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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3화 (134/232)
  • 133화

    [7장-4절] 이게 주인공이지!

    마음 같아서는 환자를 삼킨 괴물 코끼리랑 영혼의 한 판을 붙어보고 싶지만,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제대로 쓸 수 있을 때까지 참아야 했다.

    깜빡깜빡.

    녀석은 얌전히 내 오른팔에 감겨 있었다.

    ‘곤란한 점도 있네.’

    정신적인 공간이 완벽히 차단된 까닭에 내 의지를 전달할 방법이 뚜렷하게 없었다.

    예를 들자면?

    ‘검!’

    전혀 반응하지 않는다.

    “검!”

    깜빡깜빡!

    내 말을 알아들은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칼로 변해서 내 오른손을 감싸듯 일체화했다.

    “잘했어.”

    고분고분한 건 좋지만, 직접 말해야만 통제가 되기에 다채롭고 신속한 전투는 무리였다. 이런 불안한 상태로 괴물 코끼리랑 싸울 수 있을까?

    자살행위다.

    “볼 때마다 놀랍네요. 지금까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제어에 성공한 초능력자가 없었는데...”

    “그렇습니까.”

    “아차! 제 소개를 깜빡했네요. 저는 S급 헌터 나틸리아라고 합니다.”

    나틸리아!

    굳이 알 필요 없는 그녀의 이름이 내 머릿속에 저장됐다.

    “나틸리아 양. 만나서 반갑습니다.”

    “제 초능력은 S급으로 분류된 가속입니다.”

    “흠...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네. 제 체력만 버텨주면 지구 반대편도 순식간에 갈 수 있어요.”

    “그러면 시간정지랑 비슷하겠네요.”

    “아뇨. SSS급 초능력 시간정지는 타인에게도 걸어줄 수 있지만, 이건 자신에게만 돼요.”

    “아하!”

    그래도 ‘가속’이 대단한 초능력인 건 틀림없었다. 그러니 S급 판정을 받은 거겠지만.

    “아몰랑 씨는 어떤 집을 선호하시나요? 아파트, 빌라, 단독주택, 원두막, 야영...”

    “야영하는 사람도 있습니까?”

    “네. 그것도 도시의 외곽에 허름한 천막을 치고 삽니다. 저희는 그걸 초능력 중독이라고 불러요.”

    “...초능력을 쓰고 싶어서 온몸이 근질거리는...?”

    “네. 정확해요.”

    “흠...”

    그 기분을 나도 잘 안다. 수영황제 남해수의 꿈속에서 ‘고무신’ 사부님께 태권도를 배운 뒤부터였을까.

    현실에서 합법적으로 발차기할 기회가 보이면 시비를 걸어서라도 몸을 풀었었다.

    하물며 초능력?

    맨손으로 번개나 불덩이를 던지는 그들이 도시 한복판에서 마음껏 초능력을 사용할 수 있을 리 없다. 그러니 위험해도 도시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잠시 말이 셌는데, 아몰랑 씨는 어떤 집을 선호하시나요?”

    “흠... 공항에서 가까운 저층의 빌라나 단독주택을 원합니다.”

    “어머! 훌륭한 판단이에요. 대충 예상은 되지만, 공항을 선호하시는 이유를 여쭤도 될까요?”

    “그래야 해외지원이 편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내가 10명이나 되는 SSS급 헌터를 몰살시켰기에 10배로 신속하게 일하려면 어쩔 수 없는 선택.

    내 대답에 나틸리아가 살포시 웃으며 말했다.

    “기억을 잃으셔서 모르시겠군요. 항공은 비행형 괴물이 활개 치는 탓에 완전히 막혔어요.”

    “아...”

    “저희는 S급 초능력 공간도약으로 해외지원을 할 거예요. 역으로 도움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고.”

    “그러면 그 S급 초능력자의 집에서 가까운 곳으로 부탁합니다.”

    “굉장히 적극적이시네요.”

    “아마... 저도 이 녀석을 써보고 싶은 것 같습니다. 벌써 중독일지도?”

    깜빡깜빡.

    다시 눈깔 촉수로 변한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내 오른팔을 휘감았다.

    “정리해볼게요. 헌터 지원이 용이한 장소. 저층은... 지진이나 비행형 괴물을 경계한 선택인가요?”

    “네.”

    그런 이유도 있지만, 고층에서 살아본 적이 없어서 익숙한 쪽을 골랐다.

    “잠시만 기다려주세요.”

    “네... 음?”

    방금까지 내 눈앞에 있던 나틸리아의 몸이 흐릿해지며 사라졌다.

    S급 초능력 가속.

    정말 터무니없는 성능이다.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나를 죽일 수 있겠는데...?’

    상성이라고 할까.

    가속의 상위호환 취급을 받았던 SSS급 초능력 시간정지는 나에게 아무런 위협도 안 됐었기 때문이다.

    스르륵-

    “이 중에 골라보세요.”

    “...네.”

    그리고 금방 다시 나타난 나틸리아가 부동산 자료 8장을 보여줬다.

