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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림 브레이커-132화 (133/232)

132화

(음? 지금쯤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어떻게든 손에 넣었을 줄 알았는데, 아주 난리가 났군.)

그렇게 됐어요. 방송은 잘 됐나요?

(그래. 올림픽 피메달에 도전할 생각이 있는지 집요하게 물어보더군.)

피메달... 헉!

잠시 딴생각하는 사이에 내 머리 위로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가 뚝 떨어졌다.

콰르르르!

(죽기 싫으면 집중해라.)

“큭!”

(엉뚱한 녀석이 선점했군. 아니, 이 경우에는 SSS급 괴물에게 선택당했다고 해야 할까? 제어를 전혀 못 하는 호구를 제대로 잡았어.)

“흠...”

박물관을 일격에 베어낸 힘이 놀랍긴 하지만, 그 무지막지한 코끼리 괴물이랑 비교하면 약해 보이는데?

둘이 똑같은 SSS급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참고한 소설 설정을 그대로 적용했다면, 등급의 기준은 얼마나 사람을 잘 죽이느냐로 결정될 거다.)

“흐음...?”

코끼리 괴물이랑 비교하면 이쑤시개보다 작은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살상력이 엇비슷하다고?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보면 알겠지.)

“오! 신이시여! 봉인이 풀렸어!”

“상부에 빨리 연락해!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눈을 떴다고...!”

“후퇴! 전원 후퇴!”

“죽기 싫으면 당장 도망쳐...!”

날뛰던 괴물들을 생포할 만큼 압도적인 실력을 보여주던 헌터들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뒤도 안 돌아보고 도주!

저것의 위험성을 전혀 실감하지 못하는 나만 남았다.

그때,

“히히히...!”

푹!

제정신이 아닌 헌터가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땅에 꽂았다.

‘이건...?’

무슨 헛짓인가,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판타지의 기적에 제법 익숙해진 나는 자연스럽게 땅을 주시했다.

촤아-!

발밑에 균열이 생기면서 촉수처럼 생긴 칼날이 솟구쳤다.

“와! 위험했네!”

파스스스...

그것은 내 몸에 닿기 직전에 모래처럼 바스러지며 사라졌다.

내가 전혀 반응하지 못할 만큼 빠른 기습!

“악~?!”

“내 다리~?!”

“꺄악~?!”

그러나 전의를 상실하고 도주를 선택한 헌터들은 아니었다.

내딛은 땅 아래에서 갑자기 솟구친 칼날에 몸이 꿰뚫리며 절단되거나, 운 좋게 피했어도 팔이나 다리 한 짝을 잃고 말았다.

‘젠장!’

이 촉수는 대체 뭐야?!

(그건 놈의 이름을 상기해봐라.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은하계 장군의 대단하고 웅장한 무한의 칼날... 아!”

무한의 칼날?

(그래. 이 SSS급 괴물은 사용자가 인지할 수 있는 적의 숫자만큼 칼날을 소환할 수 있다.)

“적의 숫자만큼...?”

(적이 한 명이면 한 개, 백 명이면 백 개, 만 명이면 만 개, 억 명이면 억 개. 그 이름처럼 무한하지. 이론상으로는 도시의 모든 인간을 순식간에 몰살시킬 수 있다.)

“......”

소름이 돋았다.

여기는 도시 한복판.

어쩌면 조금 전에 놈이 칼을 땅에 꽂은 순간, 헌터들뿐만 아니라 도시의 모든 인간이 죽었을 가능성도 있었다.

‘망한 건가?’

나중에 생각하기로 했다.

“히히?”

내가 멀쩡한 것을 본 SSS급 괴물에 씐 헌터가 고개를 갸웃했다.

슈욱-!

그리고 나를 향해 발밑에서 다시 쏘아진 촉수.

파스스스...

그러나 결과는 바뀌지 않았다.

“야! 눈깔! 헛짓거리하지 말고 제대로 덤벼!”

타닥.

땅을 박차며 달렸다.

“헛짓거리? SSS급 헌터가 된 나에게 감히- 히히히!”

인피니티 블레이드에게 완전히 지배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는 사실이 더욱 충격적이었다.

물론, 천박한 웃음을 보면 정신이 멀쩡한 것 같지도 않지만.

슈우-!

파스스스...

그녀는 포기하지 않고 촉수로 계속 나를 노렸지만, 단 한 번도 성공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헌터가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쥐지 않은 왼팔을 나에게 뻗었다.

번쩍...!

그녀의 손끝에서 튀어나온 번개가 나에게 쏘아졌다.

파직.

그러나 이번에도 통하지 않았다. 주위에 흘러넘치는 방대한 전류의 스파크조차 나를 어쩌지 못하고 도망치듯 대기로 흩어졌으니!

‘와!’

