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1화
[7장-3절] 나는 너로 정했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짧게 줄여서 인피니티 블레이드라고 부르지.)
“무한의 칼날... 멋지네요.”
(헌터물 <나만 SSS급 헌터>의 주인공이 사용했던 무기다. F급 초능력자였던 주인공이 유일한 SSS급 헌터로 급부상할 수 있었던 이유지.)
“아아.”
하지만 이 세계의 인물 설정은 헌터물 를 사용하고 있다.
그 주인공이 없다는 의미!
헌터물 의 세계관에는 <나만 SSS급 헌터>처럼 정신을 완벽하게 보호하는 F급 초능력자가 없는 걸까?
(있었다면 SSS급 무기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지 않았겠지.)
“그렇겠죠...”
이 세계의 설정을 무시하는 나라면 SSS급 무기,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완벽하게 다룰 수 있다.
저주받은 검?
나랑 상관없는 얘기다.
(나머지는 알아서 해라. 나는 지금부터 방송국에 가봐야 해서 바쁘다.)
“감사합니다...”
(흥! 감사할 것 없다. 병 주고 약 줬을 뿐. 잘해봐라.)
“네.”
나는 나를 해치려는 ‘적’들을 제거했을 뿐이다.
그게 잘못인가?
이 해답은 아직 찾지 못했지만, 그건 다 끝낸 후에 천천히 생각해도 늦지 않으리라.
“자...”
주위를 둘러봤다.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재앙으로 분류되는 SSS급 괴물임에도 불구하고 불쌍할 정도로 인기가 없었다.
깜빡깜빡.
그 칼에 달린 눈동자가 나를 신기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지금부터가 문제네.’
내가 SSS급 초능력자였다면 대우가 달랐겠지만, 민간인이 박물관 관리인에게 SSS급 괴물을 만져보게 해달라고 부탁해서 될 리 없었다.
훔치는 건?
통통.
“......”
터무니없이 단단한 유리다. 나라를 멸망시킬 수 있는 SSS급 괴물을 봉인하려면 이 정도는 당연한 조치.
그 누구의 손도 닿지 않는 은밀한 장소에 보관하지 않고, 대중들에게 보여준다는 것부터가 보안에 자신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내가 검귀였다면...’
이 유리가 아무리 단단해도 두부처럼 베어버렸으리라. 칼날처럼 생긴 검귀의 팔은 ‘무엇이든 자를 수 있는 세계’이기 때문이다.
나도 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것은 나도 ‘괴물’이 되어야 한다는 의미. 고작 꿈속에서 물건 하나를 훔치기 위해 치러야 하는 희생으로는 너무 컸다.
“...나중에 보자고.”
깜빡깜빡.
두꺼운 유리관에 막혀서 내 목소리가 들릴 리 없지만, 그래도 한마디 한 후에 몸을 돌렸다.
어딘가에 숨기 위해!
‘어디가 좋을까? 화장실? 창고? 수유실? 관계자실?’
박물관의 구조를 머릿속에 담으며 밤이 오길 기다렸다.
(손님 여러분께 알려드립니다. 박물관 운영시간은 연중무휴 08시부터 18시까지입니다.)
바로 이 시간을!
(현재 시각은 17시 40분입니다. 안내자의 지시에 따라 가까운 출구 혹은 입구로 이동해주십시오.)
“19분밖에 안 남았습니다! 구경이나 사진 촬영은 멈춰주시고 출구로 이동해주세요!”
“벌써 시간이...”
“마지막으로 한 장만...!”
“너무 빨리 닫아.”
관람객들이 불평을 쏟아내면서 출구로 우르르 이동했다.
“될려나?”
“그르르르?”
공짜로 괴물을 만져볼 수 있는 체험장에 온몸이 꽁꽁 포박된 채 전시된 지니어스 울프.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입마개 사이로 의문을 표시했다.
‘보는 사람은... 뭐, 상관없나?’
톡-
신발을 벗은 후, 내가 할 수 있는 최고의 뒤돌려차기를 했다.
우득!
괴물을 포박할 정도로 단단한 쇳덩이와 사람의 발이 충돌했다.
“큭!”
당연히 멀쩡할 수 없었지만, 나의 세계로 부러진 뼈와 찢어진 근육 등을 빠르게 재생했다.
성과는?
“크르르르...”
“쉿.”
“......”
당연히 있었다. 팔의 포박이 완전히 풀리진 않았지만, 벽에 고정하는 접촉부가 덜렁거리고 있었다.
“잘해봐.”
“손님~!”
“네! 갑니다!”
어서 오라고 소리치는 안내원에게 죄송하다는 의미로 고개 숙여 인사하고 빠르게 달렸다.
휙~
도중에 화장실로 빠지긴 했지만!
“손님?”
그러나 3분도 안 지나서 경비원이 화장실로 들어오더니 얼른 나가라고 재촉했다.
‘이런...’
완벽하다고 생각했는데, 어딘가에 설치된 감시카메라에 내가 찍힌 모양이다.
