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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7화 (138/232)

137화

기상예보처럼 괴물의 침공을 사전에 감지한 덕분에 우리는 도시가 공격받기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입국심사는 생략.

세계에 단 한 명뿐인 SSS급 헌터에게 ‘내 나라에 왜 왔어?’라고 물어보는 사람은 없었다.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먼 길을 와주셔서 고맙소!”

“식사는 하셨나요?”

날지 않는 비행기로 가득한 공항에 환영 인파가 모여 있었다. 다른 장소도 많지만, 루돌프는 수직이착륙기가 아니니까. 초음속비행기처럼 감속할 활주로가 필요했다.

도착 전에 조금씩 감속?

비행형 괴물이랑 공중전을 벌이고 싶지 않다면 피해야 할 선택지다.

“늦은 시간에도 불구하고 환영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괴물의 침공 예정시간이 얼마나 남았습니까?”

“46분 남았소.”

국방부 장관 비슷한 직급으로 짐작되는 군복 차림의 중년인이 답했다.

“빠듯하군요.”

46분.

상당히 여유롭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내 목숨이 46분밖에 안 남았다고 생각해봐라.

SSS급이 아닌 SS급 괴물이라서 멸망까지는 안 하겠지만, 극심한 피해는 어쩔 수 없다. 그리고 그 피해에 내가 포함되지 않는다는 보장은?

즉, 시간이 남아도 진지하게 임할 필요가 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도시에 피해가 없도록 놈을 마중 나갈 계획이오. 지대공 미사일로 자극해서 사막으로 유도할 겁니다.”

“바로 가죠. 나틸리아.”

설명을 들은 나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S급 헌터를 불렀다.

“네.”

“괴물의 정확한 정보와 이동 경로를 숙지해주세요. 토벌 후에 다음 목표로 곧장 이동합니다.”

“...알겠습니다.”

SS급 괴물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잔소리를 2시간 동안 했던 나틸리아가 한숨을 내쉬며 움직였다.

스슥-

비행 중에 받을 수 없었던 군사기밀정보를 순식간에 확보한 그녀가 다시 썰매에 탔다.

“끝났습니까?”

“네. 이동하면서 설명해드릴게요.”

“좋습니다.”

쌔앵~!

열렬한 환영이 무색하게 곧바로 날아오른 우리는 괴물을 맞이하기로 한 사막으로 향했다.

“아몰랑 님. 굉장히 서두르시는 것 같아요.”

“흠. 일을 안 하면 잡생각이 끊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잡생각이라고 하시면?”

“......”

“여자인가요?”

“어흠!”

무안했던 나는 헛기침하며 그녀의 시선을 피했다.

어떻게 알았지?

호주 대륙까지 오는 동안 제법 말문을 튼 뒷좌석의 두 여성도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몰랑 님도 남자네요.”

“한창 그럴 나이죠~”

나랑 나이 차이도 별로 안 나는 누나들이 인생 선배처럼 아는 척했다.

“허허! 부럽구먼.”

“결혼은 천천히 하십시오!”

“청춘이군요.”

썰매를 끄는 사슴 형님들까지 우리의 대화에 가세했다.

단순히 놀리는 줄 알았는데, 잘 들어보면 나보다 내 연애를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몰랑 님에게 평범한 여자는 안 어울리지.”

“맞아. SSS급 헌터의 아내라면 미모와 품격을 고루 갖춰야 해.”

“텔레비전에 자주 나오는 그 황녀님은 어때?”

“어휴! 그런 관심종자가 SSS급 헌터의 아내가 되면 재앙이야.”

...이런 식이었다.

내가 살던 상가건물의 깐깐한 관리인에게 아부하며 갈고닦은 친화력이 자연스럽게 발휘된 결과였지만, 고작 2시간 만에 내 미래까지 신경 써주는 관계가 될 줄은 몰랐다.

SSS급 헌터라서?

지금은 아무래도 좋았다.

“오면서 말씀드렸지만, 한 번 더 설명할게요. 호주 대륙으로 북상 중인 SS급 괴물의 이름은 배트 스나이퍼. 초음파로 원거리에서 표적의 위치를 파악한 후에 강력한 독성의 피를 쏩니다.”

“...현재 위치는 어디입니까?”

“바다입니다.”

바다.

그 단어를 머릿속에 입력한 나는 질문을 계속했다.

“우리가 기다리지 않고 마중 나가면 어디에서 마주칩니까?”

“예?”

“단독으로 상대하고 싶습니다.”

“너무 위험해요!”

“나틸리아. 사냥 방식은 제가 결정합니다. 아닙니까?”

“...맞아요. 죄송합니다.”

나는 그녀에게서 시선을 거둔 후, 진지한 어조로 선두의 인간 사슴에게 지시했다.

“괴물의 등에 올라탈 겁니다. 놈이랑 최대한 가까이 붙여주십시오.”

“해보겠습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세세한 지시는 즉흥적으로 하겠습니다.”

“네. 아몰랑 님.”

“저격이라...”