그러나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몇 번 감전된 경험이 있는 나로선 솔직히 무서웠다.

번개는 현실에도 존재하니까.

이건 ‘세계의 설정’ 기준이 매우 모호한 탓이다.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괴물이 내 몸을 후려칠 수 있었기에. 이 번개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생명체라서?

나중에 여유가 되면 명확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었다.

“무효화? 고작 F급 따위가 말도 안 돼...!”

번쩍!

슈우우-

촉수와 번개가 동시에 나를 노렸으나 그 무엇도 내게는 통하지 않았다.

박물관을 생크림 케이크처럼 절단한 공격이라면 통할 수도 있지만, 이미 공황에 빠진 헌터는 제자리에서 같은 공격만 반복했다.

그 모습이 답답했던 걸까?

깜빡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에 달린 눈동자가 진지하게 나를 주시했다.

그 직후,

“이, 이건 뭐- 히히히!”

헌터의 오른손과 칼의 손잡이가 결합하기 시작했다.

자기 몸에 생긴 충격적인 변화에 놀라는 것도 한순간뿐, 헌터는 정말 미친 듯이 웃으며 오른팔을 휘둘렀다.

휘리릭~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내 몸을 훑고 지나갔다.

(검풍이군. 무시해라.)

네!

괴물의 능력을 무시하지 못했다면 내 몸이 예쁘게 썰렸을 것이다.

‘SSS급이 맞네.’

내가 ‘무당’이 아니었다면 이 잠깐 사이에 30번도 더 죽지 않았을까? 그만큼 압도적인 살상력이었다.

다만,

“히히히?!”

상성이 좋지 못했다.

에이션트 블랙 엘리펀트가 순수한 전사라면,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초능력자.

그리고 나는 초능력자에 특화된 사냥꾼이다.

“당장 내놔!”

“히히- 꺼윽?!”

검술을 전혀 모르는 가녀린 여인이 휘두르는 칼은 우습기만 했다.

뻔하고, 느리고, 단순하고...

(우습지? 내가 너를 볼 때마다 느끼는 감정이다.)

...그렇다고 한다!

빡!

허술한 칼질을 간단히 피하면서 헌터의 복부에 발차기를 꽂았다.

수직으로 꺾인 허리.

오른팔이랑 완전히 일체화된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놓치진 않았지만, 그녀의 저항은 끝났다.

“내놔.”

“꺄아아아~?!”

칼이랑 합쳐진 오른손을 절단할 기세로 손목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고통에 허우적대는 헌터가 반항하지 못하도록 얼굴에 한 방!

빠각!

코가 주저앉고 피범벅이 된 헌터의 얼굴이 힘없이 축 늘어졌다.

(여자를 죽여라.)

“예? 굳이...”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설정에 따르면,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기존 숙주가 죽기 전까지 숙주를 바꿀 수 없다. 주인공이 칼을 도난당해서 다시 약해지는 상황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지.)

“허!”

내 입에서 탄식이 절로 나왔다. 소설을 기초로 창조된 세계가 주인공에게 얼마나 친절하고, 배려심 넘치는지는 아주 잘 알고 있으니까.

그러나,

“설정은 설정일 뿐.”

“......”

덥석.

뇌진탕으로 기절한 여자의 머리에 내 손바닥을 얹었다.

‘숙주에게서 떨어져라!’

소설의 주인공을 배려한 설정을 ‘나의 세계’로 뒤덮었다.

깜빡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에 박힌 눈깔이 당혹감으로 물들었다.

스르륵...

칼의 손잡이랑 합쳐졌던 헌터의 오른손이 서서히 분리됐다.

“이리와.”

덥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살짝 걱정이군. 너를 숙주로 삼으면 평범한 칼이 될 것 같아서.)

“...아뇨.”

성공했습니다.

(그래? 희한한 기준이군.)

나에게 이로운 설정만 선택적으로 받아들인 게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무협 소설 <이 천마 실화냐?>의 세계에서 내공을 잃지 않았을 테니까.

성질.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주인공은 정신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초능력의 소유자였을 것이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고.

즉,

(한 번 정한 숙주를 바꾸지 않는 것은 강제성이 아닌 이 괴물의 순수한 본능이란 거군.)

이것도 ‘세계의 설정’이긴 하지만, 개가 한 번 정한 주인을 바꾸지 않듯이 현실에 존재하는 ‘집착’이다.

마법이나 초능력 같은 판타지가 아니란 의미!

“안녕?”

깜빡깜빡!

내 정신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텐데도 SSS급 괴물은 얌전히 눈알만 움직였다.

(후배야. 어떠냐?)

뭐가요?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주인공이 된 소감이.)

“아...”

그랬다.

내가 SSS급 헌터를 몰살시켰기 때문에 이 세상에는 SSS급 헌터가 존재하지 않는다.