어쩔 수 없지.
“정말 죄송합니다. 배가 너무 아파서 좀 걸릴 것 같아요.”
“에휴... 안에 휴지는 충분합니까?”
“네.”
“천천히 볼일 보고 나오세요. 화장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수세식 변기 위에 앉은 채 기다렸다.
* * *
잃는 능력이 아깝긴 하지만, 꿈이 지금처럼 안 풀리면 진지하게 자살도 고민했었다.
어차피 반쯤 포기한 목숨이라면 미친 척할 수도 있잖아?
사고는 금방 터졌다.
위이이잉~!
(지니어스 울프 4호가 탈출했어! 얼른 빠져나와! 차단벽 내릴 거야!)
다급한 감정이 묻어난 사람의 안내방송이 들렸다.
손님은 전부 빠져나간 상황.
하지만 이제 막 운영시간이 끝났기에 중간중간 설치된 차단벽이 내려가진 않았다.
“아우우울!”
그 사실을 괴물도 알고 있었다.
지니어스 울프.
똑똑한 늑대!
두 발로 걷는 이 늑대 괴물은 오랫동안 박물관에 전시된 덕분에 가장 보안이 허술한 시간을 알고 있었다.
바로 지금!
손님의 안전보다 퇴장에 집중하는 이 시간이 유일한 기회다.
“손님! 손님!”
“네! 저도 들었어요!”
“빨리 도망쳐야 합니다! 똥 싸다가 죽고 싶으세요?!”
“먼저 가세요!”
“그럴 수... 아, 젠장! 화장실을 나오고 오른쪽으로 돌아서 쭉 달리시면 비상구가 나옵니다!”
탕!
목숨이 아까웠던 경비원이 화장실 문을 거칠게 닫으며 떠났다.
“...좋아.”
나의 시간이 왔다.
(미치겠네! 탈출한 지니어스 울프 4호가 1호, 2호, 3호까지 풀어줬어! 이 괴물은 단독행동만 할 텐데?!)
(젠장! 화장실에 손님이 있다고?! 손님! 손님! 제 목소리가 들리시죠? 절대 화장실 밖으로 나오지 마세요! 어떻게든 10분만 참으세요!)
“10분? 빠르네.”
괴물들을 제압할 헌터들이 10분 안에 도착한다는 게 놀라웠다. 그만큼 괴물의 습격이 흔한 세계란 의미.
현대에도 화재가 빈번하게 발생한다면 소방차가 5분 안에 도착하는 시스템을 구축하지 않을까?
아무튼,
“아우우울!”
“크아아앙!”
쾅! 와장창! 파직!
오랫동안 억압되며 쌓인 스트레스를 방출하듯 날뛰기 시작한 괴물들이 박물관을 열심히 부수고 있었다.
‘...슬슬 가볼까.’
화장실에 10분만 숨어있으라는 안내방송을 들었지만, 만용과 용기를 구분 못 하는 시민 흉내를 내보자!
끼익-
괴물들이 충분히 날뛸 수 있도록 7분쯤 기다렸다가 화장실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
“휘유~”
멀쩡한 전시품, 전시관이 없을 정도로 엉망이었다.
화장실을 공격하지 않은 게 신기하긴 했지만, 놈들의 목적이 복수와 탈출이라면 당연한 선택.
“시간이 없긴 하지.”
똑똑한 늑대 괴물들이 인간의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10분 안에 탈출하거나 숨어야 한다는 사실도 알고 있을 테니까. 서두를 수밖에 없다.
“코오오오!”
“...어라?”
하지만 괴물이 인간의 말을 못 알아들을 만큼 멍청하다면?
내 눈앞에 있는 놈처럼 탈출 대신 보이는 모든 걸 파괴하면서 난동을 부릴 것이다.
블랙 코알라.
덩치가 평범한 고릴라의 2배 정도의 검은색 코알라다. 당연히 육식이고, 인간을 사탕수수처럼 붙잡고 발끝부터 씹어먹는 F급 괴물...
박물관의 설명에 적혀 있었다.
“안녕?”
“코오오!”
지니어스 울프가 동족으로 모자라서 이웃들까지 몽땅 탈출시켰다. 혼란이 클수록 탈출에 성공할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리라.
“카르르르!”
“끼에에!”
펑! 쨍그랑! 퍼억!
블랙 코알라 외에도 다양한 F급, D급 괴물들이 우리를 탈출해서 영역을 넓히고 있었다.
“이런...”
번뜩!
박물관에서 인간의 구경거리로 전락하면서 인간을 향한 증오가 매우 강한 괴물들.
지니어스 울프는 나를 은인처럼 여기며 무시하고 놔뒀지만, 다른 괴물들은 그 정도로 똑똑하지 않았다.
“코오오...!”
아이들에게 검은색 털이 당겨지는 수모를 겪었던 블랙 코알라가 육중한 몸을 움직이며 내게 달려들었다.
퍽! 쿵! 쿵! 쿵!
방해되는 모든 장애물을 밀어내면서 일직선으로!
