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드림 브레이커-134화 (135/232)
  • 134화

    “이것이 SSS급 괴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요...”

    전투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전투를 하늘에서 관전한 나틸리아와 두 인력거꾼이 땅으로 내려왔다.

    감탄, 공포, 전율...

    그들의 얼굴에 깃든 감정은 내가 마법소년 최강민을 처음 보았을 때랑 매우 비슷했다.

    “문제 없네요.”

    “아몰랑 씨.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제어는 안 힘드신가요?”

    걱정스럽게 묻는 나틸리아.

    내가 괴물의 정신 지배에 당하면 얼마나 끔찍한 대학살이 벌어지는지 아는 것이리라.

    “문제 없습니다.”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뒷정리는 국가에 맡기고 다른 곳으로 가보죠.”

    “다른 곳이라면...?”

    “쉐도우 마우스 같은 F급 괴물로는 능력 측정이 안 되니까요.”

    “이 숫자를 보고도... 아몰랑 씨는 정말 겸손하시네요. SSS급 괴물도 토벌한 인류가 박멸에 실패한 골칫거리를 순식간에 정리하셨으면서.”

    나틸리아의 핀잔 같은 칭찬이 틀린 말은 아니다.

    그러나,

    “단일 개체로 강한 괴물을 상대해보고 싶습니다.”

    내 궁극적인 목적은 SSS급 괴물,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

    파리를 내쫓듯 휘두른 꼬리치기 한 방으로 나를 무력화한 괴물 코끼리를 죽여야 한다.

    그것도 빠른 시일 안에!

    환자 박효만 씨가 괴물의 뱃속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음... 잠시만요.”

    톡톡톡.

    스마트폰을 꺼낸 나틸리아가 앱으로 의뢰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괴물 혹은 실종 관련 사건을 앱에 의뢰하면, 헌터들이 자율적으로 선택해서 해결하는 시스템.

    중계수수료가 붙긴 하지만, 흔적을 안 남기고 사람을 암살할 수 있는 초능력자들을 상대로 폭리를 취할 인간은 없어서 미미한 수준이라고...

    나는 차분히 기다렸다.

    “...인력거로 갈 수 있는 범위 내에는 없네요. 아무래도 공간도약을 해야 할 것 같아요.”

    “좋습니다.”

    인간의 영역을 침범하지 않은 야생 괴물을 사냥해도 되지만, 이왕이면 의미 있는 노동을 하기로 했다.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아시죠?”

    “네! 바로 모시겠습니다!”

    “빠르게 갑니다!”

    부웅~

    우리를 태운 인력거가 바람을 가르며 도시 중앙까지 날아갔다.

    * * *

    알면서도 막을 수 없는 재앙, 쉐도우 마우스 무리를 간단히 몰살시킨 나는 정식으로 ‘SSS급 헌터’ 반열에 이름을 올렸다.

    아! 정정하자.

    유일한 SSS급 헌터가 되었다.

    “아몰랑 씨. 이쪽으로.”

    “네.”

    “원래는 여권 발급을 포함해서 입국 심사가 필요하지만, SSS급 헌터에게 그것들을 요구하는 멍청한 국가는 없습니다. 곧 그쪽으로 간다고 간단히 통보하면 끝이죠.”

    “다행이네요.”

    나로선 불편한 절차가 없어서 좋았다.

    “원리를 요약해서 설명해드릴게요. 공간도약은 일란성 쌍둥이에게만 발현되는 특수한 조건의 초능력이에요.”

    “호옹~”

    “멀리 떨어진 쌍둥이 사이에 보이지 않는 통로를 연결해서 물건을 주고받는다는 개념인데, 그 물건이 꼭 무생물일 필요는 없죠.”

    “이해했습니다.”

    “공간도약은 F급 괴물조차 이길 수 없는 초능력이지만, 그 가치는 SS급으로 평가되고 있어요.”

    “SS급? 저평가 같은데요.”

    헌터들을 순식간에 지원 보낼 수 있는 초능력이 고작 SS급이라니?