그 소설 설정이랑 완벽하게 일치!

의도한 건 아니었지만, 선배의 말처럼 내가 주인공이 된 셈이었다.

(소감은?)

“흠... 이게 현실이 아니라서 그다지 아무런 느낌도 없네요. 그래도 굳이 꼽자면 안도감?”

(그렇군. 적어도 자살할 마음은 사라졌다는 뜻인가?)

네.

(그러면 잘해봐라. 나는 레온이란 왕자가 갑자기 찾아와서 시비 거는 바람에 현실에 집중해야겠다.)

“레온!”

(네 여자친구를 노리는 수컷에게 전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라. 내가 특별히 전해주마.)

...다른 여자를 알아보라고 정중하게 말해주세요.

(정중하게? 오냐.)

“그러면 나도...”

엉망진창이 된 현장을 수습할 수 있도록 협조해볼까?

도시에 사는 모든 인간이 이 녀석에게 몰살당하지 않았다면 말이다.

* * *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숙주가 인지할 수 있는 범위만 공격할 수 있었다.

“아몰랑 씨. 금방 또 뵙는군요.”

“그러게요.”

“이쪽에 앉아주십시오.”

“네.”

이 설정 덕분에 인명피해는 박물관에 출동한 헌터들로 한정됐다.

희생된 그들에게는 안된 일이지만, 내가 자책할 필요는 없었다.

‘동료끼리 친하게 지냈어야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숙주가 됐다고 해서 바로 미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함께 출동한 동료들을 촉수로 공격한 것은 온전히 그 여성 헌터 본인의 의지였다는 뜻.

지금도 마찬가지다.

“얌전히 있어.”

살랑살랑~

내 오른팔을 뱀처럼 휘감은 SSS급 괴물이 칼끝을 흔들며 대답했다.

‘휴대하기 편하네! 도난당할 걱정도 없고!’

어째서 현장에서 사라졌는지 의문이었는데,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징그러운 눈깔 촉수처럼 몸의 형태를 바꿔서 지상(地上)과 지하(地下)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었다.

“조사이긴 하지만, 아몰랑 씨를 해코지하려는 건 절대 아니니 오해하지 마십시오.”

“알겠습니다.”

조사관은 말투가 매우 조심스러웠다.

지금의 나는 SSS급 괴물.

마음만 먹으면 도시의 모든 인간을 촉수로 찔러 죽일 수 있다. 그 사실을 눈앞의 조사관도, 그 뒤의 정부에서도 잘 알고 있다.

“자신이 초능력자란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아니요.”

“정확히 어떤 초능력인지 알려주실 수 있습니까?”

“무효화라고 하더군요.”

“흠... 아몰랑 씨의 무효화 초능력은 매우 강력한 것 같습니다. 지금까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지배를 뿌리친 무효화 초능력자는 없었으니까요.”

“그렇군요.”

SSS급 괴물의 제어에 실패한 초능력자들의 운명이 어떻게 되었는지 물어보지 않기로 했다.

“혼란이 예상돼서 아직 공표하지 않았지만, SSS급 헌터들이 전부 실종됐습니다.”

“......”

그 원흉이 바로 접니다!

“그래서 강력한 헌터가 매우 절실한 상황입니다. S급 이상의 괴물은 약한 헌터들을 대거 투입해봐야 진수성찬밖에 안 되니까요.”

“...저에게 이런 힘이 주어진 것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인류를 위해 열심히 뛰어보겠습니다.”

“이런... 어떻게 부탁해야 좋을지 고민이었는데, 정말 감사합니다!”

꾸벅!

의자에서 일어선 조사관이 나에게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감사의 표시를 전했다.

“당연한 일이죠. 지구는... 제가 사는 곳이기도 하니까요.”

“그걸 알면서도 남에게 떠넘기는 이기적인 헌터가 많습니다. 이제 들어오라고 해도 되겠군요.”

“누구를...”

“앞으로 SSS급 헌터로 활동하실 아몰랑 씨의 생활이 불편함이 없도록 보조할 S급 헌터입니다.”

끼익-

도청하고 있었던 걸까? 조그마한 창문 하나 없는 밀실의 문이 열리면서 미모의 여인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 안녕하세요.”

풍요의 여신이 실존한다면 이런 모습이지 않을까?

깜빡깜빡.

인피니티 블레이드의 눈깔이 내 마음을 대변하듯 그녀의 풍요로운 몸을 빤히 쳐다보며 구경했다.

“귀엽네요.”

“그렇습니까.”

이 눈깔 촉수가 귀엽다고? 특이한 취향이군.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저도요.”

뿔난 송선영 앞에 무릎 꿇고 싹싹 비는 내 모습이 벌써 상상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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