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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9화 (140/232)
  • 139화

    “음메에에?”

    “크앙?”

    파스스스...

    괴물의 아가리나 뿔 등에서 쏘아진 모든 원거리 공격은 나에게 아무런 피해를 주지 못했다.

    반면,

    “또 간다!”

    내가 휘두르는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놈들을 간단히 베어버렸다.

    일방적인 공격.

    즉, 일방적인 사냥!

    일부 괴물들은 육탄전을 벌이기 위해 빠른 속도로 내게 달려들었지만, 이것도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순순히 허용하지 않았다.

    서걱!

    “꾸에에에~?!”

    쿵!

    흉기를 든 근육질 인간이 산탄총을 향해 달려든다고 생각해봐라.

    이게 될까?

    총알이 전부 빗나가는 보정을 받는 주인공이라도 피할 수 없다.

    “쉽군?”

    등급이 높은 괴물은 일일이 베어줘야 한다는 번거로움이 있을 뿐, 나를 위협하지 못한다는 건 똑같았다.

    “......”

    “......”

    괴물의 단말마가 다른 괴물을 자극하는 도미노 현상이 발생했지만, 내가 찾아가는 수고를 덜어서 고마울 따름.

    지쳐서 후퇴하거나 휴전하는 일은 없었다.

    “힘들면 말해.”

    깜빡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정중앙에 박힌 눈깔은 마냥 즐거운 모양이다.

    한계가 안 보이는 힘!

    헌터물 소설 <나만 SSS급 헌터>의 F급 주인공을 단숨에 SSS급까지 올려준 괴물답다고 할까?

    압도적이다.

    (네가 그 소설의 주인공이었으면 1권으로 완결이었겠군.)

    그런가요?

    (네 짐작처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힘에 한계란 없다. 제약이 있을 뿐.)

    어떤 제약이요?

    (주인공.)

    음?

    (SSS급 괴물의 힘을 주인공이 견뎌내야 한다는 설정이 있다. 그래서 작중에서는 SSS급 괴물을 쓰러트린 직후에 항상 쓰러졌지.)

    아하!

    (주인공이 목숨 걸고 사용하는 묵직한 한 방을 너는 아무렇지 않게, 그 이상으로 마음껏 휘두르고 있다.)

    “꾸에에~?!”

    “까아아악~?!”

    쿵! 툭! 털썩!

    주인공이 지나치게 강해지는 전개를 방지하기 위해 소설 작가가 걸어둔 족쇄가 나에게는 무용지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무한’이란 설정을 100% 활용할 수 있다.

    이것이 그 결과.

    “......”

    “......”

    큰 노력을 들이지 않고 모든 괴물을 학살했다.

    “...벌써 끝났네.”

    위기? 변수? 도전?

    고유 능력이 일절 통하지 않는 나에게 괴물들은 덩치 큰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았다.

    “아몰랑 님?”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시체의 산을 본 나틸리아가 마지막에 나를 돌아보았다.

    “끝났습니다.”

    “그... 대단하다는 표현으로도 부족한 것 같아요.”

    “이 녀석이 잘난 덕분이죠.”

    깜빡깜빡~

    눈깔 촉수로 다시 변한 SSS급 괴물이 춤을 추듯 꿈틀거렸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오늘처럼 날뛰었다면 인류는 진즉 멸망했을 거예요.”

    “뭐...”

    부정하진 않겠다.

    “아몰랑 님. 바로 이동할까요? 아니면 휴식을...”

    “지치지 않았으니 바로 가죠.”

    “초능력을 사용하면 피로가 쌓여야 정상인데, 아몰랑 님은 무효화를 상시 유지하면서도 전혀 안 지치시네요.”

    “흠. 그건 기억을 잃기 전의 저만 알 것 같습니다.”

    대답하기 곤란한 질문이 나올 때는 무조건 기억상실증!

    남들이 개연성을 따질 수 없고, 내가 증명할 필요도 없는 정말 편리한 변명거리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루돌프에서 사진을 찍는 중이에요. 저는 그동안 상부에 보고할게요.”

    “네.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셔도 됩니다.”

    “감사합니다.”

    “...아! 나틸리아.”

    “네.”

    “제가 처치한 괴물 중에 SSS급이 있습니까?”

    SSS급 괴물이랑 싸워봐야 견적이 제대로 나올 터!

    “음... 절단된 괴물들의 시체를 자세히 살펴봐야 확실하겠지만, SSS급은 이 근방에 없었던 것으로 알아요.”

    “그렇군요.”

    예상했던 답변이었다. 내가 인피니티 블레이드로 썰어버린 괴물 중에 SSS급이 섞여 있었다고 하기에는 너무 약했으니까.

    ‘견적 나올 때까지만 기다려라. 망할 코끼리...!’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놈의 꼬리치기 한 방에 피떡이 됐던 나의 패자부활전이 머지않았다.

    * * *

    루돌프로 지구 전역을 돌아다니면서 괴물들을 학살할 수도 있지만, 내 목적은 이 세계의 평화가 아니다.

    환자 박효만.

    그를 SSS급 괴물 코끼리의 뱃속에서 구출한 후, 현실로 돌아가자고 설득해야 한다.