    “제약이 크니까요. 거리에 상관없이 쌍둥이 곁으로 하루에 100kg 정도 옮길 수 있어요. 무리하더라도 150kg이 한계죠.”

    “아...”

    우리가 대화하는 사이에 다가온 공무원이 꾸벅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규정에 따라, 안전수칙을 설명해드릴게요. 이동이 완전히 끝날 때까지 제 손을 놓으시면 안 됩니다. 그리고 이동 중에는 초능력을 절대 사용하지 마세요. 초능력 간섭은 행방불명의 원인이 됩니다.”

    “네.”

    큰 기대는 안 하고 있었다.

    ‘될까?’

    세계의 규칙에서 벗어난 내가 공간도약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니까. 인력거처럼 물리적인 수단을 따르는 초능력이길 기대해볼 뿐이다.

    “지금부터 몸무게를 측정할게요. 아몰랑 씨, 앞에 준비된 체중계에 올라가 주세요.”

    “네.”

    탁.

    숫자가 올라갔다.

    “74.3kg. 협조 감사합니다. 나틸리아 님은 굳이 측정해보지 않아도 당연히 25.7kg이시겠죠?”

    “네. 25.7kg이에요. 둘이 합쳐서 정확히 100kg이네요.”

    나틸리아가 뻔뻔하게 대답했다.

    “뭔...”

    유치원생도 아니고, 풍요의 여신 같은 저 몸매는 25.7kg의 2배 이상은 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어이가 없었지만, 아무도 이것을 지적하지 않았다. S급 헌터에게 찍혀서 좋을 게 없으니까.

    “갑니다.”

    “......”

    “...어라?”

    내 예상대로 공간도약은 실패했다.

    이런 경험이 없었던 걸까?

    공무원이 눈에 띄게 당황하며 재차 시도했지만, 내가 어디론가 이동하는 이변 따위 없었다.

    “아무래도 제 초능력이 거부하는 것 같네요.”

    “이상하네요. 무효화 초능력자도 옮겨본 경험이 있는데...”

    “저는 좀 다릅니다. 초능력을 항시 유지 중이라서요.”

    “그러면 잠깐만 중단해주세요.”

    “안 됩니다. 그 잠깐 사이에 이 녀석이 무슨 짓을 할지 모르니까요.”

    깜빡깜빡~

    내 오른팔에 감겨 있는 눈깔 촉수가 개구쟁이 같은 눈빛을 보냈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그럴 리 없겠지만, 내가 한순간이라도 이 녀석의 지배를 받는다면 도시의 노른자 땅 위에 사는 수십만 명이 목숨을 잃으리라.

    “아...”

    “이렇게 됐으니 어쩔 수 없네요. 근처에서만 활동하는 수밖에.”

    “죄송합니다. 제 초능력이 강했다면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자책하지 마세요. 이건 어쩔 수 없는 문제니까요.”

    이건 강하다고 될 문제가 아니다. 독립된 세계의 규칙이니까! 핵폭탄 위력의 초능력으로도 내 몸에 흠집 하나 낼 수 없다.

    “큰일이네요. SSS급 헌터가 발이 묶이다니...”

    “아쉽게 됐네요.”

    내가 죽인 SSS급 초능력자들의 몫까지 열심히 일해볼 생각이었는데, 물리적인 한계에 막히고 말았다.

    “아몰랑 씨. 제가 상부에 연락해서 방법을 찾아볼게요.”

    나에게는 살짝 아쉬운 수준이지만, 이런 나를 보좌하는 나틸리아의 표정과 말투는 매우 심각했다.

    “좋습니다.”

    공간도약은 절대 무리지만, 꼭 방법을 찾겠다는 그녀를 말리진 않았다. 이 세계에 오래 머물진 않을 예정이니까.

    ‘흠... 내 스마트폰에도 저 앱이나 설치해볼까?’

    직접 찾아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찾았어요.”

    “어디입니까?”