내가 남해수의 꿈속에서 저격수에게 몇 차례나 죽을 뻔한 뒤부터 신경 쓰기 시작한 위협.

안전띠를 풀고 정신을 집중했다.

깜빡?

“맞아. 대결 중이야.”

SS급 괴물의 초음파 탐지가 얼마나 대단한지 시험해보겠다.

* * *

배트 스나이퍼의 상륙까지 46분 남았었지만, 우리가 마중 나가면서 그 시간은 절반 이하로 단축됐다.

‘...졌네.’

괴물의 초음파가 이겼다. 우리를 먼저 발견한 놈이 일직선으로 날아오는 게 느껴졌으니까.

아직 공격하지 않고 있지만, 독액의 사정거리에 닿으면 우리를 향해 곧바로 쏠 것이다.

“고도를 올리십시오! 당장!”

“네? 네!”

“저는 무시하고 쭉 직진하십시오.”

“무시? 헉?!”

탁!

썰매에서 뛰어내렸다.

‘예상대로네.’

초음파로 사물을 파악하는 괴물은 나를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썰매를 추적하기 위해 급히 몸을 틀면서 수직상승!

괴물의 박쥐처럼 생긴 얼굴이랑 딱 마주쳤다.

“......”

시력이 나쁜 걸까? 아니면 작다고 무시하는 걸까?

뭐가 됐든 나로선 좋았다.

“지금!”

깜빡!

눈깔 촉수가 내 오른손을 휘감으며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로 변했다.

이 다음은...

‘머리? 아니야. 못 죽이면 상황이 꼬여버리니 만만한 날개로 하자.’

겸손하게 가기로 했다.

부웅-

칼날에 모여든 별빛이 괴물의 날개를 간단히 베었다.

머리를 노려도 됐었나?

전혀 보지 못한 기습에 당한 박쥐 괴물이 찢어지는 비명을 토했다.

“끼이익~?!”

“찔러!”

깜빡!

내 말뜻을 알아들은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칼끝이 엿가락처럼 늘어났다.

그리고는 쭉 날아가서,

푹!

“끼엑?!”

괴물의 몸통에 단단히 박혔다.

적의 숫자만큼 생성되는 칼날의 응용이랄까!

지금은 칼날보다 촉수에 가깝긴 하지만, 내 오른팔을 휘감은 녀석을 자주 본 탓에 놀랍지도 않았다.

“당겨!”

깜빡!

괴물의 몸통에 박힌 칼날이 짧아지면서 거리가 좁혀졌다.

이 와중에도 열심히 자유낙하 중이었지만, 두려움 따위는 없었다. 죽어도 정말로 죽는 건 아니니까. 그리고 이 밑은 바다다.

“끼에에...!”

치명적인 맹독을 품은 배트 스나이퍼의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퉤퉤!”

당연히 나도 놈의 피를 뒤집어쓰고 말았지만, 이 헌터물 세계의 설정으로 창조된 맹독은 나에게 아무런 피해도 주지 못했다.

치이이이...

전투복은 못 버티고 녹아버렸지만, 속옷이 무사하니 괜찮다.

인피니트 블레이드는?

깜빡~

매우 태연했다.

‘흠. 낙하산이라도 미리 받아둘 걸 그랬나?’

죽지만 않으면 괜찮다.

“끼에에에~?!”

파닥파닥!

괴물이 어떻게든 살아보겠다고 한 짝만 남은 날개를 열심히 움직였다.

푸른 바다의 파도가 세밀하게 보일 만큼 가까워지고-

“후읍!”

나는 숨을 들이켰다.

풍덩...!

괴물의 거대한 몸을 밑에 깔았음에도 어마어마한 충격이 엄습했다.

“끼에~ 꾸르르르?!”

물에 빠진 생쥐처럼 허우적거리는 SS급 괴물.

그대로 맥주병처럼 바다 밑바닥까지 가라앉을 줄 알았는데, 배처럼 둥둥 떠서 살짝 놀랐다.

“...이래도 안 죽네.”

영양분을 공급해주는 마석을 잃기 전에는 잘 안 죽는다더니,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이다.

그러나,

“끼, 끼에에...”

촉수로 괴물의 몸속을 헤집고 다니던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마침내 마석을 발견하고 파괴했다.

“......”

괴물은 전기를 차단한 전자제품처럼 움직임이 완전히 멈췄다.

“짜릿하군?”

바다를 표류하는 SS급 괴물의 시체 위에 편하게 드러누웠다.

깜빡깜빡~

다시 눈깔 촉수로 변신한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내 오른팔을 휘감으며 기분 좋게 꿈틀거렸다.

(아몰랑 님?)

귀에 보청기처럼 장착한 무전기에서 무척 조심스러운 나틸리아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사합니다.”

(아! 괴물은 어떻게 됐나요?)

“죽었습니다. 괴물의 피로 바다가 오염되긴 했지만.”

괜찮겠지?

(금방 그쪽으로 갈게요!)

“네.”

머릿속으로 괴물 코끼리랑 싸우는 나를 시뮬레이션하며 휴식을 취했다.