    「SSS급 푸른 도시의 정원」

    「모두가 살고 싶은 SSS급 저택」

    「SSS급 자연이 숨 쉬는 집」

    “사진까지 첨부했어요.”

    “정말 빠르네요.”

    “빠르기만 할 뿐이에요. 마음에 드는 집이 있을까요? 없으면 시간을 더 들여서 다시 구해볼게요.”

    “흠...”

    이 세계의 사람들은 SSS급을 참 좋아하는군.

    내 감상은 딱 그 정도였다.

    ‘아무거나 하자.’

    이 세계에 뼈를 묻을 게 아니기에 주거지는 딱히 중요하지 않았다.

    “준비해주셔서 감사하지만, 상식마저 잃어버린 저로선 봐도 모르겠네요. 나틸리아 양이 추천해주세요.”

    “그러면 이 집으로 할게요.”

    “네.”

    「S급이 지키는 동화마을」

    그녀가 추천한 집의 이름에는 SSS급이 붙지 않았지만, S급 헌터가 상주한 덕분에 안전한 부자 동네란 뉘앙스를 강하게 풍겼다.

    연예인 누구가 사는 아파트.

    정치인 누구가 사는 동네.

    딱 그런 느낌이랄까?

    “빠르게 입주하려면 당장 실내장식을 꾸며야 하는데요. 원하시는 부분이 있을까요? 화장실이나 침대가 둘이어야 한다거나...”

    “없습니다.”

    “네. 아직 실적이 없어서 예산이 덜 나왔지만, 아몰랑 씨의 능력을 보여주면 요리사, 주치의, 가정부, 시녀도 마음껏 늘릴 수 있을 거예요. 원하시면 애완동물도.”

    “그러면 바로 가죠. 가볍게 능력을 시험해볼 사냥터로.”

    SSS급 헌터에 어울리는 다양한 혜택을 준다면 사양하지 않겠다.

    “네.”

    나틸리아는 스마트폰을 조작해서 사냥터를 물색했다.

    탁탁탁.

    여기에도 초능력이? 스마트폰 액정을 누르는 그녀의 손가락이 부채처럼 보이는 착시현상마저 일어났다.

    “......”

    저 사기적인 초능력이 S급밖에 안 되는 이유를 도저히 모르겠다.

    “찾았어요.”

    “어디입니까?”

    “도시 외곽으로 나가야 해요. 헬기를 이용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연료를 절약해야 해서 급한 사건이 아니면 이용할 수 없어요.”

    “그러면 대중교통을?”

    “설마요. 저희는 인력거를 이용할 겁니다.”

    인력거(人力車).

    사람의 힘으로 움직이는 수레.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서 심심찮게 보았던 가마꾼과 가마가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삑, 삑.

    스마트폰을 조작한 나틸리아는 초능력을 쓰지 않고 내가 알아들을 수 있는 속도로 통화했다.

    “인력거를 보내주세요.”

    (S급 헌터 나틸리아 양. 무슨 일인지 간략하게 설명 부탁합니다.)

    “아몰랑 씨의 능력 시험이요.”

    (아! 금방 그쪽으로 보내겠습니다.)

    삑-

    통화를 종료한 나틸리아가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

    “금방 올 거예요.”

    “안녕하십니까! 호출하신 B급 인력거가 도착했습니다~!”

    창문 너머로 우렁찬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금방 왔죠?”

    “...정말 금방이네요.”

    창문 앞에서 대기 중이었다고 해도 믿을 수 있을 것 같은 속도다.

    심지어,

    ‘이게 인력거라고...?’

    멀리서도 눈에 띄는 노란색 형광 양복을 입은 두 남자가 2인승 가마를 앞뒤로 메고 있었다.

    여기까지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두 남자의 발이 땅이 닿지 않는 3층 높이의 허공에 있다는 게 문제!

    덜컥.

    나틸리아가 창문을 열었다.

    “아몰랑 씨. 타세요.”

    “예? 아, 네.”

    전혀 예상하지 못한 문화충격으로 잠시 넋을 놓았던 나는 2인승 가마에 올라탔다.

    스윽-

    그리고 어느새 내 옆자리에는 나틸리아가 자연스럽게 탑승해 있었다.

    ‘진짜 빠르네!’

    총알도 피하는 내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는 사실에 소름마저 돋았다.

    “어디로 모실까요?”

    “위험도 B급 사냥터로 지정된 쉐도우 마우스의 둥지로 가주세요.”

    “네!”

    휘익~

    탑승객의 주문을 접수한 인력거가 정말로 하늘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멋지네.’

    괴물의 위협만 없으면 매력적인 세계일 것 같다.

    * * *

    쉐도우 마우스(Shadow mouse).

    직역하면 그림자 쥐!

    덩치는 고양이 수준이라서 괴물치고는 작은 편에 속하지만, 쥐구멍 대신 그림자로 이동하는 까닭에 사냥이 매우 까다로운 F급 괴물.

    평범한 쥐처럼 번식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놈들의 숫자를 줄여두지 않으면 S급 괴물보다 위험하다고...

    “찍찍!”

    “찍찍!”

    하지만 하늘에는 그림자가 없기에 괴물 쥐들은 고개를 쳐들고 우리를 올려다보며 입맛만 다셨다.