    그전에,

    “뱀파이어 로드. 무리를 이끄는 SSS급 괴물이에요. 놈에게 물린 인간은 뱀파이어 노블로 변해요.”

    “무조건?”

    “그건 아니에요. 조건은 젊고 아름다운 여성. 극소수 남성도 선택받긴 하지만, S급 이상의 헌터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요.”

    “흠.”

    취미가 고상한 흡혈귀 임금님이네.

    “남아메리카 대륙은 뱀파이어 로드의 지배를 받고 있어요.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은 뱀파이어 노블이 될 미녀와 초능력자를 낳는 가축. 세대를 거듭할수록 사람들도 그걸 당연하게 여기면서 지배가 견고해지고...”

    “상황을 요약하면, 매우 암울하다는 거군요.”

    “네.”

    이런데도 뱀파이어 로드는 SSS급 괴물 중에서 가장 약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만큼 다른 SSS급 괴물들이 강하기도 했지만, 뱀파이어 로드는 사냥꾼보다 통치자 성향이 강한 탓.

    놈을 호위하는 뱀파이어 노블 군단만 때어놓을 수 있으면, 조금 강한 SS급 괴물 수준이라고...

    “확실합니까?”

    “...남아메리카 대륙의 마지막 인간 국가가 멸망하기 직전에 보낸 기록이 맞다면요.”

    “그러면 믿어보죠.”

    나는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처럼 덩치가 큰 SSS급 괴물에게 도전하고 싶었다.

    하지만 입으로만 운동하며 기부금으로 배를 채우는 인권단체에서 잠시만 시간을 내달라면서 나를 설득.

    남아메리카 원주민들의 참혹한 실상을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없냐면서 내 양심에 호소했다.

    ‘그 쓰레기들.’

    이번 일만 끝나면, 나를 이용한 대가를 치르게 해주리라.

    “아몰랑 님?”

    “...아! 인권단체에 대해 잠시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아... 그들이요.”

    사전에 제지하지 못한 나틸리아가 무척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인권단체의 기부금을 몰수한 후, 저를 사냥개 취급한 그 연놈들을 전부 대령하세요. 그렇지 않으면 도시가 파괴되고 나라가 멸망해도 꼼짝 안 할 겁니다.”

    “그건...!”

    “이것이 제 인권입니다.”

    “...전달할게요.”

    사극 <궁녀 덕춘이>의 도적에게 복수할 때도 그랬지만, 꿈속에서 호구처럼 당해주고 깰 마음은 없다.

    ‘호구가 될 바에.’

    질서와 안녕을 부술 것이다. 꿈의 세계가 망해버리면 환자도 현실이 상대적으로 더 좋게 보일 테고.

    일석이조(一石二鳥)다.

    “아몰랑 님. 도착했어요. 이 아래에 뱀파이어 로드의 성이 있어요.”

    “...오른쪽으로 215m 이동.”

    “예?”

    “현재 위치는 틀렸습니다. 오른쪽으로 215m를 더 이동해야 뱀파이어 로드의 성 정중앙입니다.”

    “구름 밑이 보이세요?”

    “느껴집니다.”

    “......”

    썰매 안에서 나를 괴물처럼 바라보는 나틸리아와 녹색 요정들.

    나는 루돌프가 오른쪽으로 215m를 이동한 것을 확인한 후, 안전띠를 풀고 썰매에서 일어섰다.

    “다 끝난 후에 연락하겠습니다.”

    “설마... 이 높이에서 뛰어내릴 생각은 아니시죠?”

    “뛰어내릴 겁니다.”

    “낙하산은...”

    “필요 없습니다. 이 녀석이 알아서 해줄 테니까요.”

    깜빡깜빡!

    눈깔 촉수가 칼로 변했다.

    “그러면 방해가 안 되도록 여기서 아몰랑 님을 기다릴게요.”

    “나중에 보죠.”

    휙~

    나는 일말의 두려움도 없이 허공을 향해 뛰어내렸다.

    * * *

    “빠르게 가자고.”

    이게 소설이었다면, 지성(知性)이 있는 뱀파이어 로드와 주인공의 대화로 분량을 채웠으리라.

    ‘나는 SSS급 헌터다!’

    ‘나는 뱀파이어 로드다!’

    ‘SSS급 괴물아! 사람들을 풀어줘!’

    ‘SSS급 헌터 주제에 명령하지 마라!’

    ‘안 풀어주면 죽이겠다!’

    ‘너도 뱀파이어 노블로 만들어주마!’

    ...대충 이런 대화.

    협상의 여지가 없는데, 대화가 왜 필요한가?

    뱀파이어 로드를 위해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뛰어난 헌터들을 매년 제물로 바칠 게 아니라면.

    대화는 필요 없다.

    우우웅-

    우리에게 필요한 언어는 압도적인 폭력! 기습으로 상대가 대비할 틈도 주지 않고 썰어버리는 것이다.

    “싹 청소해주마.”

    인간 노예? 포로? 인권? 사연?

    이것들이 실시간으로 소비되는 내 현실의 삶보다 소중하진 않다.

