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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8화 (139/232)
  • 138화

    [7장-6절] 사랑한다!

    헌터물 소설마다 다르겠지만, 소설 와 <나만 SSS급 헌터>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이 세계의 헌터들은 초능력이 편향적으로 특화되어 있다.

    이 꿈의 주인공인 박효만 씨처럼 2가지 초능력을 각성한 다중능력자도 있지만, 매우 희소한 편.

    “아몰랑 님의 이해를 돕기 위해 SS급 괴물, 배트 스나이퍼를 토벌하는 영상을 준비했어요.”

    “오!”

    썰매를 끄는 인간 사슴과 보조하는 녹색 요정들이 휴식을 취하는 동안, 나는 나틸리아의 도움으로 극비 자료를 열람하게 됐다.

    어째서 극비 자료냐?

    “일반 헌터를 포함한 대중에 공개된 자료는 끔찍한 장면, 비명, 욕설 등을 제거한 편집본이에요. 가슴이 웅장해지는 배경음악은 기본이고요.”

    “그렇게까지...?”

    “그렇게까지 해야 헌터들이 SS급 괴물 토벌에 나설 테니까요. 원본을 보여주면 다 도망칠 겁니다.”

    “흠.”

    “이젠 직접 보고 판단하세요. 영상이 너무 길어서 중요한 전투 장면으로 넘어갈게요.”

    휘리릭~

    나틸리아가 노트북을 조작해서 빔프로젝터의 영상을 빠르게 넘겼다.

    (아아아악?!)

    (젠장! 깐프가 당했어...!)

    (말도 안 돼! 배트 스나이퍼의 초음파를 교란했을 텐데?!)

    (열심히 하고 있어! 안 했으면 더 멀리서 저격당했을 거야!)

    (열심히? 확실하게 막을 수 있다며! S급이라고 초면부터 우쭐대더니-)

    (진정해! 아군끼리 싸울 때냐!)

    (이대로는 안 돼! 놈이 너무 빠르고 은밀해!)

    (추격조와 공격조 투입! 그리고 보호막 전개! 본진이 무너지면 끝이야! 빨리 움직여!)

    (A급 벌레 주제에 SSS급인 나에게 명령하지 마라.)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극동의 마녀 김지영 님.)

    (흥!)

    내가 이 세계에 발을 들인 직후에 만난 첫 번째 원주민이 영상에 등장해서 조금 반가웠다.

    사물을 허공에 띄울 수 있는 그녀는 다수의 초능력자를 하늘로 띄워서 배트 스나이퍼를 추적.

    지상에서는 구름 속을 초고속으로 비행하는 저격수를 향해 고개 쳐들고 열심히 초능력을 쐈다.

    번개, 불덩이, 물대포, 레이저...

    공격 방식도 다양했다. 맞추질 못해서 별 소용이 없지만.

    반면,

    (커어어억?!)

    배트 스나이퍼가 쏘는 치명적인 맹독은 백발백중!

    지옥이 펼쳐졌다.

    (꺅?!)

    (미친! 똑바로 안 해?! 독침이 보호막을 뚫었잖아!)

    (투덜대지 마! 보호막이 없었으면 즉사였어...!)

    (뭘 구경해? 당장 치료해!)

    맹독에 팔다리가 녹아내린 사람도 멀쩡하게 고치는 초능력!

    하지만 고통의 충격 탓인지 치료받은 헌터 대부분은 전투에 다시 합류하지 못하고 빠졌다.

    (아악?!)

    (꺄아아앗?!)

    (커어억?!)

    헌터들의 비명과 욕설은 전투가 시작되고 끝날 때까지 계속됐다.

    초음파로 헌터들의 위치를 전부 파악하고 있는 배트 스나이퍼랑 무려 4시간 동안 숨바꼭질!

    날개를 격추당해서 지상에 추락한 뒤에도-

    (끼에에에!)

    상처에서 흘러나온 맹독성 피를 이리저리 뿌리면서 수많은 헌터를 길동무로 삼으려고 했다.

    (피해!)

    (놈이 온다!)

    근거리에서 공격하는 초능력을 보유한 헌터들은 맹독을 뒤집어쓰면 초능력으로 치료할 틈도 없이 죽기 때문에 접근 불가!

    오직 원거리 공격만으로 괴물 박쥐를 상대해야 하는데, 날개를 잃었음에도 굉장히 빠른 속도로 대지를 질주하는 놈은 만만치 않았다.

    그리고 또 1시간.

    (끼에에에~!)

    (쿵!)

    가죽이 피에 젖은 걸레처럼 너덜너덜해질 때까지 저항한 SS급 괴물이 마침내 쓰러졌다.

    (해, 해치웠나?)