    “쉐도우 마우스를 사냥하는 방법은 간단하면서도 어려워요. 그림자를 지우는 거죠.”

    “정말 어렵군요.”

    그림자는 괴물의 발밑에 기본적으로 생기기 때문이다.

    “그래서 빛을 여러 방향에서 쏘는 방식으로 사냥해요. 놈들이 완전히 들어가기 직전에 빛을 쏴서 그림자를 쫓아내면 몸이 절단되거든요.”

    “오호~”

    의외로 간단할지도?

    “문제는 이미 자주 써먹은 탓에 놈들이 마침내 학습했다는 거예요.”

    “저런...”

    “그 탓에 점점 투입되는 헌터의 질과 양이 늘어나는 추세예요. 위기의식을 느낀 정부에서 박멸 작전을 8차례나 진행했지만, 그림자로 도망친 소수가 번식해서 더욱 영악한 무리를 만드는 악순환이 반복되고 말았죠.”

    “이해했습니다.”

    인간의 사냥법을 학습한 쉐도우 마우스는 그림자가 잘 생기지 않는 평야로 절대 나가지 않았다.

    나무 아래, 버려진 건물 내부...

    그림자가 반드시 생기는 장소만 골라서 다녔다.

    “밤에는 어떻게 합니까?”

    그림자는 아니지만, 빛을 받지 못해서 어둡다는 조건은 똑같은데.

    “좋은 질문이에요. 쉐도우 마우스가 들어갈 수 있는 그림자의 크기는 정해져 있어요. 지나치게 크면 물에 빠진 생쥐처럼 그림자에서 영영 못 빠져나와서 죽어버리죠.”

    “그건 다행이네요.”

    저것들이 도시에 숨어들면 재앙이 펼쳐지리라.

    “찍찍!”

    “찍찍찍!”

    지금도 우리를 잡기 위해 수직으로 뛰어오르는 쉐도우 마우스.

    닿진 않았지만, 평범한 쥐랑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도약력이었다.

    “저희는 놈들이 더 영역을 넓히지 못하도록 넓은 범위를 깔끔히 청소해서 평지로 만들었어요.”

    “오! 독 안에 든 생쥐네요.”

    “하지만 안심할 순 없는 심각한 상황이에요.”

    “...SSS급 헌터들 때문에요?”

    찔리는 구석이 있는 나로선 그것부터 떠올랐다.

    “아뇨. 쉐도우 마우스 무리가 평범한 생쥐처럼 땅굴을 파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 알게 됐어요.”

    “땅굴을...?”

    “네. 박멸 작전이 계속 실패한 원인이 밝혀진 셈이죠. 레이더로 탐지해서 잡아내고 있지만, 이것들이 한 마리라도 도시의 하수구로 숨어들면 그때는 정말 끝장이에요.”

    “심각성을 이해했습니다. 제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도 포함해서.”

    깜빡깜빡.

    나랑 눈이 마주친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눈깔.

    “가볼까?”

    깜빡깜빡!

    내 질문에 대답하듯 형태를 검으로 되돌린 SSS급 괴물.

    “다녀올게요.”

    “네? 잠깐만요! 여긴-”

    나는 만류하는 나틸리아를 무시하고 인력거에서 뛰어내렸다.

    “찍찍!”

    “찍찍찍!”

    그런 나를 반기듯 주위의 괴물 쥐들이 일제히 달려들었다.

    ‘못 하면 죽을뿐.’

    놈들을 향해 오른손을 휘둘렀다.

    솨아아-

    나의 세계 탓에 초능력을 쓸 수 없는 내 오른손에서 발현된 검풍.

    “찌익-?!”

    “찍-?!”

    손톱과 이빨을 세우며 내게 달려들었던 괴물 쥐들이 토막났다.

    이걸로 끝?

    아니다.

    “잘 부탁해!”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최소한 다리 골절이었을 높이에서 뛰어내리고도 무사히 착지한 무당 강문수.

    푹!

    나는 박물관에서 만난 도둑년이 했던 것처럼 칼날을 대지에 꽂았다.

    ‘나의 인지 범위라...?’

    사극 <궁녀 덕춘이>의 세계에서 도둑을 잡기 위해 감각을 키웠었다. 그리고 이때의 성장은 지금도 유효하고.

    쿠구구구-

    지진이 난 것처럼 땅이 흔들렸다.

    “찍?!”

    “찌익?!”

    푹! 푹! 푹! 푹...!

    땅속에서 죽순처럼 솟구친 무수히 많은 촉수가 쉐도우 마우스들의 몸통을 꿰뚫었다.

    수백? 수천? 수만?

    셀 수 없이 많은 괴물의 시체가 지평선 너머까지 끝없이 펼쳐졌다. 그리고 보이지 않지만, 땅속에도 놈들의 시체가 바글바글하다.

    고작 한 방.

    인류가 8차례나 시도하고도 실패한 쉐도우 마우스의 박멸이 간단히 완수됐다.

    “...이름값 하네.”

    깜빡깜빡?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이 눈깔이 어째서 SSS급으로 분류됐는지 확실하게 이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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