    번쩍-!

    헌터물 소설 <나만 SSS급 헌터>의 세계관 최강 괴물 겸 무기.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원작 소설에서는 주인공이 너무 약해서 쓸 수 없는 ‘무한의 힘’이란 설정이 뱀파이어 로드의 집에 작렬했다.

    “오우!”

    사포로 문질러서 매끈해진 목재 표면처럼 말끔히 쓸려나갔다.

    풀 한 포기 없이 깔끔!

    로맨스 판타지 소설 <백작가의 막내딸이 되었다.>의 세계에서 보았던 황궁에 버금가는 웅장한 건축물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깜빡?

    “잘했어.”

    깜빡!

    하지만 아직 끝난 게 아니다.

    ‘이 아래인가?’

    인간의 왕과 황제는 대체로 높은 장소를 선호하는데, 흡혈귀는 정반대인 모양이다.

    지하 깊은 곳.

    성이 무너지며 매몰된 땅속에서 강렬한 생체 기운이 느껴졌다. 그것도 하나가 아닌 다수.

    쿠구구구-

    땅이 흔들렸다.

    다수의 생명체가 성의 잔해를 밀어내며 지상으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렇게는 안 되지.”

    푹!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을 땅에 꽂았다.

    뱀파이어 로드와 졸개들은 지상으로 올라와서 나에게 자기소개하고 싶은 모양이지만, 미안하게도 내 머릿속에 그들은 없었다.

    인권단체!

    빨리 돌아가서 나를 사냥개 취급한 그 쓰레기들을 처리해야 한다.

    “...어쭈?”

    대부분은 처리했지만, 뱀파이어 로드를 포함한 5마리는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을 견뎌냈다.

    쾅!

    그리고는 무덤에서 기어 나온 시체처럼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어떤 놈이...!”

    거적때기처럼 변한 검은색 옷을 입은 창백한 피부의 남자가 나를 죽일 기세로 노려봤다.

    눈동자는 피처럼 붉고, 귀는 길고 뾰족했으며, 손톱이 송곳처럼 생긴...

    뱀파이어 로드.

    내가 나틸리아에게 받은 정보랑 얼굴 생김새가 일치했다.

    “너, 너는...!”

    “헉! 네놈은...!”

    “히익?!”

    로드보다 한 박자 늦게 지상으로 올라온 뱀파이어 노블 4마리가 나를 보자마자 식겁했다.

    이것들이랑 쓸데없는 대화로 시간을 낭비하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안 할 수가 없었다.

    “살아있었네.”

    “아니. 우리는 죽고 다시 태어난 거야. 너에게 복수하기 위해!”

    “변명이 참 시원찮군.”

    나틸리아가 내게 설명해줬었다.

    뱀파이어 로드는 젊고 아름다운 여성과 S급 이상의 헌터를 뱀파이어 노블로 만든다고.

    그게 시체도 가능한 줄은 몰랐네?

    SSS급 헌터.

    젊고 아름다운 여성.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하는 인간들을 뱀파이어 로드가 놓칠 리 없었다.

    “이번에는 다를 거야!”

    “우리는 뱀파이어 노블!”

    “각오하는 게 좋을걸?”

    살던 곳을 이 지경으로 만든 내가 만만해 보이나? 내 오른손에 들린 SSS급 괴물이 안 보이나?

    현실 감각이 여전히 떨어지는 전직 SSS급 헌터들.

    “거참...”

    헛웃음밖에 안 나왔다.

    휙~

    대화하는 동안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에 모인 힘을 가볍게 휘둘렀다.

    “어?”

    “뭐야?”

    파스스스...

    이번에는 재활용할 수 없도록 시체까지 말끔히 제거했다.

    “자, 이제... 우리만 남았- 음?”

    “살려주세요.”

    방금까지 수컷이었던 뱀파이어 로드가 암컷으로 변했다.

    아름다운 육체.

    꾀꼬리 같은 음성.

    애잔한 표정.

    SSS급 헌터들이랑 달리, 나를 절대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뱀파이어 로드의 전략과 선택은 나쁘지 않았다.

    다만,

    “내 취향이 아니네.”

    “마, 말씀해주시면 바꿀-”

    파스스스...

    기회를 달라고 외치는 뱀파이어 로드도 말끔히 처리했다.

    (너는 취향이 참 확고하구나.)

    “당연하죠.”

    귀찮은 흡혈귀를 처리했으니, 이젠 내 인권을 지킬 차례... 음?

    (미사일이군.)

    “흠... 제법 많네요.”

    나를 확실하게 죽이기 위해 얼마 남지 않은 미사일을 총동원했다.

    (인권단체는 너를 떠보기 위한 수단이었겠지.)

    “박효만 씨의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아요.”

    인류의 배신.

    통제가 안 되는 나를 SSS급 괴물보다 위험하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초능력이 통하지 않는 나를 죽이기 위한 현대식 무기.

    실패하면 자신들이 죽는다는 사실을 잘 알기에 미사일을 정말 아낌없이 쏟아부었다.

    “교훈이 많은 꿈이네.”

    이 세계의 인류도 선택의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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