    (불길한 소리 하지 마!)

    (우리가 이겼다!)

    (와아아아!)

    괴물이 부활하는 끔찍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지만, 헌터들은 패잔병을 연상시킬 만큼 처참했다.

    이것이 SS급 괴물.

    삑-

    총 6시간짜리 배트 스나이퍼 사냥 영상이 끝났다.

    “아몰랑 님. 잘 보셨나요?”

    “아마도?”

    충격적이다.

    “그나마 이게 가장 적은 피해로 배트 스나이퍼를 사냥한 영상이에요. 토벌에 실패하고 전멸하거나, 전멸에 가까운 타격을 받은 사례도 많아요.”

    “허...”

    “보시다시피 SSS급 헌터도 참가한 사냥이었어요. 극동의 마녀 김지영 님이 없었다면, 비행 초능력자와 헌터가 2인 1조로 팀을 짜서 배트 스나이퍼를 추격해야 하죠. 그녀 덕분에 공중전이 쉽게 끝난 편이에요.”

    “4시간이...?”

    “보통은 10시간씩 걸려요.”

    “......”

    “모든 공중전이 이런 건 아니에요. 초음파를 사용하는 배트 스나이퍼가 특별한 거죠.”

    “흠.”

    이 세계의 인류가 아직 멸종하지 않은 게 신기했다.

    “그래서 아몰랑 님이 더욱 대단한 거예요. 배트 스나이퍼는 혼자서 사냥할 수 있는 괴물이 아니기에.”

    “...운이 좋았습니다.”

    “그럴 리가요. 배트 스나이퍼의 초음파와 맹독을 무효화해서 덩치 큰 박쥐 취급을 해버리셨죠.”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아몰랑 님이 최고의 방어라면,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최고의 공격. 혼자서 완벽한 조합이에요.”

    “크흠!”

    그거야 내가 헌터물 소설 <나만 SSS급 헌터>의 주인공이랑 똑같은 길을 걷고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 보정이랄까?

    보정이 너무 강하게 들어가서 곤란할 정도다.

    “저희가 할 일은 아몰랑 님의 유일한 단점인 기동성 확보. 배트 스나이퍼가 큰 도움이 됐어요. 상부에서 루돌프를 좀 더 보강하기로 했어요.”

    “보강이라면?”

    “당연히 인원 충원이죠. 더 많은 사슴과 요정.”

    “아하!”

    세계여행은 제대로 하겠군.

    “그리고 아몰랑 님을 정의하기 위해 논쟁이 벌어졌어요.”

    “논쟁?”

    “등급이요.”

    “아아.”

    “전투력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는데, 그러면 아몰랑 님만 SSS급이고 기존의 SS급 헌터들은 A급으로 분류돼요.”

    “나틸리아는?”

    “......”

    “미안합니다. 예민한 걸 물었네요.”

    “아뇨. 잠시 생각하느라... 못해도 B급은 될 거예요.”

    “아하!”

    S급에서 B급으로 떨어지면 나도 항의할 것 같다. 호칭만 바뀔 뿐이지만, 기분이란 게 있으니까.

    “극심한 반박이 예상돼서 아몰랑 님만을 위한 새로운 기준과 등급을 만들기로 했어요.”

    “헤에~”

    나만을 위한?

    내 심금을 울리는 한마디에 조금 기대됐다.

    “GG등급.”

    “...알바벳 순서로 따지면 F등급보다 낮은 것 아닙니까?”

    “신(God)이란 의미에요.”

    “어... 그건 좀 낯뜨거운데.”

    “S급 괴물을 홀로 토벌하면 G등급, SS급 괴물은 GG등급, SSS급 괴물은 GGG등급. 그래서 아몰랑 님은 현재 GG등급입니다. 꿈같은 얘기지만, 나중에 SSS급 괴물을 홀로 토벌하시게 되면 GGG등급 헌터가 되는 거죠.”

    “흠.”

    나 때문에 이 세계의 제목이 바뀌고 말았다.

    나만 GG급 헌터?

    그리고 SS급과 SSS급 괴물의 전투력 차이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지만, GGG급 헌터도 꿈은 아니리라!

    문제는,

    ‘박효만 씨는 무슨 생각이지?’

    믿었던 SSS급 동료들에게 배신당하고 괴물 코끼리에게 먹혔다. 이것만으로도 정신적인 타격이 매우 클 텐데, 현실보다 괴물의 뱃속이 더 좋다고 판단하는 근거를 모르겠다.

    ‘...내가 뭘 놓쳤나?’

    정확한 것은 코끼리 괴물의 배를 갈라서 박효만 씨를 구출해봐야 알 수 있으리라.