“흠... 먼지가...”
하지만 나는 덩치만 커진 시커먼 코알라 따위에게 관심 없었다. 놈들은 고작 F급 혹은 D급이니까.
민간인들에게는 공포의 대상이지만, B급 초능력자만 와도 순식간에 제압되는 잔챙이들이다.
‘인피니티 블레이드는?’
내가 박물관을 부수는 무리수까지 두면서 구하려는 SSS급 괴물. 놈을 보관하는 두꺼운 유리관도 깨졌는지 확인하는 게 급선무다.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길고 긴 유치한 이름처럼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보유한 괴물인지 벌써 궁금하다.
휙~
“코오오?!”
덩치 빼면 별거 없는 블랙 코알라의 돌진을 간단히 피했다. 놈은 당황한 눈치였지만, 검귀랑 비교하면 하품이 나올 수준. 긴장조차 되질 않았다.
다만,
“무기가 없네...”
박물관에 전시된 무기가 많았었는데, 이 괴물들이 위협으로 간주하고 전부 부숴버렸다.
그래서 무시!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봉인된 장소까지 달렸다.
“코오오오!”
쿵! 쿵! 쿵!
무시당한 사실에 격분한 블랙 코알라가 쫓아왔지만, 내 발걸음을 늦추거나 시선을 돌리기에는 무리였다.
일단 느리잖아?
현실보다 눈에 띄게 빨라진 내 움직임을 따라오기에는 블랙 코알라가 너무 약했다. 그래서 F급 판정을 받은 거겠지만.
“...오!”
터무니없는 두께를 자랑했던 유리관도 괴물의 물리력을 버티지 못하고 파괴됐다.
그러나,
‘없다고...?’
칼에 발이 달렸을 리 없는데, 유리관 주변에 인피니티 블레이드가 보이질 않았다.
다른 괴물이 삼켰나?
인간의 평가 기준으로는 SSS급이지만, 인간을 지배하지 못하면 눈깔 달린 꼬챙이에 지나지 않을지도...
이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키에에에!”
“컹컹!”
튼튼한 박물관 파괴에 지친 괴물들이 일제히 나를 노리기 시작했다.
“이건 좀...”
위험할지도?
계속 무시하긴 힘들 것 같았다.
‘무기, 무기, 무기가 필요... 오! 일단은 저걸로 하자.’
바닥에 굴러다니는 철봉을 오른손에 쥐었다.
묵직한 무게감. 평범한 사람은 양손으로 들어야 원활하게 휘두를 수 있겠지만, 나에게는 전혀 아니다.
부웅~
한손으로 가볍게!
내가 저번에 빌려서 사용한 판타지 무기, 플라스마 전기톱 정도가 아니면 괴물의 몸에 상처를 주기 힘들다.
“크앙?!”
그러나 눈이라면?
덩치만큼 커다란 눈은 파고들기가 매우 쉽다.
또한, 대다수 포유동물은 눈과 뇌 사이에 짧은 시신경으로 연결된 만큼 매우 가까운 감각기관.
“들어갔나?”
“......”
쿵!
눈을 잘 찌르면 뇌까지 파열시켜서 한 방에 죽일 수 있다는 뜻이다.
그건 인간도 예외는 아니지만, 손짓 한 방에 인간의 두개골을 부술 수 있는 괴물이 눈을 찌르는, 그런 섬세한 짓을 할 리 없다.
“얼른 제압해!”
“생포를 우선으로!”
“진짜 귀찮네!”
정말로 사고가 터치고 10분 만에 투입된 초능력자들이 F급, D급 괴물들을 빠르게 제압하기 시작했다.
화르륵~!
파지지직-!불덩이나 번개를 던지는 그 모습은 마법사라고 해도 될 듯했다.
‘압도적이네...’
철봉 하나로 눈을 노리며 힘겹게 싸운 나랑 차원이 달랐다.
초능력.
그 하나의 차이가 이토록 컸다. 올림픽에서 압도적인 성적을 낸 나도 현실에서는 초능력자랑 비슷한 위치이긴 하지만.
내 계획은?
실패.
‘발도 없는 괴물이 대체 어디로 사라진 거야?’
이 소란을 일으키고도 인피니티 블레이드를 찾지 못했다.
그때,
“꺄아아아~?!”
압도적인 전력 차이를 보여주며 여유롭게 괴물들을 제압하던 초능력자의 비명이 들렸다.
그 직후,
“미친...!”
생명의 위기를 느낀 나는 몸을 웅크리며 바닥을 굴렀다.
서걱-
그 많은 괴물이 난동을 부려도 튼튼하게 버티던 박물관 외벽이 케이크처럼 절단됐다.
“히히히히!”
그리고 들려오는 소름 끼치는 웃음.
그 소리의 근원지에서 등장한 여인의 오른팔에 쥐어진 저것은?
슈퍼 그랜드 갤럭시 제너럴 인피니티 블레이드!
“...야!”
“히히히- 응?”
“내놔!”
도둑놈이 도둑년에게 외쳤다.