    “쉐도우 마우스의 둥지, 아니, 둥지였던 곳이란 표현이 맞겠네요.”

    “흐음?”

    조금 전에 정리한 곳은 왜?

    “너무 많아서 저희가 회수하지 않고 정부에 부탁한 쉐도우 마우스의 코어. 그것을 노린 하이에나 같은 인간들이 구조요청을 보냈어요.”

    “생존한 쉐도우 마우스가 있었던 모양이군요.”

    깜빡깜빡!

    그럴 리 없다고 항의하듯 촉수 눈깔이 거세게 눈꺼풀을 움직였다.

    “그건 아니에요. 쉐도우 마우스가 사라지면서 비어버린 땅을 차지하기 위해 괴물들끼리 영역 다툼이 벌어진 모양이에요. 앱에 의뢰한 헌터들은 거기에 휘말렸고요.”

    “아하!”

    “살아도 SSS급 헌터의 재산을 노렸기에 처벌을 면치 못하겠지만, 죽으면 처벌도 못 받죠. 어떻게 하시겠어요?”

    “가죠. 처벌은 관심 없지만, 일거리가 필요하던 참이었으니.”

    “네. 인력거를 다시 부를게요.”

    그런 이유로 우리는 방금 다녀온 사냥터로 되돌아갔다.

    * * *

    괴물만 영역이 있는 게 아니다. 호랑이, 늑대, 사자, 표범 같은 맹수부터 집에서 키우는 애완동물까지!

    원활한 사냥터 확보를 위해 자신 혹은 무리의 영역이 존재하고, 침입자가 들어오면 싸워서 쫓아낸다.

    단, 생쥐가 침범했다고 쫓아내는 동물은 없다.

    갑자기 이런 말을 하는 이유?

    “쉐도우 마우스 무리가 사라지며 비어버린 땅을 차지하기 위해 S급 괴물 2마리가 붙었어요.”

    영역 다툼은 동물이나 괴물이나 비슷한 수준끼리 한다는 뜻이다.

    “오! S급 괴물 2마리 사이에서 잘 버티네요.”

    인간보다 영역이 중요하기 때문에 안중에 없는 걸까?

    “아뇨. 이미 죽은 것 같아요. 조금 전까지 자신들의 위치를 계속 송신했었는데, 완전히 끊겼어요. 스마트폰이 망가진 게 아니라면.”

    “저런...”

    하지만 중단할 수 없다. 구조요청을 수락한 이상, 괴물이 먹다가 남긴 시체나 유품이라도 회수해야 하기에.

    의뢰란 그런 것이다.

    “움머어어!”

    “푸르르르!”

    쿵! 쿠웅!

    푸른색 소와 초록색 사슴처럼 생긴 괴물이 뿔을 맞대며 거칠게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가죽의 색만 좀 특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저것들을 잡으면 식량 걱정은 없겠네요.”

    덩치가 매우 컸다. 뿔만큼이나 흉흉한 송곳니와 아래턱은 덤이고.

    “블루 레이저 카우와 그린 파이어 디어. 말씀처럼 식용이 가능한 S급 괴물들이에요.”

    “흠...”

    블루 레이저 카우(Blue laser caw).

    그린 파이어 디어(Green fire deer).

    괴물의 이름이 너무 성의 없다고 생각하는 건 나뿐인 걸까?

    “아몰랑 씨. 짐작대로 의뢰인들은 죽은 것 같아요. 장애물이 없는 평지에서 저것들을 따돌린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죠.”

    “나틸리아 양은 어떻습니까?”

    “...반반입니다. 체력에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놈들을 따돌릴 만큼 거리를 벌린 후에 탈진하길 기대해야죠.”

    “도주 말고 토벌이요.”

    “......”

    “저 괴물들이랑 똑같이 S급이잖아요.”

    순수한 호기심이었다.

    “1대1 상황이고, 최상의 상태에서 충분한 무기만 갖춰진다면 아슬아슬하게 사냥할 수 있을 거예요.”

    “그렇군요.”

    진다는 말의 우회적 표현이었다.