    나 혼자 고민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니까. 당사자에게 직접 듣는 게 가장 정확하고 빠르다.

    그러려면,

    “다음 사냥을 준비... 아니, 동아시아부터 서유럽까지 빠르게 긁으면서 이동하도록 하죠.”

    “예? 긁으면서?”

    “사냥이요.”

    “......”

    “고상하게 학살이라고도 부르죠.”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그 칼날이 어디까지 소환될 수 있는지 시험해보자.

    깜빡깜빡~

    * * *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소환하는 칼날의 숫자는 소유자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를 넘지 못한다.

    어째서일까?

    눈깔 달린 괴물이 멀쩡한 시력 놔두고 인간의 색적 능력에 의존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다만,

    ‘현실이 아닌 소설의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되지.’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원작에서 주인공 역할이 칼을 운반하면 끝난다고 생각해봐라.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땅에 꽂기만 하면 웬만한 괴물은 몰살!

    쓸 내용이 없어서 소설이 1권 완결이 될 것이다. 그래서 ‘역할’을 억지로 부여했다고 짐작해볼 수 있다.

    즉,

    “나에게 너무 유리하단 말이지.”

    선배의 설명에 따르면,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원작 소설 주인공은 ‘정신 보호’라는 유일한 F급 초능력을 보유한 헌터였다.

    유일한 F급 초능력.

    그것 외에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인간이다. 예고도 없이 날아온 저격수의 총알을 피하거나, 올림픽 마라톤 기록을 1시간 단축하거나, 혼자서 무장단체를 전멸시키는...

    비상식적인 능력은 없다.

    “시작해볼까?”

    깜빡깜빡!

    동아시아 북부 시베리아 눈밭 한복판에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쥐고 선 나는 정신을 집중했다.

    인지력(認知力, cognition).

    대상을 아는 힘이다.

    ‘어떻게 해야 인식 범위를 넓힐 수 있을까?’

    가장 일반적인 인식 수단은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이다.

    인간이기를 살짝 포기한다면 돌고래와 박쥐처럼 초음파를 이용하거나, 후각이 인간의 100배인 개가 되거나, 슈퍼컴퓨터도 모르는 자연재해를 예측하는 곤충의 더듬이나...

    답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푹!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을 땅에 꽂고 정신을 집중했다.

    ‘나의 세계.’

    그리고 나는 무당이다.

    환자의 꿈에서 얻은 성장이 현실에서도 일부 반영되어 당연한 상식을 살짝 무시하는 중.

    하물며 꿈속이라면?

    “...보인다.”

    눈으로 보는 게 아니다. 나를 중심으로 360도, 사각지대 없이 존재하는 모든 괴물의 위치 정보가 몰아쳤다.

    주르륵...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방대한 정보량에 과부하가 온 걸까? 눈, 코, 귀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아몰랑 님...!”

    옆에서 지켜보던 나틸리아가 화들짝 놀랐다.

    그만큼 내 몰골이 엉망인 걸까?

    안 그래도 고산병(高山病)처럼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여기까지인가.”

    깜빡? 깜빡!

    내 신호를 받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능력을 활성화했다.

    “꾸에에엑?!”

    “깨갱?!”

    “크어엉?!”

    “히이이잉~?!”

    새하얀 눈으로 뒤덮인 시베리아 벌판에 살던 괴물들의 절규가 사방에서 몰아쳤다.

    푹! 푹! 푹...!

    상대적으로 약한 괴물들은 칼날에 꿰뚫리거나 절단되어 죽었고, 살아남은 일부도 멀쩡하지 못했다.

    “크르르!”

    그리고 이 정도 공격은 아무렇지 않게 막거나 회피한 SS급 이상의 극소수 괴물들.

    도발로 받아들인 놈들이 일제히 나에게 돌격해왔다.

    “...멋지군.”

    쿵! 쿵! 쿵!

    육중한 몸뚱이를 가진 괴물들이 뛸 때마다 대지가 비명을 질렀다.

    “이, 이게 대체...?!”

    “나틸리아. 루돌프로 돌아가요. 그리고 끝날 때까지 근처에 얼씬도 하지 마세요.”

    “뭐가 끝나면요?”

    “당연히 몰살이죠.”

    스르륵-

    땅에서 뽑은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날에 빛의 알갱이가 모여들며 은하수처럼 빛났다.

    검술?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무림인들은 이걸 고급 검술이라고 우겼지만, 내가 보기에는 총알과 총구가 없는 산탄총.

    대충 쏴도 다 맞는다는 뜻이다.

    “...선영아.”

    이 세계가 나에게 선사한 이상향을 떨쳐내듯,

    “사랑한다!”

    번쩍!

    기합을 잔뜩 넣은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시원하게 휘둘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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