* * *

루돌프로 전투기 크기의 박쥐 괴물을 운반할 수는 없기에 사진과 놈의 송곳니만 챙기기로 했다.

“웃어요!”

“찍습니다!”

“셋, 둘, 하나...!”

찰칵!

직접적인 전투는 나만 했지만, 여기까지 함께한 ‘루돌프’와 나틸리아를 포함한 기념사진을 찍었다.

바닷물에 옷을 포함한 온몸이 흠뻑 젖었지만, 눈살을 찌푸리거나 불평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그리고 출발!

맹독에 오염된 전투복을 버리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나는 썰매의 푹신한 좌석에 몸을 맡겼다.

“아몰랑 님. 지치셨나요?”

“아뇨.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는 중입니다.”

내 솔직한 심정을 말하자면?

즐겁다.

국가대표로 올림픽에 출전했을 때보다 100배 재미있다!

내가 아르바이트했던 편의점 사장님이 가상현실게임 ‘몰랑 판타지’에 푹 빠진 이유를 알 것 같달까.

현실에서 절대 느낄 수 없는 강렬한 자극이다.

‘위험해.’

선배가 조심하라고 경고한 이유를 잘 알겠다.

“정말 강하시네요.”

“제가 아니라 이 눈깔이 강한 거죠.”

깜빡깜빡~

나는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운반할 뿐이다.

“그렇지 않아요. 배트 스나이퍼의 맹독으로 목욕하고도 태연한 헌터는 아몰랑 님이 최초니까요.”

“최초?”

“다른 무효화 초능력자들은 F급 괴물의 맹독에도 죽어요.”

“흠.”

나의 무효화는 초능력이 아니라서 생기는 차이였다. 애초에 이건 무효화도 아니다. 무시에 가깝달까?

그래서 공간도약 같은 편리한 초능력도 이용하지 못한다.

“착륙합니다!”

루돌프는 공항 대신 SS급 괴물을 상대하기 위해 모인 헌터들이 밀집된 사막 한복판에 착륙했다.

드르르르-

썰매는 자갈과 모래로 가득한 땅에 부드럽게 착지했다.

“...보호막을 거둘게요.”

스르륵...

우리 대신 흙먼지와 충격을 맞아준 보호막이 서서히 사라졌다.

지금은 일일이 보고하지만, 손발이 맞기 시작하면 생략하고 넘어가게 될 날이 곧 오리라.

‘아쉽네.’

이들이랑 손발이 맞기 시작했을 때쯤에 나는 이 세계를 떠날 테니까.

예정된 상실감에 속이 쓰렸다.

“산타다!”

“12번째 SSS급 헌터...”

“저 남자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소유자...”

벌써 소문이 쫙 난 걸까?

배트 스나이퍼 토벌을 위해 모인 헌터와 관계자들이 나를 ‘산타’라고 부르며 수근거렸다.

산타 아몰랑!

...나의 진짜 이름을 쓰지 않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산타 아몰랑. 배트 스나이퍼를 토벌했다는 게 정말이오?”

“네.”

“...그대가 공항에서 떠나고 30분도 안 지난 것으로 아는데.”

“어려운 상대가 아니니까요.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SSS급, 배트 스나이퍼는 SS급. 당연한 결과입니다.”

“......”

왜? 맞잖아?

우리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사람들이 공감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어이없게 쳐다봤다.

“아몰랑 님...”

나틸리아가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말투로 나를 불렀다.

“내 말이 틀렸습니까?”

“SSS급은 전투력이 아니에요. 비슷하게 쓰이긴 하지만, 원래는 최고라는 의미죠.”

“음? 아...!”

뒤늦게 이해했다.

“SSS급 헌터와 SSS급 괴물의 전투력은 똑같지 않아요. 괴물이 압도적으로 강하죠.”

“...SSS급 헌터의 전투력은 어느 정도입니까?”

“규모의 차이는 있지만, S급 괴물부터는 협공이 기본이에요.”

“......”

“잘 생각해보세요. 시간을 멈춘다고 괴물이 죽는 건 아니잖아요?”

“그렇죠.”

“오늘 사냥한 배트 스나이퍼를 예로 들어볼게요. 놈의 비행을 방해할 헌터, 저격을 감지할 헌터, 맹독을 중화할 헌터, 직접 공격할 헌터, 부상자를 구출할 헌터, 부상자를 치료할 헌터, 저격을 방어할 헌터, 초음파를 교란할 헌터 등이 다수 필요해요.”

“......”

“이제 이해가 되셨나요?”

“...최강의 헌터라고 불렸던 박효만 씨도 포함입니까?”

“그분도 당연히 포함이에요. S급 괴물을 혼자서 토벌했다는 업적이 있긴 하지만.”

“......”

이상하다.

“아몰랑 님 때문에 모든 헌터의 등급을 조정하던가, SSSS급을 만들어야 할 상황이에요.”

“허허...”

내가 꿈을 꾸고 있는지 의심될 만큼 이상적인 ‘이상한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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