    “아몰랑 씨는 어떻게 싸우고 싶으세요?”

    “달리 방법이 있습니까?”

    “괴물들은 영역 문제로 죽을 때까지 싸우진 않아요. 방법은 크게 2가지. 화해하기 전에 난입하던가, 지쳐서 화해한 직후에 기습하던가.”

    “많이 다릅니까?”

    “네. 개인전과 1대2가 되겠네요. 원하신다면 제가 보조해서 2대2 상황을 만들 수도 있고요.”

    “마음은 고맙지만, 나틸리아 양이 도와주면 2대3입니다. 그렇지?”

    깜빡깜빡!

    눈깔 촉수가 위아래로 끄덕이며 긍정했다.

    ‘취급이 참...’

    내가 약하다는 건 뼈저리게 잘 알고 있지만, 그렇다고 SSS급 괴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부속품은 아니다.

    그때,

    “음머어어!”

    “앗! 놈이 저희를 봤어요!”

    “회피! 회피!”

    상어처럼 날카로운 이빨이 2중으로 잔뜩 돋아난 괴물 소가 주둥이를 쫙 벌렸다.

    우우웅-

    벌어진 주둥이 앞에 푸른색 광원이 모이기 시작했다.

    “레이저를 준비하는 거예요!”

    “어서 거리를 벌려야...!”

    “괜찮습니다.”

    “아, 아몰랑 씨?! 위험-”

    팟!

    푸른색 레이저가 하늘이라고 방심한 우리를 향해 쏘아졌다.

    그러나,

    “저에게는 안 통합니다.”

    파스스스...

    눈에 보이지 않는 속도로 쏘아진 레이저는 내 몸을 꿰뚫지 못하고 흐지부지 사라졌다.

    “무효화? SSS급 괴물의 정신 지배를 방어하면서 S급 괴물의 공격까지? 말도 안 돼...”

    “또 오네요.”

    화르륵!

    이번에는 녹색 불길이 우리를 뒤덮을 기세로 쏘아졌다.

    레이저랑 달리 저것은 넓게 퍼지는 방사형이었기에,

    쫙!

    인력거를 보호하기 위해 팔다리를 쭉 펼친 채 불길을 향해 뛰어들었다.

    “...받은 만큼 돌려줘야겠지?”

    깜빡깜빡!

    내 말을 알아들은 눈깔 촉수가 검으로 변했다.

    “움머어어...!”

    “푸르르르...!”

    나를 위협으로 간주한 걸까? 바로 화해하고 동맹을 맺은 두 괴물이 사이좋게 돌진했다.

    푹!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땅에 꽂았다.

    “움머!”

    “푸르르!”

    퍽! 퍽!

    그러나 땅속에서 솟구친 두 칼날은 괴물의 두꺼운 가죽을 완전히 가르지 못했다.

    ‘적의 숫자만큼 소환된다더니...’

    괴물 쥐를 몰살시켰을 때처럼 칼날이 지평선 너머까지 가득 메우는 웅장한 장면은 연출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멋지게 가자.”

    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검신(劍身) 주변이 어두컴컴해지면서 별빛 같은 알갱이들이 모여들었다.

    도둑년이 사용했던 검풍?

    전혀 달랐다.

    빛의 알갱이에 닿은 모든 것이 흔적도 없이 소멸했으니까. 판타지가 통하지 않는 내 몸만 무사했다.

    “충전식이군?”

    힘을 더 모으고 싶지만, 저 놈들이 그때까지 기다려줄 것 같지 않았다.

    부웅-

    그래서 지면이랑 평행한 방향으로 놈들에게 휘둘렀고,

    “음머?”

    “푸르?”

    쿵! 우당탕!

    아직 근처까지 오지도 못한 두 괴물은 다리가 모두 절단되어 땅바닥에 처박혔다.

    “너, 낭만을 아는구나?”

    깜빡깜빡!

    꼼짝 못 하는 두 S급 괴물의 멱을 따주며 간단히 마무리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