을 푸는 간단한 준비운동으로 시작하죠. 당신의 몸무게는?”

    “그걸 왜...”

    “몸무게는?”

    “51kg.”

    오늘의 나는 정말 똑똑하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